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화. 지하 3층의 문
달이 없는 밤이었다.
하늘이 검었다. 별만 떠 있다. 구름이 별을 가리며 지나갔다. 학당이 어둠 속에 잠겨 있다. 마력등이 야간 모드로 최소 밝기만 유지하고 있었다.
카이락스는 본관 지하로 내려가고 있었다. 알테리온의 열쇠가 주머니에서 차갑게 흔들렸다. 옆에는 아티팩트의 금속 감촉. 두 개의 금속이 주머니 안에서 부딪히며 미세한 소리를 냈다. 조교 자격. 합법적 접근. 하지만 목적지는 연구실이 아니다.
지하 2층. 새로운 감응석이 박힌 복도를 지나갔다. 보강된 결계가 미세하게 진동했지만 카이락스의 존재에는 반응하지 않았다. 조교 등록이 결계에 입력되어 있다. 감응석의 푸른 빛이 복도를 비추고 있었다. 카이락스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복도 끝. 벽에 막힌 곳.
봉인이 다시 열려 있었다.
카이락스의 발이 멈추었다. 자신이 닫은 봉인이다. 허무를 2%까지 사용해서 닫은 것. 손끝이 검게 물들 정도의 대가를 치른 봉인이 --- 다시 열려 있었다.
봉인을 열 수 있는 자가 자신 외에도 있다는 뜻. 혹은 파편이 안에서 밀었거나. 혹은 --- 둘 다.
균열 사이로 어둠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심연의 기운. 일반 학생이라면 의식을 잃을 농도. 성흔이 강한 자라도 구역질을 느꼈을 터다.
카이락스에게는 고향의 공기였다. 심연의 냄새. 깊고 차갑고 오래된 냄새. 백오십 년 동안 맡아왔던.
봉인에 손을 대고 밀었다.
열렸다.
계단이 있었다. 아래로.
돌벽. 학당이 건설될 때보다 더 오래된 석재. 표면에 이끼가 검게 붙어 있다. 심연의 기운을 먹고 자란 이끼. 손가락으로 벽을 스치면 축축했다. 공기가 무거웠다. 걸어 내려갈수록 --- 세계가 얇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인간의 세계와 심연의 경계가 가까워지는 것. 두 세계를 나누는 막이 종이처럼 얇아지는 감각.
30계단. 40계단. 마력등이 없다. 어둠뿐이다. 하지만 카이락스에게 어둠은 장애가 아니다. 심연의 군주에게 어둠은 빛보다 선명하다.
공간이 넓어졌다.
지하 3층.
설계도에 없는 층이 눈앞에 펼쳐졌다.
넓었다. 천장이 돔 형태로 높다. 돔의 꼭대기에서 무언가가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 성흔의 잔향. 오래전에 누군가 이곳에 빛을 심었지만, 유지하는 자가 없어 스러져 가는 빛. 벽면에 오래된 결계 문양이 새겨져 있다. 성흔의 문양이었지만, 그 아래에 더 오래된 것이 겹쳐져 있었다. 심연의 문양. 두 체계가 겹쳐진 이중 결계. 이 공간을 만든 자는 성흔과 심연을 동시에 다루는 자.
공기의 질이 달랐다. 지상의 공기가 물이라면, 이곳의 공기는 기름이다. 무겁고, 느리고, 들러붙는다. 숨을 쉴 때마다 심연의 기운이 폐를 채웠다. 인간이라면 세 호흡 안에 의식을 잃을 농도. 카이락스에게는 --- 목욕탕의 따뜻한 물에 들어가는 감각이었다. 몸이 이완된다. 억제하고 있던 허무의 근원이 풀려나려고 한다. 아티팩트가 미세하게 진동했다. 경고.
중앙에 --- 결정체가 떠 있었다.
심연의 파편.
사람 머리 크기로 커져 있다. 표면에서 검붉은 맥동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심장 박동처럼. 규칙적이지만 가끔 불규칙하게 튀었다. 맥동할 때마다 돔 전체가 미세하게 진동했다. 바닥의 먼지가 맥동에 맞춰 떨린다.
파편 주변에 --- 실험 도구가 놓여 있었다.
마법진이 바닥에 그려져 있다. 정밀한 것. 성흔 기반이지만 심연의 요소가 혼합된 하이브리드 마법진. 선 하나하나에 계산이 깔려 있다. 즉흥이 아니라 오랜 연구의 결과물. 측정 장치 세 대가 마법진 가장자리에 놓여 있다. 잉크가 마르지 않은 펜. 그리고 --- 기록부.
카이락스는 기록부를 집었다. 가죽 표지. 낡지 않았다. 최근에 만든 것. 하지만 페이지 사이에 오래된 양피지 조각이 끼워져 있었다. 50년 전의 것. 기록의 뿌리가 3개월이 아니라 --- 반세기라는 뜻.
첫 페이지. '파편 각성 유도 실험 --- 1차.' 날짜가 3개월 전이다.
넘겼다. 실험은 33차까지 진행되어 있었다. 필체가 정돈되어 있다. 학자의 글씨. 성흔 파동의 주기를 파편에 맞춰 공명시키는 방식으로 단계적으로 파편의 각성도를 높이는 것이 목적.
23차 기록. '성흔 파동과의 공명 확인. 파편 내부에서 반응 패턴 변화. 자극 주기를 5일에서 3일로 단축.'
28차 기록. '주의: 심연 근원과 직접 접촉 시 파편이 자아를 형성할 가능성. 접촉 실험은 보류. 대상 확보가 선행되어야 함.'
자아. 파편이 의지를 갖는다는 뜻. 심연의 파편이 자아를 갖게 되면 --- 그것은 더 이상 파편이 아니라 존재가 된다. 심연에서 새로운 존재가 태어나는 것. 그것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 카이락스조차 확신할 수 없다.
마지막 페이지.
33차 기록. '대상 확보 필요. 심연의 근원을 가진 존재와의 접촉이 최종 활성화 조건. 근원의 공명으로 파편의 자아 형성을 유도, 이후 제어 가능한 형태로 안정화.'
그 아래, 빨간 잉크.
'대상 입학 확인.'
카이락스의 손이 멈추었다.
대상. 심연의 근원을 가진 존재. 이 학당에서 그것에 해당하는 자는 한 명뿐이다.
나의 입학이 알려져 있었다. 이 실험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3개월 전부터. 아니 --- 학당이 건설될 때 이 지하 3층이 만들어진 것이라면, 50년 전부터.
기록부를 내려놓았다. 파편의 맥동이 강해졌다. 카이락스의 존재를 인식했다. 허무의 근원에 반응하여 결정체가 검붉은 빛을 발했다. 맥동이 빨라졌다. 돔 전체가 진동한다.
"그만."
한 마디. 허무의 파동을 0.5% 흘렸다. 파편의 맥동이 가라앉았다. 하지만 완전히 잠들지는 않았다. 빛이 약해졌을 뿐 맥동은 계속되었다. 저항하고 있다.
봉인 사건 때보다 강해져 있다. 억누르기가 어려워지고 있었다.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카이락스가 돌아보았다.
그림자가 계단 아래에 서 있었다. 파편의 검붉은 빛이 그림자의 윤곽을 비추고 있다. 빛이 닿는 부분만 보였다. 나머지는 어둠이 삼키고 있었다.
후드를 쓴 인물. 교수 예복의 실루엣. 어깨 폭, 키, 체형 --- 기억했다. 하지만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결계가 가리고 있다. 서고에서 읽었던 그 결계의 결과 --- 동일하다. 출입 기록을 은폐한 결계. 파편을 자극한 결계. 같은 자.
목소리가 울렸다. 돔의 구조가 음향을 증폭시켰다.
"환영합니다, 심연의 군주."
변조된 목소리다. 성별도, 나이도 판별할 수 없다. 돔의 반향이 목소리를 왜곡시키고 있다. 의도된 왜곡. 이 공간의 음향 구조까지 계산에 넣은 자. 하지만 파동은 읽을 수 있다. 성흔이 있다. 인간이다. 하지만 그 성흔 위에 심연의 도구가 얹혀 있었다. 중간 지대의 결.
"누구의 환영인가."
"이 학당을 만든 자의."
카이락스의 눈이 좁아졌다.
학당을 만든 자. 성휘 학당은 50년 전 휴전 협정에 따라 건설되었다. 공식적으로는 '다음 세대의 용사 양성'이 목적이다. 하지만 지하 3층은 설계도에 없었다. 건설 당시부터 숨겨져 있다. 학당의 공식 목적과 다른 --- 진짜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
"이 학당의 진짜 목적이 뭐지."
배후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 파편을 가리켰다.
"이 파편은 당신의 것입니다. 심연의 근원에서 떨어져 나온 조각. 당신이 이 세계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 남긴 것."
카이락스의 표정이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기억이 스쳤다. 백오십 년 전. 심연에서 이 세계로 넘어왔을 때. 경계를 넘는 과정에서 무언가가 떨어져 나갔다는 감각이 있었다. 몸의 일부가 아니라 --- 존재의 잔향 같은 것. 확인하지 않았다. 중요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누군가 그것을 수거했다. 50년 동안 보관했다. 3개월 전부터 실험을 시작했다. 그리고 카이락스가 입학하기를 기다렸다.
"네가 원하는 것이 뭐지."
"저는 도구일 뿐입니다. 이 학당을 만든 자의 뜻을 실행하는."
"도구가 실험 33차까지 기록하나. 학자의 필체로."
배후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0.3초. 카이락스는 그 정지를 읽었다. 도구라는 말은 거짓이다. 이 자는 도구가 아니라 --- 연구자. 자발적으로 이 실험을 설계하고 실행한 자.
배후가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계단 쪽으로.
"하지만 --- 한 가지는 알려드릴 수 있습니다."
멈추었다. 후드 아래서 목소리가 울렸다.
"파편이 완전히 깨어나면 --- 당신이 원하던 것을 줄 수 있습니다."
카이락스의 손이 멈추었다.
원하던 것.
이 학당에 온 이유. 입학 첫날 하늘을 보며 생각했던 것. 자신을 끝낼 수 있는 존재를 만들기 위해. 백오십 년의 영생을 끝내기 위해. 용사들은 모두 죽었다. 자신을 죽여줄 자가 없었다.
죽음.
"네가 나를 죽일 수 있다는 뜻인가."
배후가 대답하지 않았다. 그림자가 계단 위로 올라갔다. 발소리가 멀어졌다. 결계의 파동이 사라졌다. 추적할 수 있었다. 허무의 실을 뻗으면 --- 후드 아래의 얼굴까지 읽을 수 있다. 하지만 하지 않았다.
아직이었다. 추적하면 정체가 노출된다. 허무의 실을 뻗는 순간, 카이락스 역시 심연의 존재라는 것을 배후에게 확인시켜주는 셈이다. '심연의 군주'라고 불렀지만 --- 그것은 추측일 수도 있다. 확인을 선물할 필요는 없다. 체스에서 왕의 위치를 먼저 드러내는 자가 진다. 심연에서도, 인간의 세계에서도 --- 그것은 같다.
지하 3층에는 카이락스와 파편만 남았다.
맥동이 계속되었다. 검붉은 빛이 돔 형태의 천장에 반사되었다. 자신의 조각이 자신 앞에서 맥동하고 있다.
죽음을 미끼로 내걸었다. 가장 정확한 미끼. 백오십 년의 존재 피로를 가진 자에게 --- 끝을 약속하는 것. 이보다 정확한 미끼는 없다.
하지만.
카이락스는 계단을 올라갔다. 봉인을 다시 닫았다. 이번에는 허무의 근원을 2% 사용했다. 손끝의 검은 얼룩이 손등까지 번졌다. 대가가 커지고 있다. 며칠이 아니라 일주일 이상 남을 얼룩.
1층 복도.
밖으로 나왔을 때 밤공기가 차가웠다. 별만 있다. 손등의 검은 얼룩을 보았다. 허무의 대가. 소매로 가릴 수 있는 범위를 넘기 시작하고 있다. 내일 아침 카일이 볼 수도 있다. 설명할 수 없는 검은 얼룩. 변명이 필요하다.
'잉크 흘렸다'로 될까. 아마 안 되겠지. 카일은 바보가 아니다. 바보가 아니게 되어 가고 있다.
죽고 싶어서 온 학당에서. 죽음을 주겠다는 자가 나타났다.
모든 것이 완벽한 미끼다. 자신의 파편. 입학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 죽음이라는 대가. 그리고 '이 학당을 만든 자'라는 키워드.
하지만 카이락스는 미끼를 물지 않았다.
이유를 생각했다. 죽고 싶다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 영생의 피로도, 존재의 무게도. 백오십 년은 여전히 길었고, 앞으로의 백오십 년은 더 길 터다.
하지만 이 학당에서.
카일이 3각으로 각성했다. '감사합니다'라고 했다. 세르한이 고개를 숙이며 '가르쳐 주십시오'라고 했다. 리아가 적대를 거두고 '잘 자십시오'라고 했다. 루시안이 '죽지 마라'고 했다. 알테리온이 열쇠를 건넸다.
한 명 한 명이 실처럼 연결되어 있다. 카일은 각성의 실. 세르한은 교정의 실. 리아는 유예의 실. 루시안은 관찰의 실. 알테리온은 신뢰의 실. 에리나는 거래의 실. 잘라내야 할 실이 --- 하나도 없다. 전장에서는 없던 상황이다. 심연에서 부하는 교체 가능했다. 여기서는 누구도 교체할 수 없었다.
죽을 곳을 찾으러 왔는데 --- 처리해야 할 것이 늘어나고 있었다. 죽으러 왔는데 할 일이 생기는 것. 이것이 인간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역설인가.
카이락스는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손끝이 검다. 손등까지 번진 허무의 대가. 알테리온의 열쇠가 차갑게 느껴졌다.
"...아직은."
아직 볼 것이 남아 있다.
기숙사 문을 열었다. 카일이 코를 골고 있었다. 3각의 안정적인 맥동이 방 안에 흐르고 있다. 어제까지와 다른 공기. 맑고 고른 파동이 만드는 --- 평화로운 공기.
카이락스는 침대에 누웠다. 눈을 감았다.
배후가 다음 패를 내놓을 터다. 파편은 커지고 있다. 봉인은 영원하지 않았다. '이 학당을 만든 자'의 뜻이 무엇인지 아직 모른다.
하지만 --- 오늘은 여기까지. 배후는 기다릴 줄 안다. 카이락스도 기다릴 줄 안다. 둘 다 전장에서 배운 자. 먼저 움직이는 쪽이 진다.
천장의 얼룩이 아직 거기 있었다. 항상 그 자리에. 카일의 코 고는 소리가 규칙적이다. 3각의 맥동이 방을 채우고 있다.
눈을 감았다.
백오십 년 만에 --- 내일이 궁금한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