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화. 30센티의 붕괴
네스트의 밤은 두꺼웠다.
소리가 갇혀 있었다. 도현의 숨. 시트가 스치는 소리. 관자놀이를 치는 맥박. 벽을 통과하지 못하는 소리는 안으로 돌아온다.
"표준대로. 문 밖."
도현이 이준에게 말한 것은 그 한마디뿐이었다. 침실 문이 닫혔다. 카펫 위로 발소리가 멀어지고, 문 하나 너머에서 이준이 벽에 등을 기대는 미세한 소리가 들렸다. 서서 기대는 소리. 이 남자는 도현이 잠들 때까지 잠들지 않는다.
규칙을 되돌려야 했다. 어제 엘리베이터에서의 발작이 가르쳐준 것이 있었다. 이준 없이 버티지 못하면, 이준이 없는 순간이 올 때 무너진다. 혼자 버티는 연습을 해야 한다. 금속 벽의 차가움. 떨리는 손. 숫자를 세어 겨우 의식을 유지한 37층. 그 기억이 아직 몸에 남아 있었다.
논리적이었다. 혼자 버텨야 한다. 머리로는 맞는 말이다. 서윤이 13화에서 경고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의존 대상이 치료의 도구가 되면 그건 감금이라고. 도현은 스스로 감금을 택하지 않는 인간이어야 했다. 적어도 그래야 한다고 믿었다.
1시간이 지났다. 잠이 오지 않았다.
어둠이 두꺼워질수록 기억이 돌아왔다. 냄새가 아니라 기억이었다. 폐공장의 물방울. 케이블 타이가 살을 파고드는 압력. 슬레이트 사이로 새는 빛의 각도. 도현은 눈을 감았다. 감은 것이 실수였다. 어둠이 폐공장의 어둠과 겹쳤다.
서윤이라면 이렇게 물을 것이다. '감기 전에 마지막으로 떠오른 것이 뭡니까?' 대답은 알고 있었다. 이준의 손등. 어젯밤 새벽, 잠든 사이에 닿아 있던 온기. 그것이 없으니 어둠이 이 모양이다. 서윤에게는 말하지 못할 대답이었다.
비상등이 없었다. 셀 것이 없다. 천장의 무늬를 세려 했다. 균일한 천장에 무늬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손가락을 세었다. 열 개. 너무 빨리 끝났다.
2시간. 이준의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문 하나의 두께가 두 사람 사이를 벽으로 만들고 있었다.
도현은 침대에 앉았다. 이마에 식은땀이 맺혀 있었다. 발작의 전조가 아니라 잔여. 어제의 엘리베이터가 아직 몸에서 빠져나가지 않았다.
일어섰다. 침실 문 앞에 섰다.
손잡이를 잡았다. 금속의 차가움이 손바닥에 닿았다. 엘리베이터 벽의 차가움과 같은 온도. 손이 멈추었다. 금속에서 손을 뗄 수 없었다.
돌리면 열린다. 열면 이준이 있다. 이준이 있으면 쉴 수 있다.
'들어와'를 입에 올리지 못했다. 그 두 글자를 발음하는 순간, 이것은 요청이 된다. 요청은 의존이고, 의존은 통제의 반대편이다. 도현은 요청하는 인간이 아니었다. 명령하거나, 설계하거나, 허용하거나.
문을 열었다. 열어 둔 채 돌아갔다. 침대에 누웠다.
초대가 아니라 허용이었다. 도현의 머릿속에서는. 들어오라고 한 것이 아니라, 문이 열려 있을 뿐이다. 이 구분이 필요했다. 도현이 도현으로 남기 위해서는.
3초.
공기가 바뀌었다. 이준이 들어온 것을 소리가 아니라 공기의 밀도로 알았다. 카펫이 발소리를 흡수했다. 대신 공기가 움직였다. 사람 하나의 부피만큼 공간이 좁아지는 감각.
침대 가장자리가 눌렸다. 이준이 누웠다. 30센티. 도현이 정한 거리.
도현의 호흡이 느려졌다. 이준이 들어온 것만으로. 유일하게 들리는 외부 발생 소리가 돌아온 것이었다. 이준의 리듬. 깊고, 일정하고, 흔들리지 않는 박자.
서윤의 말이 떠올랐다. '의존 대상이 치료의 도구가 되면 그건 치료가 아니라 또 다른 감금이다.' 알면서 문을 열었다.
그런데 오늘은 이 거리로 충분하지 않았다.
엘리베이터의 잔상이 남아 있었다. 밀폐. 형광등. 바닥에 주저앉았던 다리. '오지 마'라고 했지만 '와 달라'를 삼킨 순간. 그 공포가 30센티 너머에서 웅크리고 있었다. 숨소리가 들려도 온기가 닿지 않으면, 이준이 여기 있다는 것을 몸이 믿지 않았다.
도현의 손이 침대 위를 넘었다.
4화의 밤과 달랐다. 12화의 새벽과도 달랐다. 이번에는 꿈이 아니었다. 실신도 아니었다. 완전히 깨어 있는 상태에서, 눈을 뜬 채,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면서――도현의 왼손이 30센티의 공기를 가로질렀다.
이준의 손목을 잡았다.
이준의 맥이 한 번 크게 쳤다. 도현의 손바닥 안쪽에서 느껴진 떨림. 이 남자도 놀라는 것이다. 깨어 있는 도현이, 스스로 손을 뻗었다는 것에. 곧 원래 간격으로 돌아갔다.
도현은 잡은 채 눈을 감았다.
"……놓으면 안 돼."
목소리가 아니라 입술의 움직임에 가까웠다. 침묵의 약속을 깨는 것이었다. 자기가 정한 선을 자기가 넘는 것이다. 이준이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손목 위의 도현의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그것이 대답이었다.
전략적 선택이라는 거짓말이 닳았다. 세 번째 밤이었다. 닳을 만도 했다.
잠이 왔다. 이준의 맥박이 손바닥에 닿아 있었다. 살아 있는 리듬. 그 박자에 맞춰 도현의 의식이 내려갔다.
아침.
도현이 눈을 떴다. 감각이 먼저 돌아왔다. 왼손이 여전히 이준의 손목 위에 놓여 있다. 밤새 놓지 않았다. 손가락이 굳어 있었다.
그런데.
이준의 다른 손이――도현의 이마 위에 닿아 있다.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다 멈춘 자세. 손가락 끝이 이마와 머리카락의 경계선에 닿아 있다. 검지와 중지 사이에 머리카락 한 올이 걸려 있었다. 잠든 도현의 이마에서 머리카락을 넘기고 있었다는 뜻이다. 보호의 동작이 아니었다. 점검도 아니었다. 이름 붙일 수 없는 것이었다.
도현의 호흡이 멈추었다.
이준이 깨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도현이 눈을 뜬 것을 이준이 안다는 것도. 두 사람 다 알면서 한 순간이 흘렀다. 그 순간 동안 이준의 손가락은 도현의 이마 위에 머물러 있었다. 거두지 않았다. 그리고――
내려갔다. 천천히. 머리카락에서, 공기로, 시트 위로. 이준의 손이 시트 위에 놓이는 소리가 들렸다. 들리지 않을 만큼 작은 소리였는데 들렸다.
도현은 입을 열지 않았다. 이준도.
거리가 무너졌다.
도현이 정한 것이 무너진 것이 아니었다. 정해서 막을 수 없는 것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었다. 거리를 정하고, 침묵을 정하고, 손의 위치를 정해도――잠든 사이에 손은 뻗어지고, 깨어 있는 사이에 손가락은 이마를 넘긴다.
도현은 잡은 것을 놓았다. 천천히. 맥박이 손바닥에서 떠나갔다.
일어나 세면대로 갔다. 찬물로 얼굴을 씻었다. 거울을 보았다. 다크서클이 옅어져 있었다. 잠을 잤기 때문이다. 이준을 잡고 잔 밤이었기 때문이다.
거울 속의 자신이 회복되고 있다. 이준에게 의존할수록 회복된다는 역설. 서윤의 말이 떠올랐다. 감금. 네스트가 감금이고, 이 남자의 온기가 감금이고, 자기 손이 뻗어나가는 것 자체가 감금이다. 그런데 감금에서 벗어나면 잠들 수 없다. 잠들지 못하면 무너진다. 무너지면 또 이 남자의 손을 잡는다. 순환이었다. 탈출구가 없는.
수건을 내려놓았다.
이준이 침실 밖으로 나가는 소리. 주방에서 물 끓이는 소리. 찻잔이 테이블에 놓이는 소리. 아무 말 없이. 매일 아침의 루틴처럼. 도현이 만들지 않은 루틴을 이 남자가 만들어놓았다.
거실로 나갔다. 찻잔이 테이블 위에 놓여 있다. 김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준은 주방 카운터에 서서 자기 잔을 들고 있다. 검은 커피. 아침마다 같은 것을 마신다. 도현은 디카페인이고, 이준은 카페인이다. 이 남자는 밤새 깨어 있어야 하니까. 밤새 깨어 있으면서 도현의 이마에서 머리카락을 넘기고 있었다. 그 사실이 커피잔보다 뜨거웠다.
도현은 찻잔을 들었다. 한 모금 마셨다. 이준을 보지 않았다.
"어젯밤."
이준이 잔을 내려놓는 소리가 들렸다. 도현은 여전히 이준을 보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규칙 밖이었어. 둘 다."
이준이 대답하지 않았다. 3초. 그 3초가 인정이었다.
"반복되면 안 돼."
거짓말이라는 것을 둘 다 알고 있었다. 도현이 하는 거짓말의 패턴을 이준은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금지한다고 선언하면서 문은 열어 둔다. 거리를 정하면서 0으로 만든다. 거짓말이 원칙의 형태를 하고 있을 뿐이다.
도현은 거울에서 떼지 못했던 시선을 떠올렸다.
이 남자의 손가락이 내 이마에 있었다. 선 밖이었다. 그런데 밀어내지 못했다.
밀어내지 못한 것이 아니라, 밀어내고 싶지 않았다는 것을――아직 인정하지 않기로 했다. 인정은 세 번째 다음에 온다. 네 번째 밤이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