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화. 회선
네스트의 서재에 아침 해가 들지 않았다.
창문이 없으니까. 도현은 데스크 램프를 켜고 노트북을 열었다. 화면의 파란 빛이 방을 물들였다. 오전인지 오후인지 구분할 수 없는 공간. 도현은 그 모호함이 마음에 들었다. 시간이 멈춘 곳에서 계산은 더 정확해진다.
16화의 아침이 아직 몸에 남아 있었다. 이준의 손가락이 이마를 넘기던 감각. 도현은 그것을 문을 닫는 것으로 차단했다. 문이 닫히면 계산이 시작된다. 계산이 시작되면 감각은 뒤로 밀려난다. 서윤이 '그게 증상'이라고 했지만, 증상이든 아니든 지금은 계산이 필요했다.
노트를 펼쳤다. 지금까지의 증거를 다시 정리했다.
하나. 오영민이 D-3에 잠행 루트를 외부 유출. 둘. D-2, D-1 연속으로 GPS 관제 모듈에 접근. 위치 추적 무력화. 셋. D+1, 박성호 전자서명을 사용해 프로토콜 해제 지연. 넷. 수신자 C.D. 다섯. 10화에서 발견한 BK-03과 BK-04의 동시접속. 이준과 오영민이 같은 시간에 같은 모듈 안에 있었다는 사실.
다섯 줄. 왼손으로 적은 글씨가 이제는 기울어지지 않는다. 글씨의 각도가 잡히고 있다는 것은 시간이 지나고 있다는 뜻이다. 납치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멀어질수록 가까워지는 것이 있었다. 이준이라는 이름 옆에 쌓인 물음표들.
11화에서 "넌 알고 있었어?"라고 물었을 때, 이준은 대답 대신 USB를 내밀었다. 증거를 줌으로써 질문을 우회했다. 도현은 그 우회를 허용했다. 14화에서 주차장 카메라가 꺼져 있을 때, 이준은 즉시 알았다. 도현은 질문하지 않았다. 15화에서 엘리베이터 바닥에 주저앉았을 때, 이준은 문 앞에서 기다렸다. 도현은 "오지 마"라고 했다.
이제 증거가 충분히 쌓였다. 우회가 아니라 직선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문을 열었다.
이준이 복도에 서 있었다. 벽에 기대지 않은 채. 이 남자는 어디에도 기대지 않는다. 항상 자기 무게를 자기 다리로 지탱한다.
"들어와."
이준이 들어왔다. 문이 닫혔다. 데스크 램프 하나의 빛이 두 사람 사이에 원을 그렸다. 원 밖은 어둠이었다. 도현은 의자에 앉아 있었고, 이준은 문 옆에 섰다. 4미터.
"오영민이 혼자 서명을 복제하고, GPS를 건드리고, 프로토콜을 지연시켰다?"
"실행은 오영민이 단독으로 가능합니다. 그러나 루트 정보는 오영민의 접근 범위 밖입니다."
"잠행 루트를 아는 사람은 누구야."
"전담 경호원과, 그 보고를 받는 라인입니다."
전담 경호원. 이준. 도현은 그 단어가 공기 중에 머무는 것을 느꼈다. 전담 경호원이라는 직함이 용의자의 위치와 겹쳐 있었다. 보호자와 용의자가 같은 호칭으로 불리는 구조.
"보고를 받는 라인이 몇 명이야."
"비서실 경호 관리 담당 1명, 블랙팀장 1명. 그리고 오영민."
"오영민은 보고 라인이 아니라 실행범이잖아. 나머지 둘은?"
"비서실 담당은 김재훈입니다. 4화에서 도련님 노트에 적으셨습니다."
"블랙팀장은 박성호."
"예."
"박성호가 루트를 넘겼을 가능성은?"
"15화에서 도련님이 직접 면담하셨습니다. 어떻게 판단하셨습니까."
도현은 이준을 보았다. 이 남자가 도현에게 질문을 되돌리는 것은 드문 일이다. 보통은 대답하거나 침묵하거나 둘 중 하나인데, 오늘은 물었다. 도현의 판단을 듣고 싶다는 뜻이거나, 자기 판단과 대조하고 싶다는 뜻이거나.
"무능한 쪽이야. 네가 14화에서 말한 대로."
이준이 고개를 미세하게 숙였다. 자기 판단이 맞았다는 확인에 대한 반응인지, 도현이 자기 말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반응인지. 어느 쪽이든 이 남자의 머리 안에서 무언가가 지나갔다.
도현은 노트를 넘겼다. 네 개의 이름. 박성호. 김재훈. 이준. 오영민. 4화에서 적은 것. 원을 돌아 다시 여기로 왔다. 네 개의 이름 중 오영민은 실행범으로 확인되었고, 박성호는 이용당한 쪽이고, 김재훈은 아직 빈칸이다. 남은 것은 이준. 이 남자만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다. 결론을 내리지 못하는 것인지, 내리고 싶지 않은 것인지. 그 구분이 흐려지고 있었다.
"이준. 정면으로 묻겠어."
이준의 어깨가 미세하게 올라갔다. 긴장. 내려왔다. 이 남자의 몸은 감정을 즉시 처리한다.
"D-1 밤. 네가 GPS 모듈에 접속했을 때. 오영민이 파라미터를 바꾸는 걸 봤어?"
"예."
"왜 보고하지 않았어."
이준이 1초 침묵했다. 이 남자의 대답은 즉시 나오거나 2초 이상 걸린다. 1초는 그 사이에 있었다. 말할지 말지를 판단하는 시간.
"보고하면 오영민이 제거됩니다. 오영민이 제거되면 배후가 끊깁니다. 라인을 살리기 위해 보고를 보류했습니다."
도현의 눈이 좁아졌다. 독립 판단이었다. 11화에서 도현이 정한 세 가지 규칙――모든 행동을 보고해, 독단 금지, 명령 체계 안에서만. 이준은 그 규칙 이전에 이미 독단 행동을 하고 있었다. 규칙이 세워지기 전의 독단은 위반이 아니라 전례이다. 전례가 있는 사람은 반복한다.
"그래서. 막으려 했어? 지켜보려 했어?"
이준의 숨결이 바뀌었다. 깊게 들이마시고, 멈추고, 천천히 내쉬었다. 통제된 호흡이 아니라 통제하려는 호흡이었다. 차이가 있다. 전자는 습관이고 후자는 의지다. 2미터 안에서 도현은 그 차이를 확인했다.
"막으려 했습니다."
"실패한 거야?"
3초.
데스크 램프의 미세한 전기 소리만 있었다. 그 위에 3초의 침묵이 올라앉았다. 즉시 반응하는 사람의 3초. 무겁다.
"……예."
짧았다. 한 음절이었다. 그런데 그 음절 앞에 놓인 3초가, 방 전체를 눌렀다.
이 남자가 실패했다. 도현의 잠행 루트를 알고, 사각지대 지도를 소유하고, GPS 모듈에 접근할 수 있었던 남자가――오영민의 작업을 막지 못했다. 그 실패 때문에 72시간이 있었다. 콘크리트 바닥. 물방울. 케이블 타이. 도현의 손목에 남은 분홍빛 흉터.
이 남자의 완벽함에 난 첫 번째 금이다.
도현은 이준의 눈을 보려 했다. 이준은 시선을 내리깔고 있었다. 올리지 않았다. 이 남자가 시선을 올리는 순간은 항상 무언가가 바뀌는 순간이었다. 올리지 않는다는 것은, 지금은 바꿀 수 없는 것 앞에 서 있다는 뜻이다. 자기 실패 앞에.
"어떻게 실패했어."
이준의 턱이 미세하게 내려갔다. 이 질문을 예상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왜'가 아니라 '어떻게'를 물었으니까. 도현은 이유를 묻지 않았다. 이유는 거짓말로 채울 수 있다. 과정은 디테일이 필요하다. 디테일은 거짓말하기 어렵다.
"오영민의 접속 시점에 제가 모듈에 있었습니다. 파라미터 변경을 감지하고 롤백을 시도했습니다. 오영민이 2차 접속으로 제 롤백을 덮었습니다. 3차 대응을 하기 전에 오영민이 로그를 삭제했습니다."
기술적이고 구체적인 대답이었다. 디테일이 있다. 시퀀스가 있다. 거짓말이라면 사전에 구성한 것이고, 진실이라면 기억을 재생한 것이다. 도현은 판단을 보류했다.
"실패한 뒤에 왜 보고하지 않았어."
"……보고하면 제가 같은 시간에 모듈에 접속했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도현은 그 문장을 3초 동안 분해했다. 이준이 보고하지 않은 이유. 라인을 살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의심받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솔직한 대답이었다. 너무 솔직해서 오히려 의심스러운.
그런데 이 솔직함이 도현의 계산을 흔들었다. 거짓말하는 사람은 자기에게 유리한 이유를 댄다. '도련님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했다면 도현은 더 의심했을 것이다. 자기 보호라는 이기적 이유를 내세운 것이, 역설적으로 신뢰의 근거가 되고 있었다.
더 묻지 않았다.
노트에 적었다. 'D-1. 이준: 막으려 했다. 실패. 보고 안 함(자기 보호).' 그 옆에 의문 부호를 그리지 않았다. 처음으로. 11화부터 이준의 이름 옆에 쌓아온 표식을, 오늘은 붙이지 않았다. 그것이 신뢰인지 판단 유예인지, 도현 자신도 구분하지 못했다.
이준이 나갔다. 문이 닫혔다. 도현은 혼자 남은 어둠 속의 방에서 노트를 보았다. 이준의 이름 옆에 아무 표식도 없는 페이지를. 처음이었다.
그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표식이 없다는 것은 의심이 줄었다는 뜻이 아니라, 의심을 계속 유지할 의지가 줄었다는 뜻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