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지하철 2호선
입금은 숫자였다. 메모는 증거였다.
오전 10시. 팬카페 공지 최상단에 글이 올라온 지 두 시간이 지났다. 제목은 길지 않았다.
[광고 모금 안내 — 목표액 / 사용처 / 정산 공개]
민하가 입금 내역을 분 단위로 스크린샷 찍어 이준에게 보냈다. 1만 원. 2만 원. 5만 원. 1만 원. 3만 원. 숫자가 쌓였다. 메모란에 글자들이 붙어 있었다. '점심값 대신'. '첫 월급 일부'. '노바 파이팅'. '꼭 됐으면 해서'.
이준은 그 메모들을 읽지 않으려고 했다.
두 번 읽었다.
연습실. 이준이 노트북을 열었다. 민하의 공지 초안이 화면에 있었다.
서지환이 뒤에서 화면을 봤다. 아침부터 말이 없었다.
"이거… 우리가 시킨 거잖아."
이준은 스크롤을 멈추지 않았다.
"강요 금지. 목표, 사용처, 정산. 세 줄로 끝낸다."
"그래도."
"공지 읽어봐."
서지환이 화면을 봤다. 눈이 움직였다. 이준은 그 눈이 어디쯤에서 멈추는지 봤다. '자발적 참여를 전제합니다. 강요하지 마세요'라는 문장 앞이었다.
서지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10시 32분. 민하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이준 씨, 지금 댓글 좀 봐주실 수 있어요?"
이준이 팬카페를 열었다. 모금 공지 댓글창이었다. 상단에 응원 댓글이 쌓이는 동시에 새 댓글이 올라오고 있었다.
'이게 사기 아님? 돈 어디 쓰는지 증거 있음?'
'팬들한테 돈 걷어서 광고 집행하면 그게 조작이지'
'환불 실제로 되는 거 맞아?'
이준은 댓글 수를 봤다. 전체 311개 중 부정 댓글은 14개. 비율은 4.5%. 여론이 기운 게 아니었다. 하지만 14개는 속도가 빨랐다. '환불'과 '사기'라는 단어가 반복 복사돼 올라오고 있었다.
"민하 씨, 지금 당장 공지에 한 줄 추가해요." 이준이 말했다. "'모금 계좌 입출금 내역 실시간 공개. 정산 영수증 집행 후 48시간 내 첨부.' 이 문장 그대로."
"지금 바로요?"
"지금."
공지가 갱신됐다. 2분 후. 이준은 댓글창을 다시 봤다. 부정 댓글 14개 중 6개에 반박 댓글이 붙었다. 팬들이 공지 링크를 달면서 응수하고 있었다.
'이게 팬심이지.'
이준은 그 문장을 봤다. 계산에 들어가는 변수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팀을 지키고 있었다.
태현이 핸드폰을 테이블 위에 뒤집어 놓은 건 민하의 두 번째 스크린샷이 왔을 때였다. 입금 합계가 80만 원을 넘어가고 있었다.
이준은 그 행동을 봤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태현의 불편함은 태현의 것이다.
정우가 트렌드 분석 화면을 켜두고 있었다. '노바 광고 모금'이라는 키워드가 팬 계정들 사이에서 돌고 있었다. 아직 바깥까지는 안 나갔다.
"지금 언급량이 올라가고 있어요." 정우가 말했다. "아직 팬 계정 위주인데, 리트윗 속도가 빨라지고 있어요."
"지켜봐."
오후. 이준이 지하철을 탔다.
광고 대행사는 강남역 근처에 있었다. 작은 사무실이었다. 담당자는 삼십대 중반으로 보였다. 이준이 들어서자 견적표 한 장을 테이블 위에 툭 던졌다.
"아이돌 팬 광고죠?" 담당자가 말했다. 확인이 아니라 단정이었다. "통상 1주에 1,500은 보셔야 해요. 강남역 메인 스크린도어 기준으로."
이준은 견적표를 봤다. 숫자가 세 줄이었다. 강남역 메인 1주: 1,500만. 을지로입구역 소형 1주: 600만. 건대입구역 소형 1일: 290만.
"건대입구 1일로 가면 얼마까지 내려가요."
담당자가 잠깐 봤다. "270이 마지노선이에요."
"270으로."
담당자가 볼펜을 들었다. "임팩트가 약한데요, 하루는."
"임팩트는 문구가 만들어요. 위치만 주면 돼요."
담당자가 볼펜을 내려놓았다. 잠깐 이준을 봤다. 계산하는 눈이었다. 이준은 그 계산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계약서 드릴게요." 담당자가 말했다.
저녁. 연습실.
문구를 정해야 했다. 이준이 화이트보드에 후보를 썼다.
[우리를 기억해주세요] / [노바, 지금 시작합니다] / [101위에서 시작합니다]
태현이 첫 번째를 지웠다. "불쌍팔이로 보이면 끝이야."
"불쌍이 아니라 '시작'이야." 이준이 말했다. "101은 약점이 아니라 증거야. 우리가 여기서 시작했다는 거."
태현이 화이트보드를 봤다. 잠깐 있다가 말했다. "세 번째."
이준은 두 번째와 첫 번째를 지웠다.
[101위에서 시작합니다]
문자가 7개였다. 광고 스크린에 들어가는 크기였다.
서지환이 그걸 보고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이거… 나쁘지 않다."
이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맞는 말이니까 답할 필요가 없었다.
다음 날 저녁. 건대입구역.
플랫폼 스크린도어 화면이 바뀌었다. 노바 로고. 그 아래 문장.
[101위에서 시작합니다]
민하가 화면 앞에 서 있었다. 손이 입을 막았다. 이준은 볼 수 없었다. 뒤에 서 있었으니까.
태현이 폰을 들었다. 인증샷을 찍었다. 각도를 두 번 바꿨다. 세 번째에서 멈췄다.
"00:10 쇼츠랑 묶어서 올릴게." 태현이 말했다. "자막 한 줄만. '우리 시작이 여기야'"
이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열차가 들어왔다. 광고 화면이 스쳐 지나갔다. 타는 사람이 있었고 내리는 사람이 있었다. 보는 사람이 있었고 보지 않는 사람이 있었다.
스크린에 노바 로고가 떴다. 101위.
이제 캡처는 시작이고, 판결은 댓글이다.
연습실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폰이 진동했다. 모르는 번호가 아니었다. 뮤직탑 공식 계정이었다.
"비정상 트래픽 패턴 감지. 재발 시 해당 아티스트 집계 제외 조치될 수 있습니다."
이준은 그 문장을 읽었다. 화면을 껐다.
'예상보다 빠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