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계산된 팬심
차트를 움직이는 건 충성이 아니라 확산이다.
이준은 새벽 내내 그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 뮤직탑 FAQ 페이지를 뒤졌다. 스트리밍 인정 기준, 고유 리스너 가중치, 신규 유입 보너스. 구조는 단순했다. 같은 팬이 백 번 들어도 차트는 안 움직인다. 새로운 한 명이 한 번 듣는 게 세 배 더 크다.
연습실 창으로 아침 해가 들어왔다. 접이식 테이블 위에 노트북과 빈 커피 캔 세 개. 어젯밤 쇼케이스장에서 여기까지 걸어온 게 여덟 시간 전이었다. 잠은 자지 않았다. 잘 시간이 없었다.
이준은 그 구조를 한 줄로 정리했다. '기존 팬의 충성 → 한계. 새 리스너의 유입 → 핵심.' 팬이 팬을 데려오는 구조. 이준은 그걸 '바이럴 전환율'이라고 이름 붙였다. 마케팅 용어였다. 아이돌 팬덤에 쓰는 사람은 아마 없었다.
있어야 했다.
*
연습실 문이 열렸다. 서지환이 들어왔다. 눈이 부어 있었다. 어젯밤에 울었거나, 잠을 못 잤거나, 둘 다이거나. 손에 편의점 봉지를 들고 있었다. 삼각김밥 두 개와 바나나우유.
"형 여기서 잤어?"
"안 잤어."
"그게 더 나쁜 거 아니야?"
이준은 대답 대신 화면을 가리켰다.
"이거 봐."
서지환이 다가왔다. 삼각김밥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화면을 봤다. 숫자가 빼곡했다. 서지환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숫자가 많으면 일그러지는 얼굴이었다. 이준은 그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요약했다.
"우리한테 필요한 건 팬이 더 듣는 게 아니라, 새로운 사람을 데려오는 거야. 한 명이 한 명을 데려오면 차트 100위권이 보여."
"그걸 어떻게 만드는데."
"팬총공."
서지환의 눈이 커졌다.
"총공? 우리가?"
"자정 스트리밍 총공. 핵심은 듣는 게 아니야. 총공 과정에서 생기는 해시태그, 인증, 확산이야. 듣는 게 아니라 '듣는 모습을 보여주는' 거지."
"근데 형. 그거 팬들한테 시키는 거잖아."
서지환의 목소리가 달라졌다. 조심스러운 게 아니라 진지한 목소리였다. 이 팀에서 감정을 숫자보다 먼저 꺼내는 건 항상 서지환이었다.
"팬이 좋아서 듣는 건데, 우리가 '언제 들어라'라고 하면 그게 맞아?"
이준은 그 질문에서 1초 멈췄다.
"감정도 전략이다."
"뭐?"
"팬이 좋아서 듣는 거, 맞아. 근데 그 '좋아서'를 타이밍에 맞춰서 보여주면, 차트가 반응해. 감정을 없애는 게 아니라, 감정이 가장 잘 보이는 위치에 놓는 거야."
서지환이 바나나우유를 열었다. 빨대를 물고 생각하는 얼굴이었다. 이준은 그 침묵이 거부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서지환이 생각할 때는 뭔가를 입에 물었다. 빨대든, 펜이든.
"팬카페 운영자한테 맡긴다. 팬이 팬에게 제안하는 구조로."
"팬덤이 자발적으로 하는 것처럼?"
서지환의 목소리에 날이 섰다. '것처럼'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이준은 그 날을 느꼈다. 무시하지 않았다.
"다르게 만들어야지."
서지환은 더 묻지 않았다. 하지만 눈은 여전히 이준을 보고 있었다. 이해가 아니라 감시에 가까운 시선이었다. 이준은 그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누군가는 이 선을 지켜봐야 했다.
*
멤버들이 하나씩 들어왔다. 오전 10시. 안무 연습이 10시 반부터 잡혀 있었지만, 이준은 그 전에 30분을 달라고 단체 카톡에 보내뒀다. 새벽 5시 12분에 보낸 메시지였다. 읽은 사람은 서지환뿐이었고, 나머지는 읽지 않은 채 왔다.
태현이 문을 열자마자 벽에 프로젝터로 쏘아진 스프레드시트를 봤다. 돌아섰다.
"나 오늘 컨디션 안 좋아서 안무 먼저 돌릴게."
"앉아."
이준의 한마디에 태현이 멈췄다. 뒤통수만 보였지만, 귀가 빨개진 건 알 수 있었다.
"형 나 숫자 싫어하는 거 알잖아."
"알아. 근데 이건 네 숫자가 아니라 우리 숫자야."
태현이 천천히 돌아섰다.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모자를 눌러 쓴 채로. 그게 태현 나름의 협력 표시라는 걸 이준은 알고 있었다. 모자를 벗으면 완전한 참여, 쓰고 있으면 조건부 참여. 태현의 언어는 항상 행동에 있었다.
정우는 조용히 들어와서 조용히 앉았다. 폰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화면이 켜져 있었다. 트위터 앱. 이준은 그걸 봤지만 말하지 않았다. 아직은 아니다. 한도윤은 3분 늦게 왔다. 커피를 들고. 사과 한마디 없이. 윤세아에게 커피 한 잔을 건넸다. 윤세아가 받았다. 도윤이 언제 윤세아의 커피 취향을 알게 됐는지 이준은 몰랐다. 기억해뒀다.
이준이 프로젝터를 켰다.
"뮤직탑 차트 구조. 한 줄 요약: 같은 사람이 백 번 듣는 것보다 새로운 한 명이 한 번 듣는 게 3배 크다. 우리한테 필요한 건 충성이 아니라 확산이야."
"그래서?"
태현이 물었다. 과정보다 결론이 궁금한 유형이었다.
"팬총공을 건다. 자정 동시 재생. 해시태그 인증. SNS 확산. 다른 팀도 하지만, 다른 팀은 감정으로 해. 우리는 설계로 한다."
이준이 타임라인 탭을 열었다. D-7부터 D-Day까지의 일정이 펼쳐졌다.
태현이 모자를 벗었다. 처음으로.
"잠깐."
방이 조용해졌다. 태현이 말을 꺼내는 건 드문 일이었다. 무대 위에서는 말이 많았지만, 전략 회의에서 태현이 먼저 입을 여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형. 나 하나만 물어볼게."
서지환이 아까 한 말과 같은 구조였다. 하지만 태현의 목소리는 서지환과 달랐다. 두려움이 아니었다. 분노에 가까웠다.
"팬을 도구로 쓰는 거야?"
이준은 태현을 봤다. 태현의 눈이 이준을 정면으로 보고 있었다. 모자 뒤에 숨지 않고. 이 얼굴은 무대 위의 태현도, 구석에서 자는 태현도 아니었다. 이준이 처음 보는 태현이었다.
"팬들이 우리 좋아해서 돈 쓰는 건데. 그걸 계산해서 '언제 써라, 얼마나 써라' 하는 거잖아. 그게 팬을 이용하는 거 아니야?"
서지환이 고개를 돌렸다. 자기가 하고 싶었던 말을 태현이 더 날카롭게 해버린 표정이었다. 정우는 두 사람을 번갈아 봤다. 도윤만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이준은 3초 동안 말하지 않았다. 그 3초가 길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질문은 1초짜리 대답으로 끝내면 안 되는 종류였다.
"맞아."
태현의 눈이 커졌다. 부정을 예상했던 것이다.
"계산하는 거 맞아. 팬의 감정을 타이밍에 맞추는 것도 맞아. 근데 태현아."
이준이 스프레드시트를 가리켰다. 적자 2억 4천 7백만 원이 적힌 셀.
"이거 못 갚으면 우리 다섯 명 전원이 빚을 진다. 제7조 3항. 트레이닝비 상환 의무. 1인당 약 5천만 원."
태현의 표정이 바뀌었다.
"팬을 도구로 쓰는 거냐고 물었지. 내 대답은, 지금은 그 선 위에 서 있다는 거야. 넘어가면 안 되는 선이라는 것도 알아. 하지만 그 선 앞에서 멈추면 우리가 죽어."
방이 조용했다.
"그래서 선을 지키면서 움직일 방법을 찾는 거야. 그게 전략이야."
태현이 입을 다물었다. 5초. 모자를 다시 썼다. 하지만 눈은 가리지 않았다.
"…알겠어. 근데 형."
"뭐."
"내가 유튜브 알고리즘 파고 있는 거 알아?"
이준의 손이 멈췄다.
"어젯밤에 우리 쇼케이스 직캠 올라온 거 봤는데. 유튜브 알고리즘이 밀어주는 영상은 처음 2시간 내 시청 유지율이 70% 넘어야 해. 우리 직캠은 지금 58%야. 근데 서지환 고음 파트만 잘라서 쇼츠로 올리면 유지율 90% 넘길 수 있어."
서지환이 고개를 돌렸다. 자기 이름이 나올 줄 몰랐다는 표정이었다.
"내 고음 파트가 왜?"
"댓글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구간이야. '소름', '미쳤다', '이 부분 무한반복' — 이런 반응이 몰려 있어. 유튜브 알고리즘은 리플레이율도 보거든."
방이 다시 조용해졌다. 이번에는 다른 종류의 조용함이었다.
이준은 태현을 봤다. 모자 아래에서 유튜브를 보고 있던 그 시간이 이것이었다. 자고 있던 게 아니었다. 자기 방식으로 싸울 무기를 찾고 있었다. 이준은 그 사실에서 무언가를 느꼈다. 분류하지 않았다. 분류할 필요가 없었다. 이 팀이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였다.
"데이터 있어?"
"폰에."
태현이 화면을 보여줬다. 유튜브 스튜디오 앱이었다. 노바 공식 채널의 분석 탭. 시청 유지율 그래프가 떠 있었다. 이준이 새벽에 스트리밍 차트를 분석하는 동안, 태현은 유튜브 알고리즘을 분석하고 있었다.
"이거 쓸 수 있어."
이준이 말했다. 태현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갔다. 모자 아래에서.
정우가 조용히 손을 들었다. 정우가 손을 드는 건 더 드문 일이었다. 연습생 시절에도 정우는 회의에서 말보다 메모를 먼저 했다. 말을 하면 틀릴 수 있지만, 데이터는 틀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유형이었다.
"나도 하나 있는데."
폰 화면을 보여줬다. 트위터 실시간 트렌드 캡처. 쇼케이스 당일부터 지금까지, '노바'가 언급된 트윗의 시간대별 분포를 정리한 스크린샷이었다. 3장. 시간대별로 색을 다르게 표시해둔 게 눈에 띄었다. 누군가 시킨 게 아니었다. 정우가 혼자서 하고 있었다.
"밤 11시에서 새벽 1시 사이에 언급량이 가장 많아. 그 시간대에 트윗하면 확산이 가장 빨라."
이준은 그 데이터를 봤다. 자정 총공의 타이밍과 정확히 일치했다.
"정우야."
"응."
"너 이거 언제부터 했어?"
"연습생 때부터. 다른 팀들 패턴 보면서."
이준은 그 말을 들었다. 이 팀에 숫자를 읽는 사람이 자기만이 아니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방법이 달랐을 뿐이었다. 이준은 스프레드시트, 태현은 유튜브, 정우는 트위터.
한도윤만 아무 말이 없었다.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태현이 싸울 때도, 정우가 데이터를 보여줄 때도, 도윤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이준은 그 침묵의 무게를 재지 않았다. 하지만 하나는 봤다. 도윤의 폰 화면이 꺼져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다. 듣고만 있었다. 전부.
*
점심 뒤, 이준은 팬카페에 접속했다.
'노바제일별'의 최근 게시글을 열었다. 제목: [스밍 가이드] 뮤직탑 차트 반영 기준 정리 (초보도 OK!)
정확했다. 이준이 새벽에 분석한 내용의 80%가 담겨 있었다. 나머지 20%는 이준도 FAQ를 뒤져야 알 수 있었던 것들이었다.
'이 사람, 단순한 팬이 아니야.'
글의 구성이 달랐다. 다른 팬들의 글이 감정 중심이라면, 이 사람의 글은 데이터 중심이었다. 차트 반영 기준, 최적 스트리밍 시간대, 중복 카운트 방지법. 하지만 감정이 없는 건 아니었다. 글 마지막에 항상 한 줄이 있었다. '노바가 1위 하는 그날까지, 같이 가요.' 감정은 있되, 구조 안에 들어 있었다. 이준과 같은 방식이었다.
닉네임 노바제일별. 게시글 47건. 댓글 312건. 접속일 30일 중 30일. 하루도 빠지지 않았다. 게시글 참여율 17.8%. 전체 평균 3.2%의 5.6배.
한 줄로 줄이면: 이 사람이 움직이면 팬덤이 움직인다.
이준은 DM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노바 리더 강이준입니다. 스밍 가이드 잘 봤습니다. 한 가지 제안을 드리고 싶습니다."
전송. 읽음 표시가 즉시 떴다.
3초 뒤 답장이 왔다.
"네????????????????????"
*
이준은 화면을 봤다. 물음표가 20개였다. 세어봤다. 정확히 20개. 이준은 그 물음표의 개수에서 이 사람의 온도를 읽었다. 차갑지 않았다. 전략적이지도 않았다.
뜨거웠다.
이준은 다음 메시지를 보냈다.
"내가 팬이면, 이렇게 움직인다."
스프레드시트의 스크린샷을 첨부했다. '노바_팬덤전략_v1'의 첫 페이지. 타임라인과 목표 수치가 적힌 표. 팬이 본 적 없는 종류의 문서였다.
1분간 답이 없었다. 이준은 화면을 보고 기다렸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가능성이 두 가지로 갈렸다. 무서워서 도망치거나, 흥분해서 말을 고르고 있거나.
읽음 표시가 켜져 있었다. 도망치지 않았다. 타이핑 중... 표시가 떴다가 사라졌다. 세 번. 문장을 쓰다 지우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이준은 그 반복에서 신중함을 읽었다. 흥분한 사람은 바로 보낸다. 이 사람은 고르고 있었다.
답이 왔다.
"이거… 진짜 이준님이 만든 거예요?"
"네."
"아이돌이 이런 거 만들어요?"
"이 아이돌은 만듭니다."
7초 뒤.
"저, 내일 만날 수 있을까요?"
이준은 노트북을 닫았다. 의자에 기대었다. 천장을 봤다. 형광등이 깜빡거리고 있었다. 연습실 천장을 본 건 처음이었다. 항상 화면만 봤으니까.
'전환율 0.3을 만들 수 있는 사람.'
계산이 맞다면, 내일이 시작이었다.
― 2화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