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동조
새벽빛은 창문을 통과하는 순간, 색을 잃었다.
도하는 수건을 접다가 손끝이 조금 떨리는 걸 들켰다. 접었다. 다시 접었다. 반으로. 또 반으로. 수건이 네 겹이 되었을 때, 손이 멈추었다. 에덴 복도에서 서류를 접던 것과 같은 동작이었다. 도하는 그것을 알아차리고 수건을 펼쳤다. 다시 처음부터. 단정하게.
주방으로 나왔다. 강진이 소파에 앉아 있었다.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누르며 숨을 고르는 중이었다. 두통은 멎었다. 하지만 몸이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 폭주 직전의 잔열. 에덴에서 배운 것이 있다면 그것이었다. 에스퍼의 신경계는 극한 이후 한동안 잿빛으로 남아 있다.
도하는 컵 두 개를 꺼냈다. 물을 채웠다.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강진 쪽에 하나, 자신 쪽에 하나.
강진이 도하를 성이 아니라 이름으로 부른 뒤라, 공기 자체가 어색하게 무거웠다. 이름. 도하. 두 글자. 강진의 목소리에서 나온 그 두 글자가 새벽 내내 귓속에 남아 있었다. 계약서 어디에도 이름으로 부르라는 조항은 없었다. 하지만 그 말이 나왔고, 도하는 멈추었고, 돌아보지 않은 채로 대답했다.
그것으로 무언가가 달라졌다.
무엇이 달라졌는지는, 아직 몰랐다.
"한 번만 더."
강진이 말했다. 시선은 테이블을 향하고 있었다.
도하는 물컵을 내려다보았다. '한 번만 더'는 계약서 제7조 3항이었다. 긴급 가이딩. 에스퍼가 요청할 수 있으며, 가이드는 거부할 수 없다. 도하는 조항을 입에 올리려다 삼켰다. 말이 목구멍에서 녹았다.
"…네."
가이딩 공간이 아니었다. 거실이었다. 소파와 테이블 사이의 좁은 공간. 강진이 도하를 바라보지 않은 채로 손바닥을 위로 돌렸다. 어제와 같은 동작. 말 대신 손이 먼저인 사람.
도하는 맞은편에 앉았다. 손을 내밀었다.
손끝이 닿았다.
어제 밤의 감각이 돌아왔다. 저주파. 120Hz 이하. 아무에게도 닿지 않는다고 판정받은 파동이, 이 사람에게만 스며들었다. 도하는 의식을 내려놓는 대신 조금 다른 방식을 썼다. 어제처럼 완전히 내려놓지 않고, 호흡을 낮추면서 파동을 천천히 열었다. 강진의 신경계가 서서히 받아들였다. 벽을 넘지 않았다. 벽 아래로 스몄다.
그런데.
손끝에서 무언가가 달랐다.
감각이 달랐다. 어제 밤은 쏟아지는 폭포였다면, 지금은 고요한 수면 아래에서 무언가가 올라오는 것 같았다. 파동이 스며들면서, 강진의 내부에서 무언가가 열리고 있었다. 문 아래 틈으로 빛이 새듯.
그게 아니라, 기억이었다.
색이 먼저 왔다. 차가운 흰색. 형광등의 흰색. 에덴의 것과 비슷하지만 더 차갑고 더 좁은 공간. 다음은 소리. 금속이 바닥에 끌리는 소리. 그다음은 감각. 손목에 차가운 무언가가 감기는 촉감.
도하의 눈앞에서 장면이 번쩍였다.
어린 강진이었다.
열 살이나 열두 살쯤. 훈련복 차림.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손목에 억제 밴드. 형광등이 깜빡이고 있었다. 그 앞에 서 있는 어른의 목소리.
"통제해."
한 단어였다. 명령이었다. 어린 강진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렸다. 하지만 울지 않았다. 이를 악물었다. 손끝에서 에너지가 새어 나오는 것을 억지로 끌어당기는 것처럼, 어린 몸 전체가 수축했다.
"통제하라고."
도하는 그 장면 안에 서 있었다. 자신이 거기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느꼈다. 억제 밴드의 차가운 금속이 손목에 느껴졌다. 형광등의 깜빡임이 눈꺼풀 안쪽을 때렸다. 어린 강진이 견디고 있는 것이 손끝을 통해 직접 내려앉았다.
그리고 이유 없이 눈물이 났다.
도하는 스스로도 몰랐다. 눈가가 젖어 있다는 것을 느낀 건 강진이 먼저였다.
강진의 손에 힘이 빠졌다. 잡고 있던 도하의 손끝이 순간 느슨해졌다. 강진이 눈을 뜨고 도하를 보았다. 도하는 눈길을 피하지 못했다. 강진의 눈이 도하의 눈가에서 멈추었다.
이 사람이 이런 표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도하는 처음 알았다.
S급 에스퍼. 섹터 0 전투원. 국가 전략 자산. 언제나 단정하고 단호하게 감정을 지운 얼굴. 그런데 지금 강진의 눈에는 어떤 표정도 정의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처음 보는 감각의 앞에 멈춘 사람의 얼굴. 누군가의 눈물을 본 적이 없는 사람의 얼굴.
강진이 시선을 피했다.
손에 힘이 다시 들어왔다. 느슨해졌다가, 다시 조여졌다. 잡힌 채로.
도하는 눈을 닦으려 손을 올렸다. 잡힌 쪽이 아닌 손. 손끝이 눈가에 닿기 직전이었다.
강진의 손이 먼저 올라왔다.
손바닥이 도하의 눈 앞을 가렸다. 닿지는 않았다. 가린 것이었다. 도하의 시야가 강진의 손바닥으로 막혔다. 손가락 사이로 새벽빛이 가늘게 들어왔다.
낮고 짧은 목소리가 왔다.
"보지 마."
도하는 눈을 감았다.
그 순간, 더 깊은 어둠이 — 기억처럼 — 열렸다.
형광등이 꺼진 훈련실. 어린 강진이 혼자 앉아 있었다. 밴드가 풀려 있었다. 하지만 손목에는 자국이 남아 있었다. 아이는 그 자국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손을 쥐었다. 주먹이 되었다. 그리고 열었다. 손바닥을 위로.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향해.
잡아줄 사람이 없었다.
도하는 그것을 느꼈다. 손바닥이 강진의 손에 잡혀 있는 채로, 도하의 가슴 어딘가에 그 어린 허공이 내려앉았다.
대답할 수 없었다. 대답해야 할 사람이 없었다. 강진은 도하의 눈을 가리고 있었고, 도하는 눈을 감고 있었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세상이 조용했다.
강진의 손바닥 온기가 도하의 눈꺼풀 위로 전해졌다. 차갑지 않았다. 따뜻했다. 이 사람의 몸이 폭주 직전의 잔열을 품고 있었던 것처럼, 손바닥도 아직 그 열을 가지고 있었다.
도하는 그 온기를 느끼면서, 파동이 여전히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잡힌 손끝에서, 가린 손바닥에서. 두 군데에서 동시에. 저주파가 흘렀다.
강진의 맥박이 도하의 손바닥에 박자로 전달되었다.
처음에는 빠른 리듬이었다. 폭주 직전의 심박수. 그것이 파동을 타고 조금씩 낮아졌다. 느려졌다. 도하의 심박수와 같아져 갔다.
동조였다.
교본 제5장에 나오지 않는 동조. 표준 주파수 대역이 아닌 동조. 에덴의 어떤 교관도 설명하지 않은 방식의 연결. 두 사람의 맥박이 같은 박자로 고요해지고 있었다.
강진이 손을 내렸다.
도하의 시야가 다시 열렸다. 새벽빛. 통유리 너머의 세이프 존. 이미 하늘이 파래져 있었다. 도하는 눈을 깜빡였다. 눈가가 아직 조금 젖어 있었다.
강진은 도하를 보지 않았다. 시선을 창밖으로 돌린 채였다. 귀 뒤의 피부가 미세하게 붉었다. 강진이 붉어지는 모습을 도하는 처음 보았다.
아무 말이 없었다.
도하는 잡힌 손을 천천히 뺐다. 강진이 잡지 않았다. 허락한 것이었다.
도하는 자리에서 일어서려다 멈추었다. 테이블 위의 컵 두 개. 강진이 물을 아직 마시지 않았다. 도하의 컵도 마찬가지. 도하는 자신의 컵을 들어 물을 마셨다. 차가웠다. 목구멍을 타고 내려갔다. 그제야 목이 말랐다는 것을 알았다.
"…일어나도 됩니까?"
도하가 물었다. 낮은 목소리로.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보지 않은 채로.
도하는 일어섰다. 수건을 다시 접으러 주방으로 갔다. 이번에는 네 번 접지 않았다. 두 번만. 단정하게. 서랍에 넣었다.
복도로 나오려는데 강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낮았다. 거의 들릴까 말까 하는 소리였다.
"다음에 또 그런 게 보이면."
도하가 멈추었다.
"말해."
그것뿐이었다.
도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 삼켜졌다. 네, 라고 말하면 이미 계약 바깥의 무언가를 인정하는 것이 된다. 하지만 아니요, 라고 말하면 거짓이었다.
도하는 그냥 고개를 숙였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강진은 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복도로 들어갔다.
방문이 닫히는 소리. 그 소리가 사라지고 나서도 강진은 창밖을 보고 있었다. 파래지는 하늘. 형광등이 없어도 밝아오는 아침. 손바닥에 도하의 눈꺼풀 위의 온기가 아직 남아 있었다.
강진은 손을 천천히 내려다보았다.
새벽빛 속에서, 손바닥이 어딘가 낯설었다.
그때 단말기에 불이 들어왔다. 화면 위로 알림이 하나 떠 있었다. KCA 중앙. 도하는 자신의 방 안에서 같은 알림을 보았다.
'정기 가이딩 데이터 검수 요청. 해당 조합의 파동 수치 이상 감지. 3일 내 KCA 중앙 방문 요망.'
도하는 알림을 닫았다. 손끝이 조금 차가워졌다. 방금 전까지 강진의 손바닥 위에 있던 손이, 이제 이 화면을 잡고 있었다.
닿은 지 한 시간도 되지 않았는데, 누군가가 이미 그 숫자를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