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화. 계산 착오
제주까지 비행기로 1시간 10분이었다.
창밖으로 제주의 해안선이 보였다. 검은 암석과 흰 파도. 그 사이로 보라색 증기가 올라오는 구역이 있었다. 블랙 존. 게이트 잔류 마력이 10년째 빠져나오고 있는 땅.
어제 백호 본사에서 서명한 계약서가 가방 안에 들어 있었다. 손해배상 200%. 경영권 변동 해지. 두 개의 함정. 하지만 오늘부터 3개월간, 이 함정을 밟지 않으면 된다.
밟지 않으면서, 백호의 내부를 배운다.
▶ 오전 8시. 제주 블랙 존. D구역 입구.
바다 냄새와 마나의 금속성 냄새가 뒤섞여 있었다. 지면 위로 보라색 증기가 올라왔다. 발밑의 흙이 질었다. 아침비가 내린 뒤였다. 공기가 무거웠다. 숨을 들이쉬면 폐 안에서 마나의 맛이 느껴졌다. 쓴맛. 철분과 비슷하지만 다르다.
이카루스 헌터 3명이 승헌 뒤에 서 있었다. 완전 무장. C급 표준 장비. 박성우가 선두에, 김대호와 이영철이 양열에 섰다. 표정은 긴장 반, 불안 반.
박성우가 승헌을 봤다.
“첫 호위 임무입니다. 지시 사항 있으십니까?”
“채굴팀이 우선입니다. 이카루스 헌터가 다치는 건 감당할 수 있지만, 채굴팀이 다치면 계약이 끝납니다.”
박성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김대호가 검의 날을 확인했다. 이영철이 헬멧의 잠금장치를 조였다.
백호 채굴팀 12명이 앞서 진입했다. 채굴 장비를 등에 메고, 보호복을 갖추고. 프로였다. 움직임에 군더더기가 없었다. 이카루스 헌터들과는 호흡의 리듬부터 달랐다. 이 사람들은 블랙 존을 수십 번 들어가 본 몸들이다.
승헌은 D구역 입구에 서서 마켓 아이를 발동했다.
D구역 마나 농도: 안정. 예상 몸스터 출현율: 시간당 2.3체. 등급: D~C. 공략 위험도: 중하. 수익률: 양호.
수치는 괜찮았다. 이카루스 3명이면 충분히 커버 가능한 범위.
“진입합니다.”
D구역은 해안 절벽 아래 동굴 구조였다. 깊이 약 400m. 내부에 마석 광맥이 여러 갈래로 뽙어 있다. 천장에서 물이 떨어졌다. 마나가 섞인 물이었다. 맥박이 없는 간격으로 똑똑 떨어졌다. 벽은 습기로 젖어 있었고, 손을 대면 시리도록 차가웠다.
채굴팀이 진입하고, 이카루스가 후위를 맡았다.
처음 2시간은 순조로웠다. D급 몸스터 4체 처리. 석형 몸스터 2체, 벌레형 1체, 박쥐형 1체. 이카루스 헌터들이 교대로 상대했다. 박성우가 선두에서 탱을 잡았고, 김대호가 측면을 커버했다. 이영철은 후방에서 채굴팀과의 거리를 유지했다.
효율적이었다. 강민재 없이도 D급은 감당할 수 있었다.
이 페이스라면 계약 이행에 문제없다.
그렇게 생각했다.
문제는 3시간째에 발생했다.
동굴 깊숙한 곳에서 마나 농도가 급변했다. 공기의 질감이 달라졌다. 마치 물속에 들어간 것처럼 공기가 무거워졌다. 박성우가 가장 먼저 느꼈다. 검을 든 손이 멈겷다.
마켓 아이가 경고를 올렸다.
마나 농도 급상승. 현재 농도: D구역 평균 대비 340%. 몸스터 등급 상향 가능성.
승헌의 발이 멈겷다.
340%. D구역의 마나 농도가 C구역 수준으로 올라가고 있다. 이건 마켓 아이의 초기 분석에 없었던 수치다.
오류.
마켓 아이는 시장 데이터 기반이다. D구역의 마나 농도는 HMB 공식 관측 데이터를 참조한다. 하지만 HMB의 마지막 관측은 2개월 전이다.
2개월 사이에 변한 것이 있다. 마켓 아이가 모르는 변수.
“성우 씨.” 승헌이 말했다. 낮게.
“느꼈습니다.” 박성우의 목소리도 낮아져 있었다.
“채굴팀 정지시켜주세요. 더 들어가면 안 됩니다.”
박성우가 돌아서 채굴팀 팀장에게 손짓을 보냈다. 팀장이 멈겷다. 승헌을 봤다. 숨이 막힐다는 표정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게 뭔 소리야’라는 눈이었다.
그때, 동굴 벽 뒤에서 소리가 들렸다.
깁는 소리. 무거운 것이 움직이는 소리. 동굴 벽 자체가 진동했다. 천장에서 돌 파편이 떨어졌다.
벽이 갈라졌다.
C급 몸스터.
갑각형. 다리 여섯. 크기는 D급의 세 배. 갑각 표면에 마나가 흐르고 있었다. 녹색 빛. 동굴 벽을 깨고 나온 충격으로 분진이 일었다. 시야가 흐려졌다.
이카루스 헌터 전원이 D급 대응 대형으로 서 있었는데, C급이 나왔다.
“후퇴!” 승헌이 말했다. 짧고 낮은 목소리였지만 회랑 전체에 울렸다.
김대호가 반응했다. 뒤로 물러났다. 이영철도 물러났다.
박성우의 반응이 늦었다. 0.5초. 그 0.5초가 대가를 치렀다.
몸스터의 다리가 스쳤다. 박성우의 왼팔. 방어구가 찢어졌다. 피가 튀었다. 동굴 바닥에 붉은 점이 튜었다.
“성우 씨! 뒤로!”
김대호가 부상자를 끌어냈다. 이영철이 방어 자세를 잡았다. 검날이 머리 앞에서 수평으로 선을 그었다. 대응 자세는 정확했지만 손끝이 떨리고 있었다.
승헌은 움직이지 않았다.
전면에 나설 수 없다. 각성 상태 노출. 하지만 부상자가 나왔다.
마력 잔량: 측정 불가(미각성 상태 유지 중). 물리적 개입 시 신체 능력 노출.
C급 몸스터가 두 번째 공격을 준비했다. 갑각이 열리며 내부의 마력이 응축됐다. 녹색 빛이 밝아졌다. 원거리 공격.
승헌이 결정했다.
돌을 집었다. 주먹 크기. 무게를 가늂했다. 약 350g. 던졌다.
몸스터의 왼쪽 눈에 정확히 맞았다.
돌멩이였다. 마력을 실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정확도가 비정상적이었다. 10m 거리에서 이동 중인 몸스터의 눈에 돌멩이를 꼽는 비각성자는 없다.
이영철이 승헌을 봤다. 눈이 커졌다. 하지만 지금은 놀랄 시간이 아니었다.
몸스터가 방향을 틀었다. 승헌을 향해. 1초의 빈틈이 생겼다. 이영철이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검이 갑각의 관절을 찔렀다.
C급 몸스터가 쓰러졌다.
3분간의 전투였다.
부상자 한 명. 박성우. 왼팔 열상. 심각하지는 않지만 공략 속행은 불가능했다. 김대호가 응급 시료를 했다. 붕대를 감는 손이 정확했다. 전투 외 능력도 있는 사람이었다.
“후송합니다.” 승헌이 말했다.
채굴팀 팀장이 다가왔다. 50대 초반. 방호복 위에 먼지가 앉아 있었다. 동굴 붕괴 때 흔들렸던 돌 가루다.
“계약 조건은 3개월입니다. 오늘의 사고는 보고하겠습니다.”
손해배상 200%. 부상자 발생. 기범이 이걸 빌미로 쓸 수 있다.
“보고하세요. 저쪽에서 먼저 빌미를 만들게 두면 안 됩니다.”
팀장이 고개를 끔덕였다. 승헌의 태도가 예상 밖이었던 모양이다. 사고를 숨기려 할 거라 생각했던 것일까.
▶ D구역 출구. 오후 12시.
동굴을 빠져나왔다.
제주의 바다가 보였다. 3월의 바다. 차갑고 어두웠다. 파도가 암석에 부딪히는 소리가 리듬 없이 반복됐다. 바람에 소금기가 섞여 있었다.
마켓 아이가 새로운 수치를 올렸다.
승헌은 그 수치를 보고 멈겷다.
D구역 마나 농도 이상 패턴 분석 완료. 해당 패턴, 제주 대균열 전조 데이터와 87% 일치.
87%.
전생에서 본 숫자들이 겹쳤다. 찢어진 하늘. SSS급 게이트. 마석 폭풍. 제주 전역을 삼킨 화염. 수만 명의 사상자. 그날의 하늘을 기억한다. 붉은색이었다.
10년 후의 일이다. 아직 10년이 남았다.
하지만 마나 농도 이상은 지금 발생하고 있다. 10년 전부터 전조가 있었다는 뜻이다.
전생에서는 이걸 몰랐다. 아무도 관측하지 않았으니까.
스마트폰을 꺼내 메모를 열었다. ‘제주 대균열 관련 데이터’. 새 항목을 추가했다.
‘D구역 마나 농도 340%. 대균열 전조 패턴 87% 일치. 관측 시점: 2026년 4월.’
이 데이터는 아직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다. 시장에 없는 정보는 마켓 아이로도 설명할 수 없으니까.
주머니에 스마트폰을 넣었다. 돌아서서 후송 차량으로 걸었다.
마켓 아이가 틀렸다. 처음이다.
시장에 없는 변수는 계산할 수 없다. 마켓 아이의 한계다. 그리고 나의 한계이기도 하다.
전생의 기억만으로는 부족하다. 현재의 데이터가 필요하다.
바다 냄새가 바람에 실려 왔다. 소금기와 마나의 금속성 냄새가 섞여 있었다. 제주의 바다는 침묵했다. 파도만이 말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