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확률 63%
강남역 4번 출구 앞 카페. 오후 2시.
이준은 5분 먼저 도착했다. 창가 자리를 잡았다. 습관이었다. 창가에 앉으면 상대방이 들어오는 걸 먼저 볼 수 있다. 첫인상은 상대가 나를 인식하기 전의 3초에서 결정된다.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얼음 없이. 잔을 손에 감싸면 체온이 유지된다. 겨울 카페에서 손이 떨리면 긴장해 보인다. 이준은 긴장하지 않았다. 이건 미팅이 아니라 협상이었다. 협상에서 긴장은 원가에 포함되지 않는다.
문이 열렸다.
들어온 사람은 패딩 점퍼를 입고 있었다. 검은색. 가방은 에코백. 안에서 노트북 모서리가 삐져나와 있었다. 키는 중간. 머리는 묶어 올림.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두리번거리지 않고 곧장 이준을 봤다.
3초가 아니라 1초였다. 이준을 찾는 데 걸린 시간. 이 사람은 카페에 들어오기 전에 이미 이준의 위치를 계산했다. 창가에 앉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이준은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박민하. 닉네임 노바제일별. 23세. 대학교 3학년. 경영학과.
경영학과.
이준은 그 정보를 DM에서 받았을 때 1초 멈췄었다. 지금도 그 1초를 기억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박민하가 앉았다. 허락을 구하지 않았다. 윤세아와 같은 방식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윤세아는 효율 때문이었고 이 사람은 긴장해서 잊은 것처럼 보였다.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커피 시킬까요?"
"아 네, 아이스 라떼요."
이준이 주문했다. 박민하의 손 떨림이 멈추기를 기다렸다. 30초가 걸렸다. 라떼가 나오기 전에 멈췄다. 괜찮은 속도였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
이준이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냈다. 열었다. 스프레드시트가 떴다. '노바_초동시뮬레이션_v1'. 오늘 새벽에 완성했다.
"우리 팀 현재 초동 예약 판매량 8,412장. 목표 3만 장. 차이 21,588장."
박민하가 화면을 봤다. 눈이 움직이는 속도가 빨랐다. 숫자를 읽는 데 익숙한 눈이었다. 이준은 그 속도를 봤다. 윤세아와 비슷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윤세아는 숫자를 읽을 때 표정이 없었고, 이 사람은 읽으면서 입술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숫자를 소리 없이 따라 읽고 있었다.
"이 갭을 메우려면 팬덤 전환율을 현재 4%에서 12%로 끌어올려야 해요."
"전환율이요?"
"팬카페 회원 중 실제 구매·스트리밍 참여자 비율. 지금은 100명 중 4명만 움직여요. 12명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이준이 탭을 넘겼다. 시뮬레이션 결과 그래프가 나왔다. 세 개의 선. 빨간색은 현재 추세. 주황색은 8%. 초록색은 12%.
빨간선은 바닥을 기었다. 초록선만 3만 선을 넘었다.
"빨간색이 지금이에요."
"네."
"초록색이 목표고요."
"네."
박민하가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라떼가 나왔는데 손을 대지 않았다.
"이걸 왜 저한테 보여주시는 거예요?"
"민하 씨가 팬카페에 올린 스밍 가이드 봤습니다. 참여율 17.8%. 전체 평균의 5.6배. 민하 씨가 글을 올리면 팬이 움직여요."
"그건—"
"숫자가 말하는 겁니다."
박민하가 입을 다물었다. 2초. 이준은 그 2초를 기다렸다.
"제가 뭘 하면 되는 건데요?"
이준은 그 질문이 올 때까지 5분이 걸릴 줄 알았다. 2분 만에 나왔다. 이 사람은 감정보다 행동이 빠른 유형이었다.
*
화이트보드를 꺼냈다. 가방에서. 이 카페에 화이트보드를 들고 온 손님은 이준이 처음일 것이었다. A3 크기 미니 화이트보드. 어젯밤 다이소에서 3,000원에 샀다.
이준은 마커를 뽑았다. 검은색. 쓰기 시작했다.
D-7. 팬카페 예고 게시글. '특별한 날이 오고 있다.'
D-5. 타임라인 공개. 스트리밍 가이드 배포. '이 시간에, 같이.'
D-3. 해시태그 확정. #노바_첫걸음. SNS 프로필 통일 캠페인.
D-1. 리허설 총공. 오후 6시. 1시간. 결과 공유.
D-Day. 자정. 본 총공. 뮤직탑 차트 갱신 직후 30분 집중.
D+1. 결과 인증. 순위 캡처. 감사 게시글. 다음 목표 제시.
박민하가 화이트보드를 봤다. 이준이 쓰는 동안 한 번도 눈을 떼지 않았다.
"이거 혼자 다 만든 거예요?"
"네."
"아이돌이?"
"이 아이돌은 만듭니다."
어젯밤 DM에서 했던 대답이었다. 박민하가 웃었다. 처음으로 웃었다. 이준은 그 웃음을 분류하지 않았다. 분류할 필요가 없었다. 좋은 신호라는 건 숫자 없이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이준님."
박민하가 라떼를 한 모금 마셨다. 떨림이 완전히 멈춰 있었다. 이준보다 빨리 진정한 것이었다. 아니, 이준은 처음부터 긴장하지 않았으니까 비교 자체가 틀렸다. 하지만 이 사람이 숫자 앞에서 안정되는 속도는 기억해둘 만했다.
"전환율을 12%로 올리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하세요? 솔직하게요."
이준은 그 질문을 들었다. 서지환의 질문과 닮아 있었다. '우리 진짜 되는 거야?' 하지만 온도가 달랐다. 서지환은 두려움에서 물었다. 이 사람은 가능성을 확인하려고 물었다.
이준은 시뮬레이션 탭을 열었다. 변수를 하나씩 입력하기 시작했다.
"팬카페 DAU 2,300명. 민하 씨 글 조회자 410명. 행동 전환율 45%. 실 참여자 약 185명. 하지만 185명으로는 차트가 안 움직여요. 최소 600명이 동시에 재생해야 알고리즘이 반응합니다."
"폭발적이어야 한다는 거죠."
이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사람은 구조를 직감으로 잡았다.
"민하 씨가 총공 전용 게시글을 올리면, 조회수가 기존 대비 2.5배. 참여 특전이 걸려 있으니까. 팬사인회 추가 회차."
"팬사인회 추가가 가능한 거예요?"
"회사에 확인했습니다. 초동 2만 5천 이상이면 가능해요."
사실이었다. 오늘 아침 윤세아에게 확인한 내용이었다. 윤세아는 '가능은 한데, 그 숫자가 나올 거라고 생각하세요?'라고 물었다. 이준은 '만들 겁니다'라고 답했다.
"조회수 2.5배면 1,025명. 총공 구조에서 행동 전환율 60%. 참여자 615명. 여기서 바이럴 전환율 0.5를 적용하면—"
"923명."
박민하가 먼저 말했다.
이준의 손이 멈췄다. 고개를 들었다. 박민하가 이준을 보고 있었다. 계산기를 꺼내지 않았다. 암산이었다.
"615 곱하기 1.5가 922.5니까, 반올림하면 923명이죠."
이준은 3초 동안 박민하를 봤다. 경영학과. 숫자를 읽는 눈. 참여율 17.8%의 운영자. 그리고 지금, 이준의 시뮬레이션을 실시간으로 따라가고 있는 사람.
'이 사람이면 된다.'
계산이 아니었다. 직감이었다. 이준은 직감을 잘 쓰지 않았다. 하지만 가끔, 스프레드시트 바깥에서 답이 보일 때가 있었다.
"맞아요."
이준이 말했다. 처음으로 상대의 계산을 인정하는 말이었다. 이준은 그 '처음'의 무게를 느꼈다. 느끼지 않으려 했지만, 커피잔을 드는 손이 평소보다 느렸다. 2억 4천 7백만 원의 적자 앞에서 떨리지 않던 손이, 923이라는 숫자 앞에서는 달랐다. 이준은 그 이유를 분류하지 않았다.
"923명이 동시에 차트 갱신 시점에 스트리밍하면, 신규 리스너 가중치 포함해서 뮤직탑 100위권 진입 확률이—"
이준은 시뮬레이션의 마지막 셀을 가리켰다.
"63%."
*
박민하가 숫자를 봤다. 63. 퍼센트 기호가 옆에 붙어 있었다. 초록색 셀이었다.
"63%면… 높은 거예요?"
"어중간한 숫자예요. 반반보다 조금 나은 정도."
이준은 솔직하게 말했다. 90%라고 속이는 건 의미가 없었다. 이 사람은 숫자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근데 이 산업에서 신인 보이그룹이 데뷔 첫 달에 100위권 들어갈 확률이 보통 몇 %인지 아세요?"
"모르겠어요."
"7%."
박민하의 눈이 달라졌다. 7%에서 63%로. 9배. 그 의미를 이해한 눈이었다.
"우리가 이 전략을 실행하면, 7%짜리 가능성을 63%로 만들 수 있어요."
이준은 노트북을 닫았다. 화이트보드를 돌려 박민하 앞에 놓았다. D-7부터 D+1까지. 7일간의 작전이 적혀 있었다.
"이게 제 계산입니다."
이준이 박민하를 봤다.
"확률 63%. 해볼 만하죠?"
카페 안이 조용했다. 두 사람 사이에 숫자가 놓여 있었다. 스프레드시트와 화이트보드와 63이라는 숫자.
박민하가 에코백 안에서 뭔가를 꺼냈다. 노트북이었다. 맥북 에어.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노바 로고 스티커. 다이소 스티커 용지에 프린트한 흔적이 있었다.
노트북을 열었다. 화면에 이미 문서가 열려 있었다. 이준은 그 화면을 봤다.
'노바 팬카페 총공 가이드 (초안)'
날짜는 오늘 새벽 3시.
이준이 DM을 보낸 게 어젯밤 오후였다. 그 사이에 이 사람은 혼자서 총공 가이드 초안을 만들어온 것이었다. 만나기도 전에. 가능성을 확인하기도 전에.
이준은 그 화면을 5초 봤다. 5초는 길었다. 평소의 이준이라면 1초면 충분했다.
"이미 만들어오셨네요."
"가능성이 있으면 움직여야죠."
박민하가 말했다. 떨림이 없는 목소리였다. 아까 손이 떨리던 사람과 같은 사람이 맞는지 의심될 정도였다.
이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시작합시다."
*
그날 저녁. 숙소.
이준은 침대에 앉아 노트북을 펼쳤다. 팬카페를 열었다. 새 게시글이 올라와 있었다. 작성자: 노바제일별.
제목: [중요 공지] 노바 첫 스트리밍 총공 안내 🔥
게시 후 47분. 조회수 1,280. 댓글 342.
이준은 댓글을 스크롤했다. '드디어!!' '기다렸어요ㅠㅠ' '스밍 앱 깔았습니다!' '알람 맞춰놨어요!!' '친구한테도 알려줄게요!!'
1,280 조회. 47분 만에. DAU 2,300 기준 실시간 유입률 55.6%. 기존 게시글 평균의 3.1배.
예상보다 높았다.
이준은 스프레드시트를 열었다. 예상 총공 참여자 수를 상향 조정했다. 615명에서 780명으로. 바이럴 전환율도 0.5에서 0.7로.
시뮬레이션을 다시 돌렸다. 100위권 진입 확률이 바뀌었다.
63%에서 71%.
이준은 그 숫자를 봤다. 올라갔다. 하지만 이준이 본 것은 숫자가 아니었다.
댓글 342개. 그 안에 '기다렸어요'라는 단어가 계속 보였다. 이 사람들은 기다리고 있었다. 누군가가 '같이 가자'고 말해주기를. 누군가가 구조를 만들어주기를. 감정은 있었다. 방향이 없었을 뿐이었다.
이준은 그 감정에 방향을 줬다. 그게 맞는 일인지는 아직 판단하지 않았다. 서지환의 질문이 남아 있었다. 태현의 질문도. '팬을 도구로 쓰는 거야?'
다르게 만들어야 한다. 다르게 만들 수 있는지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시도하지 않으면 확률은 0이다.
0%보다는 63%가 낫다. 63%보다는 71%가 낫다.
서지환에게서 카톡이 왔다. '형 팬카페 봤어? 댓글 미쳤어.' 이준은 읽었다. 답하지 않았다. 서지환은 다시 보냈다. '형 이거 진짜 되는 거야?' 이준은 그 질문에 대답할 숫자를 갖고 있었다. 71%. 하지만 보내지 않았다. 서지환에게 필요한 건 숫자가 아니라 확신이었다.
'아직은 아니야.'
확신은 결과가 나온 뒤에. 지금은 확률이다. 확률은 결과가 아니다.
노트북을 닫으려다 멈췄다. 팬카페 게시글 하단에 새 댓글이 올라와 있었다.
'노바제일별'의 댓글.
"우리는 끝까지 가요."
이준은 그 한 줄을 읽었다. 스프레드시트에 넣을 수 없는 문장이었다. 하지만 스프레드시트 위의 모든 숫자를 만들어낼 문장이기도 했다.
팬카페 실시간 접속자 수가 올라가고 있었다. 2,300이 아니었다. 2,800. 2,900. 3,100.
트래픽이 폭증하고 있었다.
이준은 숫자를 봤다. 계산대로. 아니, 계산보다 빠르게.
그때, 윤세아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업무 메신저. 이 시간에 윤세아가 메시지를 보내는 건 처음이었다.
"이준 씨. 내일 아침에 잠깐 봐요. 이사회 쪽에서 연락이 왔어요."
이준의 손이 멈췄다. 이사회. 6주 뒤가 아니라 지금. '연락이 왔다'는 말이 뜻하는 건 두 가지뿐이었다. 좋은 소식이거나, 더 나쁜 소식이거나. 윤세아는 좋은 소식을 이 시간에 보내지 않는 유형이었다. 이준은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팬카페 접속자 수는 여전히 올라가고 있었다. 3,100. 3,200. 3,400. 숫자가 움직이고 있었다. 계산대로. 아니, 계산보다 빠르게.
하지만 이준의 시선은 더 이상 팬카페가 아니라 윤세아의 메시지 위에 멈춰 있었다.
총공까지 6일. 그리고 내일 아침,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기다리고 있었다.
시작은 됐다. 문제는 시작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 3화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