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조림 뚜껑의 날카로운 단면이 살가죽에 쩍 달라붙었다. 연하준은 이를 악물며 손을 뒤집었다. 영하 삼십 도의 냉기가 손끝을 파고드는 감각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았다. 아니, 익숙해져서는 안 됐다. 감각이 무뎌진다는 건 곧 죽음이 시작되었다는 신호였으니까. 폐허가 된 편의점 잔해 속을 샅샅이 뒤져 찾아낸 건 고작 참치 통조림 하나였다. 유통기한이 사 년은 족히 지났을 고철 덩어리. 하준은 그것을 소중하게 품속에 밀어 넣으며 무릎을 폈다. 발밑에서 선반 잔해가 바스라졌다. 고요한 정적 속에서 그 소리는 지나치게 우렁찼다. 하준의 몸이 그대로 굳었다. 들이마신 숨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멀지 않은 곳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하나, 둘. 리듬이 일정하지 않았다. 서두르지 않는다는 건 이미 목표를 포착했다는 여유였다. 하준은 천천히 허리를 낮추며 주변의 지형지물을 훑었다. “숨기엔 늦었어.”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머리 위에서 쏟아졌다. 하준이 고개를 드는 순간, 거친 손길이 손목을 낚아챘다. 지독하게 뜨거웠다. 사방이 얼어붙은 영하의 대지에서 사람의 체온이 이토록 뜨거울 수 있다는 사실이 비현실적이었다. 반사적으로 몸을 비틀었지만 소용없었다. 억센 힘에 밀려 잔해 더미에 등이 처박혔다. 뒤통수가 울리며 시야가 잠시 흔들렸다. 강도진이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압도적인 체격과 넓은 어깨보다 더 불쾌한 건 그의 표정이었다. 흥미도, 적의도, 경멸도 없는 공백. 자판기 앞에 선 사람이 음료 버튼을 누르기 직전의 무심함과 닮아 있었다. “놔.” “시끄럽게.” 도진이 하준의 턱을 거칠게 움켜쥐었다. 굵은 손가락이 턱뼈를 파고들었다. 억지로 고개가 젖혀지며 시선이 맞물렸다. “뭐 하는 거야, 지금.” “보면 몰라?” 도진의 손등에서 주황빛이 새어 나왔다. 마른 낙엽이 타들어 가는 듯한 빛깔. 하준은 본능적으로 그 빛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살면서 가장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것. 성흔이었다. “잠깐, 기다려—.” “움직이지 마.” 도진의 엄지가 하준의 손목 안쪽을 강하게 눌렀다. 뜨겁다는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이 몰려왔다. 피부 아래로 날카로운 바늘이 아니라, 달궈진 인두가 직접 파고드는 감각이었다. 입술 사이로 밭은 숨이 새어 나갔다. 비명을 참으려 어금니를 짓씹자 뺨 안쪽에서 비릿한 피 맛이 났다. 성흔이 각인되는 과정이 고통스럽다는 건 알았지만, 이런 식의 일방적인 강요는 예상 밖이었다. 하준의 눈매가 날카롭게 가늘어졌다. 도진은 그 서슬 퍼런 눈동자를 마주하고서야 처음으로 입꼬리를 비틀었다. “눈에 힘 빼. 예쁘장한 얼굴에 안 어울리니까.” “…….” “덕분에 절반은 끝났군.” 도진이 손을 떼자마자 하준은 손목을 가슴께로 끌어당겼다. 새빨갛게 달아오른 피부 위로 낯선 문양이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타인의 색깔이었다. 도진은 한 발짝 물러나 부서진 선반에 어깨를 기댔다. 팔짱을 낀 채 하준을 관찰하는 눈빛은 여전했다. 버튼을 누른 뒤 결과물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기계적인 시선. “이게 무슨 짓인지 설명해.” 하준의 목소리가 낮게 긁혔다. “계약.” “동의한 적 없어.” “물어볼 필요가 없었으니까.” 도진이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손가락 뼈마디를 꺾는 소리가 정적을 갈랐다. 딱, 딱. 하준은 그 소리에 동요하지 않으려 시선을 정면에 고정했다. “지금 이 구역에서 네가 살아서 나갈 확률이 얼마나 될 것 같나?” “모르고 싶어.” “사흘이야. 사흘 안에 제로 지점까지 가야 해. 혼자서는 절대 불가능하지.” “그래서, 억지로 낙인을 찍었다고?” “그래서 계약인 거야.” 기막힐 정도로 매끄러운 논리였다. 하준은 손목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낙인이 피부 속으로 깊게 가라앉고 있었다. 식어가는 것이 아니라,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뿌리를 내리는 느낌이었다. 목구멍 아래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치밀어 올랐다. “내 그림자 아래서 숨 쉬는 법부터 배워.” 도진이 등을 돌리며 툭 내뱉었다. “벌레처럼.” 하준은 대꾸하지 않았다.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쏟아내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 갈피를 잡지 못했을 뿐이다. 무엇보다 지금 이 순간 분노보다 냉정함이 더 유용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 품속의 통조림이 딱딱하게 가슴을 눌렀다. 살아야 했다. 이유가 무엇이든, 어떤 굴욕을 겪든 생존이 우선이었다. 폐허 밖으로 나오자 칼바람이 뺨을 때렸다. 하준은 옷깃을 여미며 도진의 뒤를 따랐다. 정확히 두 걸음의 거리를 유지했다. 한 뼘이라도 더 가까워지고 싶지 않았다. 도진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인지, 혹은 도망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신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아마 둘 다일 것이다. 성흔이 각인된 자는 계약자의 허가 없이 오십 미터 이상 벗어날 수 없으니까. 눈앞에 끝없는 설원이 펼쳐졌다. 침묵의 설원. 이름 그대로 어떤 생명의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공간이었다. 발이 눈 속으로 깊게 빠지는 서걱거리는 감촉만이 유일한 현실감을 제공했다. 하준은 의도적으로 숨을 얕게 쉬었다. 이 구역의 공기는 소리에 반응해 온도를 바꾼다. 도진의 걸음걸이는 거침없었다. 자신감인지 오만함인지 아직은 판단하기 일렀다. 하준은 낙인이 새겨진 손목을 소매 안으로 깊숙이 밀어 넣었다. 차가운 공기를 차단하려는 목적도 있었지만, 그 끔찍한 문양을 시야에서 치워버리고 싶었다. 보고 있으면 치가 떨렸다. 감정이 끓어오르면 소리를 내게 되고, 소리를 내면 온도는 급강하한다. 참아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도진이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하준 역시 우뚝 멈춰 섰다. 공기의 질이 변했다. 단순히 차가운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무게가 어깨를 짓누르는 기분이었다. 도진이 오른손을 들어 올리자 성흔에서 짙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설원 저 너머, 눈보라를 뚫고 무언가 다가오고 있었다. 형태가 고정되지 않은 채 일렁이는 기괴한 존재. 인과율이 뒤틀린 공간에서 태어난 괴물이었다. “뒤로 빠져.” “같이 싸울 수 있어. 나도—.” “시키는 대로 해.” 하준은 이를 갈며 뒤로 물러났다. 지금 자존심을 세우는 건 생존을 담보로 도박을 하는 짓이었다. 도진이 앞으로 나섰다. 성흔에서 터져 나온 주황빛이 하얀 눈밭을 기묘하게 물들였다. 비현실적일 만큼 아름다운 광경이었으나 하준은 즉시 그 생각을 지워버렸다. 도진의 손바닥에서 열기가 폭발하듯 뿜어졌다. 공허의 괴물이 비명도 없이 산산조각 났다. 검은 가루가 된 잔해들이 눈 위에 흩뿌려졌다. 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도진이 천천히 손을 내렸다. 하준은 그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넓은 어깨 선이 미세하게 떨리다 멈췄다. 그 떨림의 의미를 알 수 없다는 사실이 하준을 더욱 불편하게 만들었다. “가자.” 도진이 다시 걷기 시작했다. 하준 역시 두 걸음의 거리를 유지하며 발을 뗐다. 얼마나 걸었을까. 하준의 손목이 먼저 반응했다. 아까와는 다른 종류의 열기였다. 낙인에서 시작된 뜨거운 감각이 혈관을 타고 팔을 향해 치솟았다. 하준이 급히 소매를 걷어 올렸다. 낙인이 붉게 타오르며 맥동하고 있었다. 그 순간, 앞서가던 도진이 비틀거렸다. 하준은 찰나의 광경을 이해하지 못해 멈춰 섰다. 도진의 입술 사이로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그가 무릎을 꿇으며 한 손으로 눈을 가렸다. 거칠고 낮은 숨소리가 정적을 찢었다. 성흔의 반동이었다. 과부하가 걸린 것이 분명했다. 하준은 그 자리에 서서 고통에 잠긴 도진을 내려다봤다. 하얀 눈 위로 핏방울이 점점이 떨어졌다. 도진의 어깨가 필사적으로 버티듯 떨리고 있었다. 선택지는 명확했다. 부축하거나, 혹은 이대로 두고 가거나. 하지만 낙인은 그를 오십 미터 안에 묶어둘 것이다. 그를 버리면 자신 또한 사흘 안에 제로 지점에 닿지 못한다. 철저히 계산적인 결론이었다. 하준은 그를 향해 발을 내디뎠다. 그 찰나, 하준의 손목에서 눈을 찌르는 빛이 터져 나왔다. 붉은 낙인을 파고드는 서늘한 보랏빛이었다. 들끓던 열기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하준은 자신의 손목을 멍하니 내려다봤다. 보라색 빛이 낙인의 윤곽을 따라 흐르다 피부 아래로 스며들어 사라졌다. 자신의 몸 안에 이런 힘이 있었는지조차 몰랐다. 도진이 고개를 들었다. 핏기가 가신 얼굴로 하준의 손목과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그의 눈동자에 아까와는 다른 감정이 스쳤다. 단순한 계산이 아니라, 무언가 본질적인 의문이 담긴 눈빛이었다. 하준은 무심하게 팔을 뻗었다. “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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