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화. 재검증
공명(Resonance)의 시대
KCA 중앙 매칭실의 문이 열렸다.
같은 방이었다. 한 달 전, 도하가 일곱 번째 부적합 판정을 받았던 곳. 홀로그램 스크린이 벽면에 걸려 있었다. 꺼진 채로. 형광등이 희고 고르게 빛나고 있었다. 공기가 차가웠다. 에어컨의 온도 설정이 아니라, 이 방이 원래 가지고 있는 온도.
도하는 안으로 들어섰다. 강진이 뒤따랐다. 한 달 전에는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서로를 사이에 두고 테이블 하나가 있었고, 숫자 하나가 있었다. 0%. 지금은 나란히 들어왔다. 같은 쪽 의자에 앉았다.
달라진 것은 그것뿐이었다.
테이블 맞은편에 여자가 앉아 있었다. 오십대 초반으로 보였다. KCA 배지. 검은 정장. 안경 너머의 눈이 서류를 훑고 있었다. 도하와 강진이 앉자 고개를 들었다. 감정 없는 시선이었다. 한 달 전 관리관의 사무적 시선과 비슷했지만, 이 사람의 눈에는 한 가지가 더 있었다. 정밀함. 무언가를 측정하는 사람의 정밀함.
"재검증관 송지은입니다."
목소리가 건조했다.
"어제 언노운 존 현장에서 비인가 공명 반응이 감지되었습니다."
태블릿을 한 번 넘겼다.
"본 재검증은 해당 기록에 대한 공식 확인입니다."
도하는 의자 팔걸이 위에 손을 올려놓았다. 손끝에 힘을 주었다가 풀었다. 습관을 누른 것이었다.
"절차를 시작합니다. 오라클 재측정."
송지은이 태블릿을 조작했다. 벽면의 홀로그램 스크린이 켜졌다. 한 달 전과 같은 빛이 방을 물들였다. 푸르고 차가운 빛. 데이터가 로딩되었다. 원형 게이지가 돌기 시작했다. 도하는 그 게이지를 바라보았다. 돌아가는 동안 숫자가 깜빡였다. 12%. 8%. 3%. 수렴하고 있었다.
멈추었다.
MATCHING RATE: 0.00%
같은 숫자였다. 한 달 전과, 열흘 전 테스트실에서와, 어제 언노운 존 현장에서와. 바뀌지 않았다. 바뀔 리가 없었다. 오라클의 판정은 오라클의 판정이었다.
강진이 미간을 찌푸렸다. 숫자를 보는 것이 아니라, 숫자 너머에 있는 무언가를 보는 얼굴이었다.
"의미 있나, 이 숫자."
강진이 낮게 말했다. 스크린을 향해서.
송지은이 펜으로 태블릿을 두 번 두드렸다. 대답 대신 기록이었다.
"매칭률 0.00%. 변동 없음. 기록 완료."
"어제 현장에서 가이딩은 작동했는데."
강진의 목소리가 평평했다. 하지만 그 평평함 안에 날이 서 있었다.
"작동 여부는 본 절차의 평가 대상이 아닙니다."
송지은이 대답했다. 기계적으로.
"다음입니다."
송지은이 태블릿을 내려놓고 서류를 꺼냈다. A4 세 장. 도하와 강진 앞에 한 부씩 놓았다.
"어제 현장 파동 기록입니다."
도하는 서류를 읽었다. 현장 관측관이 수집한 데이터. 도하의 저주파 출력 그래프가 인쇄되어 있었다. 100Hz 부근. 에스퍼 안정화 수치 녹색 범위. 그리고 그 옆에, 오라클 실시간 매칭률. 0.00%.
두 숫자가 나란히 인쇄되어 있었다. 100%에 가까운 안정화와 0%의 매칭률. 같은 시간, 같은 장소, 같은 두 사람에 대한 데이터.
"현장 파동 기록과 오라클 판정 사이에 유의미한 괴리가 확인되었습니다."
송지은의 목소리에 감정이 없었다. 사실을 사실로 읽는 목소리.
"이에 따라 본 조합은 오늘부로 KCA 특별 관찰 대상으로 격상됩니다."
강진의 턱에 미세하게 힘이 들어갔다. 도하는 그것을 보았다. 옆에 앉아 있으니 보였다. 한 달 전에는 맞은편이라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격상되면 뭐가 달라지는데."
강진이 물었다. 질문이 아니었다. 압축된 불쾌감이었다.
"아크 내 생체 모니터 데이터가 중앙 서버로 실시간 전송됩니다." 잠깐 멈추었다가 이었다. "기존 주간 보고에서, 상시 전송으로 전환됩니다."
"24시간 감시라는 소리야."
"모니터링입니다."
같은 뜻이었다. 다른 단어일 뿐. 강진이 의자 등받이에 기댔다. 팔짱을 꼈다.
"그리고 하나 더."
송지은이 두 번째 서류를 꺼냈다. 이번에는 도하 앞에만 놓았다.
"가이딩 방식 사전 승인 양식입니다."
도하가 서류를 보았다. '가이드 이도하의 가이딩 방식은 아래 승인된 방식에 한하여 시행할 수 있으며, 미승인 방식 사용 시 계약 위반으로 간주됩니다.' 아래에 체크 목록이 있었다. 접촉식 안정화, 표준 주파수. 방사형 가이딩, 고대역. 멘탈 멜트, 사전 허가 필수. 목록에 있는 것은 모두 고대역이었다. 8,000Hz 이상.
도하의 주파수는 120Hz 이하였다. 목록 어디에도 없었다.
"미승인 주파수 대역 사용 시 기록됩니다."
송지은이 도하를 보았다.
"비승인 가이딩으로."
도하는 서류를 내려다보았다. 글자가 촘촘했다. 계약실에서 42쪽을 읽었을 때와 같은 느낌이었다. 빠져나갈 틈을 주지 않는 종이.
"질문 있으세요?"
송지은이 물었다. 절차상의 질문이었다.
"없습니다."
"이도하 가이드. 확인 서명 부탁합니다."
도하는 펜을 들었다. 멈추었다. 손끝에 파동이 있었다. 120Hz. 이 양식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주파수.
서명했다. 이도하. 세 글자. 한 달 전 계약서에 서명한 것과 같은 이름.
강진이 도하의 손을 보고 있었다. 서명하는 손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팔짱을 낀 손에 힘이 들어간 것을, 도하는 보았다.
재검증이 끝났다. 도하와 강진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송지은이 태블릿을 닫으며 말했다.
"재검증 결과는 24시간 이내 통보됩니다. 추가 소환 가능성이 있습니다."
강진이 먼저 문을 열고 나갔다. 도하가 따라 나가려는 순간이었다.
송지은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 낮게. 도하를 향한 것인지, 혼잣말인지 알 수 없는 톤이었다.
"이전에도 이런 케이스가 있었는데."
도하의 발이 멈추었다. 반사적으로. 돌아보지는 않았다.
송지은은 이미 태블릿을 보고 있었다. 도하가 멈춘 것을 인지하지 못한 듯했다. 아니면, 인지하고도 이미 다음 일로 넘어간 것이었다.
이전에도 이런 케이스가.
도하는 그 말을 가지고 복도로 나왔다.
복도가 길었다. 한 달 전에도 이 복도를 걸었다. 일곱 번째 부적합 판정을 받고, 조용히 돌아가던 길. 그때는 혼자였다.
강진이 복도 끝에 서 있었다. 기다리고 있었다. 벽에 기대어. 팔짱을 낀 채. 도하가 오는 것을 보고 벽에서 등을 뗐다.
"뭐래."
"감시 격상이요. 아시잖아요."
"그거 말고." 강진이 턱으로 도하의 손에 들린 서류를 가리켰다. "그 양식."
"가이딩 방식 사전 승인이요."
"서명했어?"
"네."
"왜."
"안 하면 계약 위반이에요."
강진의 눈이 좁아졌다. 미간에 주름이 생기려다 멈추었다. 두통이 아니었다. 다른 종류의 긴장이었다.
"0%든 뭐든, 현장에서 작동했어."
강진이 말했다. 도하를 보면서.
"그거면 되지 않아?"
도하는 강진을 보았다. 이 사람은 단순했다. 단순하다는 것이 나쁜 의미가 아니었다. 작동하면 된다. 숫자가 뭐라고 하든, 서류가 뭐라고 하든. 몸이 먼저 아는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도하는 달랐다. 시스템 안에서 자랐다. 에덴에서. 양식이 무엇인지 알았다. 서류 한 장이 사람 하나를 어디로 보낼 수 있는지.
"시스템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도하가 답했다. 담담하게.
강진이 도하를 보았다. 3초. 무언가를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돌아섰다. 걸었다.
도하가 뒤따랐다. 복도의 형광등이 두 사람의 그림자를 길게 늘였다.
아크로 돌아왔다. 오전이었다. 햇살이 통유리를 통해 거실 바닥에 내려앉아 있었다. 먼 곳에 차폐벽이 보였다. 어제 그 너머에 있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오늘의 세이프 존은 고요했다.
강진이 주방으로 갔다. 물소리가 났다. 컵 두 개가 테이블에 놓였다. 도하는 물을 마셨다. 차가웠다.
"그 양식."
강진이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
"찢을까?"
도하가 고개를 저었다.
"찢으면 새로 옵니다."
"또 서명할 거야?"
"서명 안 하면 계약 위반이에요."
"서명해도 네 주파수는 없잖아."
도하는 대답하지 않았다. 강진이 맞았다. 서명해도 없고, 서명하지 않아도 없었다. 120Hz는 어느 쪽에도 자리가 없었다.
강진이 입을 다물었다.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누르기 시작했다. 두통이 돌아온 것이었다. 재검증 과정의 긴장이 신경계를 자극한 탓일 수도 있었다.
도하는 컵을 내려놓았다. 손을 올리려다 멈추었다. 승인 양식이 머릿속을 스쳤다. 120Hz. 비승인. 기록. 위약금.
"가이딩 할까요."
"안 해도 돼."
강진이 눈을 감은 채 말했다.
도하가 강진을 보았다.
"두통인데요."
"견딜 수 있어."
거짓말이었다. 미간에 새로운 주름이 파이고 있었다. 도하는 그것을 보았다. 이 사람은 3년을 혼자 견뎠다. 견딜 수 있다는 말이 무엇인지 알 것이었다. 견디는 것과 괜찮은 것은 다른 말이었다.
도하는 손을 내렸다. 올리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그 두 글자가 무거웠다.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문을 닫았다.
책상 위에 교본이 있었다. 어젯밤 덮어둔 것. 그 옆에 재검증 통보서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아침에 받은 승인 양식.
도하는 의자에 앉았다. 교본을 들었다. 제5장을 펼치려다 손이 미끄러졌다. 교본 뒷면에 무언가가 끼어 있었다. 종이 한 장. 아니, 사진이었다.
오래된 사진. 모서리가 살짝 구겨져 있었다. 언제 끼워둔 것인지 기억나지 않았다. 에덴에서 나올 때 교본에 끼운 것이었을까.
사진 속에 사람들이 있었다. 에덴 교복. 줄무늬 없는 흰 셔츠. 도하의 기억보다 젊은 얼굴들. 가이드 양성소 3기. 도하의 기수.
도하의 시선이 멈추었다.
사진 오른쪽 끝에 여자가 한 명 서 있었다. 밝은 눈. 짧은 머리. 웃고 있었다. 도하를 향해 웃고 있는 듯한 얼굴.
윤세린.
에덴 동기. B급 가이드. 도하가 에덴에서 유일하게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
3년이었다. 에덴을 나온 뒤로 연락하지 않았다.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연락할 이유가 없었을 뿐이었다. E급에게 연결이란 그런 것이었다. 끊어지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이어지지 않는 것.
도하는 사진을 내려다보았다. 세린의 얼굴.
그리고 송지은이 한 말이 떠올랐다.
이전에도 이런 케이스가 있었는데.
도하는 핸드폰을 꺼냈다. 연락처를 스크롤했다. 이름이 많지 않았다. KCA 담당관. 아크 관리 번호. 에덴 행정실. 그리고 맨 아래에.
윤세린.
번호가 바뀌지 않았을까. 3년이었다. 바뀌었을 수도 있었다.
도하는 통화 버튼을 눌렀다.
신호음이 세 번 울렸다. 네 번째가 울리기 전에 연결되었다.
"여보세요?"
밝은 목소리였다. 3년 전과 같은 톤. 에덴의 복도에서 도하를 불렀던 것과 같은.
"세린아."
"…도하야?"
숨소리가 잠깐 멈추었다.
"도하야? 진짜 도하야?"
도하는 사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세린의 웃는 얼굴. 3년 전의.
"나야."
"야, 3년 만이야. 3년!"
목소리가 웃고 있었다.
"너 전화번호 안 바꿨구나. 나도 안 바꿨어."
잠깐 숨을 쉬었다.
"혹시나 네가 연락할까 봐."
도하의 손끝이 멈추었다. 혹시나 네가 연락할까 봐. 3년 동안 번호를 바꾸지 않은 사람이 있었다.
"…고마워."
"뭐가. 바꿀 이유가 없었어."
거짓말이었다. 세린은 거짓말을 밝은 목소리로 하는 사람이었다.
"세린아. 나 물어볼 게 있어."
"뭔데?" 잠깐 멈추었다. "아, 잠깐. 너 지금 그거지? 차강진. S급 계약 결혼."
"…알아?"
"B급 사이에서 다 돌아. 소문이야." 목소리가 낮아졌다. "도하야, 그거 전화로 하면 안 될 얘기 아냐?"
도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이 곧 답이었다.
"만나자."
세린이 먼저 말했다.
"에덴 앞 카페. 기억나지? 졸업 전날 갔던 데."
기억났다. 서류를 네 번 접어 주머니에 넣었던 날. 세린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줬던 카페.
"갈게."
"금방 와. 기다리고 있을게."
전화를 끊었다.
도하는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사진을 교본 사이에 다시 끼웠다. 그리고 잠깐, 문 너머를 보았다. 거실 쪽. 소리가 없었다. 강진이 소파에서 두통을 견디고 있을 것이었다. 혼자서. 3년간 해왔던 것처럼.
도하는 재킷을 집어 들었다.
현관에서 신발을 신으며, 거실 쪽에 한 마디를 남겼다.
"잠깐 나갔다 오겠습니다."
"어디."
강진의 목소리가 소파에서 왔다. 눈은 감고 있었다. 관자놀이를 누른 채.
"아는 사람을 만나요."
"오래 걸려?"
도하가 잠깐 멈추었다. 이 사람이 시간을 묻고 있다는 것. 두통을 견디는 사람이 돌아올 시간을 세겠다는 것.
"금방 올게요."
"…금방."
강진이 반복했다. 눈을 감은 채. 확인이 아니라 붙잡는 것에 가까운 반복이었다.
문을 열고 나갔다.
엘리베이터가 52층에서 내려가는 동안, 도하는 창밖의 세이프 존을 보았다. 맑은 하늘 아래 차폐벽이 서 있었다. 그 너머의 언노운 존은 보이지 않았다. 120Hz. 승인 목록에 없는 주파수. 이 주파수로 살아가는 것이, 앞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될 것인지.
아직은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