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화. 네 발가락
아침이 왔다.
달리기 루트를 바꿨다. 어제까지는 마당 중앙을 도는 원형이었다. 오늘부터는 세가 외곽을 따라 도는 타원형으로. 자연스럽게 서고 뒤 담장을 지나고, 경비 초소를 스치고, 안채 쪽 복도 입구까지 시야에 넣을 수 있는 경로다. 7세 아이가 달리기 코스를 바꾸는 건 의심받을 일이 아니다. 아이는 지루하면 길을 바꾼다.
열두 바퀴째. 서고 뒤 담장 아래 흙을 지나갔다. 비에 젖었다 마른 흙 위에 — 멈추지 않았다. 시선만 스쳤다.
있었다.
네 발가락.
닷새 전에 봤던 것과 같은 흔적이었다. 엄지부터 넷째 발가락까지만 찍혀 있고, 새끼발가락이 없다. 아니, 없는 게 아니라 접혀 있다. 발가락을 접어 딛는 보법. 3화에서 처음 발견하고, 6화에서 다시 보고, 9화에서 조롱당한 그 발자국.
달리기를 마치고 물을 마시는데, 연무장에서 돌아온 큰형이 다가왔다.
"막내. 요즘 루트를 바꿨더구나."
"네, 형. 같은 길만 뛰면 재미없어서요."
"그래? 나는 같은 길을 천 번 뛰어도 재미있는데."
큰형이 수건으로 목의 땀을 닦으며 옆에 앉았다.
"네가 달리는 걸 봤는데, 호흡이 많이 좋아졌다. 처음엔 세 바퀴만 돌아도 헐떡였는데."
"기초편의 호흡법이 도움이 됩니다."
"기초편이라. 둘째가 가르치는 거지? 그 녀석 해설이 기가 막히긴 하지."
"형은 기초편을 어떻게 뗐습니까?"
큰형이 하늘을 올려다봤다.
"나는 읽으면서 뗀 게 아니라 검을 휘두르면서 뗐다. 아버지가 그러셨다. 네 몸이 먼저 알면 글자는 나중에 따라온다고."
"몸이 먼저 아는 것과 글자가 먼저 아는 것, 어느 쪽이 빠릅니까?"
큰형이 잠시 생각했다. 무인치고 드문 모습이었다.
"다르다. 빠르고 느린 게 아니라 다른 거다. 내 검은 몸에서 시작했고, 둘째의 이해는 머리에서 시작했다. 둘 다 맞는데, 합쳐지면 더 강해지겠지."
솔직한 대답이었다. 가장 강한 형이 자신의 부족을 인정하는 것.
아이의 기억을 뒤졌다.
천룡세가의 막내가 알 수 있는 무림 상식은 제한적이다. 하지만 큰형이 가끔 동생들에게 들려주는 무림담(武林譚) 속에 단서가 있었다. 큰형이 "사파 놈들은 걸음부터 다르다"고 했던 말. 정파 무인의 보법은 발바닥 전체로 대지를 딛는다. 뿌리를 내리듯. 사파의 잠행술(潛行術) 중 일부는 발가락을 접어 접지면적을 줄인다. 소리를 죽이기 위해서. 발가락이 적게 찍힌다는 것은, 그만큼 가볍게 딛는다는 뜻이고, 가볍게 딛으면서도 흔적이 남았다는 것은 — 의도적으로 남긴 것이다.
하오문(下五門)이나 살막(殺幕) 계열의 고급 경신술.
이 정보를 둘째에게 줄까. 잠시 생각했다가 멈추었다. 지금까지 정보를 둘째에게 먼저 흘리고, 둘째가 아버지에게 보고하는 구조를 썼다. 편하지만 위험하다. 둘째에게 의존할수록, 둘째가 내 눈이 되고 내 손이 된다. 왕이 하나의 신하에게 눈과 손을 모두 맡기면, 그 신하가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게 된다.
혼자 가지고 있기로 했다.
"투자엔 수익을 기대하지만, 전부를 맡기면 빚이 된다."
속으로 중얼거리고는, 자기 자신에게 혀를 찼다. 아직도 이 버릇이다. 사람을 수단으로 계산하는 것. 전생에서 하륜을 쓸 때도, 이숙번을 내칠 때도 같은 계산이 돌아갔다. 그 계산의 끝에 항상 누군가가 죽었다.
이번에는 죽이지 않는다.
오후. 운이 다시 찾아왔다.
"사공자. 가주님께서, 내일부터 대공자님의 연무를 옆에서 지켜봐도 좋다 하셨습니다."
연무 관람 허가. 직접 수련이 아니라 '보는 것'만 허용한 것이다.
전생에서 이성계의 사냥을 처음 관람한 것이 열한 살이었다. 아버지의 활이 허공을 가를 때, 화살이 사슴의 목을 꿰뚫는 소리보다 시위가 울리는 소리가 더 선명했다. 시위를 당기는 순간의 호흡, 발의 각도, 어깨의 높이. 관람이 학습보다 빠른 적이 있다. 보는 것만으로 몸이 기억하는 것들이 있다.
아버지는 그걸 알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그냥 막내에게 구경시키는 것인가.
어느 쪽이든, 기회다.
"감사합니다. 전해주십시오."
해가 기울기 시작할 때, 세가 외곽 초소를 지나는 길에 사람과 마주쳤다.
중년의 무인이었다. 마흔 중반. 검게 그을린 피부에 손마디가 굵다. 손등에 흰 흉터가 두 줄 나 있고, 검지의 굳은살이 두껍다. 창을 오래 쥔 손이다. 검이 아니라 창. 경비 무인의 차림이었다. 가슴에 천룡세가의 문양이 새겨진 경비복. 허리춤에 단도(短刀) 하나.
눈이 마주쳤다.
사내의 시선이 미세하게 빗나갔다. 나를 보다가, 반 박자 뒤에 시선을 떨어뜨렸다.
시선을 피하는 데는 두 가지가 있다. 윗사람을 존중해서 피하는 것은 고개부터 숙인다. 들킬까 봐 피하는 것은 눈동자가 먼저 간다. 고개는 그대로인데 눈만 옮기는 것. 이 사내는 후자였다.
"……수고하십시오."
내가 먼저 인사했다. 7세 막내가 경비 가신에게 인사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사내가 고개를 숙였다.
"사공자. 편히 계십시오."
목소리가 고르다. 떨리지 않는다. 그런데 목 옆의 근육이 미세하게 경직되어 있었다. 긴장한 사람이 목소리를 통제할 때 나타나는 반응이다. 전생에서 수천 명의 보고를 받으며 익힌 판독이었다. 목소리는 속일 수 있지만 목의 근육은 속이지 못한다.
스쳐 지나갔다. 돌아보지 않았다. 하지만 발소리를 세고 있었다. 사내의 걸음은 정확했다. 경비 무인답게 일정한 간격. 하지만 오른발에 무게가 더 실린다. 왼쪽 무릎에 오래된 부상이 있다는 뜻이다.
나중에 아이의 기억을 뒤져봤다. 경비 가신 중 저 얼굴을 본 적이 있었다. 습격이 있던 밤, 동쪽 별채 앞에서 다른 경비들과 함께 뛰어가던 인물 중 하나.
곽현(郭玄). 경비 라인 10년차.
"수고하십시오."
내가 먼저 인사했다.
"사공자. 편히 계십시오."
"이름이 어떻게 되십니까?"
"……곽현이라 합니다."
"10년이라 들었습니다. 오래 계셨네요."
곽현의 손가락이 허리춤의 단도 자루를 스쳤다. 불안할 때 무기를 만지는 것은 무인의 습관이다.
"밤 초소는 춥지요. 담요라도 하나 더 받으셨으면 합니다."
"……사공자께서 그런 것까지 신경 쓰실 필요는 없습니다."
두 번째 대답에서 말 앞에 '아'가 붙지 않았다. 준비된 문장이다. 이 사내는 누군가와의 대면을 연습해왔다.
아이의 기억 속에서 곽현은 존재감이 없는 사람이었다. 조용하고, 성실하고, 눈에 띄지 않는. 경비 가신 중 가장 범용한 인물. 그래서 기억에도 거의 없는.
존재감이 없는 사람은 두 종류다. 진짜로 평범한 사람과, 평범하게 보이려 노력하는 사람.
밤.
정좌호흡 수련. 작은 방에 앉아 눈을 감았다.
어젯밤보다는 빨리 기감이 잡혔다. 스물한 번째 호흡. 여전히 안개 같았지만, 안개의 밀도가 미세하게 높아졌다. 진전이라고 부르기에는 초라하지만, 없는 것보다는 있다.
기감을 유지한 채 의식을 넓혀보았다. 방 안에서 방 밖으로. 복도의 공기. 서재의 벽.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범위가 이 방 한 칸도 안 되는 것이다.
그래도 억지로 밀어붙이지 않았다. 기초편의 가르침. '서두르면 안 된다.'
한 뼘이면 한 뼘만큼만 쓴다.
호흡을 풀고 눈을 떴다. 어둠 속에서 가만히 앉아 있는데, 방 밖에서 소리가 들렸다.
발소리.
이번에는 숨기지 않은 발소리였다. 쿵, 쿵, 쿵. 무거운 걸음이 복도를 지나간다. 운의 걸음이 아니다. 운은 더 가볍다. 이건 — 초소 교대를 마친 경비 무인의 걸음이다. 창을 오래 쥔 손의 주인. 왼쪽 무릎에 부상이 있는 걸음.
곽현.
창문 틈새로 내다봤다. 복도를 지나 안채 쪽으로 가는 뒷모습이 보였다. 초소에서 돌아가는 경로라면 이 복도를 지날 이유가 없다. 경비 숙소는 반대편이다.
곽현의 걸음이 안채를 지나 세가 외곽으로 빠져나갔다. 걸음이 빨라졌다. 안채를 벗어나는 순간 —
발소리가 사라졌다.
경신술. 경비 가신의 경신술이 이 정도라면 최소 이류(二流) 이상이다. 경비 라인의 일반 가신이 이류일 리가 없다. 세가의 경비 가신 기준은 삼류 상위에서 이류 하위다. 이류 이상이면 경비가 아니라 핵심 전력으로 편성된다.
곽현은 자기 실력을 숨기고 있다.
실력을 숨기는 이유는 하나다. 본업이 경비가 아닌 것이다.
이불을 덮고 누웠다. 천장의 서까래를 세면서 생각했다. 곽현. 경비 10년차. 존재감 없음. 실력 은폐. 야간 비정상 동선. 그리고 나와 눈이 마주쳤을 때의 시선 회피.
아직 확신은 없다. 하지만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