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화. 추적
네스트의 서재는 창문이 없었다.
도현은 그것이 마음에 들었다. 창문이 없으면 빛의 변화가 없고, 빛의 변화가 없으면 시간이 멈춘다. 시간이 멈추면 계산에 몰입할 수 있다. 데스크 램프 하나. 노트북 화면의 파란 빛. 리갈 노트. 왼손에 쥔 검정 펜. 네 가지면 충분했다.
USB의 두 번째 파일을 열기 위해 이준이 가져온 추가 복호화 키를 입력했다. 프로그레스 바가 천천히 찼다. 3분 23초. 도현은 그 시간 동안 노트를 넘겼다. 11화에서 적은 것들. C.D. 성수역 이면도로. D-3. 왼손 글씨가 기울어져 있었다. 감정이 잉크에 새어 있다.
화면에 텍스트가 풀렸다. 메신저 로그. 오영민 발신. 수신자는 이전과 같은 번호.
"BK팀장 서명 확보 완료. 프로토콜 2단계 해제 지연 가능."
타임스탬프: D+1.
도현의 펜이 멈추었다.
D+1. 납치 다음 날. 도현이 폐공장 콘크리트 바닥에서 두 번째 밤을 보내고 있을 때. 물방울을 세다가 두 번 놓치고 있을 때. 그 시각에 오영민은 이미 프로토콜 해제를 지연시키는 작업을 실행하고 있었다.
박성호의 전자서명이 사용되었다. 보안 프로토콜 2단계 해제에는 기획조정실장과 블랙팀장의 공동 서명이 필요했다. 도현이 직접 설계한 절차. 7화에서 깨달은 아이러니가 다시 떠올랐다. 자신이 만든 시스템이 자신을 구하기도, 가두기도 한다. 이번에는 더 많은 것이 보인다는 차이만 있었다.
프로토콜 2단계가 해제 지연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도현이 직접 설계한 절차이니 결과도 알고 있었다. 블랙팀의 추적 기능이 24시간 늦게 가동된다. 그 24시간이 납치범에게는 이동 시간이었고, 구출팀에게는 공백이었다. 오영민은 그 공백을 만들기 위해 서명을 '확보'한 것이다.
오영민이 박성호의 서명을 '확보'했다. 확보는 동의를 얻었다는 뜻일 수도, 복제했다는 뜻일 수도 있다. 도현은 노트에 두 갈래를 그렸다. 왼쪽: 공범. 오른쪽: 위조. 두 경로 위에 같은 이름을 적었다. 오영민. 그리고 두 경로가 만나는 지점에 다른 이름을 적었다. C.D. 오영민이 어느 쪽이든, 최종 수신자는 같다.
"이준."
"예."
이준이 서재 문 옆에 서 있었다. 항상 그 위치. 데스크 램프의 빛이 턱선까지만 닿아 있었다. 눈은 어둠 속이다.
"이 로그를 봐." 도현이 화면을 돌렸다. "'확보'라는 단어. 위조했으면 뭐라고 쓰겠어?"
이준이 화면을 보았다. 2초.
"'생성' 또는 '복제'입니다."
"'확보'는?"
"누군가에게 받았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도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남자의 언어 분석이 도현의 것과 일치했다. 한 단어의 선택이 구조를 바꾼다.
"박성호 전자서명의 관리 체계를 알아?"
"블랙팀 관리 서버에 암호화 저장됩니다. 접근 권한은 팀장 본인과 보안 담당자."
"보안 담당자가 오영민이고."
"예."
"그러면 서명을 복제하는 데 외부 협력이 필요 없겠네."
"기술적으로는 그렇습니다."
도현은 펜으로 노트의 '위조' 갈래 옆에 체크를 했다. 오영민이 단독으로 실행 가능하다. 그러나 '확보'라는 단어가 걸렸다. 위조했다면 '생성'이나 '복제'라고 쓸 것이다. '확보'는 누군가에게서 받았다는 뉘앙스. 박성호가 건넨 것이라면 공범이다. 한 단어의 선택이 구조를 바꾼다.
"박성호는 어느 쪽이야? 공범이야, 이용당한 거야?"
"판단은 도련님 몫입니다."
합리적인 대답이었다. 경호원의 대답. 그러나 도현은 경호원의 대답을 원하지 않았다.
"네 의견을 물었어."
이준의 어깨가 미세하게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긴장이 근육을 지나간 흔적. 이 남자에게 '의견'이라는 단어는 낯선 것이었다. 보고는 익숙하다. 판단도 익숙하다. 그러나 자기 생각을 드러내라는 요구는 경호원의 영역 밖이다.
"팀장님은……무능한 쪽입니다."
이준이 블랙팀 상관을 처음으로 평가했다. '무능'이라는 단어를 택했다. 배신이 아니라 무능. 이용당한 쪽이라는 뜻. 2년간 같은 팀에서 복무한 상관에 대한 첫 번째 판단. 말줄임표가 앞에 붙었다. 이 남자에게 감정이 들어간 말은 머뭇거림으로 시작된다.
이 남자가 의견을 꺼냈다. 처음으로. 그 의견이 도현의 계산과 일치한다는 것이 안도인지 함정인지――판단은 보류했다. 도현이 보고 싶은 것을 보여주는 사람이 가장 위험한 사람이니까.
노트에 적었다. '박성호 = 이용당한 쪽(이준 판단)'.
세 번째 파일의 복호화를 시도했다. 키 입력. 실패. 빨간 경고. 다시 입력. 실패.
"세 번째 키는 제가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면 누가?"
"그 파일의 수신자가."
수신자. C.D. 차도진. 도현은 화면을 닫았다. 의자 등받이에 기댔다. 형에게 접근해야 한다. 파일을 열려면. 형의 관찰 아래로 들어간다는 뜻이었다. 형은 도현의 약점을 찾는 데 3년의 훈련이 되어 있었다.
"또 다른 경로는 없어?"
"현재로서는 없습니다. 오영민을 직접 압박하면 수신자 정보를 확보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오영민은 내가 직접 만난다. 내일 타워."
"함께 가겠습니다."
"운전만 해."
이준이 고개를 숙이고 서재를 나갔다. 도현은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듣고 노트를 덮었다. 복도에서 이준의 발소리가 멈추는 위치를 세었다. 문 앞. 항상 문 앞에 선다. 도현이 서재에 있을 때도, 침실에 있을 때도, 거실에 있을 때도.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다음 날. 타워로 가는 차 안.
이준이 운전석에 앉았다. 룸미러 속에서 이준의 눈이 보였다가 내려갔다. 도현은 뒷좌석에서 노트를 펼치고 오영민 면담 시나리오를 정리했다. 질문의 순서, 관찰할 반응, 유도할 실수.
"오영민의 오늘 일정은?"
"오전 10시부터 관제실 근무. 점심은 보통 12시 30분. 지하 1층 구내식당."
"면담은 점심 직전으로 잡아. 배고플 때 집중력이 떨어지니까."
"12시에 소회의실 예약하겠습니다."
도현은 창 밖을 보았다. 서울의 오전이 흘러가고 있었다. 계산하는 동안은 괜찮았다. 계산이 감정을 밀어낸다. 서윤의 말이 떠올랐다. '그게 증상입니다.' 증상이든 아니든, 지금은 계산이 필요했다.
타워 지하주차장에 도착했다. 차가 멈추었다. 도현이 문을 열려는 순간.
"도련님."
이준의 목소리. 룸미러를 보고 있었다. 뒤를. 도현은 이준의 눈을 따라 뒤를 보았다. 지하주차장의 콘크리트 벽. 형광등. 그리고――
기둥 옆 카메라 하나가 꺼져 있었다.
렌즈의 빨간 불이 들어와 있지 않았다. 주차장 전체를 커버하는 4대 중 하나. 도현이 주차한 구역을 비추는 바로 그 하나.
"내리지 마십시오."
이준의 손이 이미 기어를 리버스에 넣고 있었다. 차가 뒤로 움직였다. 조용히. 도현은 내리지 않았다.
콘크리트 벽. 형광등. 밀폐된 공간. 폐공장의 감각이 스쳤다. 한 순간만. 도현은 노트를 쥔 왼손에 힘을 주었다. 종이의 날카로움이 손바닥을 눌렀다. 감각을 현재에 묶어두는 방법. 서윤이라면 이것도 증상이라고 할 것이다.
누군가 내가 타워에 온다는 걸 알고 있었다.
오영민에게 면담을 예고하지 않았다. 타워 방문 일정은 이준에게만 알렸다. 이준이 예약한 소회의실. 비서실 경유 없이. 그런데 카메라가 꺼져 있었다. 도현이 주차할 구역의 카메라가. 우연이라 부르기에는 정확한 위치였다.
차가 지하주차장을 빠져나갔다. 햇빛이 들어왔다. 콘크리트가 사라졌다.
"다른 입구로 들어가."
"지상 주차장은 외부 노출이 있습니다."
"그래도 지상이 낫지."
이준이 대답 없이 핸들을 돌렸다. 도현은 이준의 뒷머리를 보았다. 이 남자는 카메라가 꺼진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룸미러로 주차장에 들어서는 순간 확인한 것인가. 아니면――미리 알고 있었는가.
오늘 아침 차 키를 찾으려 했을 때 떠올랐다. 테이블 위에도, 신발장 위에도, 코트 주머니에도 없었다. 이준의 재킷에서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운전은 제가 합니다." 도현이 건네지 않은 키를 이 남자가 갖고 있었다. 차 키를 쥔 손이 곧 핸들이고, 핸들을 쥔 손이 방향을 정한다. 보호의 형태를 한 통제. 이 패턴이 반복될수록 구분이 흐려지고 있었다.
질문하지 않았다. 지금은 오영민이 먼저다.
그러나 노트 가장자리에, 이준의 이름 옆에 한 획을 더 그렸다. 의문이 쌓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