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화. 형의 카드
화성 타워 임원 식당의 조명은 과했다.
샹들리에가 대리석 테이블 위에 균일한 빛을 떨어뜨렸다. 나이프와 포크가 반사하고, 와인잔이 굴절시키고, 테이블보의 흰색이 눈을 찔렀다. 모든 표면이 빛나는 공간. 네스트의 어둠과 정반대였다. 네스트에서는 이준의 리듬만 남았지만, 여기서는 소리가 넘쳤다. 나이프가 접시를 긁는 소리, 와인이 잔에 부딪히는 소리, 웨이터의 구두가 바닥을 치는 소리. 소리가 많은 공간에서는 역설적으로 더 조심해야 한다. 소음이 방심을 낳으니까.
도현은 먼저 와 있었다. 자리를 고르기 위해서. 창가가 아니라 안쪽. 벽을 등지는 자리. 이준에게서 배운 것이다. 벽을 등지면 뒤를 볼 필요가 없다. 경호원의 습관이 도현에게 이식되고 있었다. 이식이라는 단어를 쓰고 나서, 18화에서 서윤이 한 말이 떠올랐다. '의존하는 대상과 환경이 같은 곳에서 오는지.' 이준의 습관까지 이식받는 것은 환경과 대상이 하나로 융합되고 있다는 뜻이 아닌가.
차도진은 빛을 흡수하는 종류의 존재였다. 네이비 수트, 타이핀, 왼손 주머니에 손. 포즈가 아니라 습관. 서 있는 것만으로 공간을 지배하는 사람. 도현이 계산으로 공간을 장악한다면, 도진은 존재감으로 장악한다. 형제는 같은 가문에서 다른 무기를 골랐다.
"네가 먼저라니." 도진이 의자에 앉으며 입꼬리를 올렸다. 웃음이 아니었다. 근육의 습관이었다. "무슨 바람이야."
"오랜만에 밥이나 먹자, 형."
도현은 칼을 들었다. 스테이크를 잘랐다. 칼이 고기를 통과하는 감각이 정확했다. 손이 떨리지 않았다. 네스트에서 나오기 전 30분간 나이프를 쥐는 연습을 했다. 오른손 봉합이 당겼지만 견뎠다. 형 앞에서 왼손으로 고기를 자를 수는 없었다. 왼손을 쓰면 봉합이 깊다는 뜻이고, 봉합이 깊다는 것은 약하다는 뜻이니까. 형의 언어에서 약함은 지는 것이다.
이준은 식당 밖에 대기시켰다. 이 자리에 이준이 있으면 형은 이준에게 주의를 분산시킨다. 도현이 원하는 것은 형의 주의가 자신에게만 향하는 순간이었다. 집중되어야 실수가 보인다.
"건강은 어때?"
"관리 중이야."
"네스트가 괜찮다며?"
형이 네스트를 알고 있다는 것은 예상 범위였다. 비서실 경유니까.
"조용해서 좋더라."
"그래. 조용한 게 좋지." 도진이 포크로 고기를 찔렀다. 찌르는 동작이 정확했다. 이 남자는 식사도 공격처럼 한다. "특히 밤에."
밤. 그 단어에 무게가 있었다. 일상적인 문장 속에 숨긴 날. 도현은 씹는 동작으로 반응을 감추었다. 저작 근육이 감정을 가려주는 동안 계산했다. 형이 '밤'이라는 단어를 쓴 것은 우연인가. 도현의 밤에 무슨 일이 있는지 알고 있다는 암시인가.
"형, 혹시 오영민이라는 이름 들어본 적 있어?"
도진의 포크가 멈추지 않았다. "보안 담당? 모르는 건 아닌데."
너무 자연스러웠다. 도현의 질문이 던져지기 전에 대답의 톤이 준비되어 있었다. '모르는 건 아닌데.' 부인도 인정도 아닌 위치. 형의 언어는 항상 경계에 있었다. 선 위에 서는 법을 아는 사람. 어느 쪽에도 발을 딛지 않은 채.
"보안 감사 중에 이름이 나와서."
"그래? 뭐 나왔는데."
"아직 정리 중이야."
도진이 와인을 기울였다. 붉은 액체가 잔 안에서 흔들렸다. 도현은 형의 손가락을 보았다. 와인잔 줄기를 쥔 손. 힘이 들어가 있지 않다. 편안하게 쥐고 있다. 오영민이라는 이름에 동요가 없다. 예상했거나, 관계가 없거나. 도현은 둘 다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도진이 와인잔을 내려놓았다. 테이블 위에서 도현을 보았다. 식사하는 형의 눈에서, 계산하는 장남의 눈으로 바뀌었다.
"근데 너." 목소리가 낮아졌다. 식당의 소음 아래로 내려가는 톤. "요즘 네스트에서 경호원이랑 같이 자는 거 맞아?"
도현의 칼이 접시를 긁었다.
금속과 도자기가 부딪히는 소리. 날카롭고 짧았다. 도현은 그 소리를 통제하지 못했다.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가 풀렸다. 칼을 쥔 오른손의 봉합 자리가 당겼다.
형이 알고 있었다.
네스트의 보안 로그. 침실 출입 기록. 이준이 밤마다 침실에 들어가 아침에 나오는 패턴. 누군가 그 기록을 형에게 보고했다. 12화의 밤부터 매일.
도현은 칼을 내려놓았다. 접시 위에. 정확하게. 소리가 나지 않도록. 한 번 통제를 잃었으니 두 번은 안 된다.
"아버지한테는 아직 안 말했어."
형이 웃었다. 입꼬리만 올라간 웃음. 8화에서 '약해졌네'라고 할 때와 같은 형태.
"형이니까."
세 글자. 도현은 그 구조를 분석했다. '형이니까'는 보호의 형태를 한 협박이었다. 지금은 말하지 않겠다. 그러나 언제든 말할 수 있다. 카드를 쥐고 있다는 선언. 형제 사이의 '형이니까'는 다른 관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문법이다. 협박과 애정이 같은 단어 안에 공존하는 문법. 차승만 회장이 만든 가문의 언어.
회장이 이 사실을 알면. 경호원과 합방하는 임원. 아버지의 능력주의 체계에서 그것은 약점이 아니라 결격이다. 기획조정실장 직위가 '관리 필요'에서 '교체 대상'으로 바뀐다. 도현이 3년간 쌓아온 것이 세 글자로 무너질 수 있었다. 회장은 약점을 가진 아들을 용서하지 않는다. 용서하지 않는다는 것은 제거한다는 뜻이 아니라, 주류에서 밀어낸다는 뜻이다. 창고에 넣는다. 창고에 한 번 들어가면 꺼내주는 사람은 없다. 형도 그것을 알고 있다. 알기 때문에 카드를 쥐고 있다.
"걱정해 줘서 고맙네, 형."
목소리에 감정을 넣지 않았다. 형의 눈을 보았다. 피하지 않았다. 피하면 인정이 되니까. 피하지 않는 것이 도현의 유일한 방어였다.
형이 냅킨을 테이블에 놓으며 일어섰다. 지나가면서 도현의 어깨를 스쳤다. 의도적인 접촉이었다. 가볍지만 정확한. 소유를 확인하는 제스처. '이 어깨는 내가 건드릴 수 있는 거리에 있다'는 선언.
발소리가 멀어졌다. 맞춤 구두의 정확한 리듬. 도현은 형의 발소리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혼자 남은 테이블에서 와인잔을 보았다. 형이 마시다 남긴 와인이 잔 안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붉은 색.
식당 밖으로 나왔다. 이준이 반 걸음 뒤에서 따랐다. 복도의 유리벽 너머로 서울이 기울고 있었다.
"네스트 보안 로그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야."
"세 명입니다."
"그중 도진 라인은?"
"한 명."
"이름."
"비서실 경호관리 파트, 최윤석."
도현은 그 이름을 기억했다. 14화에서 주차장 카메라를 담당한 부서의 소속이었다. 카메라가 꺼져 있었고, 이준이 즉시 알아챘다. 그때 이준은 누가 껐는지 묻지 않았다.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인가, 아니면 묻는 것이 의미 없었기 때문인가. 어느 쪽이든 최윤석이라는 이름은 두 번째 등장이다. 두 번 나온 이름은 우연이 아니다.
"최윤석의 보고 주기는?"
"매주 월요일. 서면 보고입니다."
서면. 구두가 아니다. 서면은 기록이 남는다. 기록이 남는 경로를 통해 형에게 보고되었다는 것은, 형이 이 정보를 공식적으로 관리하고 있다는 뜻이다. 몰래 알아낸 것이 아니라 관리 체계 안에서 수신한 것. 도진의 카드는 우연히 손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수집하고 있었던 것이다.
합방이 카드가 되었다. 형의 손에.
그 카드를 만든 것은 도현 자신이었다. 이준을 침실에 들인 것은 도현이었다. 거리를 세운 것도, 깨뜨린 것도. 자기 손으로 만든 약점이 형의 무기가 되었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멈추었다.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 15화의 발작이 떠올랐다. 금속 벽. 밀폐. 숫자를 세어 겨우 버텼던 37층. 그때 이준이 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도현이 "오지 마"라고 했다. 이준은 오지 않았다. 도현이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그 대기가 도현을 더 무너뜨렸다.
이준이 반 걸음 뒤에 서 있었다. 도현은 이 남자의 위치를 보지 않고 알았다. 체온이 아니라 기척으로. 공기의 밀도가 달라지는 것으로.
도현은 버튼을 눌렀다. 문이 열렸다. 들어섰다. 이준이 따랐다. 문이 닫혔다. 밀폐된 금속 상자. 형광등. 하강.
심장이 빨라지지 않았다.
이준이 옆에 있었으니까. 반 걸음 뒤가 아니라 옆에. 엘리베이터 안에서 이 남자는 반 걸음을 줄인다. 도현이 시키지 않았는데 줄인다. 그것이 이 남자의 판단이다. 좁은 공간에서는 거리가 불안을 키운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형의 카드보다 더 무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