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마켓 아이
미래는 숫자로 보인다.
병원을 나서자마자 마켓 아이가 세상을 번역하기 시작했다. 병원 앞 편의점 간판. 일일 매출 320만 원, 월 임대료 180만 원, 영업이익률 7.2%.
횡단보도 앞 사람들의 코트 안주머니에 든 지갑 두께. 평균 잔액 4만 2천 원.
쓸모없는 정보였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마켓 아이는 전생에서도 이랬다. 세상의 모든 것을 수치로 환산하는 고유 스킬. 문제는, 전생에서는 이 스킬의 진짜 쓰임새를 너무 늦게 깨달았다는 것이다. S급 몬스터를 벨 때 쓰는 것보다, S급 길드를 살 때 쓰는 게 훨씬 값어치 있었다.
스킬의 본질은 전투용이 아니다. 투자용이다.
그 깨달음에 10년이 걸렸다. 이번 생은 처음부터 알고 시작한다.
승헌은 병원 앞 벤치에 앉아 스마트폰을 조작했다. 2026년형 구형 단말기. 화면이 작아서 눈이 아파왔지만, 내용은 충분했다.
헌터 산업 공시 사이트에서 이카루스 길드의 공개 정보를 뽑았다.
마켓 아이가 즉시 반응했다.
이카루스 길드. C급. 등록 헌터 14명(활동 9명). 보유 던전 좌표 3개. 연간 공략 23회.
매출 12억. 영업비용 14.8억. 영업이익 마이너스 2.8억. 총부채 41억. 부채비율 340%.
시장 평가액: 3억(추정).
숫자만 보면 완벽한 부실 기업이었다. 어떤 사모펀드도 건드리지 않을 쓰레기.
하지만 승헌의 눈에는 다른 숫자가 보였다.
보유 던전 좌표 3개. 그중 '무영-7' 좌표--- 3년 후 B급 마석 광맥 확정. 추정 가치 4,200억.
시장이 3억으로 평가하는 것을, 승헌은 4,200억으로 평가할 수 있었다.
1,400배의 괴리.
이것이 회귀의 가치다.
문제는 자본이었다.
은행 잔고 210만 원으로는 길드 화장실 청소 용역도 따내지 못한다. 직접 매수는 불가능. 그럼 방법은 하나다.
LBO. 차입매수.
타겟 기업의 자산을 담보로 잡고, 빌린 돈으로 그 기업을 사는 것. 한마디로, 남의 돈으로 남의 회사를 사는 방식이다. 적은 자기자본으로 큰 기업을 삼키는 전략. 사모펀드의 기본기이자, 기업 사냥꾼의 핵심 무기.
단, LBO에는 대출을 해줄 금융기관이 필요하다. 쓰레기 길드에 돈을 빌려줄 미친 금융기관.
승헌은 스마트폰에 한 글자를 입력했다.
엘리시움.
*
▶ 엘리시움 자산운용. 역삼역 인근 오피스 빌딩 14층.
승헌은 빌딩 로비에 서서 위를 올려다봤다. 14층. 전생에서는 이 빌딩 전체를 샀다. 그래도 부족해서 옆 빌딩까지 매입했다. 지금은 14층 한 층의 방문객에 불과했다.
자산 규모 추정 800억. 운용 수익률 추정 12%. 길드 투자 비중 35%.
마켓 아이가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멈추지 않았다. 승헌은 숫자를 무시하고 14층 버튼을 눌렀다.
안내 데스크에서 여성이 일어섰다.
"예약 없이 방문은 어렵습니다."
당연한 대답이었다. 사모펀드 사무실에 예약 없이 찾아오는 것은, 은행에 예약 없이 돈을 뽑으러 가는 것과 비슷했다. 다만 승헌에게는 예약보다 값어치 있는 것이 있었다.
"원태경 대표님께 전해주십시오. 이카루스 길드 건으로 왔다고."
안내 직원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동정 반, 혹시나 반. 이카루스라는 이름이 이 업계에서 어떤 의미인지 아는 모양이었다.
직원이 전화를 걸었다. 30초. 돌아왔다.
"...들어오시라고 하십니다."
예상했다. 원태경은 전생에서도 이런 사람이었다. 미친놈이든 천재든, 일단 들어보는 사람.
회의실 문을 열었다.
창으로 강남 스카이라인이 보였다. 책상 위에 모니터 세 대. 원두 커피. 그리고 두 사람.
한 명은 창가 쪽 의자에 앉아 있었다. 30대 후반, 얇은 테 안경, 손가락이 길고 마른 손. 표정이 없었다. 정확히는, 표정을 만들지 않는 얼굴이었다. 원태경. 엘리시움 자산운용 대표.
전생에서 이 사람과 함께 백호 길드를 샀다. 함께 수조 원을 벌었고, 함께 잃었다.
나머지 한 명은 태경 옆에 서 있었다. 여성. 20대 중반. 단정한 정장 차림. 손에 태블릿을 들고 있었고, 표정이 진지했다. 재무제표를 다루는 사람 특유의 긴장감.
차은설.
전생에서 승헌의 전략실을 이끌었던 사람. 미래그룹 출신. 숨겨진 배신자로 오해받았던 사람. 끝까지 승헌 옆을 지킨 사람.
지금은 엘리시움의 신입 분석가. 승헌을 모른다. 아직은.
태경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카루스 건이라고 했나."
질문이 아니었다. 확인이었다. 그리고 확인 안에는 '왜 하필'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네." 승헌이 의자에 앉았다. "차입매수 건입니다."
침묵.
태경의 표정이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손가락이 커피잔 위에서 멈췄다. 0.5초. 그것으로 충분했다.
관심이 생겼다.
"부채비율 340%짜리 C급 길드를 LBO로?" 태경이 말했다. "담보가 뭐죠."
직구였다. 이 사람과의 대화는 항상 이랬다. 불필요한 어휘 제로. 숫자와 구조만.
"던전 좌표 세 개."
"어디."
"무영 지역. 좌표 번호는 공개되어 있습니다."
"무영 지역 던전은 D급 이하로 평가받고 있어. 담보 가치가 없는데."
승헌은 자리에서 일어서지 않았다. '믿어달라'는 말은 강승헌의 문법이 아니다.
"3년 내 무영-7 좌표에서 B급 마석 광맥이 발견됩니다."
태경의 손가락이 커피잔에서 완전히 떨어졌다.
"근거는."
"수치로 말씀드리죠."
승헌이 마켓 아이를 발동했다.
손가락이 허공을 두드렸다. 습관이었다. 계산식처럼 손가락을 두드리는 버릇. 태경과 은설의 눈이 그 손을 따라갔다.
"무영 지역 토양 마력 농도, 현재 D급." 승헌이 말했다. "하지만 지하 200미터 마석층 진동 파형을 분석하면 특이점이 있습니다."
은설이 태블릿에 무언가를 메모하기 시작했다. 빠른 손.
"HMB 탐사 보고서에 묻혀 있는 데이터죠. 2년 전 자료." 승헌이 계속했다. "해당 파형이 B급 이상 광맥의 전조 패턴과 94% 일치합니다."
작말이었다. 물론.
진짜 근거는 회귀자의 기억이다. 하지만 그건 말할 수 없으니, 공개된 데이터로 그럴듯한 이야기를 만들었다. 마켓 아이가 뽑아낸 숫자들을 이어 붙이면, 얼마든지 그럴싸한 스토리가 되니까.
태경이 처음으로 자세를 바꿔 앉았다.
"가정해보지. 근거가 맞다고. 광맥이 터진다고." 태경의 눈이 좁아졌다. "그럼 인수 후 3년간 부채를 버텨야 하는데, 그동안 이 길드가 살아남을 수 있나?"
승헌은 다섯 손가락을 폈다.
"운영 구조조정으로 영업비용 40% 절감. 비효율 던전 공략 제외, 장비 임대 전환." 잠깐 멈췄다. "6개월 내 영업이익 흑자 전환. 예상 수익률 78%."
78%.
그 숫자가 회의실에 가라앉았다.
은설이 태블릿을 내려놓았다. 승헌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 어떤 표정인지는 읽을 수 없었다. 하지만 표정이 있었다는 것 자체가, 태경과 다른 점이었다.
태경이 안경을 벗었다. 안경 없이 보는 눈이 훨씬 날카로웠다.
"재미있는 제안이군. 하지만 우리가 이걸 왜 해줘야 하지?"
"수익이 나니까."
"수익. 수익이라." 태경이 반복했다. "3년 안에 4,000억."
"최소치입니다."
또 침묵.
이번 침묵은 달랐다. 태경이 계산하고 있었다. 이 사람은 감정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오직 수익률과 리스크로만 판단한다. 그것이 이 사람을 믿을 수 있는 이유였고, 동시에 절대 완전히 믿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했다.
태경이 안경을 다시 썼다.
"은설 씨."
"네, 대표님."
"이카루스 길드 실사 자료 준비해. 길드 재무제표, 던전 공략 실적, 헌터 계약 구조, 보유 좌표 평가 전부."
은설이 고개를 끄덕였다. 망설임 없이. 태블릿에 벌써 메모를 적고 있었다.
빠르다.
승헌은 그것을 보며 전생의 기억을 떠올렸다. 이 사람은 상사가 지시하기 전에 미리 준비하는 사람이었다. 전생에서도 그랬고, 이번 생에서도 그럴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이번에는 승헌이 그 가치를 알고 있다는 것.
태경이 손을 내밀었다.
"투자 검토해볼게. 단, 조건이 있어."
"말씀하시죠."
"길드 임원들을 설득해 와. 경영권 이전 동의 없이는 LBO가 불가능해. 헌터들이 본인이 일하는 길드를 팔아버리는 거니까."
승헌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건 제가 하겠습니다."
"방법이 있어?"
승헌은 문을 열며 말했다.
"담보는 저들 자산으로 충분합니다. 본인들이 모를 뿐이죠."
문이 닫혔다.
태경이 커피를 들었다. 적어도 입꼬리는 올라가지 않았다.
하지만 커피를 두 모금 마셨다.
*
병원에서 나온 지 여섯 시간 만이었다.
승헌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가며, 마켓 아이가 뽑아내는 숫자를 읽었다.
엘리시움 투자 유치 확률: 68%. 투자 규모 추정: 30~50억. 성공 시 레버리지 비율 1:15.
210만 원의 자본으로 50억의 인수를 버릴 수 있다. 물론 아직 멀었다. 태경을 설득한 것은 첫 번째 문을 연 것뿐이다.
두 번째 문은 이카루스 길드 안에 있다.
승헌은 빌딩을 나서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3월의 하늘. 맑고 평범했다. 찢어지지 않은 하늘.
아직 찢어지지 않았으니까.
다음 목적지는 분명했다. 이카루스 길드 사무실.
이번에는, 재무제표를 들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