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월식의 숲
달빛이 창틀을 긁고 있었다.
카이락스는 창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월식의 숲. 나무 꼭대기가 은빛으로 번지고 있었다. 어젯밤과 달랐다. 맥동의 간격이 좁아졌다. 느리게 깨어나는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 속도를 조이고 있었다.
자연적인 각성은 이런 리듬이 아니다.
코트를 걸쳤다. 소리 없이. 카일의 숨소리가 끊기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문을 열었다. 경첩 소리가 나지 않았다. 관절 하나하나를 의식하면 어떤 기계도 침묵을 유지한다.
복도는 어두웠다. 감시석마다 마력등이 희게 빛나고 있었다. 야간 경비 결계. 접근자의 성흔 파동을 읽는 방식이었다.
카이락스는 걸으면서 공허의 베일을 얇게 펼쳤다.
0.001%의 허무가 자신이 내는 파동을 흡수하면 충분했다. 마력등이 0.1초 흔들렸다. 인간의 눈으로는 깜빡임조차 되지 않는 간격. 경보는 울리지 않았다.
계단을 내려갔다. 1층 복도. 정문이 아니었다. 뒤쪽 창고동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창고동 끝의 낮은 창. 잠금 결계가 3각 수준이었다. 자물쇠에 손가락을 댔다가 떼었다. 소리도 없이 풀렸다.
밖이었다.
밤 공기가 차갑고 젖어 있었다. 잔디 위로 안개가 낮게 깔려 있었다. 멀리 월식의 숲이 어둠 속에서 검게 서 있었다.
번거롭군.
그러나 발이 먼저 움직이고 있었다.
*
금지구역 경계는 학당 동쪽 담장에서 이십 보 떨어진 지점이었다. 경계석이 다섯 개. 성흔 각인이 새겨져 있었다. 야간에는 학생증 성흔과 대조하는 방식으로 작동했다.
카이락스는 경계석 앞에 서서 파장을 읽었다.
규칙적이었다. 일정한 주기로 성흔 파동을 내보내고, 대답을 기다렸다. '학생 성흔입니까?' — 대답이 없으면 경보. 대답이 있으면 통과.
파장의 리듬을 외웠다. 세 번. 다섯 번. 충분했다.
파장이 나올 타이밍에 맞춰 아주 작은 파동을 얹었다. 성흔이 아니었다. 성흔의 패턴을 흉내 낸 공백. 경계석은 대답을 받았다고 인식했다.
통과가 아니었다. '지나가게' 만든 것이었다.
숲 입구로 들어섰다.
경계석 세 번째가 — 떨렸다.
뒤였다. 등 뒤에서. 방금 지나온 세 번째 경계석이 0.3초 동안 붉은 빛을 내뿜었다. 잔향이었다. 공허의 베일이 스친 곳에 미세한 허무의 찌꺼기가 남은 것이었다. 경계석이 그것을 성흔이 아닌 파동으로 분류하려 하고 있었다.
0.3초.
경보가 울리기까지 남은 시간이었다.
카이락스는 발을 멈추었다. 어깨 너머로 경계석을 보지 않은 채 — 손가락을 한 번 꺾었다. 허무 0.05%. 실 한 올. 그것이 경계석의 잔향을 감쌌다. 빨아들이지 않았다. 성흔의 패턴으로 덮어씌웠다. 공백을 빛으로 위장하는 것.
경계석의 붉은 빛이 꺼졌다.
0.1초가 남은 타이밍이었다.
심장이 뛰지 않았다. 당연했다. 백오십 년째 위기에 심장이 반응하지 않았다. 다만 — 허무를 한 번 더 썼다는 사실이 남았다. 숲 밖에서 벌써 두 번째. 흔적을 남기는 행동이 늘어나고 있었다.
번거로운 밤이 되겠군.
*
나무들이 달빛을 먹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달빛을 흡수해 검게 빛나고 있었다. 빛이 들어오는데 더 어두워지는 나무. 이 숲의 식생은 성흔 파동과 반응해 성장한 것이었다. 오랜 시간, 학당의 성흔 에너지가 땅속으로 스며들어 뿌리까지 각인된 것이다.
그 뿌리 아래 어딘가에 — 파편이 있었다.
발밑에서 맥동이 올라왔다. 심장 박동처럼. 규칙적이지만 가끔 불규칙하게 튀었다. 누군가 건드리고 있다는 뜻이었다. 완전히 제어하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공기가 눅진해졌다. 성흔을 가진 인간이라면 이 숲 깊숙이 들어올수록 위가 뒤집히는 압박을 느꼈을 것이다. 성흔의 빛과 파편의 어둠이 충돌하는 공간. 몸이 견디지 못한다.
카이락스는 그 압박을 공기의 질감 정도로 느꼈다.
그쪽이다.
가장 맥동이 강한 방향. 큰 나무들이 밀집한 숲 안쪽. 그림자가 그림자 위에 겹치는 곳.
그림자 중 하나가 움직였다.
*
무릎을 꿇은 남자였다.
검은 의복. 얼굴은 후드로 가려져 있었지만 체격과 기운이 낯설지 않았다. 심연의 기운을 품은 자. 파동이 절제되어 있었다. 상위 존재 앞에서 의식적으로 누르는 방식이었다.
후드가 벗겨졌다.
"폐—"
카이락스의 눈이 좁아졌다.
남자가 입술을 다물었다. 말이 반쯤 나오다가 삼켜졌다. 여기서는 그 호칭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한 표정이었다.
벨제르. 심연 칠죄 군단 중 탐욕의 군단장. 군대식 말투와 과잉 충성이 특기인 부하.
"보고하라."
낮은 목소리였다. 벨제르가 허리를 더 깊이 숙였다.
"파편의 각성 속도가 자연 수치를 이틀 전부터 초과하고 있습니다. 현재 속도라면 사흘 내로 자력 활성화 임계에 도달합니다."
"원인."
"외부 조작입니다. 누군가가 학당의 성흔 파동 주기에 맞춰 파편을 자극하고 있습니다."
흥미롭군.
"방향."
"본관 지하 2층. 연구실 구역입니다. 학당 내부인이 아니면 접근이 어려운 곳입니다."
카이락스는 파편의 맥동을 짚었다. 손을 대지 않았다. 허무의 근원을 실처럼 가늘게 늘어뜨려 파편과 연결했다. 맥동의 방향. 리듬. 그 뒤에 있는 의도.
특정 강도까지만 활성화시키고 유지하려는 움직임이었다.
쓰려는 것이다. 도구로.
허무의 실을 조금 더 깊게 집어넣었다. 파편의 맥동이 잠시 조용해졌다. 0.1초. 파편이 자신을 인식한 것이었다. 그리고 방향을 내주었다.
본관 지하. 벨제르의 말과 일치했다. 그리고 그 근처에서 — 희미하게. 두 겹.
하나는 파편을 건드리는 자. 다른 하나는.
...감시자다.
카이락스는 허무의 실을 거뒀다. 파편의 맥동이 다시 재개되었다. 흔적은 남기지 않았다.
"즉시 회수는 하지 않는다."
벨제르가 고개를 들었다.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숙였다.
"...알겠습니다."
"배후를 끌어내는 편이 효율적이다. 파편은 미끼로 둔다."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임계에 도달하면—"
"내가 있다."
더 이상 반론이 없었다.
*
멀리서 발소리가 들렸다.
낮은 발소리. 혼자. 조심스러운 걸음. 숲 가장자리 쪽에서 이쪽을 향해 오고 있었다.
카이락스는 눈을 들지 않고 말했다.
"들어가라."
벨제르가 소리 없이 숲 안쪽으로 사라졌다. 그림자가 그림자에 흡수되는 것처럼.
카이락스는 발밑 나뭇가지를 집어 들었다. 마른 나뭇가지 하나. 손가락으로 돌리며 천천히 숲 가장자리를 향해 걸었다. 깊은 곳에서 산책하러 나온 학생. 금지구역이지만 모르고 들어왔다는 표정을 만들면 됐다.
나뭇가지를 두 손으로 잡고 꺾었다.
탁.
발소리가 멈추었다. 카이락스는 꺾인 나뭇가지를 들고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으로 걸었다. 숲 입구 방향으로.
*
숲 가장자리. 큰 나무 위.
리아 벨 루미너스는 나뭇가지를 손으로 잡고 숨을 참고 있었다.
밤에 잠이 오지 않았다. 직감 때문이었다. 숲 쪽에서 파동이 왔다. 예언이 아니었다. 성녀의 감각이 가리키는 방향 — 저쪽. 그리고 그 파동 위에 겹치는 다른 파동.
그 두 번째 파동이 문제였다.
어제 수정구에서 느꼈던 그 '공백'. 살아 있는 존재에게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그 빈자리가 — 숲 안쪽에 있었다.
그래서 따라왔다. 금지구역인 것은 알았다. 하지만 예언서의 문장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심연의 군주가 학당에 들어왔다.'
나무 위에서 대화는 들리지 않았다. 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낯선 남자가 레온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는 것은 분명히 보았다.
F급이. 0각이. 누군가를 무릎 꿇게 한다.
그리고 — 아까. 경계석이 붉게 빛난 순간을 리아도 보았다. 경계석이 반응했다가, 무언가에 의해 눌렸다. 0.1초. 성녀의 감각이 그 0.1초를 놓치지 않았다.
레온 아르케인이 경계석을 — 속였다.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레온이 나뭇가지를 들고 걸어나오고 있었다. 낯선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마치 처음부터 아무도 없었던 것처럼.
리아는 나뭇가지를 더 세게 쥐었다. 손에 나무껍질이 파고들었다.
저 사람은... 누구와 이야기하고 있었지. 그리고 — 저 사람은 어떻게 경계석을 속일 수 있었지.
질문이 하나에서 둘이 되었다.
둘 다, 0각의 대답으로는 불가능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