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화. 거울
디카페인 커피의 향이 거실에 퍼져 있었다.
도현은 서윤이 도착하기 10분 전에 커피를 내렸다. 13화에서 '디카페인으로 바꾸라'는 지시를 따른 것이다. 이 여자의 말을 따르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인지하면서도 바꿨다. 카페인은 수면을 방해하고, 수면 부족은 발작을 유발하고, 발작은 이준에 대한 의존을 심화시킨다. 논리적 연쇄. 도현은 논리에는 굴복하는 인간이다. 감정에는 굴복하지 않지만.
도어벨이 울렸다. 두 번째 방문이었지만 어깨가 굳는 반응은 여전했다. 다만 13화보다 빠르게 풀렸다. 회복의 징후라고 할 수도, 둔감의 징후라고 할 수도.
이준이 문을 열었다. 서윤이 들어왔다. 지난번과 같은 카디건. 같은 안경. 같은 노트. 다른 것은 구두였다. 굽이 낮아져 있다. 그리고 머리를 귀 뒤로 넘기고 있었다. 지난번에는 내려뜨리고 있었다. 두 차이를 기록했다. 의미가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지만.
소파에 마주 앉았다. 커피를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이 여자는 이번에도 손을 대지 않았다.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는 것이 습관인지 원칙인지 도현은 모른다. 상담 대상과 같은 것을 소비하지 않는다는 원칙일 수 있다. 거리를 유지하는 방법. 도현이 30센티로 거리를 재듯, 이 여자는 커피잔으로 거리를 잰다.
노트를 펼치고 펜을 쥐었다. 왼손으로.
"지난주 이후 변화가 있었습니까?"
"디카페인으로 바꿨습니다."
"그것 말고."
도현은 이 여자의 질문 패턴을 기억했다. 구체적인 것을 물으면 사실이 새어 나온다. 추상적인 것을 물으면 분석으로 막는다. '변화가 있었습니까'는 추상적이다. 도현은 분석으로 막을 수 있다. 그런데 '그것 말고'라는 두 번째 질문이 추상을 구체로 바꿨다. 디카페인 외에 다른 변화. 16화의 밤. 손목을 잡은 것. 이마의 손가락. 대답할 수 없었다.
"수면 상태가 나아졌다고 하셨는데." 이 여자가 방향을 바꿨다. 도현을 보지 않고 노트를 보며. "어떤 조건에서 잠이 옵니까?"
도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13화에서는 분석으로 방어했다. 수면의 정의를 물었다. 오늘은 분석도 하지 않았다. 침묵했다. 이준의 방식이었다. 침묵으로 답을 대신하는 것. 도현은 이 남자에게서 그것을 배우고 있었다.
서윤은 밀어붙이지 않았다. 전진하지도 않았다. 다른 방향으로 왔다.
"경호원 분, 이름이?"
도현의 손가락이 멈추었다. 컵 손잡이 위에서. 45도 각도를 맞추다 멈춘 것이었다. 이 여자의 눈은 도현의 손끝까지 추적하고 있었다.
"왜."
"차 실장님의 수면 조건이 사람에 묶여 있다면――" 상담사가 고개를 들었다. 외과의의 눈이었다. "그 사람이 떠나는 순간, 증상이 급격히 악화됩니다."
도현의 표정이 바뀌지 않았다. 안면 근육에 힘을 주었다. 이준의 무표정을 흉내내고 있었다. 이 남자의 것을 빌려 쓰고 있다. 무기도, 방어도, 표정까지.
"이름을 알면 뭘 할 건데."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다만 구조를 파악해야 합니다." 펜을 내려놓으며 이 여자가 말을 이었다. "차 실장님이 의존하는 대상과, 차 실장님을 의존하게 만드는 환경이 같은 곳에서 오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같은 곳이라는 건?"
"네스트라는 공간과, 그 공간에 함께 있는 사람이 세트로 작동하는지."
정확했다. 도현이 스스로도 정리하지 못한 것을 이 여자가 한 문장으로 정리했다. 네스트와 이준. 공간과 사람. 둘 다 없으면 잠들지 못하는 것인지, 둘 중 하나만 있어도 되는 것인지. 도현은 그 답을 알고 있었다. 이준 없는 네스트에서 혼자 잤던 밤. 16화. 2시간 동안 잠이 오지 않았다. 공간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이준."
이름을 말하는 순간, 도현은 이 여자에게 카드 한 장을 건넨 것이 되었다. 서윤이 적었다. 노트에. 두 글자.
"의존 대상이 치료의 도구가 되면, 그건 치료가 아니라 또 다른 갇힘입니다."
갇힘.
그 단어가 도현의 안쪽을 건드렸다. 폐공장이 아니었다. 네스트였다. 블라인드가 닫혀 있고, 출구가 하나뿐이고, 이준의 온기가 유일한 닻인 이 공간. 16화의 밤이 떠올랐다. 문을 열어 두고, 이준이 들어오고, 손목을 잡고, 아침에 이준의 손가락이 이마에 닿아 있었다. 이 여자의 단어 하나가 그 모든 밤을 하나의 이름으로 묶었다.
"그 단어는 내가 판단합니다."
도현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경고의 톤. 이 선 너머로 오지 마.
서윤은 물러서지 않았다. 전진하지도 않았다.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도현의 경고를 받고도 자세가 바뀌지 않는 사람. 이준은 도현의 명령에 내성이 있고, 서윤은 도현의 위협에 내성이 있었다. 종류가 달랐지만 결과는 같다. 도현의 방어가 통하지 않았다.
이 여자가 틀렸으면 좋겠다.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면서.
4초의 침묵. 서윤이 먼저 깼다.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노트를 닫고 일어섰다. 40분. 지난번과 같은 시간이었다. 이 여자는 시간도 정확하게 잘랐다. 감정도 정확하게 잘랐다. 건드릴 곳을 건드리고, 반응을 확인하고, 깨끗하게 끝냈다.
카디건을 여미며 현관으로 향했다. 이준이 문을 열었다. 서윤이 나가면서 이준을 보지 않았다. 13화에서는 보았다. 오늘은 보지 않았다.
의식적으로 보지 않는 것은, 보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한다.
문이 닫혔다. 이준이 현관에서 부엌으로 향했다. 유리잔에 물을 따라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커피가 아니라 물. 상담이 끝난 뒤에는 항상 물을 가져왔다. 이 패턴을 이준이 언제 만든 건지 모르지만, 만들어져 있었다. 도현은 물을 마셨다. 목이 말랐다. 서윤과 이야기하면 항상 목이 말랐다.
"한서윤. 배경 조회 결과는?"
이준이 거실 문 옆에 섰다.
"화성 의료재단 소속. 경력 5년. 이전 근무지――"
멈추었다. 말할지 말지를 판단하는 시간. 17화에서 '실패했습니다' 앞의 3초와는 다른 종류였다. 그것은 감정의 무게였고, 이것은 정보의 무게다.
"국군수도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도현은 유리잔을 내려놓았다. 물이 출렁였다.
군 병원. 이준의 전역 시기는 D-3년. 특수전 부대에서 부상 전역했다. 전역 전 치료를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 정신건강의학과에도 기록이 있을 수 있다.
"겹쳐?"
"확인 중입니다."
'확인 중.' 이준에게 드문 형태의 대답. '모릅니다'도 '알고 있습니다'도 아닌. 알고 있지만 정리 중이거나, 알고 있지만 말하지 않는 것이거나.
13화가 떠올랐다. 서윤이 나가면서 이준을 보았던 순간. 이준도 서윤을 보았던 순간. 그리고 오늘, 서윤이 이준을 보지 않은 것. 두 번의 데이터가 하나의 가설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 두 사람은 서로를 알고 있다.
도현은 질문을 보류했다. 이준에게 직접 물으면, 이 남자의 의도가 대답에 섞인다. 이준을 경유하지 않는 경로로 확인해야 했다. 다음 상담에서 서윤에게 물을 수 있다. '이준이라는 이름을 아십니까.' 반응 속도가 답이 될 것이다. 즉시 나오면 준비된 대답이고, 늦으면 준비되지 못한 진실이다.
그러나 이준에게 '이준'이라는 이름을 말한 것이 걸렸다. 이 여자가 이준을 알고 있다면, 도현이 이준의 이름을 내준 순간 이 상담은 삼자 게임이 된다. 도현이 모르는 정보를 서윤과 이준이 공유하고, 도현만 빈칸인 상태. 도현이 가장 싫어하는 구조였다. 빈칸은 도현이 채우는 것이지, 도현 자신이 되는 것이 아니다.
도현은 유리잔을 비우고 일어섰다. 서재로 돌아갔다. 문을 닫았다. 노트를 펼쳤다.
서윤의 말이 머릿속에서 울렸다. 갇힘. 적지 않았다. 적으면 인정이 되니까. 대신 다른 것을 적었다.
'도진 접근 — 점심.'
형에게 밥을 사야 한다. 밥을 사면서 칼을 숨겨야 한다. 19화에서 도진을 만나야 한다. USB 세 번째 파일의 복호화 키를 가진 사람. C.D. 그 이니셜의 주인에게 다가가려면 가장 무방비한 형태를 택해야 한다. 밥. 형제 사이의 밥. 그것이 화성가의 문법이었다. 밥상 위에서 웃으면서 밥상 아래에서 다리를 걸었다. 아버지에게서 배운 문법. 형에게서 완성된 문법.
도현은 펜을 내려놓았다.
나도 같은 문법을 쓰고 있다. 형과 같은 언어로 말하고, 같은 방식으로 칼을 숨기고 있다는 것. 가문의 언어가 뼈에 박혀 있다. 그 사실이 나이프보다 날카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