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7시 12분.
유니온 라운지는 비어 있었다. 통유리 너머로 테헤란로가 희뿌연 새벽빛 속에 잠겨 있었고, 강이준은 노트북 화면만을 광원 삼아 기획서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세 번째 페이지. 소비자 행동 데이터를 근거로 설계한 메시지 구조. 이틀을 붙들고 다듬어 온 논리의 뼈대였다.
커피가 식어 있었다. 한 모금 마시다 내려놓은 지 얼마나 됐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손가락으로 마우스를 굴리다 멈췄다.
테이블 모서리에 뭔가 끼어 있었다.
냅킨이었다. 접혀 있지도, 일부러 놓아둔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테이블과 창틀 사이, 어쩌다 바람이 밀어넣은 것처럼 구겨진 채 꽂혀 있었다. 강이준은 무심코 꺼냈다.
필체가 날카로웠다. 펜 끝이 냅킨 섬유를 거의 뚫을 듯한 압으로 눌려 있었고, 단어 하나하나가 끊기지 않고 이어졌다. 글씨를 쓴 사람이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3페이지 데이터 구조, 논리는 완벽하나 감정 진입로 없음. 소비자는 분석표를 사지 않는다.'
손이 멈췄다.
그는 두 번 읽었다. 천천히. 단어를 하나씩 분리하면서. 필체 아래에는 작은 화살표 두 개가 그려져 있었다. 하나는 3페이지의 첫 번째 소비자 분류 항목을 가리키고 있었고, 다른 하나는 여백에 적힌 메모로 이어졌다.
'여기서 얘기가 끊긴다. 왜 이 사람이어야 하는가?'
글씨를 쓴 사람이 누구인지는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강이준은 냅킨을 테이블 위에 펼쳐놓고 노트북 화면과 번갈아 보았다. 3페이지. 그가 가장 공들인 부분이었다. 데이터를 열두 개의 소비자 집단으로 분류하고 각각의 구매 동인을 수치로 환산한 구조였다. 어느 임원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논리였다.
냅킨의 메모는 정확히 그 부분을 겨냥하고 있었다.
'소비자는 분석표를 사지 않는다.'
강이준은 손가락 끝으로 냅킨의 글씨를 한 줄씩 훑었다. 종이가 아니라 섬유였기 때문에 잉크가 번진 부분이 있었고, 그 번짐 안에서도 필체의 방향성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생각이 손을 따라온 게 아니라 손이 생각을 따라잡지 못한 것 같은 속도였다.
강이준은 기획서의 3페이지로 돌아갔다.
소비자 분류 항목 첫 번째. 25세에서 34세, 도심 거주, 가처분 소득 상위 30퍼센트. 이 집단이 노바 일렉트로닉스 신제품에 반응하는 이유를 그는 구매 편의성과 브랜드 신뢰도로 정의했다.
'왜 이 사람이어야 하는가?'
그 질문은 데이터 어디에도 없었다.
그는 손등으로 입술을 가렸다. 형광등 빛이 손 위로 차갑게 내려앉았다. 왼손등의 흉터가 빛을 받아 희끗하게 드러났다. 서도윤의 시선이 그 위에 잠깐 머물렀다는 것을 강이준은 아직 모르고 있었다. 그는 소매를 천천히 내렸다. 손목 위로 셔츠 천이 덮이는 감각이 익숙했다. 너무 익숙해서 의식조차 하지 않는 동작이었다.
냅킨의 메모는 계속 시야 안에 있었다.
기획서에서 빠뜨린 것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것이 더 불편했다.
뒤에서 문 소리가 났다.
"일찍 오셨네요."
서도윤이었다. 손에 종이컵 두 개를 들고 있었다. 정장 재킷 없이 셔츠 소매를 반쯤 걷어 올린 채였는데, 유니온 라운지에서 그 모습이 어색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던 사람처럼 보였다.
강이준은 냅킨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이거 당신 거요."
서도윤이 멈췄다.
"버려도 됩니다."
강이준은 냅킨을 들어 그쪽으로 내밀었다. 서도윤은 종이컵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다가왔다. 냅킨을 받지 않았다. 대신 강이준의 노트북 화면을 봤다.
"읽으셨군요."
"틀린 말은 아니더군요."
강이준은 냅킨을 도로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짧은 침묵. 서도윤이 종이컵 하나를 강이준 쪽으로 밀었다.
"블랙입니다. 설탕 없이."
강이준은 컵을 내려다봤다. 흰 종이컵에서 커피 향이 올라왔다. 진한 편이었다. 그가 평소 마시는 것보다 배는 진한 농도였다.
"저는 아메리카노에 샷 추가를 세 번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아는데요."
서도윤은 맞은편 의자를 당겨 앉으며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특별한 억양이 없었다. 설명도, 사과도 아니었다.
"제 취향이거든요."
강이준이 컵을 봤다. 서도윤이 봤다. 강이준이 다시 냅킨을 봤다.
그는 컵을 들지 않았다. 손바닥으로 컵 옆면을 감쌌다. 종이를 통해 열이 전해졌다. 새벽 사무실 공기가 늘 이상하게 차가웠는데, 그 온기가 손바닥 안으로 스며들었다. 소매 아래로 감춰진 흉터 위까지 온기가 번지는 것 같았다. 그는 소매 끝을 손목 쪽으로 한 번 더 내렸다.
적당히 뜨거웠다. 손가락 끝까지 퍼지는 데 몇 초가 걸리지 않았다.
강이준은 컵을 쥔 채로 냅킨을 바라봤다. 서도윤의 필체. '소비자는 분석표를 사지 않는다.' 이 문장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과, 손바닥이 따뜻해지는 순간이 겹쳤다. 두 가지가 한꺼번에 들어오는 것이 이상했다.
그는 컵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강 팀장님 기획서는 너무 완벽해서 숨이 막히거든요."
서도윤이 자기 컵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강이준은 그를 봤다. 서도윤은 테이블 위를 봤다. 어디를 향한 말인지 분명하지 않았다.
"여백 좀 두시죠."
강이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손바닥을 컵에서 천천히 뗐다. 열이 공기 속으로 빠져나갔다. 그는 노트북 화면으로 시선을 옮겼고, 3페이지를 다시 열었다.
소비자 분류 항목 첫 번째. 커서가 첫 번째 줄에서 깜박이고 있었다.
강이준은 백스페이스를 눌렀다. 한 줄. 두 줄. 소비자 분류의 수치 항목이 지워졌다. 서도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기 기획 메모를 펼치고 있었다.
두 사람 사이로 창밖의 도심이 서서히 밝아오고 있었다. 테헤란로 위로 차량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유니온 라운지의 공조 시스템이 돌아가는 낮은 소음만이 정적을 채웠다.
강이준은 새로운 문장을 입력하기 시작했다.
'이 사람은 왜 이 제품을 선택하는가.'
멈췄다. 그리고 다시 움직였다.
서도윤은 강이준의 화면을 보지 않았다. 자신의 메모 위에 펜을 굴리고 있었는데, 펜 끝이 종이에 닿지 않은 채 허공에서 맴돌고 있었다. 서로를 보지 않으면서 서로의 존재를 감지하는 시간이 조용히 흘렀다.
한참 뒤, 강이준이 커피 컵을 들었다.
한 모금 들이켰다. 진했다. 혀 뒤쪽부터 쓴맛이 번졌다. 그가 마시던 것과는 달랐다. 그러나 손 안에서 식지 않은 온기는 여전했다.
그는 컵을 내려놓으며 냅킨을 노트북 옆으로 밀어두었다. 버리지 않았다.
서도윤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기 메모를 접으며 재킷을 들었다. 강이준 쪽을 보지 않았다.
"회의는 열 시죠."
"알고 있습니다."
서도윤이 등을 돌렸다. 문 쪽으로 걸어가다 잠깐 멈췄다.
"그 냅킨, 다음에도 필요하면 말하세요."
강이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서도윤이 문을 열고 나갔다.
라운지에 혼자 남겨졌다. 강이준은 노트북 화면을 봤다가 냅킨을 봤다가 커피 컵을 봤다. 컵에는 아직 온기가 남아 있었다.
그는 두 번째 모금을 마셨다. 커서를 첫 번째 줄 위에 올렸다. 문장이 다시 쓰이기 시작했다.
냅킨은 노트북 옆에 그대로 있었다. 강이준은 그것을 치우지 않았다.
그때 공조 시스템의 소음이 뚝 끊겼다. 라운지가 지나치게 조용해졌다. 강이준은 고개를 들었다.
유리문 너머, 복도 끝에 누군가 서 있었다.
정장 차림이었다. 오르트 광고 기획 직원이 아니었다. 이 시간에 이 층에 있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다. 그가 강이준을 보고 있었다. 시선이 냅킨 위에 잠깐 머물렀다가 다시 강이준의 얼굴로 올라왔다.
그 입이 천천히 열렸다.
"서정민이 보낸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