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화. 규칙의 밤
냄새가 없었다.
네스트. 청담동 펜트하우스. 엘리베이터가 열리자 도현이 처음 인지한 것은 소리도 빛도 아닌, 부재였다. 냄새의 부재. 병원의 소독약도, 타워의 가죽도, 폐공장의 철도 아닌. 아무것도 없는 공기. 현관문이 닫히자 바깥세계가 통째로 잘려나갔다. 도시의 경적, 사람의 목소리. 남은 것은 도현의 호흡뿐이었다.
도현은 현관에서 멈추었다.
넓었다. 거실, 서재, 침실, 주방. 모든 것이 회색과 베이지로 통일되어 있었다. 가구의 각도가 정확했다. 소파의 쿠션이 좌우 대칭이고, 테이블 위의 리모컨이 가장자리와 평행하게 놓여 있다. 누군가가 자로 잰 공간. 사람이 살지 않는 공간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여기를 누가 썼어?"
"회장님 명의 자산입니다. 사용 기록은 없습니다."
사용 기록 없음. 새것인 공간. 도현을 위해 준비된 것이 아니라, 아무에게도 배정되지 않은 채 대기하고 있던 공간. 화성그룹은 이런 공간을 여러 개 보유하고 있을 것이다. 리스크가 발생했을 때 사람을 넣어두는 빈 상자.
창문은 있었다. 그러나 밖이 보이지 않았다. 블라인드가 고정되어 있었다. 도현은 손가락을 블라인드 사이에 넣어 벌렸다. 청담동의 거리가 보였다. 사람들이 걷고, 택시가 정차하고, 카페에서 빛이 새어 나왔다. 블라인드를 놓자 빛의 선이 사라지고 회색 벽만 남았다.
"블라인드 조작 권한은?"
"비서실입니다."
"내 권한이 아니라는 거지."
이준이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필요가 없는 질문이었다. 도현은 블라인드의 고정 장치를 한 번 더 확인했다. 수동 해제가 불가능한 구조. 안에서 밖을 보려면 손가락으로 틈을 벌려야 한다.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안에서 밖을 보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다. 보호인지 격리인지.
"서재는?"
"현관 맞은편 복도 끝입니다. 창문 없습니다."
"화장실?"
"침실 안쪽. 잠금 가능합니다."
잠금 가능. 네스트에서 도현이 유일하게 혼자 잠길 수 있는 공간이 화장실이라는 뜻이었다. 도현은 그 사실을 기억해 두었다.
이준이 도현의 캐리어를 현관 옆에 내려놓았다. 병원에서 가져온 짐. 맞춤 수트 두 벌, 리갈 노트, 세면도구. 도현이 소유한 것의 전부가 캐리어 하나에 들어간다는 사실이 새삼 눈에 걸렸다.
"회장님 비서실 경유, '타워 복귀 전까지 컨디션 관리'가 전달 내용입니다."
컨디션 관리. 화성그룹의 언어에서 '관리'는 '통제'의 동의어였다. 리스크를 관리한다, 인력을 관리한다, 아들을 관리한다. 전부 같은 문법. 주어는 아버지. 목적어는 도현.
거실을 돌았다. 공간을 파악하는 습관. 문까지 6미터. 창문까지 3미터. 비상구――없었다. 엘리베이터에서 왼쪽으로 15미터 지점의 비상계단을 기억에서 불러왔다. 네스트의 유일한 출구는 현관이었다.
출구가 하나뿐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데 2분이 걸렸다. 심장이 빨라지지는 않았다. 폐공장이 아니니까. 그러나 목 뒤가 당겼다. 출구가 하나인 공간에서 잠을 자야 한다는 사실이 어딘가에 걸려 있었다.
"비상시 이탈 경로는?"
"현관에서 비상계단까지 15미터. 제가 선행합니다."
"이 방에서 현관까지는?"
"6.2미터. 도련님 보폭으로 9보입니다."
도현은 이준을 보았다. 도현의 보폭을 알고 있다. 계산해 둔 것이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이 남자는 도현의 신체 수치를 데이터로 갖고 있었다. 보폭, 맥박의 정상 범위, 발작 전조의 징후. 경호원의 업무이기도 하고, 다른 무엇이기도 했다.
"보안 로그는 누가 관리하지?"
"네스트 자체 시스템입니다. 접근 권한은 비서실과 보안팀."
비서실. 보안팀. 도진이 접근할 수 있는 경로가 둘 다에 있었다. 11화에서 발견한 C.D.가 떠올랐다. 형의 손이 이 공간에도 닿아 있을 가능성. 도현은 그것을 노트에 적지 않았다. 머릿속에만 적었다.
밤이 왔다.
네스트의 밤은 병원과 달랐다. 비상등이 없었다. 간호사의 발소리도, 카트 바퀴 소리도, 복도의 웅성거림도. 정적이 아니라 무음이었다. 자기 숨소리가 벽에 닿았다가 돌아오지 않는 경험. 도현은 그것이 불쾌한지 편안한지 판단하지 못했다.
침실의 침대는 킹사이즈였다.
1인용이 아니다. 병원과 달랐다. 시트가 새것이고 세제 냄새가 났다. 중성적이고 깨끗한. 무향 원칙에 맞는 냄새. 아니, 냄새 없음. 이 공간 전체가 그 원칙 위에 설계되어 있었다. 향이 없다는 것.
"규칙은 그대로야."
이준이 침실 입구에서 멈추었다. 도현은 침대 끝에 앉아 말을 이었다.
"30센티. 말 금지. 손은 보이는 곳에."
"여기서도 필요하십니까."
도현은 이준을 보았다. '여기서도'라는 단어. 병원에서의 규칙이 네스트에서도 유효하냐는 질문이었다. 동시에, 그 규칙이 장소에 따라 바뀔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었다. 이 남자는 질문으로 경계를 시험한다. 단어 하나로.
"필요하니까 말하는 거야."
이준이 고개를 숙였다.
"추가 사항이 있으십니까."
도현은 침대의 폭을 보았다. 킹사이즈. 1미터를 벌릴 수 있는 공간. 병원의 1인용 침대에서 30센티는 물리적 한계였다. 좁아서 가까운 것이지, 가까이 있고 싶어서 가까운 것이 아니었다. 킹사이즈는 달랐다. 여기서 30센티를 택하는 것은 선택이다.
선택지가 넓어진 만큼, 선택의 무게가 달라졌다.
"없어. 불 꺼."
이준이 침실을 한 바퀴 돌았다. 문. 잠금 확인. 창문. 시건장치. 비상구 방향――없다. 이준의 시선이 잠깐 문 쪽으로 돌아갔다. 출구가 하나뿐이라는 사실을 이 남자도 확인한 것이다. 마지막. 도현. 이준의 눈이 도현의 손목을 스치고 지나갔다. 봉합 자리. 붕대는 벗겨졌지만 흉터가 분홍빛으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내려갔다.
도현은 벽 쪽에 누웠다. 이준이 가장자리에 누웠다. 정확히 30센티. 킹사이즈 침대의 가운데가 넓게 비어 있었다. 두 사람은 넓은 침대의 한쪽에 몰려 있었다. 나머지 절반이 비어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거리를 강조했다. 거기로 갈 수 있는데 가지 않았다. 여기에 남았다.
이준의 숨소리가 들렸다. 깊고, 일정하고, 흔들리지 않는 리듬. 병원에서도, 차 안에서도, 여기서도 바뀌지 않는 패턴. 에어컨 타이머가 꺼진 뒤의 무음 속에서 그 숨소리가 유일한 박자였다.
세지 않으려 했다. 세는 순간 맞추게 되고, 맞추는 순간 의존이 되니까. 세지 않았다. 대신 들었다.
듣는 것은 세는 것과 다르다고, 도현은 자기 안에서 되뇌었다. 이미 한 번 했던 거짓말이었다. 거짓말이 반복될수록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인지하는 속도가 빨라졌다. 인지해도 멈추지 못하는 것은 같았지만.
잠이 왔다.
철 냄새가 없었다. 물방울 소리가 없었다. 콘크리트 바닥도, 케이블 타이도, 슬레이트 사이로 새는 빛도. 남은 것은 어둠과 온기와 숨소리뿐이었다. 그 셋이 도현의 의식을 천천히 내려놓았다.
새벽.
도현이 눈을 떴다. 어둠 속에서 감각이 먼저 돌아왔다.
30센티가 아니었다.
오른쪽 손등에 온기가 닿아 있었다. 이준의 손등. 피부 사이에 시트 한 겹의 간격도 없는 접촉. 잠든 사이에 좁혀진 거리. 누가 먼저 움직였는지 알 수 없었다. 도현이 벽에서 멀어진 것일 수도, 이준이 안쪽으로 기운 것일 수도. 무의식은 규칙을 모른다. 깨어 있는 도현이 30센티를 정하면, 잠든 도현이 0으로 만든다.
접촉 면적은 손등 하나만큼. 그것으로 5시간을 잤다. 납치 이후 두 번째로 긴 수면.
도현은 손을 빼지 않았다.
빼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빼면 기억이 돌아올 것 같았다. 외부 자극이 없는 이 공간에서, 기억은 더 크게 울렸다. 이준의 손등이 그것을 막고 있었다. 손등 하나만큼의 면적으로.
5화에서 처음 30센티를 정했다. 필요에 의한 거리라고 규정했다. 이준이 없으면 잠들 수 없다는 사실을 도현은 병적이라 판단했고, 병적인 것에도 규칙을 세우면 관리 가능하다고 믿었다. 거리를 수치화하면 감정이 아니라 조건이 된다. 조건이면 통제할 수 있다.
그런데 0이 되어 있었다.
이준이 깨어 있는지 잠들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이 남자는 깨어 있어도 숨의 간격이 바뀌지 않는다. 잠의 경계가 없는 사람.
도현은 손등의 온기를 느끼며 눈을 감았다.
이건 습관이 되면 안 된다.
이미 두 번째 밤이었다. 그리고 습관이란, 세 번째부터 이름이 붙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