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랏빛 번개가 먹구름을 가르고 수직으로 내리꽂혔다.
찢어진 차원의 틈새에서 튕겨 나온 몸이 암석 바닥을 굴렀다. 날카로운 돌 끝이 옆구리를 깊게 긁고 지나갔다. 비릿한 철분 냄새가 코끝을 강하게 찔렀다. 찢어진 옷가지 사이로 스며드는 한기가 낯설었다.
"커헉, 헉……."
한시우는 마른침을 내뱉으며 고개를 들었다. 시야가 온통 붉게 번졌다. 이마에서 흘러내린 피가 속눈썹에 맺혀 시야를 가렸다. 손가락 끝을 만지작거리며 감각을 확인했다. 타인의 호의를 기대할 수 없는 곳이라는 본능적인 경계심이 전신을 훑었다.
보라색과 검은색이 뒤섞인 하늘. 폐부를 찌르는 차가운 공기. 숨을 쉴 때마다 가슴이 타들어 갔다. 목 구멍 깊숙한 곳에서부터 비릿한 열기가 치밀어 올랐다. 이곳은 지구가 아니었다. 평범한 대학생이었던 그가 감당할 수 있는 풍경이 아니었다.
철컥. 철컥.
규칙적인 금속음이 대기를 진동시켰다. 먼지 구름 너머로 갑옷을 갖춰 입은 무리가 보였다. 그들은 손에 기묘한 장치를 들고 있었다. 은색 원판 위에서 바늘이 미친 듯이 회전하며 빛을 내뿜었다. 에테르 파장을 측정하는 영혼의 나침반이었다.
"좌표 일치. 이방인의 파장을 확인했다."
낮게 깔린 목소리에 살의가 묻어났다. 한시우는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릎이 꺾이려 했지만 검지 손톱으로 손등을 깊게 파고들며 버텼다. 고통을 통해 흐릿해지는 정신을 붙잡았다.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곧 죽음이었다. 그는 건조한 표정을 유지하려 애썼다.
"제물을 확보하라. 성소의 제단이 비어 있다."
기사 하나가 검을 뽑아 들었다. 푸른 마력이 칼날을 따라 흐르며 묵직한 압박감을 조성했다. 한시우는 뒷걸음질 쳤다. 등 뒤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었다. 돌멩이 하나가 아래로 떨어지며 끝없는 침묵 속으로 사라졌다.
"제물? 사람을 산 채로 던져놓고 그런 소리가 잘도 나오는군."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한시우는 본능적으로 가슴을 움켜쥐었다. 심장 박동이 평소와 달랐다. 펌프질할 때마다 혈관을 타고 흐르는 것은 피가 아니었다. 텅 빈 구멍. 그것이 명치 끝에서 입을 벌리고 있었다. 기사들이 다가올수록 그 구멍은 더욱 거세게 요동쳤다. 마치 배고픈 짐승이 먹잇감을 발견한 것처럼 내장을 긁어댔다.
"저항은 무의미하다. 그것이 아르카디아의 법이다."
기사들이 반원형으로 포위망을 좁혔다. 그들이 방패를 들어 올리자 거대한 빛의 장막이 형성되었다. 마법 방패의 압력이 한시우의 어깨를 으스러뜨릴 듯 짓눌렀다. 뼈마디가 비명을 질렀다.
심장이 한 번 크게 튀어 올랐다.
멀리 지평선 너머,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는 거대한 나무의 형상이 보였다. 세계수 에르드였다. 거기서 뿜어져 나오는 일정한 파동이 한시우의 심장과 공명했다. 불쾌하고도 강렬한 이질감이 전신을 지배했다.
"윽!"
왼쪽 가슴에 뜨거운 인두를 지지는 듯한 통증이 몰려왔다. 한시우는 무릎을 꿇으며 비명을 삼켰다. 안구 뒷근육이 당기고 머릿속이 깨질 듯이 울렸다. 전신의 근육이 제멋대로 비틀렸다. 하지만 고통과 함께 낯선 힘이 손끝으로 흘러나왔다. 그것은 빛이 아니라 어둠이었다.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순수한 공허였다.
"뭐지? 마나 수치가 측정 범위를 벗어난다!"
영혼의 나침반을 들고 있던 기사가 당혹스럽게 외쳤다. 은색 원판이 과부하를 견디지 못하고 불꽃을 튀겼다. 기사의 손갑옷 사이로 연기가 피어올랐다. 장치가 비명을 지르며 멈춰 섰다.
한시우는 손을 뻗었다. 아무런 기술도, 주문도 없었다. 그저 눈앞의 장벽을 치워버리고 싶다는 갈망뿐이었다. 검은 안개가 소용돌이치며 기사들의 방패를 덮쳤다. 치익, 하는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견고하던 빛의 장막이 녹아내렸다. 마력을 먹어치우는 공허의 힘이었다. 공기가 비명을 지르며 찢겨 나갔다.
"이건 마법이 아니다! 금지된 힘이다!"
기사들의 얼굴이 경악으로 일그러졌다. 한시우는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손가락 사이로 검은 연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가슴 속의 구멍이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기사들이 방출한 마력을 흡수할수록 신체의 감각이 예민해졌다. 공기의 흐름, 돌멩이가 구르는 소리, 상대의 거친 호흡까지 선명하게 들렸다. 귓바퀴가 미세하게 떨렸다.
"괴물 놈, 죽여버려!"
공포에 질린 기사 하나가 검을 휘두르며 도약했다. 파란 검기가 반원을 그리며 한시우의 목을 겨냥했다. 한시우는 고개를 비틀어 검날을 피했다. 종잇장 한 장 차이로 금속의 서늘함이 뺨을 스쳤다. 그는 기사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놓아라!"
기사가 발버둥 쳤지만 허사였다. 한시우의 손이 닿은 갑옷 부위부터 검게 부식되기 시작했다. 기사의 비명이 협곡에 메아리쳤다. 쇠가 타들어 가는 악취가 진동했다. 그는 기사를 밀쳐내고 절벽 끝으로 달렸다. 뒤에서 화살이 날아와 발치를 때렸다. 이제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절벽 아래는 짙은 안개로 뒤덮여 있었다. 침식의 늪이라 불리는 저지대였다. 고지대의 풍요로운 마력과는 대조적인, 죽음과 퇴화의 땅. 한시우는 뒤를 돌아보았다. 추적자 부대가 다시 대열을 정비하고 있었다. 그들의 눈에는 자비라고는 없었다. 그저 도망친 제물을 회수하겠다는 집념뿐이었다.
'죽지 않아.'
어금니를 사려 물었다. 가슴의 문양이 다시 한번 박동했다. 이번에는 통증이 아니라 차가운 확신이었다. 한시우는 허공으로 몸을 던졌다. 중력이 몸을 아래로 잡아당겼다. 귀를 찢는 바람 소리와 함께 시야가 안개 속으로 잠겼다. 수백 미터 아래의 지면이 무서운 속도로 다가왔다.
공허의 힘을 발 끝으로 모았다. 추락의 충격을 상쇄하기 위해 공기를 딛듯 힘을 방출했다. 등 뒤에서 검은 날개 같은 잔상이 퍼졌다가 사라졌다.
콰앙!
진흙탕이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온몸의 뼈가 어긋나는 듯한 충격이 전해졌다. 한시우는 진흙 속에 처박힌 채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팔다리가 제멋대로 떨렸다. 사방이 고요했다. 협곡 위에서 들리던 번개 소리도, 기사들의 고함도 안개에 가로막혀 들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