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열 시 십칠 분.
강이준은 유니온 라운지의 통유리 앞에 서서 테헤란로를 내려다보았다. 마천루들이 겨울 햇빛을 받아 날카롭게 빛났다. 손에 든 에스프레소 잔은 이미 온기를 잃었다. 차갑게 식은 커피를 한 번에 털어 넣는 순간, 쓴맛이 혀끝에 들러붙으며 미간을 좁혔다. 이 감각이 싫지 않았다. 오히려 이것이 오르트 광고 기획 15층에서 살아남는 방식이었다. 적어도 그가 스스로에게 설명해온 방식은 그랬다.
자동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에어 실린더가 밀리는 낮고 부드러운 마찰음. 강이준은 유리창에 비친 입구를 확인하기도 전에 이미 알았다. 아르케 타워 안에서 그 속도로, 그 무게로 문을 여는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서도윤이었다.
블랙 잭 스페셜티 커피 컵을 오른손에 들고, 왼손은 바지 주머니에 꽂은 채였다. 회색 수트 재킷의 칼깃이 형광등 불빛 아래서 선명하게 살아 있었다. 그는 라운지 중앙을 가로질러 걸어오면서도 강이준을 보지 않았다. 혹은 보면서도 보지 않는 척하는 쪽에 가까웠다.
발소리가 멎었다.
강이준의 구두 끝을 건드리는 감각이 왔다. 툭. 가볍고 무심한 접촉이었다. 서도윤이 그를 스치듯 지나쳐 창가 반대편 소파에 앉으며 커피 컵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자리가 없어서요."
라운지는 텅 비어 있었다.
강이준은 잔을 내려놓지 않았다. 손가락 끝에 아직 차가운 도자기의 무게를 느끼며 천천히 서도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서도윤은 이미 태블릿을 꺼내 들고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마치 방금 구두 끝을 찬 일 따위는 없었던 것처럼.
"서 팀장."
서도윤이 화면에서 눈을 들지 않았다.
"강 팀장."
"이 층 라운지에 지정석 개념이 생긴 건 모르고 있었는데요."
"저도 몰랐어요." 서도윤이 태블릿을 옆에 내려놓으며 처음으로 강이준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아무 데나 앉은 겁니다."
눈이 마주쳤다. 강이준은 그 시선의 온도를 읽었다. 무관심도 아니고 적대도 아닌, 정확히 측정하는 눈이었다. 서도윤이 회의에서 상대방의 발표를 들을 때 짓는 표정과 같았다. 데이터를 수집하는 얼굴.
강이준이 먼저 시선을 거두었다.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자 테헤란로의 오전 빛이 유리면을 타고 미끄러졌다. 그는 빈 에스프레소 잔을 트레이 위에 올려두고 팔짱을 꼈다. 서도윤이 자리에 앉은 이후 라운지의 공기가 달라진 것은 착각이 아니었다. 공조 시스템은 여전히 기획 1팀 선호 온도인 22도에 맞춰져 있었지만, 무언가가 조금 달랐다.
코 끝에 스치는 것이 있었다.
블랙 잭 원두의 향이었다. 배전 직전 단계의 원두를 쓰는 곳이라 시중에서는 구하기 힘든 종류였다. 강이준은 그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불필요한 정보였다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저장할 필요 없는 변수. 그렇게 규정하려 했다.
규정이 되지 않았다.
향은 공기 속에 계속 있었다. 서도윤의 커피에서, 서도윤이 막 앉은 소파 쪽에서. 강이준은 창밖을 보면서 팔짱을 낀 채로 두 번,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이런 것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전략적 손실이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렇게 규정하기로 했다.
휴대전화가 진동했다.
수신자는 '본부장실'이었다.
강이준이 전화를 받았을 때, 서도윤도 같은 순간 자신의 전화를 꺼내 들고 있었다. 두 사람이 동시에 화면을 확인하는 것을 강이준은 유리창에 비친 반사로 보았다. 수신 번호가 동일했다.
"강 팀장님, 지금 라운지에 계시죠?"
본부장 최영석의 목소리였다.
"네."
"서 팀장도 같은 공간에 있는 거 압니다. 잠깐만요."
전화가 스피커로 전환되는 소리가 났다. 강이준은 그 소리를 들으며 서도윤을 돌아보았다. 서도윤도 이미 스피커 모드로 전환한 상태였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교차했다.
"두 분한테 같이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최 본부장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낮았다. 강이준은 그 음역대의 의미를 알았다. 좋은 소식일 때는 저 목소리가 아니었다.
"프로젝트 제니스 건입니다. 오늘 오전 로열 보드에서 최종 구성 방향을 확정했어요."
강이준이 팔짱을 풀었다.
"기획 1팀과 기획 2팀이 공동으로 진행하는 걸로 결정됐습니다."
침묵이 흘렀다.
서도윤이 커피 컵을 테이블에서 집어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강이준은 그 동작을 보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최영석이 계속했다.
"노바 일렉트로닉스 측에서 두 팀의 크리에이티브를 모두 원한다고 요청이 왔어요. 회사 입장에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죠. 대신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강이준은 창밖을 보았다. 테헤란로의 빛이 여전히 날카로웠다.
"공동 책임 연대제가 적용됩니다. 계약서에 이미 반영됐어요. 프로젝트 진행 중 어느 한 팀에서 귀책 사유가 발생할 경우, 두 팀장 모두 감봉 및 직위 해제 처분을 받습니다."
전화가 끊겼다.
라운지가 조용해졌다. 공조 시스템의 저음만 일정한 주파수로 흘렀다. 강이준은 팔을 내리지 않은 상태에서 천천히 서도윤을 돌아보았다. 서도윤은 태블릿을 다시 집어 들고 있었다. 화면을 들여다보는 표정이 아까와 달랐다. 뭔가를 읽는 게 아니라 잡고 있는 것에 가까웠다.
"공동 책임 연대제."
강이준이 먼저 말했다.
서도윤이 태블릿에서 눈을 떼지 않으며 대답했다.
"들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생각하냐고요." 서도윤이 이번에는 고개를 들었다. 입꼬리가 한쪽으로 미세하게 올라가 있었다. "강 팀장님은요?"
강이준은 소파에 앉지 않았다. 창가에 서 있는 채로 서도윤을 내려다보았다.
"두 팀이 같이 끌려 내려가는 구조는 마음에 안 듭니다."
"저도요."
"그러면."
"그러면?" 서도윤이 태블릿을 무릎 위에 내려놓으며 등을 기댔다. 소파의 가죽이 낮게 삐걱였다. "강 팀장님 팀이 사고를 안 치면 되는 거 아닌가요."
강이준의 턱 근육이 한 번 조였다.
"서 팀장님, 이번 프로젝트에서 사고 치면 우리 둘 다 짐 싸야 한다는 거 잊지 마시죠."
"잊을 리가요." 서도윤이 천천히 눈을 맞추었다. "저도 같은 말씀을 드리고 싶었으니까."
두 사람 사이에 아무 말도 없었다. 강이준은 서도윤의 시선이 자신의 어딘가를 측정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서도윤의 시선은 항상 너무 빨리 움직였다. 무언가를 읽고, 분류하고, 저장하는 속도가 강이준보다 빨랐다. 그것이 강이준을 불편하게 만드는 유일한 이유였다.
적어도 그렇게 규정해왔다.
서도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재킷 단추를 잠그면서 테이블 위에 놓인 서류 봉투를 집어 들었다. 강이준은 그 봉투를 이전까지 인식하지 못했다. 서도윤이 올 때부터 가지고 있던 것인지, 라운지에 원래 있던 것인지 구분되지 않았다.
서도윤이 봉투를 테이블 위로 던졌다.
소리 없이 미끄러져 강이준의 손 앞에서 멎었다. 강이준이 시선을 내렸다. 봉투 위에 인쇄된 로고가 보였다. 로열 보드 직인이 찍힌 공문서 봉투였다.
"계약서 사본입니다." 서도윤이 말했다. "공동 책임 조항 페이지에 표시해뒀어요."
강이준이 봉투를 집어 들지 않았다. 서도윤의 시선이 봉투에서 강이준의 손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멎었다.
손등이었다. 강이준의 오른손 손등, 검지와 중지 사이에서 시작해 손목 방향으로 비스듬히 이어지는 선. 오래된 것이었다. 피부가 완전히 아물었지만 주변보다 옅은 색으로 남아 있는, 오래 들여다봐야 보이는 흔적. 서도윤의 시선은 그 선의 시작점에서 끝점까지 천천히 이동했다가, 0.5초쯤 지난 뒤 완전히 정지했다. 강이준은 그 정지를 피부로 느꼈다. 시선이 닿는 무게가 있었다. 아주 작고, 그래서 더 선명한 무게.
강이준은 반사적으로 손가락을 오므렸다.
주먹이 되었다. 엄지가 자연스럽게 손등을 눌렀다. 흉터 위를. 눌렀을 때 느껴지는 것은 통증이 아니었다. 약간의 무감각, 그 아래에 있는 오래된 무언가의 감촉. 강이준은 그것을 느끼면서 창밖을 보았다. 테헤란로의 마천루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서도윤의 입가에 선이 생겼다.
웃음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작고, 무언가를 알아챈 표정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느렸다. 강이준은 그 표정의 의미를 분류하려다 멈추었다. 분류할 수 있는 범주가 없었다.
"그럼 내일 킥오프 미팅에서 뵙겠습니다."
서도윤이 커피 컵을 들고 몸을 돌렸다.
발소리가 멀어졌다. 자동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났다. 라운지가 다시 비었다.
강이준은 주먹을 쥔 채로 서 있었다. 엄지가 여전히 손등 위에 있었다. 공조 시스템이 낮게 울렸다. 22도. 기획 1팀의 선호 온도.
블랙 잭 원두 향이 공기 속에 아직 남아 있었다.
그는 테이블 위의 봉투를 집어 들었다. 서도윤이 표시해두었다는 페이지를 펼쳤다. 공동 책임 연대제 조항. 빨간 펜으로 밑줄이 그어진 문장이 보였다. 글자들이 선명했다. 강이준은 그것을 읽으면서 오른손 주먹을 천천히 폈다.
손등의 흉터가 형광등 빛 아래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