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화. 어긋남
사람의 마음이 어긋나는 순간은, 맞추려 할 때 온다.
19화에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1층. 설계자의 판에서 내려왔다. 자기 판을 만들겠다고 했다. 판을 만들려면 말이 아니라 패가 필요하다.
최지훈이 정보를 넘겼다.
이준의 차 안. 도윤이 운전석에, 최지훈이 조수석에, 이준이 뒷좌석에. 세 사람이 같은 차에 탄 것은 처음이다. 기자와 배우와 매니저. 이 조합은 어떤 계약서에도 없다.
차 안의 공기가 달랐다. 도윤의 히터가 돌아가고 있었지만 온도가 낮았다. 최지훈이 조수석 창문을 1센티미터 열어놓았다. 밖의 찬 공기가 들어왔다. 기자의 습관이다. 밀폐된 공간에서는 녹음기가 잡음을 탄다.
"소희는 1년 전 업계를 떠났어요. 공식적으로는."
최지훈의 목소리가 낮았다. 녹음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톤이었다.
"하지만 블랙홀과의 연결 고리가 하나 남아 있습니다. 박대건 대표가 소희의 채권자예요."
차 안이 조용해졌다. 히터 소리만 남았다. 도윤이 룸미러로 이준을 봤다. 이준의 표정이 5초간 변하지 않았다. 5초. 도윤은 그 5초를 세고 있었을 것이다. 7년 동안 이준의 표정이 5초 이상 멈춘 적은 손에 꼽는다.
"채권 규모는요."
"확인 중입니다. 서은아 씨의 5억과 별개입니다."
별개. 같은 채권자, 다른 채무. 박대건이 서은아도 소희도 쥐고 있다. 두 사람의 빚이 별개라는 것은, 두 사람을 별개의 카드로 쓸 수 있다는 뜻이다. 박대건의 손에 카드가 두 장이다.
"왜 저한테 이걸 줍니까."
"강이준 씨가 알아야 하니까요. 당신이 서 있는 판이 어떤 판인지."
19화에서 이준이 도윤에게 한 말과 같았다. 같은 문장이 다른 사람의 입에서 나왔다.
"기사를 위한 거 아닙니까."
"둘 다예요. 사실과 기사는 다르지 않습니다."
최지훈이 차에서 내렸다. 문이 닫혔다. 1센티미터 열려 있던 창문으로 들어오던 찬 공기가 멈췄다.
도윤이 시동을 걸지 않았다. 핸들 위에 손을 올린 채로.
"형, 어떻게 할 거예요."
"서은아한테... 말할까."
이준의 말투가 달라져 있었다. '말할까.' 의문형. 이준이 도윤에게 의견을 묻는 것은 7년 동안 다섯 번째다.
"뭘요?"
"박대건이 소희 채권자라는 거."
"말하면 어떻게 돼요?"
"아파하겠지."
"안 말하면요?"
"모르고 있겠지."
"어느 쪽이 나아요?"
이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모르고 있는 것과 알고 아파하는 것. 어느 쪽이 나은지 15년 동안 생각해본 적이 없다. 자신에게는 '알고 통제하는 것'만 있었다. 남의 아픔을 대신 결정하는 것은 해본 적이 없다. 12화에서 차서린의 인터뷰를 읽으며 알았다. 자신이 사람의 아픔을 모른다는 것을. 14화에서 서은아의 손을 잡으며 알았다. 알고 싶다는 것을.
"말하지 마. 아직은."
'아직은.' 11화에서도 같은 단서를 달았다. '아직은 내가 통제할 수 있어.' 이준의 '아직은'은 유예기간이다. 유예가 끝나면 결정이 온다.
도윤이 시동을 걸었다.
☆
오후. 서은아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늘 루나틱 마지막 앨범 녹음이에요. 오셔도 돼요?"
"가겠습니다."
0.5초 만에 대답했다. 계산이 아니었다. 박대건이 소희의 채권자라는 정보를 안고 있으면서, 서은아의 초대에 0.5초 만에 답한 것이다. 계산이었다면 3초는 걸렸을 것이다. 거절이었다면 '스케줄 확인하겠습니다'라고 했을 것이다. 0.5초는 계산이 끼어들 틈이 없는 시간이다.
☆
녹음실. 강남.
이준은 부스 밖에 섰다. 유리 너머로 서은아가 보였다. 마이크 앞. 헤드폰. 눈을 감고 있었다. 녹음실의 유리는 방음 유리다. 부스 안의 소리가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유리 위에 이준의 얼굴이 반사되어 있었고, 그 반사 너머로 서은아의 얼굴이 보였다. 두 얼굴이 유리 위에서 겹쳐 있었다.
유리아가 왼쪽에. 하은이 오른쪽에. 세 명이 나란히. 16화의 연습실에서는 어긋나던 세 사람이 마이크 앞에서는 나란히 서 있었다.
음악이 시작됐다. '별의 궤도'.
서은아가 불렀다. 유리아가 하모니를 넣었다. 16화에서 안무를 틀리던 유리아가 녹음에서는 정확했다. 몸은 어긋났지만 목소리는 맞았다. 어긋난 것과 맞는 것이 같은 사람 안에 있었다. 하은이 코러스를 얹었다. 세 명의 목소리가 하나가 됐다. 다섯이어야 할 하모니가 셋으로 채워졌다. 완벽하지 않았다. 하지만 채우려는 의지가 소리에 실려 있었다.
이준은 들으며 깨달았다. 이 노래다. 13화 블랙박스의 콧노래. 16화 연습실의 독창. 전부 이 노래다. 소희도, 서은아도, 같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다른 시간에. 다른 장소에서. 소희는 겨울 밤 차 안에서. 서은아는 빈 연습실에서. 그리고 지금 세 명이 함께.
숫자가 사라졌다. 위약금도. 검색어 순위도. 23%도. 박대건의 채권도. 노래만 남았다.
이건 연기다. 라고 말하면 편해진다. 하지만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편하지 않다. 편하지 않은 것이 진짜라는 뜻이다.
녹음이 끝났다. 부스 문이 열렸다. 녹음실의 방음이 풀리면서 부스 안의 공기가 밖으로 나왔다. 따뜻한 공기. 세 사람의 호흡이 섞인 공기.
서은아가 나왔다. 머리카락이 흐트러져 있었다. 눈이 붉었다. 울지 않았다. 하지만 울음 직전이었다. 노래를 부르면서 울음을 삼킨 것이 눈에 남아 있었다.
유리아가 서은아의 옆을 지나갔다.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유리아의 손이 서은아의 손등을 스쳤다. 0.3초. 16화에서 돌아보지 않던 유리아가, 손끝으로 돌아본 것이다.
하은이 서은아에게 안겼다.
"언니, 수고했어요."
"...응."
"울어도 돼요."
"안 울어."
"알아요. 그래도요."
서은아가 하은의 머리를 쓸었다. 작은 머리. 16화에서 잡았던 작은 어깨의 주인.
이준을 봤다.
"어땠어요?"
말 속도가 느려졌다. 감정이 올라갈수록 속도가 느려지는 사람. 차서린이 인터뷰에서 쓴 문장 그대로.
"...좋았습니다."
두 단어. 17화에서 '프로답게 잘하셨습니다'와 달랐다. '프로답게'가 빠졌다. 프로의 어휘가 아닌 말이 나온 것이다. 계산되지 않은 두 단어.
서은아가 웃었다. 울음 직전의 얼굴에서 웃음이 나왔다. 17화에서 카메라 앞에서 보여준 웃음과 달랐다. 카메라가 없는 곳의 웃음.
"감사해요. 와줘서."
"...괜찮습니다."
이준은 그 단어가 진짜인지 습관인지 모르겠다. 괜찮다는 것이. 12화에서 도윤이 '그 말이 진짜가 아닌 거 알아요'라고 한 것처럼, 이준의 '괜찮습니다'는 진짜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서은아 앞에서는 진짜이고 싶었다.
☆
녹음실을 나섰다. 주차장. 강남의 저녁 공기가 차가웠다.
도윤이 차 앞에 서 있었다.
"형, 블랙박스 전체 영상 복원 완료했어요. 보시겠어요?"
이준이 멈췄다. 보면 12월 31일의 전부를 알게 된다. 모르면 지금이 유지된다. 알면 모든 것이 바뀔 수 있다.
3초간 서 있었다.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서은아가 뒤에서 걸어왔다. 가벼운 발소리. 옆에 섰다. 이준을 보지 않았다. 하늘을 보고 있었다. 겨울 하늘에 별이 보이지 않았다. 강남의 불빛이 별을 가리고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3초. 계산 밖의 3초. 15년 만에 처음. 서은아 옆에 서서,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고, 아무것도 계산하지 않고, 그냥 서 있는 3초.
나중에 휴대폰을 확인했다. 차 안에서. 서은아를 숙소에 내려준 뒤.
모르는 번호. 문자.
〔찾아보라 했죠. 이제 찾았어요?〕
〔다음에 만날 때, 전부 말씀드릴게요. ─ 소희〕
소희가 직접 이름을 밝혔다. 10화에서는 발신자 미상이었다. 숨는 것을 그만둔 것이다. 15화에서 이준이 검색했을 때 깨끗하게 지워져 있던 사람이, 스스로 이름을 내놓았다.
'다음에 만날 때.' 이준이 모르는 만남. 소희가 알고 있는 만남. 소희가 주도하는 만남.
이준은 창밖을 봤다. 한남대교가 빛나고 있었다. 강물 위에 다리의 불빛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13화에서 블랙박스 속 한강이 검었던 것과 달랐다. 같은 강. 다른 계절. 다른 빛.
가짜 연애의 두 번째 아크가 끝났다. 가장 진짜인 순간은, 아무것도 계산하지 않은 3초였다.
─ 그때는 그것이 시작인 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