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적대적 공개매수
공시는 총성이었다. 그리고 시장은 총성에 가장 빠르게 반응한다.
오전 9시 정각.
HMB 전자공시 시스템에 문서 하나가 올라왔다.
〔이카루스 길드 주식 공개매수 신고서 — 매수 예정 주식수: 발행주식 총수의 25.1%. 매수 예정가: 주당 5,200원. 매수 예정 기간: 공시일로부터 20영업일. 매수 목적: 경영 참여 및 경영 정상화.〕
알림이 뜨는 데 4초가 걸렸다.
포럼이 깨어나는 데 11초가 걸렸다.
첫 번째 기사가 나오는 데 3분 8초가 걸렸다.
공개매수 성공 확률: 61%→58%→63%.
변동성 급증. 시장이 아직 방향을 정하지 못했다.
승헌은 엘리시움 소회의실에서 화면을 봤다.
세 개의 모니터. 왼쪽은 포럼 반응. 가운데는 이카루스 주가 차트. 오른쪽은 뉴스 피드.
태경이 옆에 서 있었다. 커피는 들지 않았다. 오늘은 그럴 시간이 없다는 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기자회견 준비됐어?"
"11시입니다."
"두 시간 남았어."
"네."
은설이 들어왔다. 태블릿을 들고.
"포럼 반응 정리했습니다." 그녀가 말했다. "세 가지 방향으로 갈리고 있어요. 첫째, 실제 경영 개선 기대. 둘째, HMB 조사 중이라 공매도 유입. 셋째, 미래그룹 개입 시나리오 스프레드."
"비율은?"
"긍정 41%, 부정 34%, 관망 25%. 긍정이 앞서고 있는데 부정이 빠르게 올라오고 있습니다."
공개매수 성공 확률: 63%→61%. 부정 여론 반영.
다시 내려갔다.
시장은 공시가 나왔다고 움직이는 게 아니었다. 공시 뒤에 누가 있는지를 보고 움직였다.
"기자회견 메시지 세 개." 승헌이 말했다. "첫째, 경영 정상화 — 적자 구조 개선, 3분기 내 흑자 전환 목표. 둘째, 헌터 안전 투자 — 장비 교체 사이클 단축, 부상 보상 구조 개선. 셋째, 시장 투명성 — 수익 구조 공개, 조합원 배당 도입."
은설이 받아썼다.
"조합원 배당은 처음 말씀하신 거예요."
"오늘 추가합니다."
"이유요?"
"이카루스 헌터들이 지분 일부를 갖게 되면 도윤이 화이트 나이트를 통해 경영권을 흔들기 어렵습니다. 내부 지지가 생기는 거니까요."
태경이 끼어들었다.
"그거 즉흥이야, 계획이야?"
"어제 밤에 나왔습니다."
"어젯밤이면 도윤이랑 회동 직후잖아."
"네."
태경이 잠시 승헌을 봤다.
"도윤이 뭐라고 했어?"
"좋아, 했습니다."
"좋아?"
"형이 좋다고 할 때는 전면전 선언입니다."
태경이 안경을 올렸다.
"…재밌군."
*
▶ 여의도 프레스센터. 오전 11시.
기자가 열일곱 명이었다.
작은 숫자가 아니었다. 이카루스는 C급 길드였다. C급 길드 인수전에 이 숫자가 모인 건 이유가 하나였다. 인수자가 미각성이고, 미래그룹 형제 대결 구도이기 때문이었다.
승헌이 단상에 섰다.
마이크 앞에 서는 건 처음이었다. 전생에서는 이 자리까지 오지 못했다.
긴장 감지. 심박수 상승. 마켓 아이 정확도 소폭 하락 — 감정 개입 경고.
3초.
1초. 2초. 3초.
"안녕하세요. 강승헌입니다."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이카루스 길드 공개매수를 선언합니다. 목적은 세 가지입니다."
승헌은 천천히 말했다. 빠르지 않게. 그러나 멈추지 않게.
"첫째. 경영 정상화입니다. 이카루스는 3분기 연속 적자 길드입니다. 원인은 헌터 실력이 아니라 수익 구조입니다. 던전 선택, 팀 배치, 아티팩트 운용 — 모두 데이터 기반으로 재설계합니다. 3분기 내 흑자 전환이 목표입니다."
기자들이 받아쓰고 있었다.
"둘째. 헌터 안전 투자입니다. 이카루스 헌터들의 장비 교체 주기는 현재 업계 평균 대비 1.4배 깁니다. 이것을 업계 평균 이하로 줄입니다. 부상 시 보상 구조도 개편합니다."
카메라가 움직였다. 승헌의 얼굴을 정면으로 잡는 앵글로.
"셋째. 조합원 배당입니다. 이카루스 소속 헌터 전원에게 지분 일부를 배당합니다. 길드의 수익이 길드를 만든 사람들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세 번째 메시지가 예상 밖이었던 것 같았다. 기자들이 서로를 봤다.
포럼 실시간 반응 — 긍정 41%→52%. 부정 34%→27%.
공개매수 성공 확률: 61%→66%.
올라갔다.
질문이 들어왔다.
"HMB 조사 중인 상태에서 공개매수를 진행하는 게 적법합니까?"
"조사는 진행 중이고, 저는 적법하게 협조하고 있습니다. 공시 자체는 HMB 규정상 문제가 없습니다."
"미래그룹과의 관계는요?"
"이번 인수는 개인 자격으로 진행하는 겁니다."
"미래그룹 강도윤 부회장이 이 공개매수에 반대하고 있다는 보도가 있습니다."
승헌은 마이크를 봤다.
"주주는 누구나 반대할 권리가 있습니다."
짧았다. 그러나 충분했다.
웃음 소리가 작게 났다. 기자 중 한 명에서.
"마켓 아이 스킬로 예측한 수익률 78%가 실제 공략에서 81.2%로 나왔는데, 이 스킬이 내부자 정보와 연계되어 있다는 의혹이 있습니다."
"마켓 아이는 공개 데이터를 분석하는 스킬입니다. 비공개 정보는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HMB에도 동일한 내용으로 소명했습니다."
"증명할 수 있습니까?"
"이미 했습니다."
기자회견이 끝났다.
22분이었다.
*
▶ 미래그룹 본사 42층 / 같은 시각
도윤은 기자회견 생중계를 보고 있었다.
세 번째 메시지가 나왔을 때 처음으로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조합원 배당.
그것은 예상 밖이었다.
내부 지지 확보 전략. 헌터들이 지분을 가지면 외부 매수자가 경영권을 흔들기 어렵다.
승헌, 어젯밤 회동 직후에 이걸 설계했나.
도윤은 팀장을 불렀다.
"화이트 나이트 어디까지 됐어?"
"백호 길드가 관심 있다고 접촉해왔습니다."
"백호?"
"B급 길드입니다. 이카루스 무영-7 좌표를 원합니다."
도윤이 잠시 생각했다.
"조건은?"
"이카루스 지분 15% 취득 의향. 경영 개입 없이 좌표 공유만 원한다고 합니다."
15%였다.
승헌이 확보 중인 지분과 합치면 화이트 나이트가 오히려 승헌 편이 될 수도 있는 구조였다. 도윤은 그것을 계산했다.
"백호 패스. 다른 곳으로."
"남은 후보가 한 곳입니다. 진성자산."
"진성은 조건이?"
"이카루스 인수 후 미래그룹 계열 편입 약정 요구합니다."
도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성으로 가. 오늘 안에."
팀장이 나갔다.
도윤은 기자회견 화면을 다시 봤다. 이미 끝난 화면이었다. 승헌이 마이크 앞에 서 있는 마지막 컷.
전화를 꺼냈다. 발신자 표시 없는 번호로 걸었다.
신호음이 두 번 갔다.
"이번에는 다른 방식으로 가자."
전화가 끊겼다.
*
▶ 이카루스 길드 대회의실. 오후 2시.
임원 여섯 명이 모여 있었다. 기자회견 직후 긴급 소집이었다.
분위기가 둘로 갈렸다.
정해린은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헌터 동료들한테서 온 메시지들인 것 같았다. 표정이 달랐다. 기자회견 전보다 밝았다.
박성우는 팔짱을 끼고 있었다. 기자회견을 보면서 뭔가를 결정한 것 같은 자세였다. 어느 쪽인지는 아직 모르는.
나머지 네 명은 두 그룹으로 나뉘어 앉아 있었다. 승헌 측과 관망 측.
임원 이탈 가능성: 박성우 31%. 정해린 9%. 전체 평균 24%→18%.
기자회견 효과 반영. 조합원 배당 메시지가 내부 지지 향상에 기여.
18%로 내려갔다. 괜찮은 수치였다.
"기자회견 보셨죠." 승헌이 말했다. "오늘부터 공개매수가 공식화됐습니다. 20영업일 안에 25.1%를 확보하는 게 목표입니다."
박성우가 입을 열었다.
"조합원 배당이 진짜입니까?"
"진짜입니다."
"얼마나요?"
"인수 완료 후 순이익의 10%를 헌터 지분으로 배당합니다. 근속 연수 기준 차등 적용."
박성우가 팔짱을 풀었다.
박성우. 이탈 가능성 31%→19%.
정해린이 손을 들었다.
"헌터들이 지분을 가지면 외부에서 경영권을 흔들 수 없는 거죠?"
"어렵습니다. 내부 지지가 기반이 되니까요."
"미래그룹이 들어와도요?"
"헌터들이 동의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정해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머지 임원들 사이에서도 무언가 결정되는 것이 보였다. 말없이. 그러나 분명하게.
한 명이 말했다.
"공개매수 지지합니다."
그것이 첫 번째였다.
두 번째가 나오는 데 5초가 걸리지 않았다.
*
▶ 엘리시움. 저녁 6시.
은설이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뉴스 피드가 빠르게 올라가고 있었다.
〔이카루스 공개매수 주가 당일 11.2% 상승〕
〔S급 서지후 이카루스 공략 동행 — 감시인가 지지인가〕
〔미각성 헌터, 길드 인수전 선언 — 헌터 업계 판도 변화 시작?〕
태경이 들어왔다. 재킷을 벗어 들고.
"주가 어때?"
"11.2% 상승입니다."
"시장이 긍정으로 읽었어." 태경이 의자에 앉았다. "오늘 하루 기준으로는 당신이 이긴 거야."
승헌은 태경을 봤다.
"오늘 하루 기준으로."
"도윤이 다음 수를 뒀을 거야. 이미."
"알고 있습니다."
"뭘 들고 나올 것 같아?"
승헌은 마켓 아이를 열었다.
도윤의 다음 수 예측. 화이트 나이트 투입 확률 57%→64%. 내부 배신자 활용 확률 29%. 법적 가처분 신청 확률 41%.
"세 가지가 동시에 올 겁니다."
"화이트 나이트, 내부 배신, 가처분."
"순서는 모르지만."
태경이 잠시 생각했다.
"대응은?"
"화이트 나이트는 이카루스 내부 지지로 막습니다. 배신은 아직 방지선이 있습니다. 가처분이 제일 까다롭습니다."
"가처분이 인용되면?"
"공개매수 일정이 멈춥니다."
그것이 진짜 위협이었다.
태경이 일어섰다.
"법무팀 내일 아침 소집해. 가처분 방어 준비 먼저."
"네."
태경이 나갔다.
은설이 말했다. 혼잣말처럼.
"오늘 기자회견 잘 하셨어요."
승헌이 돌아봤다.
"그런가요."
"세 번째 메시지가 나왔을 때 기자들 표정이 바뀌었어요. 저도 몰랐던 내용이라."
"어젯밤 회동 직후에 나왔습니다."
"형이랑 만나고서요?"
"네."
은설이 잠시 승헌을 봤다.
"형이 뭐라고 했어요?"
"접으라고 했습니다."
"그 말 듣고 조합원 배당이 나온 거예요?"
"형이 막으려는 방식을 보면 뚫을 방향이 보입니다."
은설이 뭔가를 메모했다. 태블릿에.
승헌은 창밖을 봤다. 강남의 저녁. 불빛이 하나씩 켜지고 있었다.
마켓 아이가 업데이트됐다.
공개매수 성공 확률: 66%.
도윤 전면전 변수 반영 완료. 다음 72시간이 분수령.
66%.
어제보다 5%포인트 올랐다.
다음 72시간.
형이 화이트 나이트를 붙일 것이다. 법적 가처분이 올 것이다. 내부에서 균열이 시도될 것이다.
그 안에 전부 막는다.
전화가 울렸다.
도윤의 번호가 아니었다. 모르는 번호였다.
승헌은 받았다.
"강승헌 씨?"
목소리가 낯설었다. 남자였다.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목소리. 배경 소음이 없었다. 아주 조용한 공간이었다.
"네."
"백호 길드입니다.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백호.
화이트 나이트 후보로 거론되던 B급 길드였다.
백호 길드. 도윤 쪽 후보였으나 조건 미합의로 이탈. 현재 독자 접촉 시도.
의도: 미정.
또 미정이었다.
"들어보죠."
강남의 밤이 창밖으로 깊어지고 있었다.
시장에 전쟁이 시작됐다.
66%. 그리고 72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