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화. 사진
공명(Resonance)의 시대
월요일 아침이었다. 정기 가이딩 날.
도하는 가이딩 공간에서 손을 뗐다. 30분. 비승인 기록 5건째. 모니터에 붉은 알림이 떴다. [비승인 가이딩 기록 — 자동 전송 완료] 5건.
위약금 산정 절차 개시 기준이었다.
도하는 그 숫자를 보았다. 강진은 눈을 감고 있었다. 두통이 멈춘 얼굴. 심박수 67. 감각 부하 지수 정상. 5라는 숫자는 강진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도하에게는 계약의 끝이었다.
도하는 모니터에서 눈을 거두었다. 일어섰다.
"끝났습니다."
"…5건?"
강진이 눈을 뜨지 않은 채 물었다. 모니터 소리를 들은 것인지, 센 것인지.
"네."
강진이 눈을 떴다. 도하를 보았다. 무언가를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대신 도하의 손끝을 보았다. 떨리지 않았다. 오늘은 공명 역류가 없었으니까.
"가 있어."
"네."
방으로 돌아왔다. 핸드폰을 들었다. 알림이 있었다. 세린.
[야, 너 인터넷에 떴어]
링크가 붙어 있었다. 도하는 링크를 눌렀다.
화면이 열렸다.
사진이었다. 행사장. 도하와 강진이 나란히 서 있었다. 검은 정장. 카메라를 향해. 강진의 손이 도하의 허리 뒤에 있었다. 닿을 듯 말 듯한 거리. 1센티미터. 사진에서는 닿은 것처럼 보였다.
기사 제목이 있었다.
'S급 에스퍼 차강진의 계약 배우자, E급 가이드 이도하 — 0% 매칭률의 이례적 조합'
도하는 스크롤을 내렸다. 댓글이 있었다.
— E급이 S급을? 시스템 오류 아냐?
— 계약 결혼이래. 어차피 비즈니스겠지
— 가이드 자원 낭비. 다른 가이드 붙여줘야 하는 거 아닌가
— E급은 배정 대상 외잖아. 왜 S급한테 붙인 거지?
도하의 손끝이 멈추었다.
'E급은 배정 대상 외잖아.'
에덴 졸업 전날. 교관의 목소리. "E급은 배정 대상 외야. 알지?" 서류가 도하의 손으로 돌아왔다. 교관은 이미 다음 사람을 보고 있었다.
같은 문장이었다. 7년 전 교관의 입에서 나온 말이, 지금 모르는 사람의 손가락으로 화면에 찍혀 있었다.
스크롤을 멈추려 했다. 하지만 눈이 먼저 움직였다.
— 사진 보니까 가이드 엄청 마른데. 제대로 가이딩이나 하나?
— 0%면 0%지 뭔 계약 결혼. KCA가 미쳤나
도하는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화면을 위로 향한 채. 댓글이 보이고 있었다.
아프지 않았다. 익숙했으니까. 에덴에서 11년. KCA에서 3년. E급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에 도하는 오래전에 적응했다. 적응이라는 것이 무감각과 다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거실에서 소리가 났다. 강진이 주방에서 나오는 소리. 도하의 방문이 열려 있었다. 강진이 지나가다 멈추었다. 도하가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것을 봤다. 핸드폰이 화면을 위로 향해 놓여 있는 것을.
강진이 들어왔다. 말없이.
핸드폰을 집었다.
도하가 고개를 들었다. 강진이 화면을 보고 있었다. 사진. 기사. 댓글. 강진의 눈이 화면 위를 훑었다. 빠르게. 미간이 좁아지지 않았다. 턱에 힘이 들어가지도 않았다. 대신 눈이 차가워졌다. 분노가 아니라 판단이었다. 이것이 무엇인지 재는 눈.
강진이 화면을 껐다. 검은 화면.
핸드폰을 도하의 책상 위에 뒤집어 놓았다. 화면이 아래로.
"안 봐도 돼."
도하는 강진을 올려다보았다. 강진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서 있는 사람과 앉아 있는 사람의 거리.
"괜찮습니다."
강진의 눈이 움직이지 않았다.
"또 그 말이야."
도하는 입을 다물었다. '또'라는 것은 셌다는 뜻이었다. 도하가 몇 번 그 말을 했는지. 이 사람이 세고 있었다.
"도하."
이름. 강진이 도하의 이름을 부를 때는, 그 뒤에 무언가가 왔다. 언제나.
"괜찮지 않아도 돼."
도하의 손끝이 멈추었다.
쥐는 동작도, 펴는 동작도 아닌 상태에서. 중간에서. 멈추었다.
괜찮지 않아도 된다. 그 말을 들은 적이 없었다. 에덴에서도. KCA에서도. 괜찮냐고 묻는 사람은 있었다. 세린이. 괜찮다고 답하는 것이 도하의 역할이었다. 괜찮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괜찮아야 했으니까. E급은 괜찮아야 했다. 안 괜찮으면 대체되니까.
강진이 도하를 보고 있었다. 내려다보는 시선. 하지만 내리누르는 시선이 아니었다. 기다리는 시선이었다.
도하는 대답하지 못했다.
강진이 돌아섰다. 방을 나갔다. 발소리가 거실 쪽으로 멀어졌다.
도하는 뒤집힌 핸드폰을 보았다. 검은 뒷면. 댓글이 보이지 않았다. 강진이 뒤집어놓은 것. 화면을 끄고, 뒤집고, '안 봐도 돼'라고 한 것. 양식을 찢고, 담요를 덮고, 보지 않아도 되는 것을 치우는 방식. 이 사람의 언어.
도하는 욕실에 들어갔다.
문을 닫았다. 거울이 있었다. 세면대 위. 도하는 거울 앞에 섰다.
거울 속에 사람이 있었다. 마르고 단정한 체구. 검은 머리. 창백한 피부. 푸른 기 도는 눈. 에덴에서 본 자신과 같은 얼굴이었다. 3년이 지나도, 한 달 반이 지나도, 거울 속의 도하는 바뀌지 않았다.
파동이 흘렀다. 120Hz. 거울 앞에서 파동을 확인하는 것은 에덴에서의 습관이었다. 아침마다. 파동이 거기 있는지. 낮고 미미한 것이 아직 흐르고 있는지.
흐르고 있었다. 여전히.
댓글이 떠올랐다.
'E급은 배정 대상 외잖아.'
에덴 교관의 말. 매칭 리스트의 맨 끝. 일곱 번의 부적합 판정. 도하는 그 모든 것에 적응했다. '닿지 않는 사람'. 그것이 도하의 자리였다. 자신의 자리를 아는 법. 아는 것에 아파하지 않는 법.
그런데 지금, 같은 말이 다르게 들렸다.
'닿지 않는 사람'이 '닿을 수 없는 사람'으로 불리고 있었다. 세상이. 인터넷이. 도하를 모르는 사람들이. 하지만 도하는 알고 있었다. 닿았다는 것을. 이 손끝으로. 120Hz로. 3초 만에. S급의 두통이 멈추었다는 것을. 문 앞에 담요가 놓였다는 것을.
닿은 사람에게 닿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예전과 같아야 했다. 익숙해야 했다. 7년 전부터 들어온 말이니까.
그런데 왜.
이번에는 예전만큼 익숙하지 않은 것인가.
도하는 수도꼭지를 틀었다. 찬물. 손을 넣었다. 차가웠다. 손끝이 시렸다. 파동이 잠깐 흔들렸다가 다시 안정되었다. 120Hz.
물을 잠갔다. 수건으로 손을 닦았다.
욕실을 나왔다.
거실을 지났다. 한 달 반 동안 익숙해진 것들이 거기 있었다. 도하가 한 단계 낮춘 간접등. 빗소리가 사라진 뒤에도 남아 있는 고요. 테이블 위에 컵 두 개가 놓이던 자리. 강진 쪽에 하나, 도하 쪽에 하나. 나무 표면에 희미한 물 자국이 두 개 남아 있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생긴 자국이었다.
현관의 슬리퍼 두 켤레. 280과 260. 나란히 놓여 있었다. 소파 위에는 접힌 담요가 하나 있었다. 강진의 것이었다가, 도하의 어깨 위에 올려졌다가, 다시 소파로 돌아온 것. 한 달 반 전에는 거리가 있었다. 지금은 붙어 있었다. 신발장 앞에서 매일 조금씩 가까워진 것을, 아무도 의식하지 못한 채.
도하는 그것을 보았다. 260의 눌린 자국. 한 달 반치. 이 자리에 자기 발이 있었다는 증거. 댓글은 도하가 여기에 있으면 안 된다고 했다. 슬리퍼는 도하가 여기에 있었다고 했다.
강진이 소파에 앉아 있었다. 통유리를 향해. 도하가 나오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도하는 부엌으로 갔다. 컵 두 개를 꺼냈다.
물을 따랐다. 강진 쪽에 하나. 자신 쪽에 하나.
테이블에 놓았다. 늘 놓던 자리에.
"물이요."
강진이 컵을 보았다. 도하를 보았다. 도하의 눈가를. 무언가를 확인하듯. 젖어 있지 않은 것을 확인하듯.
"…고마워."
도하가 멈추었다.
이 사람이 '고맙다'고 한 적이 없었다. 한 달 반 동안. 컵을 받을 때도, 가이딩이 끝날 때도, 담요를 발견했을 때도. 한 번도. 그런데 지금 '고맙다'가 나왔다. 물 한 잔에.
물 한 잔이 아니라는 것을 둘 다 알고 있었다.
도하는 자리에 앉았다. 물을 마셨다. 차가웠다.
핸드폰은 여전히 방에 뒤집혀 있었다. 댓글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강진이 앉아 있었다. 같은 공간에. 같은 물을 마시며.
괜찮지 않아도 된다고 한 사람이.
도하는 물을 한 모금 더 마셨다. 목이 차가워졌다. 그리고 조금, 아주 조금, 눈 뒤쪽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울음이 아니었다. 그것보다 더 깊은 곳에서 오는 것이었다. 이름이 없는 것.
도하는 그것을 삼켰다. 물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