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골당은 비어 있었다.
하은이 받아 든 것은 유골함이 아니라 A4 한 장짜리 통보서였다. 팩스로 찍어 보낸 듯 흐릿한 글씨들 사이에서 '화장 처리 완료'라는 네 글자만 또렷했다. 날짜도 없고 담당자 서명도 없었다.
손가락 끝에 종이의 모서리가 파고들었다. 하은은 그 종이를 접지도, 구기지도 않았다. 다만 가방 안쪽 주머니에 넣었다. 재하의 사진 옆에.
납골당 복도에는 국화 냄새가 짙게 깔려 있었다. 벽면을 따라 도열한 봉안함들이 형광등 아래 차갑게 빛났고, 하은의 구두 소리만이 타일 바닥 위를 두드렸다. 재하의 이름이 적혀야 할 자리. 유리 너머 텅 빈 칸이었다.
"유골도 안 주고."
혼잣말이 입술 사이로 새어 나왔다. 목소리는 놀라울 만큼 평평했다.
하은은 납골당 구석 벤치에 앉아 보온병의 커피를 따랐다. 손바닥에 전해지는 것은 온기가 아니라 미지근한 금속의 감촉이었다. 한 모금을 삼켰다. 쓴맛이 혀 뿌리를 타고 목구멍 안쪽까지 내려갔다.
이어폰을 꺼냈다. 왼쪽만 귀에 꽂고 휴대폰 화면을 켰다. 음성 메시지 목록 가장 아래, 날짜순으로 마지막에 위치한 재하의 이름을 눌렀다.
"하은아, 나 지금 영종도 쪽인데—"
낮고 약간 거친 숨소리. 차 안에서 녹음한 듯 엔진 진동이 배경에 깔렸다. 재하는 평소보다 말이 빨랐다. 하은은 커피를 한 모금 더 마시며 그 목소리를 들었다. 쓴맛이 윗잇몸에 얇게 남았다. 형광등 빛이 보온병 뚜껑에 반사되어 작은 빛줄기가 손등 위를 지나갔다.
"위험한 걸 알면서도 왜 혼자 파고드느냐고, 내가 몇 번을 말해—"
음성이 끊겼다. 통화 종료가 아니라 녹음 시간이 다한 것이었다. 하은은 이어폰을 빼지 않았다. 정적 속에서 자기 호흡 소리만 돌아왔다. 왼손이 올라가 귀 뒤를 더듬었다. 작은 십자가 타투. 재하와 같은 날 새긴 것이었다. 손끝이 세 번 그 위를 문질렀다.
수첩을 꺼냈다. 가죽 커버가 낡아 모서리가 헤져 있는, 기자 시절부터 쓰던 것. 펜을 뽑고 빈 페이지를 펼쳤다. 날짜를 적었다. 그 아래에 두 줄.
'사망 당일 유체 인계 절차 없음. 화장 일시 미기재.'
'영종도 프라이빗 클리닉 — 차량 확인 필요.'
글씨는 흔들리지 않았다. 펜 끝이 종이에 닿는 사각거리는 소리가 빈 납골당에 가늘게 울렸다.
"이 영상, 확실한 거야?"
하은의 질문에 정시우가 노트북 화면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납골당에서 나와 시우의 사무실로 온 것은 두 시간 뒤였다. 좁은 사무실에는 에너지 드링크 빈 캔과 외장하드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병원 후문 CCTV야. 사고 당일 오후 세 시 이십칠 분."
시우가 영상을 되감았다. 화면 속에서 검은 밴이 병원 후문 경사로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번호판은 절반이 가려져 있었지만 차체 옆면에 작은 로고가 찍혀 있었다. 하은은 고개를 숙여 화면에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이 마크. 영종도 프라이빗 클리닉 거잖아."
시우가 화면을 일시 정지시키고 확대했다. 픽셀이 깨졌지만 흰 바탕에 금색 원형 로고는 분명했다. 시우는 의자를 뒤로 밀며 팔짱을 꼈다.
"재하 씨 담당 의사가 뇌사 판정 내린 게 오후 두 시 사십오 분이야. 그런데 이 차가 출발한 게 세 시 이십칠 분이면—"
"사십이 분."
하은이 말을 잘랐다.
"뇌사 판정부터 차량 출발까지 사십이 분. 화장 통보까지 합치면 전부 같은 날이야."
시우의 손이 키보드 위에서 멈추었다. 그는 하은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하은은 수첩에 시간대를 적고 있었다. 펜을 잡은 손가락 관절이 하얗게 질려 있다는 것을 시우는 보았고, 하은은 알지 못했다.
"다른 각도 CCTV는?"
"후문 쪽은 이것뿐이야. 그런데 하은아, 이거 어디서 흘러나온 건지 출처가 불명이라서—"
"출처는 내가 확인할게."
하은이 수첩을 덮었다. 시우가 입을 다물었다가 책상 서랍에서 USB 하나를 꺼내 밀었다.
"원본 파일 복사해 뒀어. 메타데이터 건드리지 않은 거니까, 필요하면 써."
하은은 USB를 받아 가방 안쪽에 넣었다. 화장 통보서와 재하의 사진이 든 같은 주머니에. 시우는 그 동작을 지켜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강준혁 장례식이 내일이라고 했지?"
"오늘 저녁 조문부터 시작이야."
하은은 일어섰다. 시우가 뭔가 더 말하려는 것처럼 입을 열었지만 하은은 이미 문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조심해."
시우의 말이 등 뒤에 닿았다. 하은은 문을 열며 고개만 반쯤 돌렸다.
"조심할 거였으면 여기 안 왔어."
장례식장은 강남 한복판, 대형 종합병원 장례관 최상층에 자리 잡고 있었다. 1호실 전체를 빌린 규모였다. 입구에는 검은 정장의 경호원 두 명이 서 있었고 조문객 명단을 확인하는 안내 데스크가 별도로 마련되어 있었다.
하은은 검은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입구를 지나쳤다. 조문객 틈에 섞이지 않고 장례관 복도 끝 비상구 쪽 벤치에 먼저 앉았다. 복도에는 백합 향이 무겁게 깔려 있었다. 화환에서 흘러나오는 냄새가 아니라 장례관 전용 방향제의 인공적인 단내였다.
사람들이 오갔다. 검은 옷을 입은 남녀가 낮은 목소리로 인사를 나누며 1호실로 들어갔다. 재계 인사, 정관계 인물. 하은이 기자 시절 뉴스에서 보았던 얼굴들이 간간이 보였다.
강준혁. 그 이름을 하은은 기자 시절 직접 기사로 쓴 적이 있었다. '재벌 3세 강준혁, 연쇄 실종 사건과의 접점—수사기관 내부 문서 입수.' 데스크에서 두 번이나 퇴짜를 맞고 겨우 실린 기사였다. 그리고 기사가 나간 지 열흘 만에 해외 교통사고 사망 통보. 장례식은 유족 측 요청으로 비공개에 가까웠지만 재벌가의 체면이 있었다.
하은은 조문객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대신 복도에서 오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그들이 나누는 대화의 파편을 주워 담았다.
"회장님이 직접 오신다더라."
"해외에서 사고라니, 갑작스럽지."
하은은 수첩을 무릎 위에 펼쳐 두었지만 적지 않았다. 귀만 열어 두었다.
1호실 문이 열릴 때마다 안쪽이 보였다. 대형 영정 사진 속 강준혁은 날카로운 턱선에 얇은 입술, 서른 초반의 매끈한 얼굴이었다. 재하와는 전혀 다른 인상. 재하는 눈꼬리가 처져 웃을 때 반달이 되는 사람이었고, 강준혁은 웃어도 눈이 웃지 않는 종류의 얼굴이었다.
하은은 벤치에서 일어나 복도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화장실 쪽으로 향하는 척하며 1호실 옆 통로를 지나갔다. 통로 끝 유족 대기실 앞에 경호원 한 명이 서 있었다. 하은은 속도를 줄이지 않고 지나쳤다.
그때 유족 대기실 문이 열렸다.
나온 것은 유족이 아니었다.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 키는 180 초반, 마른 체형. 그런데 그 얼굴은—
하은의 발이 멈추었다.
재하의 얼굴이었다. 처진 눈꼬리, 광대뼈 아래의 작은 점, 왼쪽 귀 위로 살짝 솟은 머리카락 가르마. 하은이 수백 번 손끝으로 더듬었던 윤곽선 그대로.
다른 것이 있었다. 눈동자의 온도. 재하는 하은을 볼 때 눈 밑 근육이 먼저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미소가 입보다 눈에서 시작되는. 지금 이 남자의 눈은 형광등 불빛을 반사하며 아무것도 담고 있지 않았다. 차갑다는 표현도 부족했다. 비어 있었다.
남자가 하은을 보았다.
복도의 백합 향이 갑자기 진해진 것 같았다. 하은의 손이 코트 주머니 안에서 주먹을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에 파고드는 감각이 선명했다. 남자의 시선이 하은의 얼굴 위에 머물렀다. 1초. 2초. 그의 동공이 미세하게 흔들렸다가 다시 잠겼다. 안쪽에서 무언가가 치밀어 올라왔다가 눌린 것처럼.
남자의 목덜미가 보였다. 셔츠 칼라 위로 드러난 피부에 작은 붉은 반점 두 개. 그 옆으로 바늘 자국처럼 미세한 점이 일렬로 나란히 찍혀 있었다. 하은의 시선이 거기에 고정되었다.
남자가 입을 열었다. 재하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음색은 같았지만 말의 결이 달랐다. 재하는 문장 끝을 흐리는 버릇이 있었고, 이 남자는 한 글자 한 글자를 또렷하게 끊었다.
"실례지만, 조문객이십니까?"
하은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재하의 눈 모양 안에 들어앉은, 전혀 다른 것의 그림자를. 남자가 고개를 약간 기울였다. 재하가 하지 않던 각도였다. 재하는 고개를 기울일 때 항상 오른쪽이었고, 이 남자는 왼쪽으로 기울였다.
"그 얼굴로 웃지 마. 당신 안에는 다른 괴물이 들어앉아 있잖아."
하은의 입에서 나온 말은 자신도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목소리가 반음 올라가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챘다. 남자의 표정이 변했다. 웃은 것이었다. 입꼬리만 올라가고 눈은 그대로인, 영정 사진 속 강준혁의 웃음과 똑같은.
"저를 아시는 분인가 봅니다."
남자가 한 발 다가왔다. 하은은 물러서지 않았다. 복도의 형광등이 그의 얼굴 절반에 그림자를 드리웠고, 그림자 속에서 재하의 눈꼬리가 처져 있었다. 그 익숙한 윤곽이 낯선 의지에 의해 움직이고 있었다.
남자가 손을 내밀었다. 재하의 손이었다. 길고 마른 손가락, 왼쪽 약지에 남아 있는 기타 줄 자국까지. 하은의 시선이 그 손 위에 멈추었다.
경호원이 다가오고 있었다. 발소리가 복도 타일 위에 울렸다. 남자의 손은 여전히 허공에 머물러 있었고, 하은은 그 손을 잡지도 뿌리치지도 않은 채 가방 속 수첩의 무게를 느꼈다.
남자의 셔츠 칼라 사이로 목덜미의 붉은 반점이 다시 보였다. 반점 하나가 맥박에 맞춰 미세하게 뛰고 있었다.
하은은 코트 주머니에서 손을 꺼내 남자의 내민 손 위로 가져갔다. 잡는 것이 아니었다. 손목을 뒤집어 그의 목덜미 쪽 셔츠 칼라를 두 손가락으로 잡아당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