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화. 빈자리
화성 타워의 엘리베이터가 37층에서 멈추었다.
도현은 이준을 로비에 세웠다. "이건 내가 혼자 한다." 의도적 분리였다. 오영민을 면담하는 자리에 이준이 있으면, 블랙팀 동료를 의식한다. 의식하면 방어가 올라간다. 도현이 원하는 것은 방어가 허물어지는 순간이었다.
이준이 고개를 숙였다. 반론이 없었다. 14화의 주차장 건 이후 경계가 올라가 있었을 텐데도. 도현은 그 물러섬의 이유를 분석하지 않았다. 시간이 없었다.
"얼마나 걸리십니까."
"15분이면 된다."
"로비에서 대기하겠습니다."
기획조정실 소회의실. 작은 방. 테이블 하나, 의자 둘. 형광등이 균일하게 비추고 있었다. 그림자가 생기지 않는 조명. 도현은 상석에 앉지 않았다. 맞은편에 앉았다. 같은 높이. 같은 의자. 오영민이 편해져야 실수를 한다.
오영민이 들어왔다. 40대. 짧은 머리. 넥타이 매듭이 정확했다. 단추를 끝까지 잠근 셔츠. 의자를 당기는 소리가 조용했다. 존재감을 지우는 데 익숙한 사람. 그런 사람이 보안 담당이라는 것은 적절하기도, 위험하기도 했다.
"조정실장님, 부르셨습니까."
"앉아요." 도현은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노트를 펼쳤다. 위압이 아니라 일상의 톤으로. "분기 보안 감사 준비 중이야. 몇 가지 확인할 게 있어서."
오영민이 앉았다. 등이 의자 등받이에 닿지 않았다. 앞으로 기울어진 자세. 경계. 도현은 그 자세를 주변시로 기록했다.
"커피 마실래요?"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거절의 속도가 빨랐다. 이 자리에서 빨리 나가고 싶다는 뜻이다. 도현은 그 조급함을 이용하기로 했다. 가벼운 질문으로 시작해서 핵심으로 좁히는 것이 면담의 기본이다. 그러나 오늘은 반대로 간다. 핵심부터 던져서 반응을 본다.
"GPS 관제 모듈 파라미터 변경 이력이 있더라. D-1 날짜. 정기 유지보수였나?"
오영민의 오른손이 멈추었다.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손. 검지가 미세하게 접혔다.
도현은 그 반응이 나오기까지의 시간을 쟀다. 1초가 되지 않았다. 진실을 말하는 사람은 멈추지 않는다. 대답을 준비한 사람은 빠르다. 이 시간은 그 사이에 있었다. 준비하지 못한 거짓말의 무게.
"정기 점검이었습니다."
"정기 점검은 보통 월초에 하지 않아?"
오영민의 입술이 닫혔다가 열렸다. 답을 구성하는 사이의 공백.
"비정기 추가 점검이었습니다. 모듈 업데이트 이후 안정성 확인 차원에서."
도현은 펜을 들지 않았다. 적지 않는 것이 오영민에게 보내는 메시지였다. '네 말을 기록할 가치가 없다'는 뜻. 혹은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뜻. 어느 쪽으로 해석하든 압박이 된다.
"D-2에도 접근 기록이 있던데. 그것도 점검?"
오영민의 동공이 왼쪽으로 흘렀다. 기억을 소환하는 방향이 아니라 구성하는 방향. 회의실에서 숫자를 다루는 사람은 거짓말의 방향도 읽는다. 절대적인 법칙은 아니지만, 오영민의 평소 패턴과 대조하면 충분했다. 이 남자는 일상 보고 시 항상 반대쪽을 보았다.
"D-2는……확인해 봐야 합니다."
"D-3도 있어."
오영민의 손이 무릎 위로 내려갔다. 테이블 아래. 도현의 시야에서 사라지는 위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손을 감추는 것은 말보다 정직한 반응이다.
"D-3는 제가 접근한 기록이 아닐 겁니다."
"확인은 내가 할게." 도현은 펜을 내려놓았다. 테이블 위에서 작은 소리가 났다. "D-1, D-2, D-3. 3일 연속 접근이면 정기 점검이 아니야. 비정기도 아니고. 그건 작업이지."
오영민의 턱이 미세하게 올라갔다. 방어 자세의 변화. 수긍이 아니라 반발의 초기 형태. 그러나 입을 열지 못했다. 상대가 기획조정실장이니까. 화성그룹에서 이 직함 앞에서 반론을 올리는 사람은 두 부류뿐이다. 회장과 장남.
"확인해 봐. 내일까지."
도현은 노트를 덮었다. 빈 노트를. 오영민이 그 빈 페이지를 보았는지 보지 못했는지 알 수 없었다. 봤다면 더 불안해질 것이다. 아무것도 적지 않았다는 것은, 면담 전에 이미 답을 갖고 있었다는 뜻이니까.
"한 가지만 더." 도현이 일어서다 멈추었다. "D-1 밤에 다른 사람도 모듈에 접속한 기록이 있어. 알고 있었어?"
오영민의 어깨가 올라갔다. 내려오는 데 1초가 걸렸다. 모르고 있었다는 반응이거나, 모르는 척하는 연기이거나. 어느 쪽이든 유용한 데이터다.
"확인해 보겠습니다."
"수고해요."
오영민이 일어섰다. 의자를 밀어넣는 동작이 조용했다. 들어올 때와 같은 소리 없는 동작. 그러나 어깨 각도가 달랐다. 들어올 때보다 높아져 있었다. 긴장이 목까지 올라와 있다는 뜻이다.
문이 닫혔다.
도현은 혼자 남은 회의실에서 10초간 앉아 있었다. 오영민의 반응 시간. 동공의 방향. 검지의 접힘. 비정기 점검이라는 새로운 거짓말. 네 개의 데이터가 하나의 결론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 남자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충분했다.
일어섰다. 노트를 닫고 회의실을 나왔다. 37층 복도가 비어 있었다. 구두 소리가 대리석을 울렸다. 규칙적으로. 물방울 소리처럼――
발소리다. 물방울이 아니다.
현실을 확인하는 데 1초가 걸렸다. 너무 길었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문이 열렸다. 들어섰다. 문이 닫혔다.
밀폐.
형광등. 금속 벽. 사방이 막힌 공간. 천장이 낮게 느껴졌다. 표준 높이인 것을 알고 있었다. 몸은 구별하지 못했다. 공기가 줄어드는 감각.
심장이 빨라졌다. 손목을 짚었다. 올라가고 있었다. 짚는 행위가 불안을 가속하는 루프. 서윤이 13화에서 말한 것이 떠올랐다. 분석이 증상이다. 지금이 그랬다. 세는 것이 세는 것을 악화시키고 있었다.
벽에 등을 붙였다. 찬 금속이 등을 받쳤다. 다리가 풀렸다. 미끄러졌다. 바닥에 주저앉았다. 금속 바닥. 차가웠다. 콘크리트만큼은 아니지만.
이준의 숨소리가 없었다.
기준이 없으면 자기 숨을 셀 수 없다는 것을 도현은 이미 알고 있었다. 병원에서, 네스트에서, 매일 밤 확인한 사실이었다. 이 남자의 리듬에 맞춰야 내 리듬이 돌아온다. 의존이라는 것도 안다. 아는 것과 벗어나는 것은 다르다.
숫자를 세었다. 층수. 37. 36. 35. 숫자는 감각이 아니라 기호니까 견딜 수 있었다. 34. 33. 32. 심장은 여전히 빨랐다. 그러나 숫자가 떨어지는 동안 의식은 유지되었다. 15. 14. 13. 숫자가 작아질수록 출구가 가까워진다. 출구가 가까워질수록 공기가 돌아온다.
1층. 문이 열렸다. 로비의 빛이 쏟아졌다.
이준이 서 있었다.
엘리베이터 바로 앞에. 문이 열리는 순간 도현의 상태를 한눈에 읽었을 것이다. 바닥에 주저앉은 자세. 손목을 쥔 손. 얕은 호흡.
한 걸음 다가왔다.
도현은 일어섰다. 벽을 짚고. 다리가 불안정했지만 일어섰다. 손을 들었다.
"오지 마."
이준이 멈추었다. 즉시. 도현이 정한 선에서.
도현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막는 손이. 다섯 손가락이 벌어진 채 공기를 잡고 있었다. 그 떨림을 숨길 수 없었다.
이준은 움직이지 않았다. 한 걸음 더 다가오지도, 물러서지도 않았다. 도현이 정한 선 위에 서 있었다. 내리깔지 않은 눈. 도현의 눈을 보고 있었다. 거기에 도현이 읽을 수 있는 것은 하나였다. 기다림. 도현이 손을 내릴 때까지 이 자리에 서 있겠다는.
도현은 손을 내렸다. 이준의 옆을 지나 로비를 가로질렀다. 구두 굽이 대리석을 치는 소리가 불규칙했다. 돌아보지 않았다.
이준이 반 걸음 뒤에서 따랐다. 아무 말 없이.
차에 탔다. 문이 닫혔다. 이준이 시동을 걸었다. 행선지를 묻지 않았다. 네스트로 간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뒷좌석에서 도현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왼손. 이준의 손목을 잡았던 손. 오영민의 거짓말을 기록했던 손. 지금은 아무것도 잡지 못하고 무릎 위에 놓여 있었다.
오영민의 면담은 성공이었다. 거짓말을 확인했다. 3일 연속 접근 기록. 비정기 점검이라는 새로운 거짓말. 증거가 쌓이고 있었다. 그런데 37층에서 1층까지 내려오는 동안 도현이 얻은 것은 증거가 아니라, 자기 다리가 풀리는 감각이었다. 오영민을 추궁하는 도현과, 엘리베이터 바닥에 주저앉는 도현이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 그 간극을 매울 방법을 아직 모르고 있었다.
'오지 마'라고 했다. 오지 않았다.
그 순간의 안도가, '와 달라'고 말하지 못한 순간의 공포보다 작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