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 왔군." 그 목소리가 아직 봉인실 벽에 깔려 있었다. 잔향처럼. 이미 뱉은 말이 공기 속에 박혀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세라핀은 움직이지 않았다. 계단을 내려오는 발소리는 열여섯 번째 칸에서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시작되었다. 규칙적이고, 서두르지 않는 박자. 가죽 바닥창이 돌 계단에 닿는 소리는 오리온 크레스트의 것이었다. 세라핀은 그 발소리를 4년 동안 들어왔다. 눈 감고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열어둔 봉인실 문을 등졌다. 안쪽에서 무언가가 그녀를 보고 있었다. 시선이라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로 무거운, 물리적 압박에 가까운 무게였다. "들어오겠느냐." 물음이 아니었다. 세라핀은 한 발을 들였다. 문이 등 뒤로 닫혔다. 빗장은 없었다. 자물쇠를 따고 들어온 문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봉인실 안쪽은 생각보다 넓었다. 천장이 높았고, 사방의 벽에는 마석이 박혀 창백한 청색 빛을 내뿜고 있었다. 공기가 달랐다. 지상의 공기와도, 성소의 향연 가득한 공기와도 달랐다. 이것은 뼈 속에 바늘을 꽂는 것 같은, 얇고 날카로운 냉기였다. 세라핀은 숨을 작게 들이쉬었다. 사슬이 보였다. 두 팔목, 두 발목, 그리고 목. 다섯 줄의 성흔이 새겨진 봉인 사슬이 존재의 몸에 감겨 있었다. 사슬의 반대쪽 끝은 바닥에 박힌 거대한 철제 앵커와 연결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존재는 꼿꼿이 무릎을 꿇은 채 그녀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금빛 눈이었다. 마석의 청색 빛을 빨아들이면서도 고유의 색을 잃지 않는, 깊고 뜨거운 금빛. 마왕 카엘 드 제르노스. 세라핀의 가슴 아래 어딘가에서 무언가가 단단하게 죄어들었다. 그가 먼저 말했다. "그 옷차림으로 지하까지 내려왔군. 신탁 의식이 끝나지 않았을 텐데." 세라핀은 자신의 예복을 내려다보았다. 무릎까지 끌리는 백색 예복의 하단에 흙이 묻어 있었다. 복도를 지나며 어둠 속에서 벽을 짚었던 탓이었다. "끝났습니다." "거짓말." 세라핀이 카엘을 보았다. 그의 눈이 약간 좁아졌다. 비웃음이었다. "신탁 의식은 해가 완전히 질 때까지 이어진다. 지금 성소 위에서는 아직 석양이 지고 있을 것이다." 세라핀은 입을 다물었다. 그가 맞았다. 의식을 중간에 이탈했다. 그것 자체가 이미 낙인을 악화시킬 수 있었다. 카엘이 천천히 고개를 기울였다. 사슬이 움직이며 쇳소리를 냈다. "왜 왔느냐." "거래를 하러." 짧게 잘라 말했다. 목소리는 세라핀 자신이 놀랄 만큼 평평했다. 카엘의 입꼬리가 느리게 올라갔다. "거래." 그가 그 단어를 입안에서 굴리는 것처럼 되뇌었다. 그리고 헛웃음을 내뱉었다. 소리 없는 웃음이었는데도 봉인실 안의 냉기가 한 층 두꺼워지는 것 같았다. 세라핀의 발끝이 차가워졌다. 마독이었다. 그가 뿜어내는 마독이 바닥을 타고 올라오고 있었다. "사슬에 묶인 마왕과 거래를 하겠다고." 그의 목소리는 무겁고 건조했다. "성녀라는 것들이 갈수록 가관이군." 세라핀은 뒷걸음질 치지 않았다. 발이 얼어붙는 것 같았지만, 그것은 두려움이 아니었다. 아니, 두려움이 맞지만, 그 두려움이 다리를 굳힌 것과는 다른 문제였다. 그녀는 오른손의 장갑을 천천히 벗었다. 손등이 드러났다. 쇄골에서 시작된 낙인은 이미 손목 위까지 번져 있었다. 검은 덩굴 문양이 피부 위를 기어 올라가는 것처럼. 마석의 청색 빛 아래서 더욱 선명하게. 카엘의 눈이 그 손등에 고정되었다. 세라핀은 손을 내리지 않았다. "성결의 낙인입니다. 현재 3단계. 교황이 정화 의식 일정을 잡기 전에 낙인을 억제할 방법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마왕에게 왔다." "당신이 이 세계에서 낙인의 성질을 가장 잘 아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카엘이 다시 웃었다. 이번에는 소리가 있었다. 짧고 날카로운 소리였다. "성녀가 마왕에게 낙인을 고쳐달라고 한다." 그가 손목의 사슬을 가볍게 당겼다. 봉인 문양이 빛을 발했다가 사그라졌다. "성국 교황이 이 장면을 보면 당장 너를 이단으로 규정하겠구나." "알고 있습니다." 목소리가 떨리지 않았다는 사실에 세라핀 자신이 가장 놀랐다. 혀끝에 피 맛이 번졌다. 언제 깨물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봉인실의 냉기가 폐 깊숙이 스며들어 심장을 죄었고, 마독이 피부 위를 기어가는 감각은 수천 마리의 벌레가 살갗 아래로 파고드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녀는 시선을 내리지 않았다. 내리는 순간 무릎도 함께 꺾일 것임을 본능이 알고 있었다. "두렵지 않으냐." 카엘의 음성은 질문이 아니었다. 확인이었다. 어둠 속에서 그의 금안이 가늘어졌고, 세라핀은 그 시선이 자신의 겉이 아니라 안쪽을 읽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떨리는 맥박을, 쪼그라드는 위장을, 도망치라고 비명을 지르는 모든 신경의 끝을. "두렵습니다." 인정하는 순간 오히려 공포가 한 겹 벗겨졌다. 아니, 벗겨진 것이 아니라 뼈 속으로 가라앉은 것이었다. 세라핀은 장갑을 쥔 왼손을 옆구리에 붙였다. 손가락 끝이 얼음처럼 차가웠고, 가죽 안쪽에서 손바닥의 낙인이 화상처럼 욱신거렸다. 오른손은 여전히 손등이 보이도록 들고 있었다. 무기가 없다는 증거이자, 도망치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하지만 당신이 죽으면 저도 죽습니다." 봉인실이 조용해졌다. 카엘의 눈에서 조소의 기색이 천천히 걷혔다. 세라핀이 계속했다. "대륙의 결계는 성녀의 기도와 봉인된 마왕의 마독이 상쇄되어 유지됩니다. 당신을 봉인하는 사슬은 제 신성력을 매개로 작동하고 있고, 당신의 마독은 그 신성력을 지속적으로 소모하고 있습니다." 세라핀의 눈이 그의 목에 감긴 봉인 사슬로 잠깐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왔다. "낙인이 4단계가 되면 제 신성력이 불안정해집니다. 5단계에서 결계가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교황이 원하는 정화 의식은 낙인의 근원을 태우는 방식입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죽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제가 죽으면 결계가 무너집니다. 결계가 무너지면 부유도가 추락합니다." 세라핀은 잠깐 숨을 고르고 나서 덧붙였다. "그리고 당신을 묶고 있는 봉인 사슬도 풀립니다." 카엘이 오래 침묵했다. 천장의 마석에서 청색 빛이 천천히 파동치고 있었다. 세라핀은 그 빛이 그의 얼굴 위에서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날카로운 윤곽선. 사슬에 짓눌려 있으면서도 굽히지 않는 자세. 이 존재가 지하에 갇힌 지 얼마나 되었는지 세라핀은 알지 못했다.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슬이 풀리는 것이 내게 이득이라면." "당신이 제어 불가능한 상태로 지상에 올라오는 것은 제게도 이득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내가 살아 있어야 너도 살고, 네가 온전해야 나도 여기서 썩지 않는다는 말이군." "간단하게 요약하셨군요." 카엘의 눈썹이 미세하게 올라갔다. 그것이 의외라는 표시인지 흥미롭다는 표시인지, 세라핀은 읽어낼 수 없었다. "성녀가 마왕에게 말대꾸를 한다." "거래 상대에게 하는 말대꾸입니다." 침묵. 카엘의 눈이 다시 좁아졌다. 이번에는 비웃음이 아닌 다른 무언가였다. 세라핀은 그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 "성녀의 탈을 쓴 가짜인가." 낮고 느린 목소리였다. "아니면 죽음이 두려워 미쳐버린 인간인가." 세라핀은 답하지 않았다. 답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어느 쪽도 완전한 거짓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카엘이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사슬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봉인 문양이 붉게 달아오르며 저항했지만, 그의 자세는 흔들리지 않았다. 마독이 다시 바닥을 타고 올라왔다. 이번에는 더 짙었다. 세라핀의 발목 위까지. 정강이까지. "거래 조건을 들어보지." 세라핀의 손가락이 장갑을 더 꽉 쥐었다. "낙인을 억제하는 방법을 알려주십시오. 교황의 정화 의식을 피할 시간을 벌 수 있을 만큼만." "대가는." "제가 의식을 올릴 때 신성력의 방향을 조율하겠습니다. 당신에게 가해지는 봉인 압력을 현재의 절반으로 줄일 수 있습니다." 침묵이 다시 내려앉았다. 카엘의 눈이 그녀의 얼굴을 천천히 훑었다. 세라핀은 그 시선이 지나가는 경로를 느꼈다. 이마, 눈, 입, 그리고 다시 손등. "방법은 간단하다." 카엘이 낮게 말했다. "마독을 성휘와 섞으면 낙인의 진행이 느려진다. 신성력이 낙인을 키우는 역설적인 구조 때문이다. 마독이 그 신성력의 과잉 공급을 흡수하여 완충재 역할을 한다." "그러면 어떻게." "내 마독을 직접 받아야 한다." 세라핀이 잠시 말을 잃었다. 카엘이 그 침묵을 즐기는 것처럼 뒤를 이었다. "접촉이 필요하다. 사슬 범위 내에서. 두렵다면 방법은 없다. 다른 방법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것이 가장 빠르고 확실하기 때문이다." 세라핀은 손등의 낙인을 내려다보았다. 정화 의식. 교황 카스틸로가 잡아두기를 원하는 일정. 그 의식의 끝에서 자신이 어떻게 될지, 세라핀은 충분히 알고 있었다. 역대 성녀들의 벽화 속에서 그들은 항상 환하게 웃고 있었다. 신에게 바쳐진 것처럼 아름다운 표정으로. 누구도 그 이면을 벽화에 새기지 않았다. 그녀는 카엘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그의 눈에서 무언가가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 기대하지 않은 움직임을 봤을 때의 반응처럼. 세라핀은 쪼그려 앉지 않았다. 그저 그와 눈높이가 비슷해질 만큼 무릎을 굽히고, 오른손을 내밀었다. 카엘이 자신의 손목에 감긴 사슬을 힘으로 끌어당겼다. 쇳소리와 함께 앵커가 바닥에서 미세하게 들렸다. 그리고 그의 손이 세라핀의 손등을 덮었다. 차가웠다. 인간의 체온이 아닌, 마독이 스민 손의 냉기였다. 세라핀의 피부 위에서 무언가가 천천히 스며드는 감각. 뼈 속까지 내려가는 것 같은 냉기가 아이러니하게도 낙인 주변의 화끈거림을 가라앉혔다. 낙인이 잠잠해졌다. 세라핀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 카엘의 손이 그대로 있었다. 세라핀은 그가 손을 거두기를 기다렸지만,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는 시선을 들었다. 그가 그녀의 손을 보고 있었다. 아주 가까운 거리였다. 청색 마석 빛 속에서 그의 눈은 한층 더 깊은 금빛이었다. 그 눈동자 안에 세라핀의 얼굴이 비쳤다. 예복의 흙, 헝클어진 머리칼, 그리고 일그러진 표정. 세라핀은 자신이 그런 얼굴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 눈동자를 통해 처음 알았다. 카엘의 손이 손등에서 미끄러졌다. 천천히. 손목을 지나. 세라핀의 목 쪽으로. 손가락이 쇄골 위에 닿았다. 낙인이 있는 지점이었다. 세라핀은 숨을 참았다. 그의 손가락이 닿은 목 주변 피부가 이상했다. 마독의 냉기가 스민 자리에서 오히려 하얗게 열이 빠져나가는 감각. 낙인의 검은 문양이 그 자리에서만 옅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 카엘이 자신의 손가락을 내려다보았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그가 어딘가 불편한 것을 발견한 사람처럼 표정을 거의 변화시키지 않은 채로, 그러나 미세하게 눈을 좁혔다. "이상하군." 낮고 건조한 목소리였다. "무엇이." "낙인의 뿌리가 너무 깊다." 그의 손가락이 쇄골 위에서 멈췄다. 움직이지 않았다. "3단계라고 했지." "그렇습니다." "거짓말." 세라핀은 입술을 다물었다. "이건 3단계가 아니다." 카엘의 시선이 그녀의 목에서 얼굴로 천천히 옮겨왔다. "사슬 아래로 얼마나 내려가 있느냐." "……." "대답하지 않아도 된다." 그가 낮게 말했다. "어차피 내 손에 다 잡힌다." 세라핀이 먼저 물러서려 했다. 그 순간. 봉인실 밖에서 소리가 들렸다. 구두 소리였다. 규칙적이고, 서두르지 않는 박자로 복도를 걸어오는 소리. 하나, 둘, 셋. 멈추지 않았다. 문을 향해 일직선으로 오고 있었다. 오리온 크레스트. 세라핀의 등이 굳었다. 카엘의 손이 아직 그녀의 목 위에 있었다. 그리고 발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물러나십시오." 세라핀이 속삭였다. 거의 소리가 나지 않았다. 카엘은 움직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금빛 눈이 세라핀의 얼굴에서 문 쪽으로 천천히 이동했다가 다시 돌아왔다. 그 눈동자 안에서 무언가가 계산되고 있었다. "제발." "성녀가 마왕에게 제발이라고 하는군." 그의 목소리는 낮았고, 조용했고, 조금도 서두르지 않았다. 문 너머에서 손잡이를 잡는 소리가 들렸다. 세라핀은 카엘의 눈동자 안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공포가 아니었다. 두려움도 아니었다. 그것은, 이 장면이 발각되는 순간 돌이킬 수 없는 무언가가 시작된다는 것을 정확하게 인식하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카엘의 손이 목에서 거두어지지 않았다. 아니, 거두어지기는커녕 그의 손가락이 세라핀의 턱을 가볍게 들어 올렸다. 강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거부할 수 없는 방향으로. 그녀의 눈이 그의 눈과 정면으로 맞닿았다. 그가 입을 열었다. "도망치고 싶으면,"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여기서 도망치지 마라." 빛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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