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화. 둘 다 좋은 애들인 건 맞는데
3월 28일 금요일, 오전 10시 17분.
쉬는 시간에 교실이 반으로 나뉘었다.
물리적으로 나뉜 건 아니었다. 줄이 생긴 것도 아니었다. 그냥 앉은 위치가 이쪽과 저쪽이었다.
이쪽에는 박지훈이 있었다. 윤시하 자리 옆에 의자를 당겨 와서 앉아 있었다. 저쪽에는 이수빈이 있었다. 김하늘 자리 옆에서 핸드폰을 보면서 뭔가를 작게 말하고 있었다.
두 사람 다 의식하는 것 같지 않았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앉아 있었다. 그런데 두 사람이 번갈아 윤시하 쪽을 봤다. 자기들이 서로 같은 걸 하고 있다는 걸 모르는 것처럼, 동시에.
"어제 편의점 갔어?"
박지훈이 낮게 물었다.
"응."
"수요일에 이어서 목요일도?"
"목요일엔 안 갔어."
"그제는?"
"그제 갔어."
박지훈이 윤시하를 보면서 잠깐 뭔가를 생각하는 표정을 했다.
"야, 너."
"왜."
"그거 알아? 네가 편의점 가는 거 이수빈이 집계하고 있어."
"집계."
"아니 집계까지는 아닌데. 기록하는 것 같아. 언제 갔는지. 누가 같이 있었는지." 박지훈이 더 낮추면서. "수요일에 하늘이랑 같이 들어간 거도 봤대."
윤시하가 교실 저쪽을 봤다. 이수빈이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그 정보가 하늘이한테 다 가겠네."
"당연하지." 박지훈이 자기 자리로 돌아가면서 작게 말했다. "지금 네 주변 반경 1미터가 다 보고 있는 상황이야."
선생님이 들어왔다. 교실이 빠르게 정렬됐다.
수업이 시작됐다.
두 번째 교시가 끝나고 또 쉬는 시간이었다.
이번엔 김하늘이 윤시하 쪽으로 왔다.
"오늘 점심 같이 먹자."
자연스럽게. 이미 정해진 것처럼.
"응."
"수빈이도 같이."
"응."
김하늘이 자리로 돌아가면서 이수빈한테 뭔가를 말했다. 이수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수빈이 윤시하 쪽을 한 번 봤다. 웃었다.
박지훈이 뒤에서 속삭였다.
"불렸다."
"알아."
"어떻게 할 거야."
"점심 먹지."
"그거 말고."
윤시하는 교과서를 펴면서 생각했다.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의 범위가 뭔지 몰랐다. 오늘 점심을 어떻게 할 거냐는 건지, 아니면 지금 상황 전체를 어떻게 할 거냐는 건지.
수업이 다시 시작됐다.
점심시간이 됐다.
오늘 급식은 갈비탕이었다. 냄새가 진했다. 계단을 내려갈 때부터 올라왔다. 김하늘과 이수빈과 윤시하, 셋이 같은 테이블에 앉았다. 박지훈은 다른 쪽으로 갔다. 가면서 윤시하한테 눈을 한 번 크게 떴다. 알아서 잘 해, 라는 뜻이었다.
이수빈이 먼저 말을 꺼냈다.
"시하야, 4월부터 학교 축제 준비위 들어올 생각 없어? 올해 처음 하는 건데 2학년도 몇 자리 있거든."
"축제 준비위."
"응. 나랑 하늘이도 들어갈 거야. 같이 하면 재밌을 것 같아서."
윤시하가 김하늘을 봤다.
김하늘이 웃으면서 말했다. "부담은 아니야. 한 번 같이 해보면 어떨까 싶어서."
정중하게 이어 붙이는 방식이었다. 이수빈이 제안하고 김하늘이 가중치를 붙이는 패턴. 부담을 먼저 제거하면서 들어오는 방식. 윤시하는 그 구조가 보였다.
"생각해볼게요."
"부담 갖지 마. 구경만 해도 되니까."
이수빈이 갈비탕 국물을 한 모금 마시면서 말했다. 자연스럽게. 어색함을 없애는 방식이었다. 윤시하는 그것도 보였다.
밥을 먹는 동안 김하늘이 몇 가지 더 말했다. 학교 이야기, 중간고사 일정 이야기, 4월 날씨 이야기. 전부 자연스러웠다. 전부 좋은 말이었다. 어색한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강수현은 오늘 급식실에서 보이지 않았다. 어디서 먹는 건지 몰랐다.
그리고 입구에서 옆 반 남자애 하나가 윤시하를 보다가 시선을 피했다. 지난주까지 복도에서 마주쳤을 때 가볍게 목례하던 애였다. 오늘은 그냥 지나갔다. 소문의 비용이 시작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이상하게 더 피로했다.
점심을 마치고 교실로 돌아오는 길에 박지훈이 붙었다.
"어땠어."
"괜찮았어."
"축제 준비위 들어갈 거야?"
"글쎄."
"들어가면 하늘이 라인이 되는 거야, 사실상. 알아?"
윤시하가 계단을 오르면서 생각했다.
알고 있었다. 모르는 게 아니었다. 축제 준비위가 단순한 제안이 아니라는 것도. 이수빈이 먼저 꺼내고 김하늘이 붙인 게 우연이 아니라는 것도.
그런데 그게 나쁜 건 아니었다. 나쁜 의도가 아니었다. 김하늘이 윤시하를 가까이 두고 싶은 거였다. 그게 좋아서 하는 행동이었다.
그게 더 복잡했다.
"둘 다 좋은 애들인 건 맞는데."
윤시하가 중얼거렸다.
박지훈이 들었다.
"맞아."
"그래서 더 어렵네."
박지훈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계단을 올라가면서 잠깐 생각하는 것 같았다.
교실에 들어와서 자리를 찾아가는데 강수현이 있었다. 자기 자리에 앉아서 창밖을 보고 있었다. 점심을 혼자 먹고 온 것 같았다. 식판을 손에 들거나 급식실로 가는 것을 보지 못했다.
강수현이 윤시하를 봤다.
눈이 마주쳤다.
0.5초.
강수현이 먼저 시선을 내렸다.
그게 전부였다. 말이 없었다. 손짓도 없었다. 그냥 봤다가 시선을 내린 것.
윤시하가 자리에 앉으면서 생각했다.
김하늘은 움직이고 있었다. 전략이 있었고, 나쁜 의도는 아니었다.
강수현은 달랐다. 전략이 없었다. 그냥 거기 있었는데, 수요일에 한 말이 계속 남았다.
둘 다 신경 쓰인다는 게 사실이었다.
그게 문제였다.
수업이 끝나고 하교 시간이었다.
박지훈이 가방을 싸면서 옆에 섰다.
"야."
"응."
"오늘 편의점 가?"
"모르겠어."
"모른다는 게 간다는 거야, 안 간다는 거야."
"진짜 모르겠어."
박지훈이 가방을 메면서 목소리를 낮췄다.
"있잖아. 내가 관찰한 결론이야."
"말해."
"강수현 쪽은 네가 뭘 해도 기다리는 것 같아. 뭔가 나오기를. 그냥 있어." 박지훈이 말했다. "하늘이 쪽은 지금 움직이고 있어. 점점 더 촘촘하게."
"그게 뭔 차이야."
"차이가 엄청 커. 강수현은 뭔가를 기다리고 있고, 하늘이는 만들고 있어." 박지훈이 자리를 떴다가 돌아오면서 말했다. "기다리는 사람은 언젠가 지치거든. 만드는 사람은 지치기 전에 뭔가를 만들어버리고."
"그래서 어떻게 하라고."
"그게 어렵지." 박지훈이 잠깐 멈췄다가 말했다. "야, 이거 잘못하면 둘 다 잃는다? 알지?"
윤시하가 박지훈을 봤다.
박지훈은 진지한 표정이었다. 평소랑 달리. 웃거나 짐짓 가볍게 말하는 쪽이 아닌, 정말 걱정하는 쪽이었다.
"둘 다 어떤 의미로든 신경 쓰이는 거잖아, 너한테."
"그게 문제야?"
"문제가 아니라." 박지훈이 한 박자 생각했다. "둘 다 상처받으면 안 되는 사람들이야. 각자 나름대로. 그러면 어떻게 할지가 결국엔 나오게 돼 있어. 뒤로 미룰 수 있는 게 아니야."
복도로 나왔다.
계단을 내려가는데 강수현이 앞에 있었다. 오늘도 혼자였다. 가방을 한쪽에만 걸고 내려가고 있었다. 아이들이 쏟아져 나오는 흐름 속에서 강수현 주변에는 자연스럽게 공간이 생겼다. 아무도 의도하지 않은 것처럼 비켜났다.
윤시하가 뒤를 따라 내려가다가 강수현과 걸음이 나란해졌다.
강수현이 옆을 봤다. 윤시하가 있는 걸 확인하고 다시 앞을 봤다. 표정이 없었다. 놀라거나 반가운 쪽이 아니었다. 그냥 있는 거였다.
"오늘 편의점 와?"
강수현이 먼저 물었다.
그 타이밍이 예상과 달랐다. 강수현이 먼저 물어본 게. 보통은 묻지 않는 쪽이었다. 와도 된다는 말은 했어도, 올 거냐고 묻는 건 처음이었다.
"올 것 같은데, 아닐 수도 있어."
"그게 뭔 말이야."
"진짜로 모르겠어, 아직."
강수현이 계단을 내려가면서 짧게 말했다.
"와도 돼."
그게 전부였다. 권유도 아니고 강요도 아닌, 그냥 문이 열려 있다는 말이었다. 닫을 생각이 없다는 말이기도 했다.
계단 아래에서 각자 방향이 나뉘었다. 강수현은 교문 밖에서 왼쪽. 편의점 방향. 윤시하는 오른쪽. 원래 집 방향. 둘의 동선이 원래는 달랐다.
강수현이 돌아보지 않고 걸어갔다.
윤시하는 교문을 나오면서 언덕을 봤다.
언덕 중간에 달빛 편의점이 있었다. 간판이 오늘도 켜져 있었다. 오후 햇살이 유리창에 쏟아지고 있었다.
박지훈이 옆에 와서 말했다.
"가네."
"아직 모르는데."
"눈이 벌써 저기 있잖아."
윤시하가 눈을 내렸다. 박지훈이 맞았다.
걷기 시작했다. 언덕 방향으로. 아직 결정한 게 아닌 것처럼 발이 움직였다.
박지훈이 뒤에서 말했다.
"야, 고민은 하고 가."
"하면서 가."
"그게 무슨."
목소리가 멀어졌다.
언덕이 시작됐다.
걸으면서 생각했다.
둘 다 좋은 애들인 건 맞는데.
김하늘은 점점 촘촘하게 다가왔다. 그게 불편하진 않았다. 조금 피로했을 뿐.
강수현은 기다리고 있었다. 와도 된다고만 했다. 그게 계산이 아닌 건 느껴졌다.
어렵다는 말이 회피인 것도 알고 있었다. 박지훈이 말한 것처럼, 결국엔 어떻게 할지가 나오게 돼 있다는 것도.
핸드폰이 울렸다. 반 카톡방이었다. 이수빈이 축제 준비위 참여 명단을 올렸다. 윤시하 이름이 들어가 있었다. 답한 적 없는데. 아래에 김하늘이 하트 이모지를 달았다.
달빛 편의점 간판이 가까워졌다.
문을 밀기 전에 잠깐 멈췄다.
강수현이 와도 된다고 했다.
그게 지금 유일하게 분명한 거였다.
문을 밀었다. 냉장고 소리가 들어왔다.
강수현이 카운터 안에 있었다. 윤시하가 들어오는 걸 봤다. 아무 말 없이.
점원이 카운터 옆에서 뭔가를 적고 있었다. 두 사람을 보지 않았다.
윤시하가 음료 코너로 걸어갔다.
오늘도 보리차를 집었다.
계산대 앞에 섰다. 강수현이 스캔했다. 삑.
"앉아."
이번엔 질문이 아니었다.
윤시하가 창가 자리로 갔다. 보리차 뚜껑을 열고 한 모금 마셨다. 창밖 언덕이 오후 빛을 받고 있었다.
강수현이 카운터 안에서 말했다.
"오늘 힘들었어?"
"그냥 좀 생각이 많았어."
"뭔 생각."
"별 거 아닌 것들."
강수현이 더 묻지 않았다.
그게 편했다.
더 말하지 않아도 되는 것. 설명하지 않아도 그냥 있어도 되는 것. 김하늘이랑 같이 있을 때는 항상 뭔가 말이 오갔다. 좋은 말들이었다. 편한 말들이었다. 그런데 말을 계속 해야 한다는 게 뭔가 에너지를 썼다. 여기서는 말이 없어도 괜찮았다.
그게 강수현이 다른 이유 중 하나였다.
편의점 안이 조용했다. 냉장고 소리. 오후 햇살이 창문을 통해 들어왔다. 먼지 몇 개가 햇살 안에서 천천히 떠다녔다. 강수현이 카운터 안에서 뭔가를 정리하는 소리가 가끔 났다.
윤시하는 그걸 보면서 보리차를 마셨다.
박지훈 말이 돌아왔다.
결국엔 어떻게 할지가 나오게 돼 있다고.
알고 있었다.
다만 오늘은 아니었다.
오늘은 그냥 여기 있었다.
창밖 언덕 위로 3월 오후 햇살이 기울고 있었다. 3월이 며칠 남지 않았다. 내주면 4월이었다.
달라지는 건 날짜뿐이었다. 아직 달라진 건 없었다.
다만 여기 있는 게 괜찮았다.
그걸로 오늘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