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위로 거대한 돌덩이가 쏟아졌다.
백골동의 천장은 이미 수명을 다했다.
무너지는 잔해 사이로 붉은 기운이 솟구쳤다.
대장로 위철심의 전신이 기괴하게 팽창했다.
그의 모공마다 검붉은 혈무가 뿜어져 나왔다.
"혼자 죽지는 않겠다, 설무한."
갈라진 목소리가 고막을 찢듯이 파고들었다.
위철심의 발치가 닿는 곳마다 바닥이 녹아내렸다.
그는 자신의 생명력을 태워 공력을 끌어올렸다.
설무한은 대답 대신 검자루를 고쳐 쥐었다.
손바닥에 닿는 차가운 감촉이 선명했다.
단전 깊은 곳에서 한빙주의 냉기가 요동쳤다.
혈맥을 타고 흐르는 기운은 이미 이성이 감당할 수준을 넘어섰다.
살을 에는 추위가 뼛속까지 시리게 파고들었다.
설무한의 눈동자가 서서히 푸른 빛으로 변했다.
입술 사이로 하얀 입김이 길게 새어 나왔다.
"장로님의 길동무치고는 내가 너무 비싸지 않습니까."
설무한의 목소리는 건조하고 낮게 깔렸다.
위철심이 땅을 박차며 정권을 내질렀다.
공기가 타오르는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콰앙.
푸른 섬광과 붉은 내공이 정면으로 충돌했다.
백골동 전체가 비명을 지르며 흔들렸다.
충격파에 밀려난 돌가루가 안개처럼 시야를 가렸다.
위철심의 정권이 설무한의 가슴팍을 노렸다.
설무한은 피하지 않고 검을 수직으로 세웠다.
강철과 강철이 맞부딪치는 소리가 아니었다.
거대한 빙하가 용암에 닿아 폭발하는 소음이었다.
"크윽, 이 괴물 같은 기운은 대체 뭐냐."
위철심의 팔에 하얀 서리가 내려앉았다.
타오르던 혈무가 냉기에 눌려 힘을 잃었다.
설무한은 한 박자 늦게 반응하는 버릇을 억눌렀다.
지금은 망설임이 곧 죽음을 의미하는 순간이었다.
그는 몸 안의 한빙주를 완전히 해방했다.
억눌렀던 냉기가 폭포처럼 전신으로 터져 나갔다.
혈맥이 찢어지는 고통이 머릿속을 강타했다.
그러나 그는 이를 악물고 검을 휘둘렀다.
청운검문의 검식이 아닌, 오직 추위만을 담은 일격이었다.
파아앙.
위철심의 가슴에 푸른 검흔이 새겨졌다.
그의 상체가 뒤로 꺾이며 비틀거렸다.
"정무맹으로 가야 한다. 내 가족이 그곳에 있다."
설무한의 혼잣말에 위철심의 눈이 커졌다.
그는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피를 토해냈다.
"네 누이와 어머니가 살아있을 것 같으냐."
위철심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는 소매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려다 멈췄다.
설무한의 검끝이 그의 목덜미를 스치고 지나갔다.
"죽어서 확인해라. 나는 살아서 확인할 테니."
설무한의 검에 서린 냉기가 극점에 달했다.
위철심의 몸이 발끝부터 얼어붙기 시작했다.
붉게 타오르던 기운은 이제 흔적조차 없었다.
대장로의 눈동자에 처음으로 짙은 그늘이 졌다.
그는 무언가 말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였다.
하지만 얼음은 그의 목소리마저 삼켜버렸다.
콰드득.
유리 조각이 깨지는 소리가 동굴에 울렸다.
위철심의 신체가 수천 개의 얼음 파편으로 화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고수의 허망한 최후였다.
설무한은 검을 거두고 무너지는 천장을 보았다.
낙양의 밤하늘이 보이기 시작했다.
거대한 바위가 그의 머리 위로 직격했다.
그는 피하는 대신 바닥을 강하게 밟았다.
단전의 모든 기운이 발끝으로 모였다.
지면에서부터 거대한 냉기의 기둥이 솟구쳤다.
지하 수로의 물이 순식간에 얼어붙으며 팽창했다.
백골동을 집어삼키던 잔해들이 얼음 기둥에 밀려났다.
설무한의 몸이 얼음 기둥을 타고 지상으로 솟구쳤다.
낙양 한복판의 지면이 폭발하듯 갈라졌다.
사람들의 비명과 말의 울음소리가 뒤섞였다.
먼지 구름을 뚫고 거대한 얼음 기둥이 모습을 드러냈다.
높이만 수십 장에 달하는 기괴하고도 아름다운 결정체였다.
낙양의 지붕 위로 푸른 달빛이 얼음 기둥에 반사됐다.
기둥 꼭대기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남루한 옷차림에 삿갓을 깊게 눌러쓴 사내였다.
그의 발치에서부터 차가운 안개가 도시로 퍼졌다.
사람들은 넋을 잃고 그 광경을 올려다보았다.
"저게 대체 무엇이냐."
"사람이다. 기둥 위에 사람이 서 있다."
웅성거림이 파도처럼 낙양 거리를 휩쓸었다.
설무한은 흔들리는 시야를 바로잡았다.
한빙주를 무리하게 사용한 대가가 전신을 짓눌렀다.
손끝이 떨리고 감각이 무뎌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검을 놓지 않았다.
멀리 정무맹의 거대한 본산이 눈에 들어왔다.
금색 기와가 달빛 아래서 오만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곳에 위진악이 있고, 가문의 원수들이 있다.
그리고 아직 생사를 알 수 없는 핏줄들이 갇혀 있다.
설무한은 천천히 검을 들어 올려 정무맹을 가리켰다.
그의 검끝에서 떨어진 서리가 허공에서 흩어졌다.
"이제 청운검문은 없다. 오직 정무맹으로 향하는 길뿐이다."
낮게 읊조린 목소리가 내공을 타고 사방으로 퍼졌다.
시장통의 상인들도, 순찰하던 무인들도 얼어붙었다.
성벽 위에 서 있던 정무맹의 무사들이 병기를 꼬나쥐었다.
하지만 누구도 선뜻 얼음 기둥으로 다가오지 못했다.
사내가 뿜어내는 기운은 이미 인간의 영역이 아니었다.
설무한은 품 안에서 낡은 서신 한 장을 꺼냈다.
사부가 죽기 직전 전해준, 배신의 증거가 담긴 종이였다.
그는 서신을 허공으로 던져버렸다.
종이는 냉기에 닿아 딱딱하게 굳은 채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제 증거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진실은 칼끝으로 증명하는 것이 강호의 법도였다.
정무맹 본산의 거대한 정문이 천천히 열렸다.
수백 명의 무인이 횃불을 들고 쏟아져 나왔다.
그 중심에 화려한 비단옷을 입은 위진악이 보였다.
위진악은 얼음 기둥 위의 설무한을 발견하고 멈춰 섰다.
그의 손가락이 소매 안에서 미세하게 경련했다.
설무한은 그 떨림을 놓치지 않았다.
공포인지, 혹은 아직 남은 죄책감인지 알 수 없었다.
어느 쪽이든 상관없었다.
설무한은 얼음 기둥에서 가볍게 몸을 날렸다.
그가 허공을 가를 때마다 하얀 눈꽃이 흩날렸다.
낙양의 한여름 밤에 때아닌 서리가 내리고 있었다.
정무맹 무인들이 일제히 검을 뽑아 들었다.
위진악이 목소리를 높여 외쳤다.
"반역자 설무한을 잡아라. 저놈은 제정신이 아니다."
설무한은 공중에서 검을 수평으로 그었다.
푸른 검기가 반달 모양으로 퍼지며 지면을 휩쓸었다.
최전방에 서 있던 무인들이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나동그라졌다.
그들의 병기는 이미 하얗게 얼어붙어 부러진 상태였다.
설무한의 발이 차가운 돌바닥에 닿았다.
그는 위진악을 향해 똑바로 걸음을 옮겼다.
수많은 칼날이 그를 에워쌌지만 누구도 먼저 베지 못했다.
설무한의 눈동자에서 뿜어져 나오는 냉기 때문이었다.
"진악아, 네가 가르쳐준 대로 하마."
설무한이 입을 열자 주변의 온도가 급격히 떨어졌다.
위진악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려 한 걸음 물러났다.
"무슨 말이냐. 나는 너에게 가르친 것이 없다."
"배신은 소리 없이, 그리고 확실하게 하라고 하지 않았나."
설무한은 검을 낮게 뉘어 바닥을 긁었다.
끼이익 하는 날카로운 마찰음이 정적을 깼다.
그는 위진악의 어깨 너머로 보이는 본산 깊숙한 곳을 응시했다.
그곳에서 낯익은, 그러나 아주 희미한 기운이 느껴졌다.
어린 시절 누이의 옷자락에서 나던 분 냄새와 닮은 기운이었다.
심장이 기괴한 박동을 치며 요동쳤다.
단전 속의 한빙주가 그 기운에 반응하며 울부짖었다.
설무한의 시야가 붉게 물들었다가 다시 푸르게 돌아왔다.
정무맹의 고수들이 그를 포위하며 좁혀왔다.
"멈춰라. 더 이상 다가오면 즉시 사살하겠다."
금의를 입은 정무맹의 집행대장이 소리쳤다.
그의 손에는 가문의 문양이 새겨진 황금 사자 검이 들려 있었다.
설무한은 그 문양을 보는 순간 멈춰 섰다.
멸문의 밤, 자신의 집 담벼락을 넘던 자들의 가슴에 새겨진 것과 같았다.
분노가 신체 반응보다 먼저 튀어 나오려 했다.
그는 혀끝을 깨물어 강제로 이성을 붙잡았다.
"비켜라. 죽고 싶지 않다면."
설무한의 경고에 집행대장이 코웃음을 쳤다.
그는 검을 높이 들어 공격 신호를 보냈다.
그 순간, 설무한의 몸이 안개처럼 흐릿해졌다.
눈 깜짝할 사이에 그는 집행대장의 등 뒤에 서 있었다.
챙그랑.
황금 사자 검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집행대장의 손목은 이미 푸르게 얼어붙어 감각을 잃었다.
설무한은 위진악의 코앞까지 다가가 검을 겨누었다.
"내 가족들은 어디에 있느냐."
위진악은 입술을 파르르 떨며 소매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의 손에는 작은 옥패 하나가 쥐어져 있었다.
그것을 본 설무한의 눈이 가늘어졌다.
어머니가 그에게 마지막으로 남겼던 유품이었다.
"한 걸음만 더 움직여봐라. 이 옥패가 박살 나는 순간 네 어머니의 목숨도 끝이다."
위진악의 목소리에는 비굴함과 광기가 섞여 있었다.
설무한의 검끝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는 위진악의 눈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위진악은 승기를 잡았다는 듯 비열한 미소를 지었다.
주변을 포위한 무인들이 서서히 거리를 좁혀왔다.
설무한은 천천히 검을 내렸다.
그의 발밑으로 검은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그 옥패, 가짜로구나."
설무한의 낮은 목소리에 위진악의 표정이 굳었다.
그는 당황한 기색을 숨기려 옥패를 더욱 꽉 쥐었다.
"무슨 헛소리냐. 직접 보고도 모르겠느냐."
"어머니의 옥패는 온기를 머금는다. 하지만 네 손에 든 것은 죽은 돌이다."
설무한은 단번에 바닥을 차고 올랐다.
그의 신형이 위진악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위진악이 급히 옥패를 부수려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하지만 그의 손가락은 이미 움직이지 않았다.
하얀 서리가 그의 손목부터 어깨까지 순식간에 뒤덮었다.
설무한은 위진악의 손에서 옥패를 낚아채 바닥으로 던졌다.
돌덩이가 깨지며 그 안에서 작은 종이 뭉치가 튀어 나왔다.
설무한은 종이를 펼쳐 내용을 확인했다.
그의 안색이 순식간에 창백하게 변했다.
종이에는 정무맹주 백운비의 인장과 함께 짧은 문구가 적혀 있었다.
'실험체 07번, 설무한의 가족은 이미 십 년 전 처분 완료.'
설무한의 머릿속에서 무언가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고개를 들어 위진악을 바라보았다.
위진악은 공포에 질린 채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아니야, 그건 백운비가 마음대로 적은 것이다."
위진악의 변명은 설무한의 귀에 닿지 않았다.
설무한의 전신에서 푸른 냉기가 폭풍처럼 몰아쳤다.
낙양의 밤하늘이 거대한 먹구름으로 뒤덮였다.
눈송이가 아닌, 날카로운 얼음 파편들이 비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다시 도시를 가득 채웠다.
설무한은 검을 가슴 높이로 들어 올렸다.
그의 눈에는 이제 오직 정무맹의 본당만이 담겨 있었다.
"전부 죽여주마."
그가 첫걸음을 내딛는 순간, 땅이 뒤집히며 얼음 가시들이 솟구쳤다.
위진악은 비명을 지르며 본당 안으로 도망쳤다.
설무한은 그를 쫓지 않고 제자리에 서서 심호흡을 했다.
그의 심장 근처 혈맥이 검게 변하며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한빙주의 진정한 힘이 그의 인간성을 잠식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손가락 끝은 이미 투명한 얼음처럼 변해 있었다.
정무맹의 깊은 곳에서 거대한 기운이 응답하듯 솟아올랐다.
백운비의 웃음소리가 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듯했다.
설무한은 검을 휘둘러 정무맹의 현판을 반으로 갈랐다.
부서진 나무판자가 바닥으로 추락했다.
그는 삿갓을 벗어 던지고 정문을 향해 걸어 들어갔다.
수천 명의 무인이 그를 향해 병기를 겨눴다.
설무한은 피 묻은 입술을 닦아내며 낮게 읊조렸다.
"시작해라. 지옥으로 가는 길을 열어줄 테니."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정무맹 본당 전체가 하얗게 얼어붙기 시작했다.
그때, 본당 지하에서 거대한 진동과 함께 검은 손들이 솟아올랐다.
죽은 줄 알았던 청운검문 제자들이 기괴한 모습으로 땅을 뚫고 나왔다.
그들의 눈은 설무한과 같은 푸른 빛으로 번뜩이고 있었다.
설무한은 그들을 보며 검을 고쳐 쥐었다.
"사형, 왜 이제야 오셨습니까."
얼굴의 절반이 얼어붙은 사제가 설무한을 향해 기괴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