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중독
아픈 사람은, 보통 아픈 걸 숨기지 못한다.
강진은 숨겼다. 너무 능숙하게.
계약 12일차였다. 정기 가이딩 3회, 긴급 가이딩 2회. 그리고 멜트. 도하의 손끝이 강진에게 닿은 횟수가 이미 여섯을 넘기고 있었다. 교본에 기록하는 숫자로는 파악할 수 없는 밀도였다.
거실 커튼이 반쯤 닫혀 있었다. 낮인데도. 강진은 소파에 앉아 태블릿 보고서를 보고 있었다. 자세가 반듯했다. 통증을 견디는 데 익숙한 사람이 취하는 자세. 어깨를 내리지 않는다. 미간에 주름이 있었다. 있었지만, 어제보다 깊지 않았다. 두통이 없는 척하는 수준까지 관리되고 있었다.
도하는 주방에서 컵 두 개를 내려놓다가 멈추었다.
약병이었다. 조리대 한쪽에 놓인 것. 두통약. 뚜껑이 닫혀 있었다. 닫혀 있다는 것은 오늘 아직 열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도하는 약병의 복용 기록 스티커를 확인했다. 어제. 거기서 끊겨 있었다.
가이딩 알림이 들어와 있었다. 도하의 단말기에. 계약서 제7조, 정기 가이딩 일정. 오늘은 정기 가이딩 날이 아니었다. 하지만 제7조 3항은 긴급 가이딩을 허용했다. 에스퍼가 요청할 수 있다는 조항. 강진은 아직 요청하지 않았다.
도하는 약병을 들었다. 강진 쪽으로 걸어갔다.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소리가 났다. 강진이 태블릿에서 눈을 들었다.
"약입니다."
강진이 약병을 보았다. 표정이 없었다. 그 표정 없음이 대답이었다.
"오늘 안 드셨죠."
"괜찮아."
두 글자. 짧고 단정했다. 강진이 다시 태블릿으로 시선을 내렸다. 대화 끝, 이라는 신호였다.
도하는 약병을 치우지 않았다. 테이블에 그대로 두었다. 옆에 물컵을 놓았다. 그리고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강진이 시선을 올리지 않았다.
도하는 교본을 꺼냈다. 펼쳤다. 읽는 척을 하면서, 손끝으로 파동을 확인했다. 에덴에서 8년 동안 훈련받은 감각. 가이드의 손끝은 에스퍼의 상태를 감지하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공식적으로는 접촉식 감지만 허용되었지만, 도하의 저주파는 달랐다. 비접촉 상태에서도 이 공간의 파동을 읽을 수 있었다.
강진의 두통 수치가 높았다.
멜트 이후, 신경계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였다. 거기에 두통약을 먹지 않았다. 버티고 있는 것이었다. 의도적으로.
왜.
도하는 교본을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강진이 일부러 아픈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었다. 첫 번째, 멜트 이후 약에 대한 신뢰가 낮아졌다. 두통약은 증상을 누르는 것이지 원인을 없애지 않으므로. 두 번째, 가이딩을 원하지만 먼저 요청하기 싫다.
도하는 두 번째 가능성에서 잠깐 손끝이 멈추었다.
가이딩을 원한다. 그것이 아니라. 도하를 원한다.
그 생각을 즉시 접었다. 생각을 접는 데 에덴에서 8년이 걸렸다. 원하는 것과 계약 사이에 선을 긋는 법. 도하에게 그것은 오래된 훈련이었다.
"일부러 아프실 필요는 없어요."
도하가 말했다. 교본에서 눈을 들지 않은 채로.
강진의 태블릿 넘기는 소리가 멈추었다.
"무슨 소리야."
"두통약을 안 드셨고, 정기 가이딩 날도 아닌데, 아크에 계십니다."
침묵이었다. 강진이 도하를 보지 않았다.
"관련 없어."
"네."
도하는 교본을 덮었다. 일어서서 가이딩 공간 쪽으로 걸어갔다. 강진이 무슨 말을 하지 않았다. 도하는 가이딩 공간의 조명 스위치를 켰다. 간접등이 들어왔다. 소파가 하나, 테이블이 하나. 생체 모니터의 대기 화면이 켜졌다.
돌아왔다. 강진의 맞은편에 다시 섰다.
"하시겠습니까."
질문이 아니었다. 그냥 열어둔 것이었다. 강진이 원하면 가는 것이고, 원하지 않으면 돌아가는 것이었다.
강진이 태블릿을 내려놓았다.
일어섰다. 가이딩 공간 쪽으로 걸어갔다. 도하의 앞을 지나쳤다. 어깨가 스치지 않았다. 하지만 지나치는 순간, 도하의 손끝에 강진의 파동이 닿았다. 비접촉. 저주파 감지. 수치가 높았다. 예상보다 높았다.
얼마나 참고 있었던 것인가.
가이딩 공간이었다.
강진이 소파에 앉았다. 등을 기대지 않았다. 허리를 세우고 손을 무릎 위에. 언제나 같은 자세.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손가락이 조금 풀려 있었다. 긴장이 조금 낮았다. 멜트 이후였다.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기억을 보인 이후. 그것이 이 사람을 조금 다르게 만들어놓은 것이었다.
도하는 맞은편에 앉았다.
손을 내밀지 않았다. 강진이 먼저 손바닥을 뒤집어 올려놓았다. 테이블 위에. 말 대신 손이 먼저인 사람.
도하가 손을 얹었다.
파동을 열었다. 저주파. 120Hz 이하. 벽 아래로 스미는 방식으로. 강진의 방어기제가 이번에는 처음보다 조금 빠르게 열렸다.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이 파동을 안다는 것을.
강진의 어깨가 내려갔다.
미세하게. 하지만 도하는 보았다. 가이딩 시작 이후 처음으로 강진의 어깨가 아래로 내려간 것을. 항상 세워두었던 것이. 내려가는 것을.
심박수가 내려갔다. 감각 부하 지수가 정상 범위로 들어왔다. 생체 모니터의 숫자가 안정 영역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30분.
도하가 손을 뗐다. 강진이 눈을 감고 있었다. 잠든 것이 아니었다. 호흡이 규칙적이었고, 손가락에 미세한 힘이 남아 있었다.
도하가 일어서려 했다.
강진이 손을 올렸다. 테이블 위에서. 도하의 방향으로.
잡지 않았다. 다만 올려놓았다. 도하의 손끝 근처에. 닿을 듯 닿지 않는 거리.
"오늘은… 안 해도 돼."
강진이 말했다. 눈을 감은 채로.
도하는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1초가 걸렸다. 오늘은 안 해도 돼. 이미 30분을 했다. 끝났다. 그런데 강진이 안 해도 된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 말은 지금 일어서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었다.
그러면서 손은 도하의 손끝 근처에 올려져 있었다.
말과 손이 반대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도하는 앉은 채로 있었다. 일어서지 않았다. 손을 올리지도 않았다. 그냥 있었다. 강진의 손이 테이블 위에 있었고, 도하의 손이 그 근처에 있었고, 두 손은 닿지 않았다.
말은 멀어지는데, 손은 가까워진다.
도하는 그 생각을 교본처럼 접어두었다.
그때 소리가 들렸다.
복도 쪽에서. 발소리가 아니었다. 인터폰이었다. 아크의 현관 인터폰. 화면에 무언가가 떴다.
강진이 눈을 떴다. 도하보다 먼저.
강진이 일어서서 가이딩 공간 문을 열고 거실로 나갔다. 도하는 뒤따라 나왔다. 현관 인터폰 화면에 로고가 떠 있었다.
KCA.
강진이 화면을 보았다. 표정이 없었다. 그 표정 없음이 이번에는 대답이 아니었다. 경계였다.
"차강진 씨, 정기 모니터링 점검차 방문드렸습니다."
인터폰 너머로 공손한 목소리가 들렸다.
강진이 응답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
"내일 다시 오세요."
그것뿐이었다. 강진이 화면에서 돌아섰다. 도하는 인터폰 화면을 보았다. 화면이 꺼졌다. KCA 로고가 사라졌다.
강진이 가이딩 공간으로 다시 들어가지 않았다. 소파로 돌아갔다. 태블릿을 다시 들었다. 도하는 거실에 서 있었다.
인터폰이 다시 울렸다.
"규정상 정기 방문은 거부하실 수 없습니다, 차강진 씨."
강진이 태블릿을 내려놓았다. 천천히. 일어섰다. 인터폰 화면으로 걸어갔다. 응답 버튼을 눌렀다.
"규정이면, 다음에 규정대로 사전 통보하고 오세요. 오늘은 통보 없이 왔으니까."
화면이 꺼졌다. 이번에는 다시 울리지 않았다.
강진이 돌아섰다. 도하와 눈이 마주쳤다. 강진이 먼저 눈을 돌렸다.
"신경 쓰지 마."
도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신경 쓰지 않는 척을 하는 법을 에덴에서 배웠다. 표정을 지우는 법. 하지만 손끝에서 파동이 흔들렸다. 저주파가 흔들릴 때는 감정이 흔들릴 때였다.
오늘 거절한 방문이 내일은 거절되지 않을 것이었다.
그것을 도하는 알고 있었다. 강진도 알고 있었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도하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방에 들어와 문을 닫았다. 창밖으로 세이프 존의 낮이 보였다. 차폐벽이 먼 곳에 서 있었다.
손끝을 쥐었다 폈다. 가이딩이 끝난 뒤의 버릇이었다.
강진의 손이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던 것이 손바닥에 남아 있었다. 닿지 않았는데. 닿지 않은 것이 오히려 더 무게가 있었다.
도하는 그 생각을 세 번째로 접어서 서랍 안에 넣었다. 꺼내지 않기로 했다.
창밖으로 KCA 로고가 새겨진 차량이 천천히 빠져나가는 것이 보였다.
내일 올 것이었다. 규정대로. 사전 통보와 함께.
도하는 창에서 눈을 거두었다. 교본을 펼쳤다. 제7조 3항을 다시 읽었다. '긴급 가이딩은 에스퍼의 상태에 따라 정기 일정 외에 실시될 수 있으며, 가이드는 이를 거부할 수 없다.'
거부할 수 없다.
도하는 그 문장 아래에 있는 다음 문장을 읽었다. 지금까지 읽지 않았던 것이었다. '단, 가이딩 실시 횟수는 주 5회를 초과할 수 없으며, 초과 시 KCA의 사전 승인이 필요하다.'
도하는 계약 첫날부터 가이딩 횟수를 세었다. 1주차 정기 3회. 긴급 1회. 2주차에 접어들며 긴급 1회가 추가됐고, 멜트가 왔다. 그리고 오늘.
7회였다.
주 5회 기준으로, 이미 초과였다. 그리고 KCA는 오늘 정기 모니터링이라는 명목으로 왔다.
데이터를 수집하러 온 것이었다.
도하는 교본을 덮었다. 손끝이 차가웠다. 창밖의 KCA 차량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