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화. 첫 걸음
심마가 올라온 뒤 이틀 동안, 정좌호흡을 다시 시작하지 못했다.
기감은 있었다. 잡혔다. 달리기 중에 열두 호흡이면 잡히고, 세 호흡이면 돌아왔다. 하지만 깊이 들어가는 것이 두려웠다. 기를 안으로 돌리면 그것이 또 올라올까 봐.
대신 달리기에 집중했다. 안으로 가지 않고, 밖에 머물렀다.
둘째가 서고에서 물었다.
"이틀째 정좌를 안 하고 있지."
"예."
"안에서 뭔가 올라왔나."
"……예. 사람이 올라왔습니다. 죽은 사람."
둘째의 눈이 흔들렸다. 7세 아이의 입에서 나올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파고들지 않았다.
"기초편 세 번째 장에 답이 있다."
"마음에 틈이 있으면 기가 역류한다."
"그리고 네 번째 장은?"
"거울이 흐리면 비추는 것도 흐리다."
"거울을 닦으려면 거울을 봐야 한다. 두려워하는 것을 들여다봐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지금은 안 봐도 된다."
둘째가 차를 한 잔 따라주었다.
"들어가지 않고 쓸 수 있는 방법도 있다. 안이 아니라 밖으로. 느끼되 잠기지 않는 것. 기감을 몸 안이 아니라 바깥으로 펼쳐봐라."
그 말이 씨앗이 되었다. 몸을 쓰는 수련은 심마가 올라오지 않았다. 기를 깊이 끌어올리지 않으니까. 달리면서 호흡을 다듬고, 호흡을 다듬으면서 기감을 유지했다. 안으로 가지 않고, 밖에 머물렀다.
삼일째 아침.
달리기 중에 발상이 떠올랐다.
안으로 가면 심마가 올라온다. 그러면 — 안으로 가지 않으면 된다.
기감을 몸 안이 아니라 밖으로 쓴다. 깊이 대신 너비. 안을 보지 않고 밖을 읽는다.
전생에서 내가 제일 잘한 것은 싸우는 것이 아니라 전장을 읽는 것이었다. 적의 진형을 읽고, 병력의 움직임을 읽고, 바람의 방향까지 읽어서 전장 전체를 한 장의 그림으로 만들었다. 그 그림 위에서 수를 두었다.
기감으로 같은 것을 할 수 있다면.
달리면서 시도했다. 기감을 몸 안이 아니라 발바닥 아래로. 발이 딛는 땅의 밀도. 바람이 실어오는 기의 파편. 스치는 나뭇잎의 떨림. 전장의 눈을 기감에 얹는 것이다.
처음엔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세 바퀴. 다섯 바퀴. 기감이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안으로 돌아가려 했다. 억지로 밖으로 밀어냈다.
일곱 바퀴째. 연무장을 지나는 순간 — 뭔가가 잡혔다.
큰형이 연무장에서 검을 쓰고 있었다. 마당 반대편이었다. 거리로 치면 이십 보 이상. 눈에는 보이지만 세부는 보이지 않는 거리. 그런데 — 큰형의 검이 허공을 가르는 순간, 공기가 갈리는 것이 피부에 닿았다.
눈이 아니라 기감으로 느꼈다.
검이 내려간다. 공기가 갈린다. 갈린 자리에 빈 곳이 생긴다. 빈 곳이 채워진다. 그 리듬이 — 내 호흡과 같은 박자로 느껴졌다. 13화 연무장에서 스쳤던 감각이었다. 그때는 찰나였다. 이번에는 — 2초간 유지되었다.
발이 멈추었다. 숨이 차지 않은데도.
"……이거다."
공간을 읽는 감각. 전장의 눈이 기감과 겹쳐지는 순간. 기를 안이 아니라 밖으로 쓰는 방법. 심마를 우회하면서도 기감을 성장시킬 수 있는 길.
감각이 사라졌다. 2초. 그리고 끝. 다시 잡으려 했지만 잡히지 않았다. 아직 재현할 수 없다. 하지만 길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삼류 완숙.
기감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상태. 기를 운용하거나 무기에 싣는 것은 여전히 불가능하지만, 기의 흐름을 희미하게나마 상시로 느끼는 상태. 그리고 — 이방원만의 특이점. 기감을 안이 아니라 밖으로 쓴다. 전장의 눈의 가장 원시적인 형태.
오후. 아버지가 연무장으로 나를 불렀다.
아버지와 운이 나란히 서 있었다. 아버지가 운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 아이에게 기초 보법을 가르쳐라."
기초 보법. 드디어 몸을 쓰는 무공의 시작이었다. 호흡과 달리기만으로 한 달을 보낸 뒤에, 처음으로 '무(武)'의 문이 열리는 것이다.
운이 시범을 보였다. 천룡세가의 기초 보법 — 지룡보(地龍步). 이름 그대로 땅을 딛되 용의 움직임을 담은 보법이었다. 진, 퇴, 좌, 우. 네 방향의 기본 이동. 한 발을 딛고 무게를 옮기고 다시 딛는다. 단순해 보이지만, 발의 각도와 무릎의 높이, 허리의 회전이 모두 맞아야 한다.
따라했다. 7세의 다리가 제대로 따라가지 못했다. 팔이 짧아서 균형이 무너졌다. 무릎이 굳어서 방향 전환이 느렸다.
하지만 — 발의 방향은 맞았다.
운이 시범을 한 번 보여줬을 뿐이었다. 그런데 발의 각도가 이미 맞아 있었다. 전생의 궁술 자세에서 발의 위치가 핵심이었고, 창술의 보법에서 무게중심의 이동이 핵심이었다. 수십 년간 몸에 새겨진 '몸의 논리'가 이 아이의 몸에서 살아나고 있었다.
운의 눈이 미세하게 커졌다. 내색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봤다. 운의 시선이 내 발에서 내 눈으로 올라왔다가, 다시 내 발로 내려가는 것을.
속도와 힘은 7세 수준이다. 하지만 각도가 수련 반년차다.
운이 입을 열었다.
"……다시."
다시 했다. 세 번째에서 무릎이 풀렸다. 네 번째에서 허리가 맞았다. 다섯 번째에서 — 넘어졌다.
7세의 근력에는 한계가 있다. 정확한 각도를 알아도 몸이 따라오지 못한다. 무릎이 버티지 못하고 접혔다. 손바닥에 흙이 묻었다.
일어났다. 다시 했다.
운이 물었다.
"사공자. 보법을 배운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런데 발의 각도가 맞습니다."
"……운이 좋았나 봅니다."
"운이 아닙니다. 몸이 알고 있는 겁니다."
운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하지만 추궁하지 않았다.
"……다시."
다시 했다. 여섯 번째. 일곱 번째. 여덟 번째에서 또 넘어졌다. 무릎이 까졌다.
일어났다. 다시 했다.
운이 나를 내려다봤다.
"충분합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아버지를 돌아봤다.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의 표정은 읽을 수 없었다. 하지만 돌아서는 아버지의 걸음이, 올 때보다 반 보 느렸다. 생각에 잠긴 사람의 걸음이다.
밤.
침상에 누워 기감을 열어두었다. 안이 아니라 밖으로. 세가 전체의 기운이 희미하게 깔렸다. 사람들의 호흡이 점처럼 찍혔다.
달리기에서 잡았던 '공간 읽기' 감각을 다시 불러보려 했다. 잡히지 않았다. 아침에 2초간 유지된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 2초가 남긴 잔상은 선명했다. 공기가 갈리고, 빈 곳이 채워지고, 그 리듬을 읽는 감각. 재현할 수 없지만, 방향은 알았다.
기감의 범위를 넓혀봤다. 방 안에서 복도로. 복도에서 마당으로. 마당에서 담장으로.
담장 너머에서 — 기운이 느껴졌다.
10화에서 느꼈던 것과 같았다. 누군가가 밖에서 세가를 보고 있다. 이번에는 착각이 아니었다. 확실했다. 기감이 삼류 완숙에 도달한 지금, 담장 너머의 기운을 구분할 수 있었다.
그런데 — 하나가 아니었다. 둘이었다.
하나는 전에도 있었던 것. 익숙한 밀도. 11화에서 바람의 결이 틀어졌던 담장 동남쪽 방향. 다른 하나는 새로운 것이었다. 첫 번째보다 더 강했다. 훨씬.
첫 번째가 일류라면, 두 번째는 — 절정에 가까웠다.
손이 이불을 쥐었다. 전생의 감각이 소리쳤다.
이건 정찰이 아니다. 품정(品定)이다. 물건의 값을 매기는 것이다. 매길 만한 가치가 있으면 사고, 없으면 부순다. 두 명이 와서 값을 매긴다는 것은, 혼자서 결정할 수 없는 규모의 거래라는 뜻이다.
누가, 이 세가의 가격을 재고 있다.
기감이 풀렸다. 유지할 수 없었다. 삼류 완숙이라 해도, 이 정도의 거리와 밀도를 오래 유지하는 건 무리였다.
이불 속에서 주먹을 쥐었다.
아버지에게 말해야 한다. 담장 너머에 둘이 있다. 하나는 일류, 하나는 절정급이다. 세가를 재고 있다.
하지만 그 전에, 한 가지 확인해야 할 것이 있었다.
15년 전부터 세가에 출입해온 약재 상인. 곽현에게 죽통을 전달한 사람. 서역 사파의 먹. 그리고 지금, 담장 너머의 절정급.
이것들이 하나로 이어진다면 — 천룡세가를 노리는 것은 소규모 도적이나 경쟁 세가가 아니다. 조직이다. 세가를 삼킬 수 있는 규모의.
전생에서 이런 패턴을 본 적이 있다. 이성계가 고려를 먹기 전, 10년에 걸쳐 한 것과 같은 패턴.
정찰하고, 내부에 심고, 값을 매기고, 때가 되면 — 삼킨다.
때가 되면.
언제인가는 모른다. 하지만 시작은 이미 되어 있었다.
눈을 감았다. 잠이 오지 않았지만 눈을 감았다.
전생의 왕은 잠이 오지 않는 밤에도 눈을 감을 줄 알아야 했다. 감은 눈이 열린 눈보다 더 많은 것을 보니까.
내일부터 다시 정좌호흡을 시작한다. 심마가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담장 너머의 절정급이 더 두렵다. 두려운 것이 두 개일 때, 더 큰 두려움이 작은 두려움을 삼킨다.
이것이 내가 싸우는 방식이다. 항상 그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