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화. 배신의 장부
카일은 반나절 만에 토마스를 찾았다.
영지 남쪽 경계의 갈림길. 황도로 가는 길과 남부 항구로 가는 길이 갈라지는 지점. 참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고, 그 아래에 토마스가 주저앉아 있었다.
도주한 것이 아니었다. 짐도 없었다. 도망칠 준비조차 하지 않은 노인이 흙바닥에 앉아 울고 있었다. 얼굴에 흙이 묻어 있었고, 해진 옷소매로 눈물을 닦은 자국이 줄줄이 나 있었다. 신발이 벗겨져 있었다. 처음부터 갈 곳이 없었던 것이다. 나뭇잎 사이로 빛이 떨어져 노인의 흰 머리카락 위에 내려앉고 있었다. 그 빛이 잔인하게 평화로워 보였다.
카일이 보고했을 때, 그 목소리에 감정이 실려 있었다. 분노가 아니다. 당혹. 전장에서 단련된 군인이 노인의 눈물 앞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도망치지도 못한 겁니다.」
토마스를 데려왔다. 본관 집무실. 카일이 문 앞에 서고, 에스텔라가 탁자 맞은편에 앉았다.
노인이 무릎을 꿇었다. 울고 있었다. 무릎이 돌바닥에 닿는 소리가 둔탁했다.
「……아가씨.」
에스텔라는 말하지 않았다. 기다렸다. 침묵은 압력이다. 질문보다 침묵이 더 많은 것을 끌어낸다. 사람은 침묵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말을 채운다.
「제 손녀가…… 대공 영지에 있습니다.」
눈물이 흙 묻은 뺨 위를 흘렀다.
「하인리히 집사가 도주할 때, 제 손녀를 데려갔습니다. 볼모라고 했습니다. 여섯 살입니다. 에밀리아라는 이름이에요.」
에스텔라의 손이 탁자 위에서 멈췄다. 여섯 살. 풀뿌리 아이와 같은 나이.
「대공 측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정보를 보내지 않으면 손녀를 돌려보내지 않겠다고. 한 달에 한 번, 안장 밑에 편지를 넣으면 대공 측의 전령이 수거해 갔습니다.」
「어떤 정보를 보냈습니까.」
목소리를 평평하게 유지했다. 감정을 빼지 않으면 사실을 받아낼 수 없다. 표정을 지우고, 목소리를 낮추고, 기다린다.
「삼포제 시범구역의 위치와 면적. 곡물 재고량. 하인들의 수와 배치. 병사들의 순찰 동선.」
카일의 주먹이 쥐어졌다. 순찰 동선. 군사 정보. 카일의 관할. 배신이 자기 영역까지 미쳤다는 사실에 분노가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에스텔라가 고개를 들어 카일을 보았다. 눈으로 '기다리라'고 말했다. 카일의 주먹이 천천히 풀렸다. 하지만 손등의 핏줄은 여전히 불거져 있었다.
「그게 전부입니까.」
토마스가 고개를 들었다. 빨갛게 부은 눈.
「광산 이야기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만은.」
「왜요.」
침묵.
토마스의 입이 떨렸다. 한참이 지나서야 말이 나왔다. 갈라진 목소리.
「아가씨가…… 처음으로 장부에 사람을 적었으니까요.」
에스텔라의 눈이 흔들렸다.
「배급 장부요. 아이가 있는 가구부터 먹이라고 하셨잖습니까. 이 영지에서 그런 말을 한 영주는 없었습니다. 에스텔라 아가씨도, 그 전의 영주도, 백 년 동안 없었습니다.」
노인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장부에 숫자만 적는 게 아니라 사람을 적은 건 아가씨가 처음이에요. 그래서…… 다 배신하지는 못했습니다.」
에스텔라의 손이 떨렸다. 탁자 아래에서 주먹을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에 파고들었다.
잘라야 한다. 보안 위반이다. 내부 통제의 기본이다. 내통자는 즉시 해고.
하지만 다른 목소리가 올라왔다.
전생에서 숫자대로 잘랐던 사람이 떠올랐다. 경리 과장. 52세. 아이 셋. 12월에 잘렸고, 3월에 죽었다고 들었다. 보고서에는 '인력 이탈률 47%'라고 적었다. 47% 안에 그 사람이 있었다.
이번에는 다르게 해야 한다고 했잖아.
깃펜을 들었다. 양피지를 펼쳤다.
「토마스. 당신을 자를 수도 있습니다.」
노인이 고개를 숙였다.
「네.」
어떤 변명도 하지 않았다. 처분을 기다리는 자세. 죄를 알고 있었고, 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당신의 손녀를 구하는 게 먼저입니다.」
토마스가 고개를 들었다. 부은 눈이 더 커졌다.
에스텔라가 카일을 보았다.
「기사단장님. 대공 영지에서 노인의 손녀가 있는 위치를 확인할 수 있습니까?」
카일이 대답했다. 짧게.
「병사를 보내겠습니다.」
그 세 단어에 카일의 모든 것이 들어 있었다. 분노도, 이해도, 결의도.
에스텔라가 다시 토마스를 보았다.
「앞으로 대공 측에 보내는 정보는 제가 정합니다. 거짓 정보를.」
토마스의 눈이 커졌다.
「……저를 쓰시겠다는 겁니까?」
「통로는 끊는 것보다 쓰는 게 낫습니다. 적이 믿는 정보원이 우리 편이면, 적의 판단을 우리가 설계할 수 있어요.」
집무실 구석에서 아드리안의 목소리가 들렸다.
「역정보 작전이군요.」
아드리안이 창가에 기대어 서 있었다. 언제 들어온 건지 모르겠지만, 전부 듣고 있었다. 이 남자는 문을 열 때 소리가 나지 않는다. 카일과 정반대.
에스텔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토마스의 손을 잡고 일으켜 세웠다. 노인의 손이 거칠고 차가웠다. 수십 년을 이 영지에서 흙과 장부를 만진 손. 떨리는 손. 그 떨림이 에스텔라의 손으로 전해졌다.
토마스가 일어섰다. 다리가 풀려 비틀거렸다. 카일이 한 발짝 다가와 팔을 잡아 부축했다. 아까까지 주먹을 쥐던 손이 노인의 팔을 잡고 있었다.
그날 밤, 카일이 추가 보고를 가져왔다.
「대공이 명사회의에 안건을 올렸습니다.」
에스텔라가 깃펜을 놓았다.
「무슨 안건입니까.」
「시범 영지 지정의 부당성에 관한 심의 요청. 황실이 특정 영지에 특혜를 주는 것은 귀족법에 위반된다는 논리입니다.」
카일이 한 박자 쉬었다.
「……정치로 왔습니다.」
소금 봉쇄, 물자 봉쇄, 은화 변조. 전부 안 먹히니까 법을 들고 나온 거야. 칼, 돈, 법. 세 가지 무기를 순서대로 쓰고 있어.
「기사단장님.」
「네.」
「정치는 장부로 막을 수 없죠?」
카일이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대답 대신 한 발짝 다가섰다.
「장부로 안 되는 건 검으로 막습니다.」
에스텔라가 카일을 올려다보았다. 이 남자의 눈에 거짓이 없었다. 진짜로 검을 뽑을 사람.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카일이 돌아가고, 집무실에 혼자 남았다.
양피지를 꺼냈다. 토마스를 통해 대공에게 보낼 첫 번째 거짓 정보를 작성해야 했다. 깃펜을 들었다.
곡물 재고량을 실제보다 20% 낮게 적었다. 삼포제 수확이 예상보다 부진하다고 적었다. 백반에 대해서는 한 글자도 적지 않았다.
거짓 정보는 90%의 진실에 10%의 거짓을 섞어야 한다. 진실이 충분해야 거짓도 먹힌다.
깃펜을 놓고 잉크를 말렸다. 숫자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숫자를 무기로 쓰는 전쟁.
창밖으로 새벽이 오고 있었다. 동쪽 하늘이 회색에서 보랏빛으로 변하고 있었다.
명사회의. 정치의 무대. 장부와 깃펜으로는 서지 못하는 곳. 하지만 가야 했다. 가지 않으면 끝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