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화. 4월의 첫 아침
4월 1일 수요일, 오전 8시 29분.교실 문을 미는 순간 공기가 달랐다.어제까지는 눈치였다. 힐끗거리는 시선, 말하다 멈추는 타이밍, 지나가면서 슬쩍 고개를 돌리는 것. 그런 종류의 시선이었다. 오늘은 달랐다.확정된 시선이었다. 의심이 아니라 확인하는 눈빛들이 교실 곳곳에서 날아왔다. 형광등이 윙하고 울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생각이 많아진다.'윤시하가 자리에 앉으면서 가방을 내려놓았다. 창밖으로 4월 첫날의 하늘이 보였다. 3월보다 조금 더 밝았다. 교정 가장자리 나무 끝에 뭔가 올라오는 것 같았다. 벚꽃은 아직이었지만 가지 끝이 도톰해져 있었다.박지훈이 빠르게 옆에 붙었다. 의자를 끌어와서 윤시하 책상 옆에 앉았다. 의자 다리가 바닥을 긁는 소리가 교실 안에 짧게 울렸다."야, 느꼈지?""응.""어제 단톡 이후로 완전히 굳어졌어. 반 카톡방 읽어봤어?""안 읽었어.""안 읽은 게 나을 수도 있어." 박지훈이 목소리를 낮췄다. "어제 체육 시간 건이 이수빈 글이랑 합쳐지면서 확 돌았거든. 2학년 전체가 알아.""알면 뭐가 달라지는데.""눈치가 확신으로 바뀌는 거지. 그전엔 '아닐 수도 있지 않아?' 하던 애들이 이제 '맞다 그거' 하는 거야."윤시하는 교과서를 꺼내면서 교실 안을 훑었다. 오른쪽 구석에서 이수빈이 핸드폰을 보면서 옆 애한테 뭔가를 말하고 있었다. 속삭이는 건 아닌데 소리가 작았다.김하늘은 아직 안 왔다. 강수현은 창가 자리에 이미 앉아서 앞을 보고 있었다. 어제와 같은 자세. 교복 단추 하나가 풀려 있었다.달라진 건 강수현 주변.강수현이 앉아 있는 자리 주변의 빈 공간이 더 넓었다. 한 자리 폭이 아니라 두 자리 폭.'생각이 많아진다.'가방을 두거나 교과서를 쌓아두는 핑계로 비워두는 식이었다. 누가 시킨 게 아니라 몸이 먼저 결정을 내린 것처럼 자연스러운 회피였다."저 빈 자리 봤어?""가방으로 막아둔 거야. 어제까진 없었는데."윤시하는 강수현 쪽을 한 번 더 봤다. 강수현은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선이 먼 곳에 닿아 있는 각도.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주변의 빈 공간을 모를 리가 없는 각도였다.교실 문이 열렸다. 김하늘이 들어왔다. 교복이 오늘도 칼같이 정돈되어 있었다. 카라가 세워져 있고, 넥타이가 단정했다.들어오면서 교실을 한 번 훑었다. 윤시하를 봤다. 이수빈을 봤다. 이수빈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김하늘이 자기 자리로 걸어왔다. 가방을 내려놓으면서 자연스럽게 미소를 띠는 얼굴.'생각이 많아진다.'"어제 잘 들어갔어?""응.""4월이다. 벌써.""그러네.""전학 온 지 딱 한 달이야. 시간 빠르다.""많은 일이 있긴 했지.""많았지." 김하늘이 웃으면서 교과서를 꺼냈다. "앞으로 더 많을 거야."평범한 아침 인사였다. 어제 체육 시간에 있었던 일에 대해 아무것도 없었다.교문 앞에서 팔을 잡고 음수대로 갔던 것도, '이제 나도 좀 숨길 생각 없거든'이라고 말했던 것도. 전부 없었던 것처럼 깨끗하게 지워져 있는 상태.윤시하는 핸드폰을 꺼냈다. 반 카톡방. 읽지 않은 메시지가 43개였다. 스크롤을 내리다가 한 곳에서 멈췄다.축제 준비위 명단이 올라와 있었다. 3조. 윤시하.'4월이다.'답한 적이 없었다. 준비위 참여 의사를 밝힌 건 맞지만, 조 배정은 동의한 적이 없었다. 3조 멤버를 보니 이수빈이 있었다. 김하늘은 1조."하늘아.""응?""나 축제 준비위 3조에 넣은 거 누가 했어?""수빈이가 배정한 것 같은데.""나한테 확인은?"김하늘의 손이 형광펜 위에서 멈췄다가 다시 움직였다. 미소가 그대로였다. 그런데 미소 아래 뭔가가 흔들렸다. 입꼬리가 유지되는데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리는, 그런 흔들림이었다."미안, 내가 성급했나 봐. 수빈이한테 그냥 넣으라고 한 건 나야."솔직했다. 김하늘이 회피하지 않은 건 처음이었다."할 거면 내가 직접 말할게. 답하기 전에 넣지 마.""그래, 미안해. 다음부터는 꼭 물어볼게."윤시하는 자리에서 일어나 이수빈 쪽으로 걸어갔다. 이수빈이 핸드폰을 내리면서 올려다봤다. 뒤에서 몇 명의 시선이 따라왔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수빈아, 명단에 내 이름 올린 거 하늘이한테 들었어.""아, 그건. 미안. 당연히 괜찮은 줄 알았어.""다음부터는 먼저 물어봐.""알겠어. 진짜 미안."자리로 돌아오는 길에 강수현 자리 앞을 지나쳤다. 강수현이 윤시하를 보고 있었다. 잠깐이었다. 시선이 스치고 지나갔다.표정은 없었다. 그런데 입가가 아주 조금 올라간 것 같기도 했다. 눈이 반짝인 건지 교실 등 반사인지 확실하지 않았다.담임 백선영 선생님이 들어왔다."4월이야. 중간고사 한 달 남았어. 정신 차리자.""벌써요? 진짜요?""진짜야. 달력 봐.""선생님 축제가 먼저잖아요.""축제는 축제고 시험은 시험이야. 둘 다 해."웃음이 터졌다가 잦아들었다. 출석을 부르기 시작했다.두 교시가 지나가는 동안 교실의 지형이 바뀌는 게 느껴졌다. 쉬는 시간에 복도에서 마주치는 다른 반 아이들의 시선이 달랐다.'전학생'이라는 라벨이 '강수현이랑 엮인 전학생'으로 바뀌어 있었다. 정수기 앞에서 물을 마시는데 옆 반 여자애 둘이 지나가면서 속삭였다."저 애 아니야? 체육 시간에.""강수현이 막아선 애?""하늘이가 팔 잡은 애.""둘 다래."물을 마시면서 못 들은 척 했다. 돌아보지 않았다. 손등으로 입을 닦고 교실로 돌아갔다.점심시간. 급식실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박지훈이 옆에 있었다."아까 잘했다.""뭘.""준비위 건. 직접 정리한 거.""당연한 거잖아.""당연한 걸 직접 하는 게 중요한 거야."급식실에서 밥을 받았다. 순두부찌개와 잡채. 두부 냄새가 급식실에 가득했다. 고춧가루가 섞인 짭짤한 냄새. 국물을 한 숟가락 마시면서 급식실 안을 봤다.강수현이 급식 줄에서 쟁반을 들고 걸어가는데, 통로가 예전보다 넓게 비켜나 있었다. 15센티미터쯤 더. 아이들이 의식하는 것 같지 않았다.몸이 먼저 아는 거였다. 강수현은 구석 자리에 혼자 앉아서 밥을 먹기 시작했다. 김하늘은 이수빈이랑 대각선 테이블에서 밝게 웃고 있었다.오후 수업이 끝나고 교문을 나왔다. 언덕을 내려갔다. 달빛 편의점 간판에 4월의 오후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낡은 간판 글자가 빛을 받아 반짝였다.'여기가 편하다.'문을 밀었다. 냉장고 소리가 먼저 들어왔다.정태식이 카운터 안에 있었다. 강수현은 아직 안 왔다. 삼각김밥을 집으면서 가격표를 봤다. 10원 올랐다."4월부터 올랐어.""네.""3월에 많이 먹었으니까 체감될 거야.""한 달에 몇 개나 먹은 거예요.""내가 세야 되냐. 네가 세."잔돈을 받으면서 창가 자리에 앉았다. 삼각김밥 포장지를 뜯었다. 참치마요 냄새가 올라왔다. 한 입 베어 물면서 창밖을 봤다.한 달. 3월 3일에 전학 와서 오늘이 4월 1일이었다. 겨우 한 달인데, 편의점 문을 열 때 냉장고 윙윙거리는 소리가 반갑게 느껴지는 정도로 바뀌어 있었다.삼각김밥 참치마요가 이 편의점 맛이 됐다. 정태식 사장이 잔소리하는 게 배경음악이 됐다.편의점을 나왔다. 문이 닫히면서 냉장고 소리가 끊겼다. 대신 언덕 아래에서 학원가 소리들이 올라왔다. 오토바이 지나가는 소리, 간판 켜지는 소리.'여기가 편하다.'4월. 햇살이 더 길었다. 바람이 덜 찼다. 나무에 뭔가 올라오고 있었다.연서동의 4월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