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화. 깎인 은화
은화 서른일곱 닢. 그중 아홉 닢이 정상보다 가벼웠다.
에스텔라가 저울 위에 은화를 하나씩 올렸다. 집무실 탁자 위에 작은 천칭 저울을 놓고, 한쪽에 분동을 올리고 다른 쪽에 은화를 올렸다. 정상 은화의 무게를 기준으로 잡고, 차이를 기록했다. 양피지 위에 숫자가 늘어갔다.
8%. 아홉 닢 전부 정상보다 정확히 8% 가벼웠다.
1번 은화: -8.1%. 2번: -7.9%. 3번: -8.0%. 오차가 0.2% 이내. 이 정밀함은 손으로 한 것이 아니다. 도구가 있다. 은화를 고정하고 일정한 깊이로 깎아내는 전용 도구. 그것을 만들 수 있는 것은 금속 세공사이고, 금속 세공사를 고용할 수 있는 것은 돈이 있는 사람.
「은을 깎아내면 가루가 남습니다.」
아드리안이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장부 설계 자문이 시작된 뒤 카르테시아에 체류 중. 집무실 한쪽에 아드리안의 서류 가방이 놓여 있었고, 그 안에는 메디치안 상단의 장부 사본이 들어 있었다. 상인이 자기 장부를 타인에게 보여주는 것은 심장을 열어 보이는 것과 같다.
「그 가루를 모아 녹이면 순은 덩어리가 됩니다. 이건 도둑질의 가장 우아한 형태예요.」
에스텔라가 은화 하나를 집어 들어 빛에 비추었다. 표면은 정상 은화와 구분이 가지 않는다. 같은 왕관 문양, 같은 글씨. 하지만 테두리만 유심히 보면 미세한 거칠음이 있다. 줄로 갈아낸 자국.
아드리안이 은화를 하나 집어 손가락 사이에서 돌렸다. 은화를 만지는 횟수가 숫자를 읽는 횟수만큼 많은 손.
「제국 전역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은화의 은 함량이 떨어지고 있다는 소문은 남부에서도 돌고 있어요.」
「하지만 카르테시아에 집중적으로 깎인 은화를 풀고 있는 건 대공이겠죠.」
아드리안이 은화를 내려놓았다. 탁자 위에서 빙글 돌다 멈췄다.
「증거는?」
에스텔라가 장부를 펼쳤다. 밤새 정리한 데이터. 날짜별 은화 유입량과 변조 비율을 적은 양피지 두 장.
「장시에서 수거한 은화 서른일곱 닢 중 깎인 것이 아홉. 변조율 24%. 아드리안, 남부 항구에서의 평균 변조율이 얼마입니까?」
「12% 내외.」
「두 배입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카르테시아에 깎인 은화를 밀어 넣고 있어요. 그리고 정확히 8%씩, 같은 비율로 깎았다는 건 조직적이라는 뜻입니다.」
아드리안이 장부를 들여다보았다. 날짜별 그래프가 2주 전부터 가파르게 올라가고 있었다. 소금 봉쇄가 시작된 시점과 일치.
「소금으로 조이고, 은화로 피를 빼고 있군요.」
「정확합니다.」
에스텔라가 깃펜 끝으로 그래프의 꺾이는 지점을 짚었다.
「깎인 은화를 거부하면 거래가 멈춥니다. 영지민들은 깎인 은화밖에 없으니까요. 받으면 손실이 쌓이고요. 8%씩 가치가 빠지는 돈으로 거래하면, 매 거래마다 영지가 손해를 봅니다.」
아드리안이 팔짱을 꼈다.
「딜레마군요.」
「딜레마가 아닙니다.」
에스텔라가 깃펜을 집었다. 새 양피지 위에 표를 그리기 시작했다. 세로축에 은화 등급, 가로축에 교환 비율.
「새 기준을 만들면 됩니다.」
정상 은화의 무게를 기준으로, 깎인 은화는 실제 무게만큼만 인정하는 교환 비율표. 100그레인짜리 은화가 92그레인으로 깎여 있다면, 92그레인의 가치만 인정한다. 거래마다 저울로 무게를 재게 하는 시스템.
「깎인 은화를 보내는 자는 자기 손실을 우리에게 떠넘기는 겁니다. 저울은 거짓말을 못 합니다.」
기준표를 완성하고 아드리안에게 밀었다. 표 아래에 메모를 적었다. 거래 시 양 당사자 입회 측정. 기준 분동은 영주관에서 관리. 월 1회 교정. 오차 0.5% 이내.
기준이 있어야 시장이 돌아간다. 이 세계에는 그런 기준이 없었다. 에스텔라가 만들어야 했다.
아드리안이 읽었다. 속도가 느려졌다. 계산하고 있었다.
「이걸 영지 밖에서도 쓸 수 있게 되면……」
「제국 표준이 됩니다.」
아드리안이 에스텔라를 보았다. 안경 너머의 눈이 빛나고 있었다. 상인의 계산이 아니다. 더 큰 그림을 보는 사람의 눈.
「복식부기로 장부의 거짓말을 잡고, 저울로 화폐의 거짓말을 잡는다.」
에스텔라가 깃펜을 내려놓았다.
「거짓말에는 항상 무게가 있습니다. 재면 됩니다.」
아드리안이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다시 열었다. 평소의 능글맞은 톤이 아니다. 진지한 음성.
「당신, 꿈에서 뭘 한 겁니까.」
「숫자를 잡았습니다.」
「그 꿈, 한 번 더 꿔주시죠. 제국 규모로.」
에스텔라는 웃지 않았다. 하지만 깃펜을 다시 집었다.
이 남자는 같은 크기의 그림을 보고 있는데, 먼저 말한 거야. 복식부기도, 환어음도, 은화 기준표도. 전부 영지 하나에서 끝날 시스템이 아니다. 표준은 한 곳에서 시작해서 전체로 퍼진다.
문제는 이 영지가 살아남아야 표준도 의미가 있다는 거야.
기준표의 두 번째 초안을 쓰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카르테시아가 아니라 남부 항구 전체의 유통량을 기준으로 한 것.
아드리안이 의자에 등을 기대었다. 금테 안경 너머로 에스텔라의 깃펜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있었다. 잉크 자국이 묻은 손가락. 이 손이 제국의 돈이 도는 방식을 바꾸려 하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토마스가 사라졌다.
침대가 비어 있었다. 이불은 개어져 있지 않았다. 급히 나간 흔적. 침대 위에 양피지 한 장. 카일이 먼저 발견하고 에스텔라를 불렀다.
양피지 위의 글씨는 떨렸다.
「아가씨. 죄송합니다. ——토마스」
에스텔라가 양피지를 내려놓았다.
……예상했어야 하는 건데.
새벽에 마구간으로 걸어가던 구부정한 등. 안장 밑에 편지를 밀어 넣던 손. 미묘했던 시선. 전부 증거였다. 보고 있었으면서 멈추지 않았다.
자르고 싶지 않았으니까. 이 노인은 이 영지에서 가장 오래된 사람이고, 장부를 읽을 수 있는 유일한 하인이다. 그 손이 떨리면서 편지를 밀어 넣는 걸 보면서도, 자를 수가 없었다.
카일이 검에 손을 얹고 말했다.
「추적하겠습니다.」
에스텔라가 창밖을 보았다. 아침 햇살이 방앗간 지붕 위에 내려앉고 있었다. 어제 장이 섰던 빈터가 텅 비어 있었다. 콩 세 알이 놓인 분수대가 보였다.
「……부탁합니다.」
카일이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섰다. 문 앞에서 한 번 멈추었다가 나갔다. 말하고 싶은 것이 있었지만 삼킨 것이다. 카일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 남자이고, '걱정하지 마십시오'는 거짓말이 될 수 있었다.
에스텔라는 토마스의 양피지를 다시 보았다. 글씨가 떨리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그 세 글자에 담긴 무게.
이번에는 원칙 밖의 답을 찾아야 한다.
창밖에서 방앗간의 물레방아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아직 돌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