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화. 첫 번째 흑자
90일이 지나고 있었다.
에스텔라가 양피지를 펼쳤다. 밤새 숫자를 정리했다. 손가락이 아팠다. 깃펜을 너무 오래 쥐어서 굳은살 위에 물집이 잡혀 있었다. 잉크가 손톱 밑에까지 들어가 있었다.
하지만 이 손이 쓴 숫자가 영지를 살렸다.
창밖으로 방앗간이 보였다. 줄이 서 있었다. 인근 마을에서 밀을 가져오는 사람까지 합쳐 매일 열다섯 포대가 돌아간다. 삼포제 시범구역에서는 콩 첫 수확이 끝났다. 예상치의 80%. 흉작을 감안하면 성공. 토마스의 보고에 따르면, 콩이 심겨 있던 구역의 흙이 이전보다 부드러워졌다고 한다. 땅이 살아나고 있었다.
장시에서는 지난주에 떠났던 가구 하나가 돌아왔다. 남자는 대공 영지에서의 생활에 대해 말을 아꼈지만, 아내가 한마디 했다.
「소금은 넘치는데, 자유가 없었어요.」
그 한마디가 장시에서 입에서 입으로 퍼지고 있었다.
카일과 아드리안이 맞은편에 서 있었다. 토마스도 있었다. 노인의 눈이 달라져 있었다. 죄책감과 감사가 뒤섞인 눈. 에스텔라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작은 인정. 노인의 어깨가 미세하게 펴졌다.
에스텔라가 양피지를 뒤집었다.
「적자 폭이 줄었습니다. 흑자는 아닙니다.」
잠깐 숨을 쉬었다.
「하지만 현금흐름은 플러스로 전환했습니다. 매달 벌어들이는 돈이 매달 나가는 돈보다 많아졌어요.」
카일이 물었다.
「흑자와 다릅니까?」
「빚은 아직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매달 갚을 능력이 생겼다는 뜻입니다. 숨을 쉴 수 있게 된 거예요.」
빚이 남아 있어도 현금이 돌면 살 수 있다. 현금이 돌지 않으면 아무리 자산이 많아도 죽는다. 이 영지는 오늘부터 숨을 쉬기 시작했다.
아드리안이 현금흐름표를 가져다 읽었다.
「깔끔하군요. 은화 기준표 도입 이후 환차손이 줄었고, 방앗간 물량 증가가 직접적으로 유동성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숫자를 훑는 속도가 빨랐다.
「여기까지를 3개월 만에 해냈다는 겁니까.」
에스텔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까지는 영지 내부의 일입니다. 다음은 밖입니다.」
모르간에게 보고서를 보냈다. 양피지 세 장. 숫자만 적은 것이 아니다. 숫자 아래에 맥락을 적었다. 왜 이 숫자가 나왔고, 다음에 어떤 숫자가 나올 것인지.
보고서 마지막 줄.
「목줄이 아니라 고삐가 되겠습니다, 모르간 경. 고삐는 말이 달려야 의미가 있습니다.」
깃펜을 놓고 잉크를 말렸다. 90일. 사형대에서 내려온 뒤 90일. 그 시간이 양피지 세 장 안에 들어 있었다.
그날 밤.
세 곳에서 세 남자가 같은 보고서를 읽고 있었다.
황도의 집무실. 루시엔 드 발렌티아가 촛불 아래에서 양피지를 넘겼다.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 검을 잡는 손이 아니라 펜을 잡는 손. 은화 변조 대응 항목에서 시선이 멈췄다.
은화 무게 기준표. 단순한 영지 정책이 아니다. 이걸 제국 전체에 적용하면 은화 변조의 피해를 줄일 수 있다. 은화의 신뢰가 떨어지면 세금의 실질 가치가 떨어진다. 그것을 막을 수 있는 시스템이 변방 영지에서 나왔다.
「이 여자는 영지를 넘어서 보고 있군.」
양피지를 내려놓았다.
「……곧 불러야겠다. 기다리면 늦는다.」
영지 창가. 카일이 서 있었다.
에스텔라가 장터를 내려다보는 뒷모습이 보였다. 장부를 든 손이 거칠어져 있었다. 잉크 얼룩이 묻은 손가락. 밧줄 자국이 아직 남은 목. 사형대에서 남긴 자국. 석 달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았다.
처음 본 여자는 오만했다. 지금 보이는 여자는 지쳐 있었다. 오만함과 지침 사이에서, 이 사람은 숫자를 세고 있었다. 영지민의 식사를 세고, 밀가루를 세고, 동전을 세고, 은화의 무게를 재고 있었다.
저 사람의 손은 검을 잡아본 적이 없다. 그런데 나보다 더 많은 것을 지키고 있다.
카일이 고개를 돌렸다. 창밖의 어둠을 보았다. 주먹을 쥐었다 풀었다.
남부 상단 본부. 아드리안이 탁자 위에 카르테시아 환어음을 올려놓고 보고 있었다. 종이 한 장. 잉크와 봉인. 이것이 돈의 무게를 가진다는 발상.
아드리안이 환어음을 내려놓았다.
「이 영지가 성공하면, 제국의 돈 도는 방식이 바뀝니다.」
금테 안경을 벗었다. 닦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녹색 눈이 빛났다.
「그리고 그 중심에 저 여자가 서게 되겠지.」
같은 시각, 제국 남부. 대공 레오폴트의 서재.
보좌관이 보고서를 올렸다. 토마스를 통해 얻은 정보. 그러나 에스텔라가 설계한 위조 정보였다. 곡물 재고가 부족하다는 거짓 데이터. 삼포제가 부진하다는 거짓 결과. 대공은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
「시범 영지가 버티고 있습니다, 각하.」
레오폴트가 서류를 내려놓았다.
「버티는 게 아니라 크고 있다. 이 숫자가 진짜라면 곧 무너지겠지만……」
서류를 다시 집어 들었다. 곡물 재고 부족. 삼포제 부진. 에스텔라가 심어놓은 숫자들이 대공의 판단을 설계하고 있었다.
「명사회의 안건은 올렸고. 셀레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재 깊은 곳의 서랍을 열었다. 마력석 하나. 어두운 보랏빛 광채. 농민 가구의 1년 수입과 맞먹는 것을 서랍에 넣어두는 사람.
「숫자 밖의 것을 보내야 한다.」
서재 문이 닫혔다.
모르간의 답신이 도착한 것은 다음 날 아침이었다.
양피지 한 장. 두 줄. 모르간의 글씨는 칼로 새긴 것처럼 정확했다.
「90일을 180일로 연장한다.」
에스텔라의 눈이 멈춘 것은 두 번째 줄.
「그리고 한 가지. 네 이름이 명사회의 안건에 올랐다.」
양피지를 내려놓았다. 손이 떨리지 않았다.
180일. 한 분기가 더 생겼다. 숨 쉴 시간이 늘었다.
하지만 명사회의. 정치의 무대. 숫자가 통하지 않는 곳. 말과 권력과 혈통이 무기인 곳.
창밖을 보았다. 아침 햇살이 삼포제 시범구역 위에 내려앉고 있었다. 콩 줄기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장시가 열리는 날이었다. 빈터에서 포대를 나르는 소리가 들렸다.
카일이 문 앞에 서 있었다. 아드리안이 현관에서 마차를 준비하고 있었다. 토마스가 배급 장부를 안고 주방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여기까지 왔다.
양피지를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에스텔라 폰 카르테시아의 두 번째 분기가 시작되었다.
시즌1 · 제2막 종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