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화. 3각의 아침
파동이 달라져 있었다.
새벽. 카이락스가 눈을 떴을 때 --- 방 안의 공기가 달랐다. 정확히 말하면 공기가 아니라 공기 안에 흐르는 것이 달랐다. 카일의 침대에서 흘러나오는 성흔 파동이 어제까지와 다른 결을 가지고 있다.
안정적이었다.
2각의 불안정한 진동이 사라져 있었다. 며칠 전까지 파동을 들을 때마다 느꼈던 --- 결이 맞지 않는 천을 잡아당기는 느낌, 씨실이 끊어진 곳에서 올이 풀리는 느낌이 없다. 대신 깊고 고른 맥동이 방 안을 채우고 있다. 호수 표면의 잔물결이 사라지고 수면이 고요해진 것처럼.
잠든 상태에서 파동이 안정적이라는 것은 의식적 통제가 아니라 회로 자체가 교정되었다는 뜻. 의식이 간섭하지 않는 수면 중에 --- 몸이 스스로 방향을 잡았다.
카이락스는 침대에서 일어나 카일의 파동을 읽었다.
3각.
2번째 회로의 역류가 완전히 교정되면서 막혀 있던 3번째 각인이 열렸다. 수면 중의 자연 각성. 몸이 올바른 방향을 충분히 기억한 뒤에 일어나는 가장 안정적인 형태의 돌파. 폭주도 없고, 고통도 없고, 빛의 폭발도 없는 --- 조용한 각성. 물이 차오르다가 댐을 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카이락스는 창가에 서서 새벽 하늘을 보았다. 동쪽 하늘이 회색에서 옅은 보라색으로 변하고 있다.
가르치지 않았다.
직접 성흔을 건드리지 않았다. 허무의 파동을 카일의 회로에 흘린 적도 없다. 회로 방향을 알려주었다. 한 번. 잘못된 흐름이 굳기 전에 찻잔과 책장 소리로 리셋시켰다. 나머지는 카일이 스스로 했다. 매일 밤 아무도 시키지 않는 훈련. 이를 악물고 반복한 시간. '내일은 좀 더'라고 중얼거리며 잠든 밤들.
심연의 군주는 도구를 만들지 않았다. 길을 가리키고, 장애물을 치웠을 뿐이다. 걸어간 것은 카일이었다.
침대에서 소리가 났다.
카일이 눈을 떴다. 몸을 일으켰다. 어젯밤과 다른 것을 느끼는 표정이다. 눈을 깜빡였다. 손을 보았다. 손바닥 위에서 파동이 흐르고 있었다. 어제까지와 다른 강도. 다른 결. 탁한 회색이 아니라 맑은 청색이 도는 파동. 손끝에서 미세한 빛줄기가 흘렀다.
카일의 입이 벌어졌다.
"이게... 뭐야?"
카이락스는 창밖을 보고 있었다.
"네가 한 거야?"
"네가 한 거다. 나는 아무것도 안 했다."
진실이자 거짓이다. 카일의 성흔을 직접 건드린 적은 없다. 허무의 파동을 카일의 회로에 흘린 적도 없다. 하지만 방향을 알려주고, 침묵으로 교정한 것은 카이락스였다. 찻잔. 책장. 기침. 그 소리들이 없었다면 카일의 역류는 교정되지 않았을 터다.
하지만 --- 그 소리들이 있었어도, 카일이 매일 밤 훈련하지 않았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터다.
카일은 그 대답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입이 열렸다가 닫혔다. 여러 감정이 얼굴 위를 지나갔다. 놀라움, 혼란, 그리고 --- 오래된 감정. 이름을 붙이기 어려운 것.
평민 출신으로 F급에 배정받았다.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이 이상한 룸메이트만이 --- '2번째 회로가 역류하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감사합니다."
카이락스의 손이 창틀 위에서 멈추었다.
"뭐가."
"모르겠어. 근데 감사해."
"내가 한 건 없다."
"알아. 근데... 네 옆에 있으면 훈련이 더 잘 됐어. 이유는 모르겠는데."
카일이 손바닥을 펴고 닫았다. 청색 파동이 손가락 사이로 흘렀다. 어제까지 볼 수 없던 빛이다. 카일의 눈이 그 빛을 따라갔다. 자기 손에서 나오는 빛을 처음 보는 얼굴.
"이게 진짜 3각이야?"
"그래."
"미친."
그 한마디에 모든 감정이 들어 있었다.
카이락스는 창밖에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이 인간은 끝까지 이유를 모르는 편이 좋다.
"밥 먹으러 가자."
"...야, 방금 3각이 됐는데 밥이야?"
"3각이든 7각이든 밥은 먹어야 하니까."
카일이 웃었다. 처음이다. 이 룸메이트 앞에서 웃는 것이. 눈이 가늘어지고, 입꼬리가 올라가고, 긴장이 풀린 얼굴. 카이락스는 그 웃음을 보지 않은 척 외면했다.
식당으로 가는 길에 카일이 걸음걸이가 달라져 있었다. 어깨가 펴져 있다. 고개가 올라가 있다. F급 기숙사에서 나와 복도를 걸을 때의 웅크린 자세가 아니었다. 아직 D급이라는 것을 모른다. 측정 전이니까. 하지만 몸이 먼저 알고 있었다. 몸 안에서 달라진 것을.
"야, 오늘 날씨 좋다."
"그래."
"밥도 맛있겠다."
"아직 안 먹었는데."
"그냥 느낌이. 오늘은 다 좋을 것 같아."
카이락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 부정하지도 않았다.
아침 측정.
주간 성흔 정기 측정. 학당 내 전 학생이 수정구에 손을 대고 등급을 확인하는 루틴. 측정실 앞에 줄이 길었다. 아침 햇살이 창문으로 들어와 줄 위에 비스듬히 떨어지고 있다.
카일이 수정구에 손을 얹었다.
빛이 변했다. 어제까지의 탁한 회색빛이 아니다. 맑은 청색. 수정구 내부가 환하게 빛났다. 측정관이 수정구를 두 번 확인했다. 장치를 점검하듯 두드리기까지 했다. 세 번째 확인.
"카일 로덴. 3각. D급."
측정실이 술렁였다. 줄에 서 있던 학생들이 고개를 돌렸다.
"3각? F급에서?"
"입학 때 2각이었잖아. 보름 만에 각성 도약?"
"F급 기숙사에서 각성이 일어난 적 있어?"
"기록에 없다고 하던데."
기록이 게시판에 붙었다. '카일 로덴. 2각 → 3각. 입학 후 15일 만의 각성 도약.' 빨간 글씨로. 학당 역사에서 F급 기숙사 출신의 각성 도약은 전례가 없다.
카일이 게시판 앞에 서 있었다. 자기 이름을 보고 있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주먹을 쥐었다. 풀었다. 다시 쥐었다. F급에서 D급으로. 바닥에서 한 칸 올라간 것뿐이다. 하지만 카일에게 이것은 ---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던 가능성이 증명되는 순간.
카이락스는 측정실 뒤쪽에서 그것을 보고 있었다. 카일의 손이 떨리는 것을. 주먹을 쥐고 푸는 것을.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던 가능성이 --- 벽에 빨간 글씨로 붙어 있다. 카일이 카이락스를 돌아보았다. 눈이 붉었다. 울지는 않았다. 하지만 가까웠다.
카이락스는 고개만 끄덕였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카일은 그 끄덕임을 받고 --- 고개를 돌렸다. 코를 킁 하고, 눈을 문질렀다. 우는 것이 아니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는 얼굴. 하지만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나 이제 D급이야. D급."
"그래."
"식당도 바뀌는 거야?"
"바뀐다."
"야... 양고기가 질기지 않은 식당에서 먹을 수 있는 거야?"
"아마."
카일이 주먹으로 눈을 닦았다. 울지 않는다고 했지만 --- 볼에 줄이 하나 있었다.
소문이 퍼졌다. 빠르게. 점심시간이 되기 전에 학당 전체가 알고 있었다. 복도에서, 식당에서, 수업 전 교실에서.
"혹시 레온이 뭔가 해준 거 아니야?"
"0각이 뭘 해줘. 마력도 없는 놈이."
"근데 그 0각이 알테리온 교수 조교잖아. 뭔가 아는 거 아닌가?"
"실기 시험에서 학생회장을 이긴 놈이야. 0각이 맞긴 한 거야?"
"마력학 수업에서 성흔 회로를 맨눈으로 진단했다는 소문도 있었잖아."
"그때 카일 파동이 변했다고 했지. 그 뒤로 카일이 매일 밤 훈련했다는 거 아니야?"
복도의 속삭임을 카이락스는 걸으면서 들었다. 착각의 순환이 시작되고 있다. 카이락스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 인간들이 스스로 이유를 만들어내고, 그 이유에 의미를 부여하고, 의미에 경외를 붙이고 있었다.
번거롭군.
하지만 착각은 방패다. '대단한 0각'이라는 오해가 '심연의 군주'라는 진실보다 안전하다. 정체를 숨기는 데에는 --- 진실보다 그럴듯한 거짓이 더 효과적이다.
착각이 쌓일수록 카이락스라는 이름은 멀어지고, 레온 아르케인이라는 이름이 두꺼워진다. 가면이 가면이 아니게 되는 순간. 그것이 잠입의 완성이다. 동시에 --- 잠입의 위험이기도 하다. 가면이 얼굴에 들러붙으면 벗기 어려워진다.
오후. 복도.
카이락스가 교실을 향해 걷고 있었다. 앞에서 길을 막는 자가 있다.
세르한이었다.
은회색 머리카락. 학생회장 견장. 교복이 빈틈없이 정돈되어 있다. 부츠에 흙 하나 없다. 검은 허리에 차고 있었다 --- 실기 시험 이후 처음으로 검을 차고 다닌다. 검집에 새 가죽이 감겨 있었다. 검을 다시 잡기 시작했다는 뜻. 하지만 표정이 달랐다. 심문실에서의 분노가 없었다. 실기 시험의 충격도 아니다. 다른 것이었다. 무언가를 결정한 자의 얼굴. 오랜 시간 고민한 끝에 답을 내린 자의 눈.
"레온 아르케인."
"학생회장."
"카일 로덴의 각성. 네가 한 거지."
카이락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실기 시험에서 내 궤도를 꺾은 것도. 카일의 회로를 교정한 것도. 0각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세르한의 목소리가 낮았다. 주변 학생들이 시선을 모으고 있다. 학생회장과 F급의 복도 대치. 세 번째. 하지만 매번 분위기가 달랐다. 심문실에서는 적대, 실기 시험에서는 충격, 그리고 지금은 --- 무엇인가.
"네가 뭔지 모르겠다. 0각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네가 뭔지를 알기 전에 --- 한 가지는 안다."
세르한이 카이락스를 3초 동안 보았다. 5각의 자존심이 흔들리고 있었다. 발크 공작가에서 태어나 최고의 교육을 받고, 학생회장이 되고, 학당에서 황태자 다음이라 불리는 자의 자존심. 그것이 밀려나고 있었다.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은 --- 갈증. 더 강해지고 싶다는, 더 정확해지고 싶다는 갈증. 팔꿈치가 0.5도 열려 있었다는 한 마디가 만든 갈증.
그리고 --- 고개를 숙였다.
미세하게. 하지만 분명하게. 은회색 머리카락이 숙인 고개 너머로 흘러내렸다. 학생회장이. 5각이. 발크 공작가 장남이. 학당에서 황태자 다음이라 불리는 자가. F급 앞에서.
"가르쳐 주십시오."
복도가 얼어붙었다.
주변의 속삭임이 멈추었다. 발소리도. 숨소리도. 학생 하나가 들고 있던 책을 떨어뜨렸다. 소리가 복도에 울렸다. 아무도 줍지 않았다. A급 학생 둘이 입을 벌린 채 서 있다. C급 학생이 벽에 등을 붙이고 굳어 있다. 학생회장이 고개를 숙이는 것을 --- 이 학당에서 본 사람은 없었다. 황태자 앞에서도 이 사람은 허리를 세웠다.
카이락스는 세르한을 내려다보았다.
백오십 년 동안 수많은 자가 무릎을 꿇었다. 공포 때문에. 복종 때문에. 명령에 의해. 전장에서, 왕좌 앞에서, 심연의 회의실에서. 하지만 가르침을 구하며 자발적으로 고개를 숙이는 자는 --- 드물었다. 심연에서도. 힘으로 눌러서 복종시킨 것이 아니라, 한 마디 교정이 만든 존경. 다른 종류.
"고개 들어라."
세르한이 올려다보았다. 눈에 분노가 아닌 다른 빛이 있다. 배움에 대한 굶주림. 오만했던 자가 처음으로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한 순간의 눈.
"가르칠 것은 없다. 하지만---"
카이락스는 1초 멈추었다.
"팔꿈치 각도가 0.5도 열려 있다는 것은 알려줬지."
세르한의 눈이 흔들렸다. 실기 시험에서 빗나간 검. 모래에 박힌 일격. 그것이 모욕이 아니라 교정이었다는 것을 --- 지금 이 순간 완전히 깨달은 표정이다. 손가락 하나가 검을 꺾은 것이 아니라 --- 손가락 하나가 검을 가르친 것.
"...알겠습니다."
세르한이 고개를 들었다. 눈이 달라져 있다. 분노도, 충격도, 굶주림도 아닌 --- 결의. 스스로 찾아가겠다는 결의.
카이락스는 세르한 옆을 지나갔다. 복도의 학생들이 양쪽으로 갈라졌다. 이번에는 비웃음이 아니다. 두려움과 경외 사이의 어딘가. 정체를 모르겠다는 눈. 하지만 대단하다는 것은 아는 눈.
카이락스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복도 끝 창문 밖으로 월식의 숲이 보였다. 조용하다. 하지만 밤이 되면 --- 조용하지 않을 터다.
카일의 각성. 세르한의 복종. 하루 안에 두 가지가 일어났다. 착각물이 두꺼워지고 있다. 레온 아르케인이라는 가면이 학당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예상보다 빠르게. 예상보다 깊게.
하지만 가면 아래에서 --- 파편이 자라고 있다. 오늘 밤, 지하 3층의 문을 열어야 했다. 배후의 흔적이 그곳에 있다. 결계 패턴의 서명을 따라가면 --- 이름에 닿을 수 있을 터다.
카이락스는 창문에서 시선을 거두었다. 주머니 안의 열쇠가 차갑다. 알테리온이 건넨 열쇠. 죽은 스물여섯 명의 무게가 실린 금속.
오늘 밤이다. 가면 아래의 전쟁이 ---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