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101위의 굴욕
101위는 애매해서 더 잔인했다.
새벽 1시. 연습실 테이블 위에 캔이 세 개 있었다. 충전 케이블이 엉켜 있었다. 이준은 노트북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오류 스샷 폴더를 시간대 순으로 다시 정렬했다.
서지환이 소파에서 팔로 눈을 가리고 누워 있었다. 아까부터 아무 말이 없었다. 태현은 캔을 들고 창가에 기댔다. 정우만 테이블에 앉아 화면을 보고 있었다.
"서버가 진 거지." 태현이 먼저 말했다. "우리 탓 아니잖아."
이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오류 스샷의 타임스탬프를 엑셀에 옮겼다. 00:01~00:08 구간에 집중됐다. 312건. 전체 참여 예측치의 40%.
'서버는 핑계다. 구조를 바꿔야 한다.'
"서버 탓 맞잖아." 태현이 다시 말했다.
"서버는 핑계야." 이준이 말했다. "구조를 바꿔야 해."
태현이 코웃음을 쳤다. 반박하지는 않았다.
이준은 뮤직탑 FAQ 페이지를 열었다. 공지/정책 탭. 스크롤을 내렸다.
중간쯤에 문장이 있었다.
'이상 트래픽 감지 시 해당 시간대 데이터 반영률이 조정될 수 있습니다.'
이준은 그 문장을 두 번 읽었다. '반영률 조정.'
총공은 동시에 접속하는 구조다. 특정 시간대에 트래픽이 몰리면 플랫폼이 이상 접속으로 감지할 수 있다. 그 경우 스트리밍 카운트가 정상 반영되지 않는다. 증명할 수는 없다. 그러나 가설은 성립한다.
"봐봐." 이준이 화면을 정우 쪽으로 돌렸다.
정우가 읽었다. 천천히. "우리가 찍힌 거야?"
"가능성이 있어. 뻔한 방식이었거든."
서지환이 팔을 치우고 일어나 앉았다. "그럼 우리가 팬들 시킨 게 독이 된 거야?"
이준은 잠깐 멈췄다.
"방법이 뻔해서 걸렸어. 다음엔 티 안 나게."
서지환의 입이 열렸다가 닫혔다. 반박할 논리를 찾는 것 같았다. 찾지 못한 것 같았다.
화이트보드를 다시 썼다. 이번엔 다른 질문으로 시작했다. '왜 101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바깥을 만드는가.'
이준은 마커를 잡았다. 화이트보드에 두 개를 썼다. 팬 트래픽. 바깥 유입.
"같은 팬 백 번이 아니야. 새로운 한 명 한 번. 그게 차트를 움직여."
태현이 몸을 세웠다. "그러면 어떻게 해."
이준이 말했다.
"우리가 직접 광고를 건다."
침묵이 왔다.
서지환이 먼저 말했다. "돈은 어디서 나와."
"팬이 아니라, '선택'이 되게 만든다. 강요 금지.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구조를 먼저 만들어."
태현이 눈을 좁혔다. "팬들한테 돈 걷는 거, 욕 먹어."
"투명하게 하면 달라." 이준이 마커를 내려놓았다. "목표액, 사용처, 환불 조건. 세 가지. 이 세 가지가 있으면 욕이 아니라 연대가 돼."
태현은 말이 없었다. 반박도 없었다.
서지환이 조용히 말했다. "이거… 우리가 팬한테 짐 지우는 거잖아."
이준은 서지환을 봤다. "맞아. 그래서 세 가지가 필요한 거야."
폰이 울렸다. 민하였다.
"지금 팬카페가 좀 시끄러워요."
"어떻게요?"
"서버 탓이라는 쪽이랑 방식이 잘못됐다는 쪽이 서로 싸우고 있어요." 민하의 목소리가 낮았다. "지금 서로 욕해요…."
이준은 잠깐 생각했다.
"공지 올려요. 내용은 하나야. '다음 행동'만 담아요. 원인 분석 없이. 원인 얘기 시작하면 분열이 더 커져."
민하가 대답했다. "알겠어요."
전화가 끊겼다.
이준은 다시 화이트보드를 봤다. 민하의 목소리가 마지막에 흔들렸다는 걸 잠시 생각했다. 짐이 무거운 거다. 당연하다. '이게 맞는 구조인지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다.'
새벽 2시. 단체방에 이준이 메시지를 올렸다.
지하철 광고. 강남권 2호선. 하루 운영. 모금으로 집행.
투명 원칙 세 가지: 목표액 공개. 사용처 공개. 미달 시 전액 환불.
태현이 읽었다. 잠시 후 답장이 왔다. "모금 공지는 민하가 올려. 우리 이름으로 올리지 마."
이준은 그게 맞다고 생각했다. "맞아. 민하 씨한테 전달해."
정우가 답장했다. "광고 견적은?"
"내일 알아볼게."
서지환은 읽음만 찍혔다. 이준은 그걸 보고 화면을 껐다. 확신은 서지환이 결정한다. 밀지 않는다. 그건 이준의 원칙이었다.
연습실 불이 하나씩 꺼졌다. 이준만 남았다.
스프레드시트를 열었다. 지하철 광고 1일 운영비 추정치를 입력했다. 건대입구역 스크린도어 기준 하루 소형 광고. 아직 정확한 수치가 없었다. 자리에 물음표를 남겼다.
옆에 수식을 넣었다. 모금 목표액 = 광고비 × 1.1(예비분 10%). 환불 조건 = 목표 미달 시 전액. 목표 초과분 처리 = 다음 광고 집행분으로 이월.
목표액 270만 원. 모금 공지 오픈까지 남은 시간은 18시간이었다.
"우리가 직접 광고를 건다."
이준이 그 문장을 속으로 한 번 더 읽었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위험한 말이었다. 그 차이가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