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력진이 붉게 점멸하기 시작했을 때, 아이리스는 이미 도망칠 타이밍을 놓쳤다는 걸 알았다. 발밑의 팔각형 문양이 주홍빛으로 달아올랐다. 서가 사이에서 새어 나오는 빛이 고대 석재 벽면을 번갈아 물들이며 복잡한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아이리스는 손에 든 서적을 던지려 했으나, 책이 먼저 반응했다. 가죽 표지가 열렸다. 문자들이 흩어졌다. 금속성의 냄새가 코를 찔렀다. "잠깐——" 아이리스가 내뱉은 말은 비명이 되지 못했다. 은빛 실이 그녀를 향해 쏟아졌다. 뼈가 줄어들었다. 근육이 수축하며 재배열되는 감각이 발끝부터 정수리까지 물결쳤다. 아이리스는 쓰러지면서도 무릎을 짚으려 했으나, 그 순간 손은 이미 손이 아니었다. 발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작고 발가락이 너무 많았다. 두꺼운 바닥석 위로 무언가 가볍게 내려앉는 감각. 자신의 체중이 극단적으로 줄었다는 것이, 착지한 발바닥 쿠션의 부드러움으로 전해졌다. 아이리스는 고개를 들었다. 시야가 낮아졌다. 발밑의 마력진이 이전보다 훨씬 넓게 보였고, 서가들은 높이를 가늠할 수 없는 탑처럼 솟구쳐 있었다. 서적은 저 멀리 바닥에 펼쳐진 채 미세하게 진동했다. 앞발을 들어 자신을 내려다보았다. 하얀 털이었다. 보들거리고, 짧고, 명백히 짐승의 것이었다. 아이리스는 꼬리가 등 위로 뻣뻣하게 서는 것을 느꼈다. 본인 의지와 무관하게. 경보음이 울렸다. 금서고 천장을 따라 배열된 루비아 원석들이 일제히 붉게 점화되었다. 실버 나이트의 마력 탐지기가 반응을 포착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삼십 초. 아이리스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 지식이 작은 네 발을 움직이게 했다. 달렸다. 서가 사이의 좁은 통로를 대각선으로 가로질렀다. 본래라면 어깨가 부딪힐 간격이 지금은 넓은 거리처럼 느껴졌다. 문 아래의 틈새가 시야에 들어왔다. 두 손가락도 들어갈까 싶던 그 틈이, 지금의 아이리스에게는 충분했다. 몸을 납작하게 눌렀다. 차가운 석재 바닥이 배털을 스치는 동안, 저 뒤에서 중장비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복도로 빠져나왔다. 실버 나이트 두 명이 금서고 입구 쪽에서 뛰어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격리 구역 전부 봉쇄해! 오염원이 이동 중이다!" "마력 농도는?" "임계치 초과, 지금 상승 중——" 목소리들이 복도를 채우는 사이, 아이리스는 더 달렸다. 황실 외벽 쪽 복도. 통풍구. 기억을 끌어냈다. 이 구역 배치도는 사흘 전 손에 넣었다. 뒤쪽에서 마력 탐지기 특유의 날카로운 전자음이 간헐적으로 울렸다. 통풍구 철망 앞에서 잠시 멈추었다. 앞발로 격자를 눌렀다. 걸쇠가 느슨했다. 안으로 밀자 소리 없이 열렸다. 아이리스는 뒤를 한 번 돌아보지 않고 안으로 들어갔다. 좁고 어두운 통로를 지나 외벽 쪽으로 기어 나왔을 때, 새벽 공기가 코를 찔렀다. 루미나리스의 아침은 항상 얼음 냄새가 났다. 고산 지대 특유의 박하 향과 함께, 어딘가에서 아우라 실드가 마력을 순환시키는 진동이 발바닥으로 전해졌다. 바깥이었다. 외벽 밑 좁은 골목에 착지했다. 아이리스는 잠시 숨을 골랐다. 한 번. 둘. 셋. 숨을 세는 버릇은 멈추지 않았다. 몸이 고양이가 되어도 그 버릇만큼은 사람 그대로였다. 상황을 정리했다. 금서고 잠입, 실패. 서적 확보, 실패. 신체 보존, 실패. 탈출, 성공. 현재 목표는 단 하나. 신뢰할 수 있는 누군가에게 닿는 것. 에반스 가문의 잔존 인원은 없었다. 아이리스가 혼자였던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골목을 벗어나려 모퉁이를 돌아서는 순간, 아이리스는 걸음을 멈추었다. 대로 전체가 막혀 있었다. 백마 여덟 마리가 끄는 검은 마차 행렬이 황실 정문 방향에서 천천히 이동 중이었다. 은빛 갑주를 착용한 근위들이 양쪽으로 줄지어 호위했다. 마차의 문장. 검은 장미 위에 놓인 백합. 아이리스의 등털이 다시 일어섰다. 블랙 로즈 가문. 뒤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실버 나이트였다. 탐지기의 전자음이 점점 가까워졌다. 골목은 막다른 구조였다. 앞에는 공작의 행렬. 뒤에는 황실 근위. 어느 쪽도 살 길이 아니었다. 아이리스는 낮은 자세로 대로 쪽을 향해 튀어나갔다. 근위 한 명이 외쳤다. "저기, 유해 조수다!" 행렬이 순식간에 멈추었다. 마차에서 내려선 이들 중 한 명이 아이리스를 향해 마력석을 꺼내 들었다. 제국법 제12조. 발견자는 해당 동물을 유해 조수로 처리하거나 사유물로 귀속시킬 수 있다. 아이리스는 그 조문을 외우고 있었다. 외우고 있었지만, 이 상황에서 그 지식은 공포로만 작동했다. 고양이로 죽는 것은 계획에 없었다. 마차 문이 열렸다. 먼저 장갑 낀 손이 나왔다. 이어서 검은 군복. 은빛 수장이 달린 어깨. 남자는 계단을 밟지 않고 단번에 대로로 내려섰다. 아이리스는 그 인물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창백한 피부. 각진 턱. 감정을 배제하도록 훈련된 것처럼 일직선으로 굳은 입. 은회색 눈동자가 내려다보았다. 킬리안 블랙 로즈였다. 그가 아이리스를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아이리스는 꼼짝하지 않았다. 도망치려 해도 사방이 근위였다. 발은 바닥에 붙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뒤에서 따라온 실버 나이트가 앞으로 나섰다. "공작 각하, 이 조수는 금서고에서 발생한 마력 오염원과 함께 탐지되었습니다. 제12조에 의거하여 현장 처분——" "잠깐." 킬리안의 목소리는 낮았다. 크지 않았으나 행렬 전체가 조용해졌다. 그가 아이리스 앞으로 한 걸음 더 내려왔다. 아이리스는 옆으로 피하지 않았다. 피하면 사냥 본능을 자극한다는 것을, 지금의 몸이 알고 있었다. 남자가 천천히 몸을 낮추어 아이리스와 눈높이를 맞추었다. 차가운 눈이었다. 그러나 그 눈이 아이리스의 털을 훑을 때, 무언가 다른 것이 스쳤다. 계산하는 눈. 논리를 전개하는 눈. 아이리스의 털이 희미하게 빛을 냈다. 스스로도 알아채지 못했다. 그러나 킬리안은 알아챘다. 그의 눈이 미세하게 좁아졌다. 아이리스를 향해서가 아니라, 그 빛의 파장을 분석하는 것처럼. "이 생물은 유해 조수가 아니다." 킬리안이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근위를 향한 것인지 실버 나이트를 향한 것인지 모를 방향으로. "내 연구를 위한 사유물로 귀속하겠다." 실버 나이트가 한 박자 주춤했다. "각하, 그러나 금서고 오염 경보가——" "탐지 수치를 보고해라." 잠시 침묵. 탐지기를 확인하는 소리. "마력 농도는 높으나 오염 분류는 해당 없습니다. 다만 변이 반응이——" "내가 말한 것을 다시 설명해야겠나." 킬리안이 고개를 돌렸다. 그 시선을 받은 실버 나이트가 한 발 물러섰다. 아무것도 덧붙이지 않았다. 아이리스는 숨을 내쉬었다. 살았다. 그 안도가 가시기도 전이었다. 장갑을 낀 손이 내려왔다. 아이리스가 피할 틈도 없이, 킬리안의 손이 그녀의 뒷덜미를 정확하게 낚아챘다. 손아귀의 압력이 아니라 무게중심을 잡아채는 힘이었다. 고양이를 다루는 방식이었다. 익숙하지는 않으나 엉성하지도 않은. 발이 공중에 떴다. 아이리스는 반사적으로 발버둥을 쳤으나, 뒷덜미를 잡힌 상태에서 그것은 단지 작은 고양이의 허우적거림에 불과했다. 마차 문이 닫혔다. 말발굽 소리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차 내부는 조용했다. 백색 벨벳 시트. 창문의 커튼이 빛을 절반쯤 차단했다. 공간 전체에서 정화 마법의 잔향이 났다. 깨끗한 냄새, 지나치게 깨끗한 냄새였다. 킬리안이 아이리스를 무릎 위에 내려놓고 아무 말 없이 서류를 꺼내 들었다. 아이리스는 무릎에서 내려오려 했다. 킬리안이 시선조차 내리지 않고 한 손으로 아이리스의 등을 가볍게 눌렀다. 움직이지 말라는 의미였다. 작은 송곳니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인간의 자존심이 털 뭉치 속에 갇혀 비명을 질렀다. "……."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류를 넘기는 소리만 마차 안을 채웠다. 아이리스는 그 침묵이 오히려 더 불편했다. 두려워서가 아니었다. 이 남자가 자신을 붙잡으면서 단 한 번도 놀라지 않았다는 것이. 탈출. 공작저에 도달하기 전에. 아직 이 마차 안에 있는 동안 기회를 만들어야 했다. 아이리스는 주위를 살폈다. 킬리안의 주의가 서류에 쏠린 순간, 커튼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마차 창문. 잠금 구조를 가늠하기 위해 눈을 가늘게 좁혔다. 그때 처음 느꼈다. 킬리안의 외투 안쪽 주머니에서 전해지는 것을. 미세했다.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러나 분명히 있었다. 자신의 몸속 어딘가와 공명하는 파동. 같은 파장. 같은 기원. 아이리스는 고개를 들었다. 외투 안쪽 주머니의 윤곽이 시선에 잡혔다. 무언가를 담고 있는 형태였다. 작고, 오래되고, 묵직한. 아이리스의 등털이 이번에는 전혀 다른 이유로 곤두섰다. 정화의 성배. 그것이 이 남자의 품 안에 있었다. 자신의 저주를 풀 유일한 열쇠가. 가문의 원수이자 정화파의 수장이자, 제국 내 모든 이단을 소탕하겠다 선언한 그 남자의 코트 안쪽에. 마차는 루미나리스의 대로를 따라 북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킬리안이 서류를 덮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아이리스를 내려다보았다. "금서고에 침입한 목적이 뭔지는 모르겠으나." 마치 혼잣말처럼, 그러나 분명히 아이리스를 향한 말이었다. "이 마차에서 도망칠 생각이라면, 지금 그 눈으로 창문을 재고 있는 건 그만두는 게 좋을 것 같군." 아이리스는 굳었다. 그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은회색 눈동자가 조용히 웃었다. 입은 웃지 않았다. "에반스 가문의 마력 파장은 특이하거든. 성배가 반응하는 방식이 전혀 다르다." 킬리안이 외투 안쪽을 한 번 눌렀다. 확인하듯이. 과시하듯이. "그것도 모른 채 이 마차에 올라탄 건가, 아니면 알면서도 올라탄 건가." 아이리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수 없었다. 고양이에게 말이 있을 리 없었다. 그러나 킬리안은 대답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잠시 침묵했다. 그것이 더 무서웠다. 마차는 멈추지 않았다. 공작저로 향하는 길은 일직선이었고, 아이리스에게 남은 선택지는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무릎 위에서 꼼짝없이 붙들린 채, 아이리스는 공명하는 파동이 외투 안쪽에서 규칙적으로 맥을 치는 것을 느꼈다. 저주를 푸는 열쇠와, 그 열쇠를 쥔 손이 같은 공간 안에 있었다. 이것이 운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인지, 아이리스는 아직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