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화. 담장 너머의 숨
잠들지 못했다.
손끝에서 발끝까지 지나간 물줄기의 잔상이, 새벽이 되도록 팔뚝 안쪽에 남아 있었다. 물줄기라고 했지만 정확하지 않다. 차라리 실에 가까웠다. 얇고 가늘고, 잡으려 하면 끊어질 것 같은 한 올의 실. 천룡결 기초편이 말하는 기(氣)의 흐름이라면, 이것은 흐름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것이었다.
한 뼘. 겨우 한 뼘.
그런데 문제는 한 뼘이 아니었다.
담장 너머에서 멈춘 숨. 눈을 감으면 아직도 그 감각의 꼬리가 남아 있었다. 기감이 열리는 찰나, 세상의 밀도가 한 겹 벗겨지는 것 같았고, 그 벗겨진 틈새로 담장 너머의 무언가가 잡혔다. 숨이 멈추는 감각. 놀라서 멈추는 숨이 아니었다. 들킬까 봐 멈추는 숨이었다. 전장에서 매복병의 숨이 그랬다. 수천 번 구분해왔다.
문제는 — 그 순간을 감지할 수 있는 자가, 세가 담장 밖에 서 있었다는 것이다. 7세 아이의 기감이 열리는 것을 알아채려면 최소 일류(一流) 이상이어야 한다. 일류가 세가 주변에 서성이고 있다. 경비에 걸리지 않고.
새벽이 밝아오자 몸을 일으켰다. 머리가 맑지 않았다. 밤새 뒤척인 탓도 있지만, 기감의 잔상이 감각을 흐리고 있었다. 어젯밤의 선명함은 이미 없다. 잡으려 해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거미줄 같았다.
달리기를 나갔다.
마당을 한 바퀴 돌 때마다 담장 쪽으로 시선이 갔다. 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린 것은 아니다. 발이 그쪽으로 기울었다. 담장은 조용했다. 기와 위에 이슬이 맺혀 있고, 담 아래 흙은 어젯밤 비 없이 고요했다. 발자국도, 긁힌 자국도, 이끼의 변형도 없었다.
없다는 것이 증거가 된다. 일류 이상이 서 있었는데 흔적이 없다면, 의도적으로 지운 것이거나, 처음부터 땅을 밟지 않은 것이다. 경신술.
세 번째 바퀴를 돌았다. 담장의 동남쪽 모서리를 지날 때, 바람의 결이 미세하게 틀어졌다. 시각으로는 잡을 수 없는 것이었다. 바람이 담장을 타고 흐르는데, 한 지점에서만 흐름이 갈라진다.
확신은 없다. 하지만 발밑의 흙을 한번 밟아보았다. 가볍게. 7세 아이가 달리다 멈추는 동작으로. 발끝에 전해지는 흙의 밀도가 주변과 달랐다. 눌린 적이 있는 흙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정도로 압착되어 있었다.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기엔 부족했다. 하지만 의심은 남겼다.
달리기를 마치고 물을 마시러 연무장 쪽으로 갔다. 셋째가 양동이를 옮긴 뒤로, 물을 마시려면 연무장을 지나야 한다. 이 사소한 불편이 루틴이 되어가고 있었다. 루틴이 되는 순간 통제가 완성된다. 알면서도 받아들이는 것은, 지금 싸울 자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돌아서는데, 서고 입구에서 둘째가 내려오고 있었다.
"막내."
"이형."
둘째가 나를 보더니 반 보 멈추었다. 눈이 가늘어졌다.
"숨이 달라졌다."
멈추었다.
"어제까진 이렇지 않았는데. 들숨과 날숨 사이에 빈 박자가 하나 생겼다."
이 형은 호흡의 리듬 변화까지 잡아내는 사람인가. 아니, 기초편을 먼저 뗀 사람이니까 천룡결 호흡의 구조를 안다. 내 호흡이 다음 단계에 접근하고 있다는 것을 읽은 것이다.
"달리기를 좀 더 했습니다."
"거짓말은 아니겠지. 하지만 전부도 아니지."
둘째의 눈이 살짝 움직였다. 납득하지 않았다. 하지만 더 파지 않았다.
"좋다. 네 속도에 맡기마."
돌아서려는데 둘째가 덧붙였다.
"오늘은 기초편 네 번째 장부터 한다. 올라와라."
기초편 네 번째 장. 심마를 '인식'하는 법. 세 번째 장에서 코피를 흘리고 멈춰 있던 곳의 다음이다. 둘째가 순서를 기억하고 있었다.
"예, 이형."
서고 2층에서 둘째와 마주앉아 기초편을 읽었다. 네 번째 장의 핵심은 간명했다. '기는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니, 거울이 흐리면 비추는 것도 흐리다.' 심마를 다스리려면 먼저 심마가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부정하면 기가 먼저 안다. 기는 거짓말을 못 한다.
그 구절을 읽는 동안 가슴 한가운데가 미세하게 떨렸다. 선죽교의 밤이 올라오려 했다. 누르지 않았다. 대신 호흡을 한 번 깊게 쉬었다. 올라오려는 것을 억누르지 않되, 따라가지도 않는다.
둘째가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지금 뭔가 올라왔지."
부정하지 않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올라오게 두되 잡히지 마라. 물 위에 나뭇잎이 뜨는 것처럼. 나뭇잎은 물에 뜨지만, 물속으로 끌려가진 않는다."
해설이 아니었다. 체험에서 나온 말이었다. 이 형은 천룡결을 이론이 아니라 경험으로 아는 사람이다.
"이형도 올라온 적이 있습니까."
둘째가 잠시 멈추었다. 서책을 내려놓았다.
"누구에게나 있다. 기가 깊어지면 마음도 깊어지니까."
더 묻지 않았다. 둘째의 눈에 잠깐 스친 것이 있었다. 기억이 아니라 기억의 그림자. 이 형도 심마를 안고 있는 것이다.
해설이 끝나갈 무렵, 서고 창문으로 마당이 보였다. 연무장에서 큰형이 목검을 휘두르고 있었고, 그 옆에서 셋째가 팔짱을 끼고 지켜보고 있었다. 셋째의 시선은 큰형의 검이 아니라 서고 2층 창문을 향하고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셋째가 웃었다. 입꼬리만 올라가고 눈은 웃지 않는 그 특유의 미소.
나는 시선을 거두고 기초편으로 돌아갔다.
오후가 되자 운이 찾아왔다.
"사공자, 가주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말투가 공식적이었다. 전갈의 무게가 있다는 뜻이다.
"달리기만으로는 부족하다 하셨습니다. 내일부터 유시(酉時)에 정좌호흡(靜坐呼吸) 시간을 추가합니다. 서재 옆 작은 방을 비워두셨습니다."
"정좌호흡이요?"
"예. 앉아서 하는 호흡 수련입니다. 달리기는 몸을 쓰는 동(動)이고, 정좌호흡은 마음을 쓰는 정(靜)이라 하셨습니다."
아버지가 직접 지시하지 않고 운을 통해 전달한 것. 그리고 달리기만 하던 루틴에 정좌호흡을 추가한 것. 아버지가 나의 기감 도달 가능성을 감지하고 환경을 조성하기 시작한 것이다.
"운."
"예, 사공자."
"아버지께서 직접 말씀하지 않으신 이유가 있습니까?"
운이 잠시 나를 보았다. 7세 아이가 할 법하지 않은 질문이었다. 하지만 운은 답했다.
"가주님의 가르침은 세 가지입니다. 직접 하시는 것, 사람을 통해 하시는 것, 조건만 깔아주시는 것. 이번은 세 번째입니다."
"왜 세 번째입니까?"
"직접 가르치면 사공자께서 아버지의 뜻에 맞추려 하실 것이고, 사람을 보내면 그 사람의 해석이 끼기 때문입니다. 조건만 깔면 — 사공자 스스로 찾으십니다."
운의 눈이 고요했다. 이 사람은 아버지의 뜻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 자체를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감사합니다. 아버지께 전해주십시오."
운이 고개를 숙이고 돌아갔다. 운의 걸음은 한결같았다. 여기 온 뒤로 단 한 번도 리듬이 흐트러진 적이 없다.
저녁. 정좌호흡을 처음 시도했다.
서재 옆 작은 방은 사방 한 장(丈) 남짓한 공간이었다. 벽에 아무것도 걸려 있지 않고, 바닥에 두꺼운 방석 하나만 깔려 있었다. 촛불을 켜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앉았다. 다리를 접고, 허리를 세우고, 눈을 감았다.
천룡결 기초편의 호흡법. 들이쉬되 의식하지 말라. 내쉬되 놓아라. 고르게 쉬되 잊어라.
달리기 중에는 이미 이 호흡을 녹여쓰고 있었다. 하지만 가만히 앉아서 하는 것은 달랐다. 움직임이 없으니 잡념이 더 선명해졌다. 담장 너머의 숨, 셋째의 미소, 둘째의 관찰하는 눈, 기초편의 심마 구절.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호흡을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열둘째 호흡에서 잡념이 줄었다. 스물째 호흡에서 몸의 무게가 가벼워졌다. 서른째 호흡에서 — 기감이 잡혔다.
희미했다. 어젯밤의 선명함에 비하면 이슬 위에 비친 달빛이었다. 하지만 있었다. 몸 안 어딘가에서 가느다란 흐름이 돌고 있었다. 잡을 수 없지만 느낄 수 있었다. 코끝에 먼 꽃향기가 스치는 것처럼.
그대로 유지하려 했다. 1분. 아니, 반 분도 안 됐을 것이다. 집중이 흐트러지자 이슬이 증발하듯 사라졌다.
다시 잡으려 했다. 잡히지 않았다. 한 번 놓으면 돌아오지 않는다.
눈을 떴다. 어둠 속에서 자기 숨소리만 들렸다. 욕심을 부리면 안 된다. 기초편이 말하지 않았나. 서두르면 안 된다고.
그때 — 방 밖의 공기가 미세하게 변했다.
기감으로 잡은 것이 아니다. 이미 기감은 풀려 있었다. 공기의 흐름이 틀어졌다. 복도에 바람이 없는데 방문 아래 틈새로 공기가 밀려왔다. 누군가 복도에 서 있으면 공기가 밀린다.
숨을 고르게 유지했다. 잠든 아이의 호흡처럼.
발소리가 없었다.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서 있었던 것이다. 언제부터인지 모른다.
3호흡. 공기의 흐름이 돌아왔다. 사라졌다.
방문을 열고 복도로 나갔다. 비어 있었다. 왼쪽은 서재, 오른쪽은 안채. 양쪽 모두 조용했다.
시선을 내렸다. 바닥에 아무것도 없었다. 당연히 없었다.
하지만 — 냄새가 있었다. 아주 희미하게. 약초 냄새. 서고에서 맡을 수 있는 먹 냄새도 아니고, 연무장의 땀 냄새도 아닌, 약재를 달이는 냄새. 세가 안에서 약재를 쓰는 곳은 의방(醫房)뿐이다.
복도 바닥에 손바닥을 대보았다. 차가웠다. 사람이 서 있었다면 체온이 남아야 한다. 나무 바닥은 열을 빨리 식힌다. 하지만 한 곳만 미세하게 다른 온도가 남아 있었다.
오른쪽. 안채 방향.
정보 둘.
냄새의 출처는 의방. 발이 향한 방향은 안채. 그리고 안채에서 이 시각에 복도를 지나는 사람은 제한적이다.
밖에도 있고, 안에도 있다. 밖의 것은 일류 이상이고, 안의 것은 발소리를 죽일 수 있으며, 약재 냄새를 풍긴다.
방으로 돌아왔다. 방석 위에 다시 앉았다. 잠을 자기보다 한 번 더 시도해보기로 했다. 기감이 아니라 호흡만. 기초편이 말한 것. 고르게 쉬되 잊어라.
열 번. 스물. 서른.
기감은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호흡이 고르게 안착했다. 잡념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잡념 위에 호흡이 얹혀진 것이었다. 물 위에 뜬 나뭇잎. 둘째가 해준 비유가 몸에서 실현되고 있었다.
방석에서 일어나 이불을 폈다. 누우면서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확인했다. 코를 가까이 대고 복도 쪽 문틈의 냄새를 맡았다.
약재 냄새는 이미 사라져 있었다. 공기 중에 남는 시간으로 역산하면, 그 사람이 서 있던 시간은 길어야 반 시진이었다.
반 시진. 내가 정좌호흡을 하는 동안 내내 서 있었다는 뜻이다.
지켜본 것인가. 아니면 지킨 것인가.
구분이 안 됐다. 아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