제5화
합방 제안
손목의 온기가 떠나지 않았다.
도현은 세면대 앞에 서서 찬물에 손을 담갔다. 왼손. 이준의 손목을 잡았던 손. 물이 차가웠다. 그런데 손바닥 안쪽에 남은 맥박의 감각이, 찬물로도 지워지지 않았다.
세 번 씻었다. 지워지지 않았다.
도현은 거울을 보았다. 다크서클이 어제보다 옅어져 있었다. 실신에 가까운 잠이었지만, 잠은 잠이었다. 몸이 회복의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이준의 손목을 잡고 잔 밤이었다.
그 사실을 지울 수 없다면, 분류해야 한다.
도현은 어젯밤의 행위를 '사고'로 분류하기로 했다. 수면 부족에 의한 무의식적 반응. 의도가 아니라 본능. 선택이 아니라 사고.
병실로 돌아왔다. 이준이 침대 옆 테이블에 종이컵을 내려놓고 있었다. 물. 항상 그래왔듯이. 아무 말 없이.
도현은 그 물을 마셨다.
습관이 되면 안 된다.
생각과 동시에 마시고 있었다. 그 간극이 불쾌했다.
*
낮 동안 도현은 노트를 펼쳤다.
네 개의 이름을 다시 보았다. GPS 차단 로그를 확보할 방법을 설계했다. 접근 권한. 보고 라인. 감사 절차. 기획조정실장의 권한으로 열 수 있는 문이 어디까지인지 계산했다.
계산하는 동안은 괜찮았다. 머리가 돌아가는 동안은 72시간이 돌아오지 않았다.
문제는 밤이었다.
형광등이 꺼지고, 비상등만 남자, 계산이 멈췄다. 멈추는 순간 빈자리에 감각이 들어왔다. 철 냄새. 물방울 소리. 콘크리트의 차가움. 도현은 눈을 감았다. 감은 것이 실수였다. 어둠이 폐공장의 어둠과 겹쳤다.
심장이 뛰었다. 빠르게. 도현은 손목의 맥박을 짚었다. 120. 130. 짚는 행위 자체가 불안을 가속했다. 수치가 올라가는 것을 인지하면 더 올라간다. 인지의 루프.
이준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어젯밤과 같은 위치. 반 걸음. 30센티미터.
도현은 그 거리를 의식했다. 의식하는 순간 호흡이 느려졌다. 의식했다는 사실을 의식하는 순간 다시 빨라졌다.
이건 안 된다.
도현은 등을 벽에 붙이고 눈을 떴다. 비상등이 깜빡였다. 이준의 호흡이 들렸다. 그 호흡에 맞추려는 자신을 붙잡았다.
1시간이 지났다. 2시간. 잠이 오지 않았다. 오게 두지 않은 것이 아니라, 오지 않았다. 어젯밤의 '사고' 없이는.
도현은 천장을 보았다.
인정해야 할 것을 인정하자.
약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의지로도 해결되지 않는다.
체온이 해답이라는 것을, 몸이 이미 알고 있다.
인정은 굴복이 아니다. 도현은 자신에게 말했다. 이건 전략적 선택이다. 수면은 판단력의 원료이고, 판단력은 배신자를 찾는 데 필요하다. 그렇다면 수면을 확보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을 설계하면 된다.
조건을 설계하면, 의존이 아니라 거래가 된다.
*
"이준."
이준이 고개를 들었다. 비상등 아래서 턱선이 드러났다.
"오늘은." 도현은 말을 끊었다. 다시 시작했다. "여기 있어."
어젯밤과 같은 문장이었다. 그런데 어젯밤은 발작 직전의 명령이었고, 오늘은 계산 끝의 제안이었다. 같은 단어, 다른 무게.
이준은 움직이지 않았다. 어젯밤에도 그랬다. 오늘도 그랬다. 문제는 그 일관성이 도현을 더 불안하게 한다는 것이었다.
"조건이 있어."
이준의 시선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듣고 있다는 신호.
"거리 30센티. 유지해. 좁히지 마."
"손은 보이는 곳에."
"말 금지. 내가 먼저 말하기 전까지."
세 가지 규칙. 도현이 설계한 틀. 이 틀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합의'이지 '의존'이 아니다. 적어도 도현의 머릿속에서는.
이준은 규칙을 수정하지 않았다. 반문하지도 않았다. 고개를 숙였다. 3걸음 뒤의 자세로.
그리고 침대 위로 움직이기 전에, 먼저 병실을 돌았다.
문. 잠금 상태 확인. 3초.
창문. 시건장치 확인. 2초.
비상구 방향. 복도 쪽 소리 확인. 4초.
마지막. 도현. 시선이 도현의 손목에 0.3초 머물렀다가, 내려갔다.
도현은 그 순서를 지켜보았다. 문, 창문, 비상구. 그리고 도현. 수천 번 반복한 순서에 추가된 네 번째 항목.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확인의 대상. 그 차이를 도현은 감지했지만 분석하지 않기로 했다.
보호인가.
감시인가.
도현은 판단을 보류했다. 지금은 수면이 먼저다.
*
이준이 누웠다.
침대는 1인용이었다. 두 사람이 눕기에는 좁았다. 이준은 침대 가장자리에 몸을 밀착시켰다. 정확히 30센티미터. 도현이 정한 거리. 도현은 벽 쪽에 등을 붙였다.
30센티미터의 공기가 두 사람 사이에 있었다.
그 공기가 따뜻했다. 벽의 차가움과 이준의 체온이 만드는 온도 차. 도현은 그 차이를 물리적으로 인식했다. 왼쪽 등은 차갑고, 오른쪽 팔은 따뜻했다. 30센티미터 건너편에서 전도되는 열.
이준의 호흡이 들렸다.
규칙적이고, 깊고, 통제된. 항상 그 패턴이었다. 도현은 그 호흡을 세지 않으려 했다. 세는 순간 맞추게 되고, 맞추는 순간 의존이 되니까.
세지 않았다.
대신 들었다.
듣는 것은 세는 것과 다르다고 도현은 자신에게 말했다.
시간이 지났다. 5분. 10분. 도현은 시계를 보지 않았다. 비상등의 깜빡임을 세지도 않았다. 이준의 호흡만 들었다.
그러자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철 냄새가 사라졌다. 물방울 소리가 사라졌다. 폐공장이 사라졌다. 남은 것은 어둠과 체온과 호흡뿐이었다.
도현의 눈꺼풀이 내려왔다.
이번에는 실신이 아니었다. 미끄러짐도 아니었다. 몸이 항복한 것이 아니라, 허락한 것이었다. 도현의 의식이 스스로 회로를 끄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인식한 것.
이준의 호흡이 미세하게 느려졌다는 것. 도현이 잠든 것을 확인한 뒤에야, 이 남자도 긴장을 풀었다는 뜻이었다.
이건 선택이다. 굴복이 아니라.
그 문장이 잠드는 도현의 머릿속에서 마지막으로 떠올랐다.
*
아침이 왔다.
도현은 눈을 떴다. 비상등이 꺼져 있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이 부드러웠다. 어제와 다른 빛. 날카롭지 않은 빛.
30센티미터는 지켜지지 않았다.
도현의 오른쪽 어깨가 이준의 왼쪽 팔에 닿아 있었다. 잠든 사이에 좁혀진 거리. 누가 먼저 움직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 도현이 벽에서 멀어진 것일 수도, 이준이 안쪽으로 기운 것일 수도.
접촉 면적은 어깨 하나만큼. 그것으로 충분했다. 도현은 6시간을 잤다. 납치 이후 처음으로.
도현은 몸을 일으켰다. 이준이 눈을 뜬 채 천장을 보고 있었다. 잠들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밤새. 도현이 잠든 6시간 동안, 이 남자는 깨어 있었다.
문. 창문. 비상구.
그리고 도현.
이준의 시선이 도현에게 왔다. 0.3초. 봉합 자리를 응시하던 때와 같은 무게가 그 시선 안에 있었다. 이름을 붙일 수 없는 것. 도현이 감지할 수 있는 한계선 바로 위의 무언가. 그리고 내려갔다. 평소의 시선 관리로 돌아갔다.
도현은 그 0.3초 안에서 무언가를 보았다.
규칙에서 벗어난 시선.
30센티는 규칙이었다.
어느 순간, 도현의 규칙이 되었다.
숨이 편해지는 순간, 도현은 더 무서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