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유출〉
숫자는 거짓말을 안 한다. 로그는 더더욱.
서윤이 모니터를 켠 건 새벽 두 시였다.
잠이 안 온 게 아니었다. 알람을 맞춰뒀다. 아르테미스 내부 접근 로그는 하루에 두 번—오전 아홉 시와 새벽 두 시—직접 확인했다. 보안팀이 있어도. 보안팀을 믿어도.
습관이 아니라 원칙이었다. 서윤은 세 가지를 남에게 맡기지 않았다. 커피, 로그, 그리고 결단.
오늘은 달랐다.
외부 IP. 접속 시각 오후 열한 시 사십칠 분. 다운로드 항목: 합병 시너지 분석 v4, 우호 지분 확보 전략 초안, 위임장 캠페인 설계안.
서윤은 화면을 두 번 읽었다. 세 번은 읽지 않았다.
전화기를 들었다.
"오 팀장. 지금 당장 와."
*
더 아크 52층 회의실.
새벽 세 시였다. 오 팀장이 노트북을 펼쳤다. 서윤이 팔짱을 끼고 섰다. 설희는 창가에 서 있었다. 한강이 어두웠다.
"외부 IP 역추적 결과입니다."
오 팀장이 화면을 돌렸다. IP는 VPN을 거쳤다. 종착점은 특정되지 않았다. 하지만 접속 경로가 남아 있었다. 아르테미스 내부 계정을 통해 들어왔다.
"내부 계정입니다."
서윤이 물었다.
"누구 계정이죠."
오 팀장이 멈췄다. 그 멈춤이 답이었다.
"확인 중입니다."
"확인 중이 아니라, 누구 계정인지 물었습니다."
오 팀장이 화면을 봤다. 다시 서윤을 봤다.
"전략기획팀 외부 공유 계정입니다. 사용자 특정이 안 됩니다."
서윤은 그 말을 들었다. 그리고 오 팀장 뒤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윤해인이 테이블 모서리에 서 있었다. 노트북을 들고. 보고서를 보면서. 표정이 없었다.
*
"유출 범위 정리됐습니다."
윤해인이 말했다. 목소리에 온도가 없었다.
"문서 세 건. 다운로드 용량 기준 전체의 22퍼센트. 재무 손실 환산은 불가합니다. 전략 노출 손실은 추정 불가."
서윤이 윤해인을 봤다.
"'추정 불가'가 무슨 뜻이죠."
"적이 이 자료를 어떻게 쓸지 모른다는 뜻입니다. 우호 지분 전략이 노출됐다면, 크로노스는 같은 기관에 먼저 접근할 수 있습니다."
침착했다. 너무 침착했다.
서윤은 그 침착함을 보면서 계산했다. 이건 훈련된 침착함인가. 아니면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의 침착함인가.
설희가 창가에서 돌아봤다.
"지금 당장 막아야 할 건 기관 접촉입니다. 우호 기관 다섯 곳에 오늘 오전 중 연락해야 합니다. 크로노스보다 먼저."
서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 팀장. 기관 리스트 뽑아. 해인 씨."
윤해인이 시선을 들었다.
"자금 쪽 시뮬레이션 돌려주세요. 크로노스가 같은 기관에 프리미엄 얹어서 들어올 경우, 우리 대응 가능 금액."
"언제까지요."
"한 시간 안에."
윤해인이 고개를 끄덕이고 나갔다. 문이 닫혔다.
오 팀장도 나갔다.
회의실에 서윤과 설희만 남았다.
침착한 사람이 범인이면 편하다. 문제는, 침착한 사람이 너무 많다는 거다.
설희가 서윤에게 물었다.
"해인 씨를 의심합니까."
서윤이 창밖을 봤다.
"아직은 절차로만 합니다."
*
오전 여섯 시. PH129.
설희는 소파에 앉아 있었다. 보고서가 무릎 위에 펼쳐져 있었다. 읽고 있지 않았다.
승현 라인에서 성명이 나왔다. '합병 적절성 재검토 요청'. 유출 자료를 명분으로 쓴 건 아니었다. 쓸 필요가 없었다. 분위기만으로 충분했다. 임시이사회 찬성 7. 그중 두 명이 흔들릴 수 있었다.
서윤이 주방에서 나왔다. 커피 두 잔.
설희 앞 테이블에 하나를 놓았다.
설희가 올려다봤다.
"에티오피아입니까."
"콜롬비아요. 에티오피아는 다 떨어졌습니다."
설희가 잔을 들었다.
"이건 기술 유출이 아닙니다."
서윤이 맞은편에 앉으며 말했다.
"전략 유출입니다. 목표가 합병이 아니라, 합병을 막는 거예요."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범인은 크로노스 쪽이 아닐 수 있어요. 내부에서 명분을 만드는 사람."
설희가 커피를 마셨다. 뜨거웠다.
"오빠한테 붙어 있는 사람이 우리 쪽에 있다는 뜻이군요."
서윤이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답이었다.
설희가 테이블 위 핸드폰을 봤다. 알림이 떠 있었다.
새 메일. 발신자: 알 수 없음.
제목: PH129—당신들, 연기 아니지?
첨부 파일: 이미지 1장.
설희가 열지 않았다. 서윤 쪽으로 핸드폰을 밀었다.
서윤이 화면을 봤다. 첨부 파일을 열었다.
사진이었다.
어제 리허설 중 두 사람이 손을 잡고 있는 장면이었다. 각도가 이상했다. 창밖에서 찍은 각도가 아니었다.
집 안에서 찍은 각도였다.
서윤이 사진을 봤다. 화면을 내려놓았다. 설희를 봤다.
집 안에서 찍힌 사진이었다.
보안은 뚫린 게 아니었다. 열어준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