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새벽 3시 12분
숙소의 새벽은 소리로 구성돼 있었다.
냉장고 컴프레서 소리. 보일러 순환 소리. 태현의 코고는 소리가 3초 간격으로 반복. 서지환의 뒤척이는 소리가 비규칙적. 정우는 소리가 없었다. 뒤척이지 않는 유형. 이준은 소리의 패턴을 알고 있었다. 같은 숙소에서 석 달을 살면 사람의 수면 패턴이 데이터가 된다. 태현이 코를 골면 바로 누운 것이다. 엎드리면 골지 않는다. 서지환이 뒤척이면 잠이 얕은 것이다. 뒤척임이 멈추면 깊은 잠에 든 것이다. 지금은 멈춰 있었다. 깊은 잠.
새벽 1시 23분. 이준만 깨어 있었다. 노트북 화면의 빛이 이불 위에 사각형을 그리고 있었다. 밝기를 최소로 낮췄다. 옆 사람을 깨우지 않기 위해. 방 두 개에 다섯 명. 이준과 서지환이 한 방. 태현과 정우가 한 방. 한도윤은 거실 소파 베드. 도윤이 거실을 택한 건 자기가 가장 늦게 들어와서 방해가 된다는 이유였다. 이준은 그 이유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였었다. 지금은 다르게 봤다. 거실에서는 아무도 보지 않는 시간에 노트북을 열 수 있다.
드라이브 접근 로그를 다시 열었다.
3월 25일 03:12. 사용자: 한도윤. 열람 파일: 노바_팬덤전략_v1.xlsx.
이준은 이 로그를 처음 본 지 나흘이 지났다. 나흘 동안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드라이브 공유 범위를 바꾼 것도, 로그를 확인하고 있다는 것도, 유출 경로를 추적하고 있다는 것도. 이준은 혼자 움직이고 있었다. 혼자 움직이는 것에 익숙했다. 연습생 시절 새벽에 혼자 스프레드시트를 만들었을 때부터.
IP를 다시 확인했다. 숙소 와이파이. 192.168.0.xxx. 외부 접속이 아니었다. VPN이나 프록시 흔적도 없었다. 이 집 안에서, 이 와이파이에 연결된 기기에서 접근했다. 숨기려 하지 않은 접근이었다. 숨기려 했다면 모바일 데이터를 쓰거나 카페 와이파이를 쓸 수 있었다. 숨기지 않았다는 건 두 가지를 뜻했다. 떳떳하거나, 들킬 줄 모르거나.
이준은 가능성을 나열했다.
하나. 도윤이 새벽에 전략 파일을 열 이유가 있었다. 관심. 불안. 다음 날 회의 준비. 잠이 안 와서 뭔가 보려고. 합리적 이유 네 가지. 이 중 하나라면 이준이 과잉 반응하는 것이다.
둘. 도윤이 전략 파일을 열어서 누군가에게 보냈다. 유출. 10화에서 받은 스크린샷이 있었다. 이준이 만든 파일의 캡처가 모르는 번호에서 왔다. 15화에서 확인한 업계 블로그 기사에는 v1의 수치가 정확히 인용돼 있었다. DAU 4,100. 전환율 12%.
셋. 도윤의 계정이 도용됐다. 가능성은 낮았다. 구글 계정에 2단계 인증이 걸려 있었다. 도용하려면 도윤의 폰이 필요하다. 폰은 도윤이 들고 잔다.
'직접 물으면 팀이 깨진다. 팀이 깨지면 초동 5만은 사라진다.'
이준은 그 문장을 머릿속에서 세 번 반복했다. 한 번은 확인, 한 번은 각오, 한 번은 자기 설득. 묻고 싶었다. 도윤을 앞에 앉히고 새벽 3시 12분에 뭘 했는지 묻고 싶었다. 하지만 묻는 순간 팀에 균열이 생긴다. 균열이 생기면 멤버들이 서로를 의심한다. 의심이 시작되면 연습실의 공기가 바뀐다.
'묻지 않는다. 아직은. 대신 증거를 만든다.'
이준은 드라이브에 새 파일을 만들었다. '노바_컴백전략_v3.xlsx'. 파일명은 실제 전략 파일과 비슷하게 맞췄다. v1은 실제 파일. v2는 수정본. v3는 미끼. 이준만 아는 구분이었다.
내용은 가짜였다. 예약 판매 예측치를 실제보다 15% 높게 넣었다. 실제 전환율 12%를 14.2%로. 실제 DAU 4,100을 4,730으로. 컴백 예상 초동을 실제 시뮬레이션보다 7,000장 높게. 목표 달성 확률을 63%가 아니라 78%로.
15%의 오차. 우연이 아닌 숫자. 설계된 오차. 이 파일이 외부에 나오면, 나온 데이터의 오차율로 출처를 증명할 수 있다. 14.2%라는 전환율이 외부에 인용되면 그건 v3에서 나온 것이다. 실제 수치는 12%니까. 2.2%포인트의 차이가 경로의 증거가 된다.
미끼.
파일을 저장했다. 공유 설정은 기존과 동일. 여섯 명 접근 가능. 이준은 일부러 알림을 확인하지 않았다. 자연스러워야 했다.
노트북을 닫았다. 시계를 봤다. 새벽 1시 47분. 자야 했다. 내일 안무 연습이 오전 9시.
눈을 감았다. 서지환의 숨소리가 규칙적이었다. 3초 간격. 변하지 않았다. 서지환은 깊이 자고 있었다. 잠들기까지 14분이 걸렸다. 01:47 → 02:01.
오전. 안무 연습.
2시간 17분이 지났을 때 태현이 발을 헛디뎠다. 턴 동작에서 왼발목이 접혔다. 소리는 나지 않았다. 태현이 멈췄다. 왼발을 들어 올렸다가 바닥에 내려놓았다. 체중을 실었다가 뺐다. 시험하는 동작.
"괜찮아?" 서지환이 다가왔다.
"삐끗했어. 괜찮아." 태현이 다시 안무 위치로 갔다. 이어갔다. 하지만 왼발에 무게를 덜 싣는 게 보였다. 착지할 때 오른발이 먼저 닿았다. 새로 생긴 습관. 통증을 피하는 동작. 관객은 모르겠지만 옆에서 추는 멤버는 안다. 이준은 봤다.
"태현아. 오늘 남은 연습은 상체만 해."
"괜찮다니까."
"발목 부은 거 보여. 지금 무리하면 컴백 무대 못 서." 이준이 말했다. "컴백까지 D-24야. 지금 1주 쉬면 D-17에 복귀해. 리허설 전까지 시간 있어. 무리하면 3주야."
서지환이 태현의 발목을 봤다. 양말 위로 부기가 보였다. "태현아, 형 말이 맞아. 쉬어."
"근데 안무 맞추려면---"
"네가 빠져도 나머지 넷이 동선 조정하면 돼." 이준이 말했다. "네가 3주 빠지는 게 1주 빠지는 것보다 비싸. 계산이야."
태현이 입을 다물었다. 이준식 설득이었다. 감정이 아니라 비용으로 말하는 방식. 태현은 그 방식을 받아들이는 법을 알았다.
"쇼츠 촬영은 할 수 있어?" 태현이 물었다. 벽 쪽으로 가면서.
"상체만 나오게 찍으면 되잖아."
태현이 웃었다. 짧게. "그건 되네." 벽에 등을 대고 앉았다.
이준이 냉동실에서 아이스팩을 가져다줬다.
"고마워." 태현이 말했다. 낮은 목소리. 모자를 눌러 쓴 채로.
정우가 다가왔다. "태현이 형 빠지면 3절 대형 수정해야 해요. 제가 동선 그려볼게요."
"부탁해." 이준이 말했다.
연습이 끝났다. 저녁. 멤버들이 하나씩 빠졌다. 서지환이 목을 풀면서 나갔다. 태현이 아이스팩을 손에 든 채로 나갔다. 정우가 노트북을 접으면서 나갔다. 이준이 수건을 접어 가방에 넣고 물을 마셨다. 문 앞에서 멈췄다.
연습실 안에 아직 불이 켜져 있었다.
한도윤이 혼자 서 있었다. 거울 앞. 안무를 돌리고 있었다. 이준이 연습 끝이라고 한 뒤에도. 음악 없이. 발소리와 숨소리만으로. 거울에 비친 도윤의 얼굴이 보였다. 집중하는 얼굴. 무대 위의 얼굴과 달랐다. 무대에서는 카메라를 의식하는 눈이었다. 지금은 자기만 보는 눈.
이준은 문 밖에서 2초 관찰했다. 동작이 정확했다. 완성도가 높았다. 각도, 타이밍, 에너지 분배. 연습량이 만드는 정밀함. 도윤이 연습을 게을리한다면 이 완성도는 나올 수 없다.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그건 부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준이 본 것은 동작이 아니었다. 도윤이 혼자 남아 있다는 사실이었다. 새벽 3시 12분에 깨어 있던 사람. 연습이 끝나도 혼자 남는 사람. 거실 소파 베드를 택한 사람.
파편들이 있었다. 아직 하나의 그림이 되지 않았다. 이준은 그림이 될 때까지 기다릴 수 있었다. 기다리는 것도 전략이다.
소리를 내지 않고 걸어갔다. 도윤은 이준이 봤다는 걸 몰랐을 것이다. 몰라야 했다.
다음 날 아침. 이준이 숙소에서 눈을 떴다. 06:30. 알람 소리가 울리기 전에 눈이 떠졌다.
옆에서 서지환이 이불을 걷고 있었다. 이준보다 먼저 일어났다. 드문 일이었다.
"형, 나 새벽에 물 마시러 나갔다가 봤는데." 서지환이 말했다. 목소리가 낮았다. "도윤이 거실에서 노트북 하고 있었어."
이준의 시선이 서지환에게 고정됐다.
"몇 시?"
"모르겠어. 2시쯤? 화장실 가는 길에 봤어. 화면 불빛이 보였어."
2시. 미끼 파일 접근 기록이 02:47이었다. 47분 전. 서지환이 본 것과 로그의 시간이 겹쳤다.
"뭐 하고 있던 것 같아?"
"몰라. 뒷모습만 봤어." 서지환이 이불을 접었다. "열심히 하는 거 아닐까. 도윤이 원래 밤에 연습 많이 하잖아."
이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서지환은 의심하지 않았다. 서지환에게 새벽에 깨어 있는 건 노력의 증거였다. 이준에게는 증거의 조각이었다. 같은 장면을 보고 다른 것을 읽는다. 서지환은 사람을 믿는 방식으로 읽고, 이준은 데이터를 대조하는 방식으로 읽었다.
노트북을 열었다. 드라이브 접근 로그를 열었다.
미끼 파일. '노바_컴백전략_v3.xlsx'. 접근 기록을 확인했다.
기록이 있었다.
3월 29일 02:47. IP: 192.168.0.xxx. 숙소 와이파이. 사용자명은 표시되지 않았다. 하지만 IP가 숙소였다. 새벽 2시 47분. 이 집 안에서 누군가가 미끼 파일을 열었다.
3시 12분이 아니라 2시 47분. 시간대는 같았다. 새벽. 모두가 자는 시간. 패턴이 있었다. 새벽 2시에서 3시 사이. 숙소 와이파이. 그리고 서지환의 목격.
'미끼를 물었다.'
이준은 로그를 캡처했다. '접근권한_리스트' 폴더에 저장했다. 다음 유출이 발생하면 수치를 대조한다. v3의 데이터가 외부에 나오면---전환율 14.2%, DAU 4,730---이 숫자들이 증거가 된다. 실제 수치와 다르다. 우연이 아닌 차이. 수학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이준은 화면을 껐다. 욕실로 갔다.
거울 앞에서 세수를 했다. 찬물. 눈이 떠졌다. 거울 속 얼굴을 봤다. 안경을 쓰지 않은 얼굴. 눈 밑이 어두웠다. 수면 부족. 5시간 14분. 평균보다 1시간 부족. 이 생활이 계속되면 체력이 먼저 무너진다.
'태현의 발목이 먼저 경고다. 다음은 내 몸일 수 있다.'
안경을 썼다. 연습실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