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변수의 이름
새벽. 폰이 진동했다.
이준이 눈을 떴다. 천장이 어두웠다. 옆에서 서지환의 숨소리가 규칙적이었다. 3초 간격. 깊은 수면. 태현의 코고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엎드려 잔 날은 코를 골지 않는다.
폰 화면의 빛이 이불 위에 작은 사각형을 만들었다. 이준은 밝기를 최소로 낮춘 채 화면을 봤다.
알 수 없는 번호. 문자 한 줄.
"예약 판매 숫자, 어디까지 올라갈 것 같아요?"
이준은 그 문장을 읽었다. 두 번. 화면을 끄지 않았다. 첫 번째 읽기는 내용 확인. 두 번째 읽기는 의도 분석.
'이 사람은 실시간 데이터를 보고 있다.'
예약 판매 수치는 공개 정보가 아니었다. 팬카페에 공유한 건 '예약 판매가 시작됐습니다' 한 줄뿐이었다. 구체적 숫자는 내부 정산 시스템에만 있었다. 접근 가능한 곳은 세 군데. 이준의 드라이브. 윤세아의 경영관리팀 보고서. 뮤직탑 정산 페이지. 이 문자를 보낸 사람은 세 군데 중 하나에 닿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이준은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문자를 캡처했다. '접근권한_리스트' 폴더에 저장했다. 침묵이 가장 적은 정보를 준다.
예약 판매 D-7. 누적 18,000장. 조건 48,000장까지 30,000장 부족. 숫자가 좋지 않았다. 하루 평균 2,500장이 유지되면 합계 35,500장. 12,500장이 부족했다.
오전. 연습실. 안무 연습 후 점심. 도시락을 먹고 있을 때 민하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이준 씨, 팬카페에 새 움직임이 있어요."
이준이 전화를 걸었다. 메시지보다 빨랐다.
"뭐예요?"
"팬분들이 자체적으로 '노바 컴백 D-7 프로젝트'를 시작했어요." 민하의 목소리에 놀라움이 있었다. "구매 인증, SNS 확산, 친구 추천 이벤트. 제가 기획한 게 아니에요. '별빛수호자'님이 주도하고 있어요."
"15화---아니, 알리기 프로젝트 때 그 분이요?"
"네. 또 움직였어요. 근데 이번에는 규모가 달라요. 참여 인증이 시간당 40개씩 올라오고 있어요. 어제까지 평균 8개였는데."
"5배."
"네. 그리고 해시태그 봤어요?"
"뭔데요?"
"#노바_전환율이에요."
이준의 손이 도시락 위에서 멈췄다. 젓가락이 공중에 떠 있었다.
"전환율?"
"네. 이준 씨가 만든 단어를 팬들이 해시태그로 쓰고 있어요. 트위터에서도 돌고 있어요. 팬카페 밖으로 나갔어요."
전환율. 1화에서 처음 쓴 단어. 마케팅 용어를 아이돌 팬덤에 적용한 것. 이준만 쓰던 단어. 팬카페 공지나 민하의 가이드에 이 단어를 넣은 적이 없었다. 아마 이준이 회의에서 쓴 걸 누군가가 듣고, 팬카페에서 쓰고, 그걸 본 팬이 해시태그로 만든 것이다. 단어는 사람을 통해 퍼진다. 알고리즘이 아니라 사람의 입을 통해. 이준이 회의실에서 쓴 단어가 멤버의 귀를 통과하고, 팬카페의 텍스트가 되고, 해시태그가 되고, 트렌드가 됐다. 수식이 아니라 언어가 만든 전파. 이준의 모델에 없는 경로였다.
서지환이 옆에서 폰을 보고 있었다. 팬카페 화면. 서지환도 봤다.
"형, 이거 봐." 서지환이 폰을 내밀었다. 인증 게시글. 구매 확인 스크린샷에 '#노바_전환율'이 붙어 있었다. "팬들이 전환율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어."
"알아."
"이거 형이 만든 단어잖아."
이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단어가 없었다. 숫자를 만들었다. 팬은 그 숫자에 이름을 붙이고 구호로 만들었다. '#노바_전환율'은 마케팅 용어가 아니라 팬덤의 구호가 됐다.
태현이 폰에서 고개를 들었다. "형, 트위터 실시간 트렌드에 올라가고 있어. '#노바_전환율' 17위."
"17위?" 정우가 노트북을 열었다. "확인해볼게요."
정우가 20초 만에 화면을 돌렸다. "맞아요. 17위. 올라가는 중이에요. 15분 전에 23위였어요."
이준은 정우의 화면을 봤다. 트렌드 차트가 우상향이었다. 팬이 만든 해시태그가 실시간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이준의 스프레드시트에 없는 곡선이었다.
저녁. 민하에게서 다시 메시지.
"이준 씨, 오늘 예약 판매 하루 집계 나왔어요."
"얼마예요?"
"8,000장이에요."
이준의 손이 키보드 위에서 멈췄다.
8,000장. 전날까지 하루 평균 2,500장. 3.2배. 추세선 밖의 점. 아웃라이어. 하지만 제거할 수 없는 아웃라이어. 실제 판매니까.
누적 26,000장.
'계산보다 빠르다.'
보수적 예측을 돌렸다. 3일간 8,000 유지 → 24,000 추가. 이후 4일간 4,000으로 반감 → 16,000 추가. 기존 누적 18,000 + 40,000 = 58,000. 48,000 초과. 가능성이 보였다.
하지만 이 변수를 모델에 넣을 수 없었다. 계수를 몰랐다. 팬 자발 캠페인의 효과가 며칠 가는지 데이터가 없었다. 하루짜리 반짝 효과일 수 있었다. 3일 후에 기존 2,500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모르는 값을 넣으면 모델이 오염된다. 하지만 이 변수를 무시하면 현실을 설명하지 못한다. 8,000이라는 숫자가 기존 모델의 밖에 있었다. 변수는 존재하지만 계수는 미정. 이준의 커리어에서 '미정'을 허용한 건 처음이었다.
연습실. 서지환이 8,000이라는 숫자를 듣고 물병을 내려놓았다.
"8,000? 하루에?"
"하루에." 이준이 답했다.
"어제까지 2,500이었잖아."
"팬들이 움직였어."
서지환이 1초 동안 이준을 봤다. "형, 계산 밖이지?"
"계산 밖이야." 이준이 인정했다. 두 번째였다. 14화에서 '네 말이 맞을 수도 있어'라고 한 이후, 이준이 자기 모델의 한계를 인정한 두 번째.
저녁 늦게. 멤버들은 숙소로 돌아갔다. 이준만 남았다.
드라이브 접근 로그를 열었다.
미끼 파일. '노바_컴백전략_v3.xlsx'. 16화에서 미끼를 물었던 기록 이후의 로그를 확인했다.
새 기록이 있었다. 파일이 이메일로 전송된 흔적. 첨부파일 형태. 전송 시점: 3월 29일 02:47. 드라이브 활동 로그에 수신 도메인이 기록돼 있었다.
수신처 도메인. @arkent.co.kr.
아크 엔터테인먼트 내부 메일 서버.
이준의 손가락이 트랙패드 위에서 멈췄다. 3초. 알고 있는 주소였다. 회사 공식 메일. 윤세아의 메일도 이 도메인이다. 이사의 메일도. 전략기획실도.
'회사 안이다.'
유출자는 외부에 보낸 게 아니었다. 같은 회사 안의 누군가에게 보내고 있었다. 멤버 중 한 명이 회사 내부의 누군가에게 팀 전략 문서를 보내고 있었다.
이준은 윤세아에게 전화했다. 늦은 시간이었다. 두 번 울리고 받았다.
"이준 씨, 무슨 일이에요?"
"하나만 여쭤볼게요." 이준이 말했다. 목소리를 낮췄다. "전략기획실에 누가 있어요?"
윤세아가 1초 멈췄다. "왜요?"
"확인할 게 있어서요."
"전략기획실장 박진호. 그 밑에 실원 두 명. 김승현, 이다은." 윤세아의 목소리가 경계를 띠었다. "이준 씨, 뭘 찾고 있는 거예요?"
"아직은 말씀 못 드려요. 확정되면 말씀드릴게요."
"외주비 건이랑 관련 있어요?"
이준은 2초 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윤세아는 빠른 사람이었다. 질문 하나에서 맥락을 읽었다.
"관련 있을 수도 있어요. 아직 모릅니다."
"알겠어요." 윤세아의 목소리가 단단해졌다. "제가 할 수 있는 거 있으면 말해요."
전화가 끊겼다.
경로가 보이기 시작했다. 멤버(숙소) → 회사 내부 메일(중간자) → 외부(알 수 없는 번호). 세 겹의 증거가 한 줄로 연결됐다. 첫째, 새벽 시간대 숙소 와이파이에서 파일 접근. 둘째, 미끼 파일 열람 및 이메일 전송. 셋째, 수신처가 회사 내부. 16화에서 서지환이 새벽 2시에 도윤의 노트북 사용을 목격했다. 시간이 겹쳤다. 파편들이 모이고 있었다.
하지만 이름은 아직 없었다. 한도윤이라는 이름이 떠올랐지만, 이준은 그 이름을 확정하지 않았다. 사용자명이 표시되지 않은 로그가 있었다. IP만으로는 기기를 특정할 수 없다.
이준은 화면을 캡처했다. 폴더에 저장했다. 수신 도메인 @arkent.co.kr. 전송 시각 02:47. 파일명 노바_컴백전략_v3.xlsx.
새벽에 온 문자를 다시 봤다. "예약 판매 숫자, 어디까지 올라갈 것 같아요?" 답장을 쓰지 않았다.
이준은 폰을 테이블 위에 놓았다. 스프레드시트를 봤다. '팬_자발행동' 탭이 열려 있었다. A1 셀이 비어 있었다. 옆에 '접근권한_리스트' 폴더가 열려 있었다. 파일이 늘어나고 있었다.
두 개의 탭. 두 개의 미지수. 팬의 행동을 설명할 수식과, 유출자의 정체를 확정할 증거. 둘 다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하지만 숫자는 쌓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