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전환율의 의미
마감일은 숫자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예약 판매 마감 D-Day. 연습실. 멤버 전원이 화면 앞에 있었다. 노트북 세 대가 테이블 위에 펼쳐져 있었다. 이준의 스프레드시트. 정우의 트렌드 분석. 태현의 쇼츠 분석. 캔 커피가 다섯 개. 빈 봉지가 두 개. 충전 케이블이 네 개. 정리할 여유가 없었다. 숫자가 끝난 뒤에 정리하면 됐다.
누적 38,000장. 마감까지 12시간.
이준은 역산했다. 12시간 × 현재 시간당 판매량 670장 = 약 8,000장. 합계 46,000장. 조정 조건 48,000장에 2,000장 부족. 2,000장은 적은 숫자가 아니었다. 1장당 16,500원. 2,000장이면 3,300만 원의 매출 차이. 팀이 살아남느냐 마느냐의 차이.
"이 속도면 모자라." 이준이 말했다.
서지환이 화면을 봤다. 숫자를 읽지 않아도 이준의 목소리에서 답이 들렸다. 이준이 '모자라'라고 말할 때의 목소리는 평소와 같았다. 감정이 없었다. 없는 게 아니라 치워둔 것이었지만, 서지환은 이제 그 차이를 알았다.
"몇 장 부족해?" 태현이 물었다. 발목에 테이핑이 감겨 있었다. 회복됐지만 예방 차원으로.
"이 속도면 2,000장."
"2,000이면 시간당 167장만 더 팔리면 되는 거 아니야?" 태현이 암산했다.
"맞아. 근데 속도가 유지된다는 보장이 없어."
한도윤이 자기 자리에서 폰을 보고 있었다. 이준은 도윤의 화면을 보지 않았다. 볼 수 있는 각도였지만, 지금은 다른 숫자가 먼저였다.
민하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이준 씨, 팬분들이 마지막 총공 시작했어요. '별빛수호자'님이 D-Day 최종 프로젝트 게시글 올렸어요."
이준이 팬카페를 열었다.
[D-Day 마지막 전환율 프로젝트 --- 마감까지 함께!]
작성자: 별빛수호자.
게시글 본문. '우리의 전환율을 마지막까지 올리겠습니다. 12시간. 남은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건 전부 합니다. 1장이면 충분해요. 1명이면 충분해요. 함께 가요.' 아래에 실시간 구매 인증이 댓글로 올라오고 있었다. 1분에 4~5개. '친구한테 선물용으로 2장 더 샀어요.' '동생이 용돈 모아서 1장 샀대요ㅠㅠ.'
서지환이 화면을 봤다. "이 사람들 진짜..." 말을 잇지 못했다. 물병 뚜껑을 돌렸다. 긴장이 아니라 감정이었다.
"형, 이거 봐." 태현이 폰을 내밀었다. "트위터에서 #노바_전환율 1위야. 1위."
정우가 노트북에서 고개를 들었다. "팬카페 밖에서 유입이 올라오고 있어요. 시간당 판매량이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이준은 화면을 내려놓았다. 1초. 다시 들었다.
오후 3시. 누적 42,000장. 시간당 판매량이 670에서 850으로 올라갔다.
"올라가고 있어." 정우가 말했다.
오후 6시. 44,800장. 시간당 900.
"형, 속도 붙었어." 태현이 말했다.
오후 9시. 46,300장. 시간당 판매량이 더 올라갔다. 마감이 다가올수록 속도가 빨라지고 있었다.
서지환이 소파에서 일어나 화면 앞에 섰다. "지금 몇이야?"
"46,300." 이준이 말했다. "48,000까지 1,700장."
"남은 시간은?"
"3시간."
서지환의 손이 무릎 위에서 주먹이 됐다. 이준은 봤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지환이 주먹을 쥘 때 말을 걸면 안 된다.
그때 이준의 폰이 울렸다. 윤세아.
"이준 씨."
"네."
"BEP 정산 재검토 완료됐어요. 2억 3천 확정." 윤세아의 목소리가 빨랐다. 효율로 압축한 목소리. "그리고 이사회가 조건을 수정했어요."
이준이 기다렸다.
"초동 기준을 48,000장으로 하향 확정했어요. BEP가 2억 4천 7백에서 2억 3천으로 내려갔으니까, 초동 조건도 비례해서 50,000에서 48,000으로."
"누구 제안이에요?"
"제가요."
이준은 윤세아를 2초 동안 생각했다. 이 사람이 조건을 움직였다. 이사회에서. 숫자로. 비례라는 논리로. 윤세아가 하는 일은 이준이 연습실에서 하는 일과 같았다. 숫자로 판을 바꾸는 것. 테이블이 다를 뿐.
"감사합니다."
"감사는 넘기고, 숫자 채우세요." 전화가 끊겼다.
이준이 멤버들을 봤다.
"조건이 바뀌었다. 48,000장."
서지환이 숨을 내쉬었다. 주먹이 풀렸다. "지금 46,300이면---"
"1,700장. 3시간 안에."
태현이 끼어들었다. "시간당 920 나오고 있잖아. 3시간이면 2,760. 넘어."
"보수적으로 잡아야 해." 이준이 말했다. "속도가 떨어질 수 있어."
"안 떨어져." 서지환이 말했다. 확신이 담긴 목소리. 숫자가 아니라 감에서 나온 확신. "마감이 다가올수록 사람들은 더 빨리 움직여. 마지막이니까."
이준은 반박하지 않았다. 반박할 숫자를 찾지 않았다. 서지환의 감이 18화에서 맞았다. 19화에서도 맞았다. 이번에도 맞을 수 있었다.
연습실이 조용했다. 3초. 형광등이 윙 소리를 냈다.
"판매 속도가 다시 올라가고 있어요." 정우가 말했다. "시간당 670장에서 810장으로 올라갔다가 지금 920으로 올라갔어요. D-Day 프로젝트 효과가 시간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어요."
이준은 화면을 봤다. 46,300. 46,400. 46,500. 숫자가 1분에 한 번씩 바뀌고 있었다.
오후 10시. 47,200장.
태현이 화면을 보다가 의자에서 일어섰다. 걸어 다녔다. 앉아 있지 못하는 유형이었다. 이준과 반대였다. 이준은 긴장하면 더 가만히 있었다.
오후 11시. 48,300장.
서지환이 숨을 멈췄다. 이준도 멈췄다. 48,000을 넘었다. 조건 충족.
"넘었어." 정우가 말했다. 목소리가 떨렸다. 정우가 떨리는 목소리를 내는 걸 이준은 처음 들었다. 정우는 항상 숫자 뒤에 있었다. 감정이 데이터를 넘어선 것이다.
서지환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손 사이로 소리가 새어 나왔다. 울음인지 웃음인지 구분이 안 됐다. 둘 다인 것 같았다. 이준은 그 소리를 분류하지 않았다. 서지환의 소리는 항상 분류를 거부했다. 그게 서지환의 힘이었다.
태현이 걸음을 멈췄다. 천장을 보다가 고개를 숙였다. 모자 밑으로 입을 가렸다. 무엇을 가리고 있는지는 이준이 묻지 않아도 알았다.
한도윤이 박수를 쳤다. 한 번. 짧게. 소리는 컸다. 연습실에 울렸다. 이준은 그 박수를 들었다. 한 번. 도윤은 항상 한 번이었다. 100위 때도 한 번. 99위 때도 한 번. 지금도 한 번. 한 번만 치는 박수가 뜻하는 건 아직 몰랐다. 축하인지. 인정인지. 혹은 다른 무언가인지.
자정. 마감.
최종 집계. 49,100장.
이준이 민하에게 전송했다. "최종 49,100장. 공식 발표 올려요."
민하의 답장. "올렸어요. 댓글이 폭발하고 있어요. 500개 넘었어요."
이준은 팬카페를 열지 않았다. 오늘은 감정을 허용할 수 있는 날이었지만, 허용하는 것과 방치하는 것은 다르다.
스프레드시트를 열었다. '팬_자발행동' 탭. 15화에서 만들고 비워둔 탭. 셀이 비어 있었다. 수식이 없었다. 행 이름도 없었다. A1 셀에 커서가 깜빡이고 있었다.
49,100이라고 입력했다. 첫 번째 셀에. 그 옆 B1 셀에 한 줄을 썼다.
'예측 불가'.
스프레드시트에 '예측 불가'라는 텍스트를 넣은 건 처음이었다. 숫자가 아닌 것을 셀에 넣은 건 처음이었다. 하지만 이 두 글자가 가장 정확한 기술이었다. 이준의 예측 모델이 내놓은 값은 42,000이었다. 실제 결과는 49,100이었다. 오차 16.9%. 모델이 틀린 원인은 '팬 자발 캠페인 효과'라는 변수를 넣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예측 불가'는 실패가 아니었다. 한계의 인정이었다.
연습실에 혼자였다. 멤버들은 숙소로 돌아갔다. 서지환은 나가면서 "형, 고마워"라고 말했다. 이준은 "고맙긴. 데이터가 한 거야"라고 답했다. 서지환이 피식 웃고 나갔다. 그 웃음은 '형, 아직도 그래?' 같은 웃음이었다.
태현은 문 앞에서 "형, 됐다"라고만 말했다. 짧게. 태현답게. 모자를 눌러 쓴 채로. 발목은 괜찮은 것 같았다.
정우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나갔다. 노트북을 닫지 않은 채로. 화면에 48,300이라는 숫자가 떠 있었다. 조건을 넘은 순간의 캡처. 정우는 그 화면을 닫지 못한 것이다. 이준은 그걸 이해했다. 어떤 숫자는 닫기 아까운 것이다.
한도윤은 가장 먼저 나갔다. 이준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고개를 끄덕이지도 않았다. 박수 한 번이 도윤의 전부였다. 이준은 그 등을 봤다. 문이 닫혔다.
혼자였다.
폰을 봤다. 알 수 없는 번호에서 새 메시지가 와 있었다.
"축하해요. 다음 판에서 봐요."
이준은 그 문장을 읽었다. '다음 판.' 축하가 아니었다. 예고였다. 누군가가 다음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 사람은 노바의 성공을 기뻐하지 않고 있었다. 관찰하고 있었다.
이준은 폰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화이트보드를 봤다. D-28에서 시작한 카운트다운이 끝났다. 숫자가 0이 됐다. 이준은 마커를 들었다. 49,100이라고 쓴 뒤 선을 그었다.
그 위에 썼다.
'다음은 차트다.'
마커를 내려놓았다. 화이트보드를 2초 봤다.
'전환율'이라는 단어가 팬의 구호가 된 날. 숫자가 사람이 되고, 사람이 숫자를 넘어선 날. 이준은 그 의미를 아직 정의하지 못했다. 정의할 수식이 없었다. 하지만 49,100이라는 결과가 있었다. 결과는 때때로 수식보다 먼저 도착한다.
연습실 불을 껐다.
그날 밤, 이준이 올린 미끼 파일의 데이터가 한 통의 메일에 첨부되어 아크 엔터테인먼트 내부 메일 서버를 통과했다. 수신인 란에는 이름이 아닌 직함이 적혀 있었다. '전략기획실장'. 메일 본문에는 한 줄만 있었다. '예상보다 빠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