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A와 R 사이
녹음실 앞 복도에서 이준이 멈췄다.
문이 닫혀 있었다. 방음이 완벽하지 않았다. 벽이 얇은 건 아니었지만 문 밑 틈으로 소리가 새어 나왔다. 서지환의 목소리. 노래가 아니었다. 대화.
"---이 키에서 올리면 감정선이 끊겨요. 2절 브릿지에서 반음만 올려야 자연스러워요. 장3도를 한 번에 올리면 성대가 따라가도 감정이 안 따라가요."
낮고 또렷한 목소리가 대답했다. 이준이 모르는 목소리. 하지만 말하는 방식은 익숙했다. 감정이 아니라 구조로 대화하는 사람. 근거를 먼저 말하고 결론을 뒤에 붙이는 사람.
"그래서 키를 올리는 거야. 끊어지는 순간이 임팩트니까. 편하게 부르면 안전하지만, 안전하면 각인이 안 돼. 귀에 걸리는 건 불편함이야. 불편한데 좋은 것. 그게 킬링파트야."
이준은 문 앞에서 2초 더 들었다. 서지환이 음악 용어로 반박하고, 상대가 마케팅 용어로 재반박하는 구조. 서지환은 감정의 언어로, 상대는 효과의 언어로 같은 곡을 해석하고 있었다. 이준은 그 둘의 대화에서 자기가 끼어들 자리를 찾았다. 데이터의 언어. 세 번째 축.
문을 열었다.
서지환이 녹음 부스 밖에 서 있었다. 헤드폰을 목에 걸고. 가사지를 손에 들고. 가사지에 볼펜 메모가 빼곡했다. 서지환이 곡 작업을 할 때 쓰는 방식. 손으로 써야 감이 잡힌다고 했었다. 이준은 스프레드시트, 서지환은 볼펜. 도구가 다르면 결과물의 질감도 다르다.
콘솔 뒤에 남자 한 명이 앉아 있었다. 사십대 초반. 후드를 입고 있었지만 자세가 달랐다. 등이 곧았다. 의자에 기대지 않았다. 모니터 두 대를 동시에 보는 시선에 데이터를 읽는 사람의 습관이 있었다. 왼쪽 모니터에 음원 파형. 오른쪽 모니터에 스프레드시트. 이준과 같은 배치였다. 같은 종류의 사람이라는 걸 모니터 배치로 알 수 있었다.
오세혁. A&R 총괄.
윤세아가 한 번 언급한 이름. '전 직장은 4대 기획사 중 하나. 어디인지는 비공개.' 아크 엔터테인먼트에 온 지 11개월. 이전에 맡은 프로젝트는 신인 그룹 3팀. 그중 2팀이 데뷔 3개월 안에 차트 100위 안에 들었다. 성공률 66.7%. 이준은 그 숫자를 기억하고 있었다. 사람을 만나면 성공률부터 계산하는 건 이준의 버릇이었다.
"이준이구나." 오세혁이 고개를 돌렸다. 안경 너머로 이준을 봤다. 안경테가 검은색이었다. 이준의 안경테와 같은 색. "기다렸어."
이준은 안으로 들어갔다. 녹음실은 좁았다. 콘솔, 모니터 두 대, 스피커 두 개, 의자 세 개. 나머지 공간은 부스가 차지했다. 부스 안에 마이크와 팝 필터가 보였다. 공기 중에 커피 냄새가 남아 있었다.
이준은 의자를 끌어다 오세혁 옆에 앉았다. 노트북 화면에 음원 파형 세 개가 나란히 있었다. 빨간색. 파란색. 초록색.
"타이틀곡 후보 세 곡 가져왔어." 오세혁이 마우스를 움직였다.
A곡. 'Velocity'. 빨간 파형. 업템포 댄스팝. BPM 128. 파형이 균일했다. 시작부터 끝까지 에너지가 일정하게 유지되는 구조. 드롭 두 번. 후렴 전과 브릿지 후. 에너지를 떨어뜨리지 않겠다는 의도가 설계에 보였다. 요즘 차트 상위권의 전형적 구조.
"A는 차트 친화적이야." 오세혁이 빨간 파형을 가리켰다. "지금 차트 상위 50곡 BPM 분포가 120~130 사이에 몰려 있어. 이 BPM 대에서 드롭이 두 번 있는 구조가 스트리밍 완주율이 가장 높아. 트렌드에 올라탈 수 있는 곡이야."
정우가 폰을 들었다. "맞아요. 제가 분석한 차트 상위 50곡 평균 BPM이 126이에요. A곡의 128은 오차 범위 안이에요."
오세혁이 정우를 봤다. 1초. 관심이 가는 눈이었다. "네가 그 분석을 했어?"
"네."
"데이터 소스는?"
"뮤직탑 공개 차트랑 스포티파이 오디오 피처스 API에서요."
오세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준을 봤다. '이 팀에 데이터 보는 애가 또 있네'라는 눈. 이준은 그 시선을 읽었다. 정우의 가치가 외부에서도 인정받는 순간이었다.
"나중에 분석 시트 좀 볼 수 있을까?" 오세혁이 정우에게 물었다.
"보내드릴게요." 정우가 답했다. 목소리가 평소보다 높았다. 0.5톤. 이준은 그 차이를 들었다. 인정받은 사람의 목소리.
B곡. 'Stay'. 파란 파형. 미드템포 발라드 팝. BPM 92. 파형에 골짜기가 있었다. 1절은 잔잔하게 시작. 프리코러스에서 올라가고, 후렴에서 살짝 내려갔다가, 2절 후반 브릿지에서 고음이 치솟는 구조. 파형이 산을 그렸다. 산의 정상이 서지환의 보컬 레인지와 정확히 겹쳤다.
"B는 보컬 킬링파트가 있어." 오세혁이 파란 파형의 브릿지를 가리켰다. "서지환 목소리에 맞춰서 작업한 곡이야. 이 구간에서 장3도를 한 번에 올려. 아까 서지환이 반음만 올리자고 했는데, 나는 장3도가 맞다고 봐. 끊어지는 순간이 각인이 되거든. 이 구간이 터지면 영상이 돌아. 쇼츠 15초에 딱 맞는 길이야."
서지환이 이준을 봤다. 눈에 말이 있었다. '이 곡을 부르고 싶다.' 입으로 하지 않아도 눈으로 됐다. 이준은 그 눈을 읽었다. 12화에서 '음악이 먼저'라고 말하던 눈과 같은 눈이었다. 하지만 12화와 다른 점이 있었다. 12화에서는 공격이었다. 지금은 요청이었다. 서지환은 이준에게 요청할 줄 아는 사람이 됐다.
C곡. 'Parallax'. 초록 파형. 실험적 구성. BPM이 곡 중간에 바뀌었다. 80에서 시작해 140으로 올라갔다가 90으로 내려갔다. 파형이 비대칭.
"C는 내 추천이야." 오세혁이 말했다. "해외 시장 잠재력이 있어. 이 BPM 변환 구조가 빌보드 핫 100에서 떠오르는 패턴이야. 지난 분기에 이런 구조의 곡이 3개 차트인했어.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2~3년 뒤에 이 흐름이 한국에도 와."
이준은 세 곡의 파형을 나란히 봤다. 빨간색은 안전. 파란색은 감정. 초록색은 미래. 세 가지 방향이었다. 하나를 골라야 했다.
"차트를 노리면 A, 팬심을 잡으면 B." 오세혁이 의자를 돌렸다. 이준을 정면으로 봤다. "둘 다는 안 돼. 마케팅 자원이 한정이니까. 음원 발매, 뮤직비디오, 쇼츠, 라이브 클립, 팬 이벤트. 전부 하나의 곡에 맞춰야 해. 두 곡에 나누면 둘 다 어중간해."
이준은 3초 동안 생각했다.
14화에서 서지환이 말했다. '좋은 곡이면 사람이 온다.' 알고리즘이 변경됐다. 새로운 리스너 가중치가 올라갔다. A곡은 트렌드에 올라탈 수 있다. 하지만 트렌드에 이미 비슷한 곡이 많다. BPM 128, 드롭 두 번. 이 구조는 지금 차트에 열 곡이 넘게 있다.
B곡은 트렌드가 아니다. 하지만 서지환의 고음이 터지는 브릿지 구간. 그 7초가 쇼츠로 돌면 사람들이 공유한다. 공유가 유입을 만든다. 공유율이 높은 곡이 초동에 더 유리해진 구조.
하지만 아직 확신이 없었다. 감으로 결정하는 건 이준의 방식이 아니었다. 감은 서지환의 영역. 이준의 영역은 데이터.
"데이터로 결정한다." 이준이 말했다. "A곡과 B곡 킬링파트를 각각 15초씩 쇼츠로 촬영해서 올린다. 48시간 후에 조회수, 유지율, 공유율을 보고 결정한다."
오세혁이 이준을 봤다. 3초. 의사결정을 데이터에 맡기는 방식을 평가하는 눈. 마음에 드는 건지 아닌 건지 읽을 수 없었다. 오세혁의 얼굴은 한도윤만큼 읽기 어려웠다.
"좋아. 48시간 줄게." 오세혁이 말했다. "근데 C곡은 버리지 마. 지금은 아니지만 나중에 쓸 곡이야."
이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C곡. 'Parallax'. 해외 시장. '나중에'라는 단어가 뜻하는 것은 이 팀이 '나중'까지 살아남는다는 전제. 오세혁은 그 전제를 깔고 있었다. 이 팀의 미래를 보는 사람이 회사 안에 한 명 더 있다는 것.
태현이 일어섰다. 발목의 아이스팩은 뗀 상태였다. "내가 촬영할게. A곡이랑 B곡 킬링파트 각각 15초. 구도는 연습실 거울 앞. 조명은 형광등 하나만 남기고 끄면 분위기 나와. 자막 한 줄. 해시태그 하나."
이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태현이 촬영과 편집을 맡으면 유지율이 높다. 아크1에서 증명됐다. 태현의 구도 감각은 데이터로 증명할 수 없는 종류의 능력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데이터로 나왔다. 유지율 72%. 태현이 찍지 않은 영상의 유지율은 58%였다. 14%포인트의 차이가 태현의 눈이었다.
"반응이 답이야." 태현이 말했다. 모자를 눌러 쓰면서. 하지만 눈은 가리지 않았다.
녹음실을 나왔다. 복도. 폰을 확인했다. 윤세아에게서 메시지가 와 있었다.
"이준 씨, 외주비 건 진행 상황이에요. 페이퍼 컴퍼니 대표 등록된 연락처로 전화했는데 결번이에요. 사업자등록 주소도 확인했는데 빈 사무실이었어요. 실체가 없어요."
이준은 복도 벽에 등을 대고 답장을 쳤다. "주소가 어디예요?"
"강남구 역삼동. 공유 오피스 주소인데 실제 입주 기록이 없대요."
'실체 없는 업체. 결번. 빈 사무실. 누군가가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회사를 만들고, 그 회사를 통해 1,600만 원을 빼돌렸다. 서류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은 회사 내부에 있다.'
"계속 추적해주세요. 계좌 이체 내역 확인 가능하면 부탁드려요."
"알겠어요. 시간이 좀 걸릴 거예요."
이준은 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복도 끝에서 서지환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태현과 농담을 주고받는 소리. 밝은 소리였다. 곡 후보가 나왔으니까. 방향이 보이기 시작했으니까. 멤버들의 공기가 12화 때보다 가벼웠다.
이준은 그 소리를 들으면서 걸었다. 한쪽 귀에는 서지환의 웃음이, 머릿속에는 결번과 빈 사무실이 있었다.
내일 업로드. 48시간 후 결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