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심문과 온도(審問과 溫度)
엿새가 지났다.
세가의 일상은 돌아오는 중이었다. 부서진 기와는 새것으로 올렸고, 마당의 핏자국 위에는 새 흙이 덮였다. 하지만 냄새는 남아 있었다. 흙 아래에서 올라오는 쇳내. 사람의 코에는 안 잡혀도, 전장을 겪어본 감각은 안다. 피는 덮어도 스며든다.
나는 아침 달리기를 마치고 땀을 식히는 중이었다.
엿새 동안 달려왔다. 스무 바퀴에서 서른 바퀴로 늘렸다. 천룡결 기초편의 호흡법을 달리기에 녹여넣는 과정이었다. 몸은 천천히 바뀌고 있었지만, 머릿속은 다른 곳에 가 있었다.
습격 당일 밤, 아버지는 생포된 침입자를 직접 심문했다. 서재 쪽에서 낮은 대화 소리가 새어나왔다. 결과는 알 수 없었다. 아버지는 나에게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엿새 동안.
오늘 아침, 때가 왔다.
━━━
운이 나를 데리러 왔다.
“가주님께서 부르십니다.”
엿새 동안 잠을 못 잔 눈. 피로가 눈 밑에 눌러앉아 있었다. 그런데도 걸음은 한 치 흔들림이 없다. 그게 더 무서웠다. 피곤해도 무너지지 않는 사람들만이, 진짜로 뭔가를 숨긴다.
서재 문은 열려 있었다.
안에 들어서자마자 냄새가 먼저 찔렀다. 피와 약초. 그리고 사람 하나를 ‘살려둔’ 냄새.
의자에 묶인 사내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검은 옷은 벗겨져 있었고, 어깨 붕대는 두껍게 감겨 있었다. 엿새를 버텼다는 뜻이다. 숨은 일정했다. 기절도, 떨림도 없다. 입을 닫은 자의 호흡.
아버지는 앉지 않았다. 서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앉으면 대화고, 서면 재판이다.
“금서각을 어찌 알았지.”
침입자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서른 중반. 눈이 맑다. 맞고도 흐려지지 않은 눈. 그 눈은 ’죽어도 된다’가 아니라, ’말하면 더 무섭다’고 말하고 있었다.
“…….”
아버지가 한 걸음 다가섰다.
공기가 무거워졌다. 살기라기보다, 존재감. 칼을 뽑지 않았는데도 방 안의 숨이 줄어드는 느낌이었다. 침입자의 어깨가, 아주 미세하게 떨렸다.
“모른다고 하겠지. 좋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한 톤 낮아졌다. 그 한 톤이 방 안의 온도를 바꿨다.
“그럼 묻겠다. 너희가 찾은 건… 책이냐, 열쇠냐.”
침입자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한 번. 아주 짧게. 반응이 나온 건 ’열쇠’가 아니라 ’책이냐’에서였다.
저건 훈련된 입이 아니라, 훈련된 공포다. 입은 닫을 수 있지만, ’책’이라는 단어에 눈이 먼저 반응한 건 의지가 아니라 각인이다. 누군가에게 ’그것만은 발설하면 죽는다’고 새겨진 자의 떨림.
그 짧은 흔들림이, 답이었다.
“열쇠를 찾는 놈은 문을 여는 법을 안다.”
한 박자.
“문을 여는 법을 아는 놈은…… 안에 있다.”
침입자의 입이 열렸다. 그리고 다시 닫혔다. 삼킨 것이다. 아버지는 그 ’삼킨 순간’을 봤다. 나도 봤다.
심문은 더 이어졌다. 결정적인 정보는 나오지 않았다. 침입자는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았다. 다만 아버지가 던진 질문들의 궤적――‘금서각을 어떻게 알았나’, ‘얼마 전부터 감시했나’, ‘너희 몇이 안팎으로 나뉘었나’――이 질문들이 그리는 그림은 명확했다.
아버지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심문은 확인이지 탐색이 아니다.
━━━
침입자가 끌려나간 뒤, 서재에는 아버지와 나만 남았다.
아버지가 탁자 위에서 무언가를 집어 들었다. 연회색 금속이 촛불에 반사되었다.
금서각 열쇠.
“막내야.”
“예.”
아버지가 열쇠를 손가락 사이에서 굴렸다. 검지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무인의 손버릇이 아니라, 무언가를 억누르는 손이다.
“비전이 빠졌다면.”
열쇠가 멈추었다.
“훔친 놈보다, 먼저 알고 있던 놈이 있다.”
심장이 뛰었다. 금서각의 빈자리를 아버지는 알고 있었다. 어젯밤 이전부터.
내부에 협조자가 있다.
아버지가 나를 봤다. 시험의 눈이 아니었다. 경고의 눈이었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아버지.”
서재를 나왔다. 복도를 걸으면서 한 가지만 생각했다.
열쇠냐 책이냐. 열쇠를 아는 자는 안에 있다.
그 질문은 침입자에게 던진 것이면서, 동시에――이 서재의 벽 너머에 있을 누군가에게도 던진 것이다.
차가운 아침 바람이 복도를 훑고 지나갔다.
세가의 피 냄새는 아직 다 씻기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