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이번엔 울지 않고 남긴다
화요일 아침 식탁은 어제와 같았다.
태욱이 먼저 앉아 있었다. 아이패드, 아메리카노, 매지 않은 넥타이. 어제와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달라진 것은 연화 쪽이었다.
연화는 식탁에 앉으며 태욱의 손을 봤다. 양복 바지 주머니가 약간 부풀어 있었다. 지갑인지, 다른 것인지. 어제는 그 부풀어오름을 신경 쓰지 않았다.
"오늘 오후에 외부 미팅 있죠?"
"응. 삼성동 쪽."
"늦을 것 같으면 말해줘요. 저녁 준비할지 말지."
태욱이 고개를 끄덕였다. 연화는 토스트에 잼을 발랐다. 오늘은 한 입 먹었다. 딸기잼의 단맛이 입안에서 너무 강했다. 몸은 여기 있는데, 감각의 기준이 아직 4개월 뒤에 맞춰져 있었다.
태욱이 일어섰다. 서류 가방을 집어 들었다. 연화는 현관까지 따라 나갔다. 매일 아침 현관까지 남편을 배웅하는 것이 이 집의 루틴이었다.
"다녀올게."
"네."
태욱이 구두를 신었다. 왼쪽부터. 늘 왼쪽부터. 나가기 직전, 뒤를 돌아봤다. 연화를 봤다. 0.5초. 아내가 제자리에 있는지 확인하는 시선. 연화는 웃었다. 같은 미소. 다른 의미.
현관문이 닫혔다. 3초를 세었다. 엘리베이터가 내려가는 소리.
돌아서서 2층으로 올라갔다.
서재에 들어가 문을 닫았다. 이 집에서 유일하게 카메라에 잡히지 않는 공간. 어제 확인한 사실이다. 다른 구간은 나중에 점검한다. 지금은 확실한 것부터.
수첩을 꺼냈다. 어제 적은 한 줄 아래에 펜을 놓았다.
'태욱 드레스룸 하단 확인 필요. 아이폰 사용자.'
적고 서랍에 넣었다.
안방 드레스룸에 들어갔다. 옷을 정리하는 척하며 선반과 서랍을 하나씩 열었다. 태욱 쪽 드레스룸은 문으로 분리되어 있었다. 들어갈 이유가 없었다. 전에는.
태욱의 드레스룸 문을 열었다. 양복이 색상별로 걸려 있었다. 넥타이가 회전 거치대에 정렬되어 있었다. 구두가 아래쪽 선반에 네 켤레. 이 남자의 공간은 소리가 없는 것처럼, 주름도 없었다.
서랍을 열었다. 커프스링크, 타이핀, 머니클립. 아래 칸에 시계 케이스. 그 옆에 작은 가죽 파우치. 안에 USB 하나와 충전 케이블이 들어 있었다.
충전 케이블. 연화는 손을 멈췄다. 태욱의 휴대폰은 아이폰이다. 이 케이블은 C타입이었다.
USB를 봤다. 검은색 소형. 용량 표시가 없었다. 만지지 않았다. 아내가 남편의 서랍을 정리하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USB를 만지는 것은 아니었다.
파우치를 원래 위치에 돌려놓았다. 서랍을 닫으려는 순간, 1층에서 소리가 올라왔다.
현관 쪽이었다. 도어락 비밀번호음.
손이 굳었다.
김 실장은 오후 3시에 퇴근한다. 지금은 오전 11시. 그렇다면 누가 들어오는 건지.
서랍을 닫았다. 손자국을 확인할 여유가 없었다. 드레스룸 문을 닫고 안방으로 나왔다. 복도 카메라의 렌즈는 계단 쪽을 향하고 있다. 드레스룸에서 나오는 동작은 안방 안이다. 잡히지 않는다.
1층에서 슬리퍼 끌리는 소리가 들렸다.
"사모님?"
김 실장의 목소리였다. 외출했다 돌아온 것이다. 연화는 숨을 내쉬었다. 목소리가 떨리지 않는 것을 확인한 뒤 대답했다.
"네. 2층이에요."
"아, 네. 마트 다녀왔습니다. 냉장고에 넣어놓을게요."
김 실장의 슬리퍼 소리가 주방 쪽으로 멀어졌다. 연화는 안방 침대 가장자리에 앉았다. 손바닥이 축축했다.
전 타임라인에서도 이런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들키지 않는 것과 들킬 뻔한 것 사이의 간격. 전에는 그 간격을 모르고 뛰어들었다. 스파이앱을 깔다 걸렸고, 카톡 기록을 캡처하다 실패했다.
서랍은 확인했다. C타입 케이블. 그것으로 충분하다. 다음은 시간이 알려줄 것이다.
서재로 돌아가 수첩을 꺼냈다.
'C타입 케이블 + USB. 하단 서랍 가죽 파우치 안.'
한 줄 더.
'김 실장 오전 외출 있음. 시간 불규칙.'
적고 수첩을 닫았다. 손끝의 떨림이 가라앉았다.
오후, 집에 혼자 남았다. 김 실장이 퇴근한 뒤, 연화는 주방에서 물을 한 잔 마셨다. 냉장고 문을 열었다. 반찬 통이 정렬되어 있었다. 날짜 라벨까지 붙어 있었다. 김 실장의 손길이었다.
기억을 점검했다.
세나. 오세나. 연화의 대학 친구. 위기관리 PR 컨설턴트. 전 타임라인에서 세나가 태욱 측에 정보를 넘긴 사실을 확인한 것은 중반이었다. 지금은 연락하지 않는 것이 맞다. 세나가 먼저 연락할 것이다. 안부인 척하는 정보 수집이었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서초동 법무법인 정연. 파트너 변호사 서지혁. 전 타임라인에서는 들어본 적만 있는 이름이었다. 이혼 후 누군가가 "그 변호사한테 갔어야 했다"고 말해준 적이 있었다. 이번엔 직접 간다. 하지만 오늘은 아니다. 자선 행사가 먼저다.
저녁 8시. 태욱이 돌아왔다.
현관에 나가 맞이했다. 슬리퍼를 가지런히 놓아두었다. 태욱이 구두를 벗었다. 식탁에 마주 앉았다. 밥을 퍼담고, 반찬을 올렸다. 태욱이 숟가락을 들었다.
"목요일 어머니 자선 행사, 리스트 확인해뒀어요."
"고생했어."
네 마디. 오늘의 대화는 그뿐이었다. 태욱이 국을 마시다가 손목시계를 봤다. 짧은 동작이었다. 밥을 먹으며 시간을 확인할 이유. 내일이 수요일이니까.
연화는 그 동작을 눈에 담았다. 반응하지 않았다.
밥을 끝까지 먹었다. 120일은 체력으로 버티는 시간이기도 했다.
잠자리에 들기 전, 욕실 거울을 봤다. 회귀 후 이틀째. 조급함이 올라왔다. 전 타임라인에서 모든 것을 놓친 기억이 등을 눌렀다. 지금 당장 태욱의 아이패드를 열어봐야 할 것 같았다. 서류가방을 뒤져야 할 것 같았다.
연화는 세면대 가장자리를 잡았다.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도자기의 차가움이 손바닥으로 전해졌다. 손가락 끝이 하얗게 변할 때까지 힘을 줬다.
안 된다.
욕실을 나와 서재로 갔다. 수첩을 꺼내 마지막 줄 아래, 내일의 시간 칸을 미리 그었다. 수요일 저녁. 두 줄로 나눴다. '출발' 옆에 빈칸. '귀가' 옆에 빈칸.
수첩을 닫고 서랍에 넣었다.
침실로 돌아왔다. 태욱은 이미 잠들어 있었다. 등을 돌리고 누운 뒤통수가 보였다. 이 남자는 잠도 반듯하게 잤다. 코를 골지 않았다. 몸을 뒤척이지 않았다. 깨어 있을 때와 같았다. 통제되어 있었다.
눈을 감았다. D-119.
수요일.
태욱이 퇴근 후 다시 나간 것은 저녁 7시 40분이었다.
양복을 벗지 않았다. 넥타이만 풀고 재킷을 다시 걸쳤다. 연화는 2층 서재 창문에서 그걸 봤다. 현관 카메라에는 태욱이 나가는 모습이 찍힐 것이다. 하지만 연화가 서재 창에서 그걸 지켜보는 장면은 찍히지 않는다.
검은 세단이 아니었다. 기사가 모는 차가 아니었다. 지하 주차장에서 직접 차를 빼는 소리가 들렸다. SUV 엔진음. 태욱이 개인 명의로 리스한 차. 가족 일정에는 한 번도 쓰지 않았던 차.
서재 수첩을 꺼냈다. '출발' 옆에 적었다. 7:40.
따라가지 않는다. 뒤지지 않는다.
SUV의 후미등이 골목을 돌아 사라졌다. 방향은 왼쪽. 한남대교 방향. 강남 쪽.
연화는 서재 의자에 앉았다. 기다렸다. 전에는 몰라서 기다렸다. 지금은 알면서 기다린다.
서재 시계의 초침이 돌았다. 8시. 9시. 창밖이 완전히 어두워졌다. 한남동의 밤은 조용했다. 이 집이 조용한 것처럼.
10시 12분.
현관 도어락이 울렸다. 태욱이 들어오는 소리. 구두를 벗는 소리. 2층으로 올라오는 발소리.
연화는 안방 침대에 누워 있었다. 서재에서 옮겨온 것은 10시 전이었다. 이불을 덮고 눈을 감고 있었다. 호흡을 고르게 만들었다. 자는 척.
안방 문이 열렸다. 태욱이 들어왔다. 잠깐 멈추는 기척이 있었다. 연화의 잠든 모습을 확인하는 것인지, 습관인지. 욕실 불이 켜졌다. 물 흐르는 소리. 3분 뒤 불이 꺼졌다. 침대 반대쪽이 내려앉았다. 이불이 당겨졌다. 태욱의 호흡이 가라앉았다.
연화는 눈을 떴다. 어둠 속 천장을 봤다.
2시간 32분. 개인 명의 SUV. 한남대교 방향. 기사 없이.
태욱의 호흡이 깊어졌다. 잠든 것이 맞았다. 연화는 베개 옆의 휴대폰을 들었다.
하경에게 전화를 걸었다.
밤 10시 반. 세 번 울리고 받았다.
"언니? 이 시간에?"
목소리에 잠기가 묻어 있었다. 내일 아침 출근인데 이미 누워 있었을 것이다.
"깨웠지? 미안."
"아니, 괜찮아. 무슨 일이야?"
입을 열었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2초. 천장의 어둠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언니?"
"……응."
"밥은 먹었어?"
목 안쪽이 뜨거워졌다. 법도 증거도 아닌, 밥. 연화는 이불을 턱까지 끌어올렸다.
"먹었어."
"거짓말이지."
하경의 목소리가 나직했다. 화내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알고 있다는 톤이었다. 또 2초가 흘렀다.
"목요일에 보자. 내가 잘 먹여줄게."
"……응."
"언니, 나 안 자. 더 얘기해도 돼."
연화는 전화기를 귀에 댄 채 눈을 감았다.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하지만 끊고 싶지 않았다. 하경의 호흡 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렸다. 조용하고 고른 호흡. 옆에 누워 있는 태욱의 호흡과는 다른 종류의 고요함이었다.
"하경아."
"응."
"받아줘서 고마워."
전화기 너머로 하경이 무언가를 삼키는 소리가 났다.
"언니, 나 항상 받아. 알지?"
"알아."
전화를 끊었다. 휴대폰을 베개 옆에 내려놓았다. 옆에서 태욱의 호흡이 변하지 않았다.
수첩에 적을 것이 두 가지 늘었다. 태욱의 수요일 저녁. 그리고 하경의 전화번호 옆에, 아무것도 적지 않아도 되는 한 줄.
이번엔 울지 않고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