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화. 검과 계산기
서울 외곽. 성남시 소재 D급 던전 ‘잠든 광산’.
새벽 5시. 해가 뜨기 전. 공기가 차가웠다. 숨을 내쉬면 입김이 보였다.
던전 입구에 승헌이 혼자 서 있었다. 왼손에 검. 오른손에 스마트폰. 마석 시세 앱이 켜져 있었다. 화면의 숫자가 새벽 공기 속에서 밝게 빛났다.
현재 D급 마석 시가: kg당 25만 원. '잠든 광산' 예상 매장량: 1.2톤. 완전 채굴 시 약 3억 원.
3억이면 담보 부족분을 메우고 한 달 운영비가 남는다.
HMB 무인 관리소에 솔로 공략 신청서를 넣었다. D급 던전 솔로 공략은 C급 이상 헌터에게만 허용되지만, 예외 조항이 있다. ‘자기 책임 공략 서약서’를 제출하면 등급 미분류 상태에서도 진입이 가능하다. 보험 적용 불가. 사망 시 HMB 책임 없음.
서약서에 서명했다. 펜이 종이를 누르는 감촉. 전생에서도 비슷한 서약서에 서명한 적이 있다. 다만, 그때는 S급 던전이었고, 결과도 달랐다. 그날의 서약서 끝에는 죽음이 있었다. 오늘의 서약서 끝에는 돈이 있다.
▶ 새벽 5시 10분. ‘잠든 광산’ 내부.
던전에 진입했다.
‘잠든 광산’은 이름 그대로 광산 구조의 던전이었다. 갱도가 지하로 뾉어 있고, 마석이 벽면에 결정 형태로 박혀 있다. 벽면의 마석이 희미하게 빛났다. 청백색. 마치 별이 땅속에 박힌 것 같았다. 공기는 습했다. 흙냄새와 광물 냄새가 섞여 있었다. D급 몸스터가 서식하지만, 공격성은 낮다. 영역 방어형.
첫 번째 갱도. 길이 30m. 몸스터 없음.
마켓 아이를 발동했다.
갱도 1: 마석 농도 하. 채굴 효율 17%. 통과 권장.
두 번째 갱도. 분기점. 왼쪽과 오른쪽.
갱도 2-좌: 마석 농도 중. 몸스터 예상 2체. 채굴 효율 42%.
갱도 2-우: 마석 농도 상. 몸스터 예상 4체. 채굴 효율 78%.
오른쪽으로 갔다.
첫 번째 D급 몸스터가 40m 전방에 있었다. 석형 몸스터. 바위와 흡사한 체형. 움직임이 느리다.
전생의 기억이 몸에 남아 있었다. 발을 옮겼다. 무게 중심을 낮겴다. 검을 그었다.
하지만 몸이 따라오지 않았다.
E급 신체의 한계. 검을 휘두르는 속도가 전생의 1/3. 힘은 1/5. 갑각을 한 번에 벨 수 없다. 팔에 진동이 전해졌다. 손목이 저렸다. 전생의 몸이라면 느끼지도 못했을 충격.
두 번, 세 번. 같은 지점을 반복해서 베었다. 정확도만으로 부족한 힘을 보충했다.
30초 만에 첫 번째 몸스터가 쓰러졌다. C급 헌터 기준 15초 작업이다. 두 배.
비효율.
하지만 EBITDA 마이너스인 길드를 살리려면 이런 비효율도 감수해야 한다.
나머지 3체를 처리했다. 시간이 걸렸다. 체력이 빠져나갔다. 호흡이 거칠어졌다. 다리가 무거웠다. E급 신체는 전투를 위한 몸이 아니다. 사무실에서 재무제표를 읽는 몸이다.
하지만 기술은 남아 있었다. S급이 10년간 쌓은 전투 기술. 몸스터의 공격 패턴을 읽고, 빈틈을 찾고, 최소한의 힘으로 급소를 노리는 기술. 이건 근력이 아니라 두뇌의 영역이다.
마지막 몸스터를 벨 때, 오른팔에 경련이 왔다. 근육이 수축하면서 떨렸다. 검을 놓칠 뻐했다. 이를 악물었다. 3초. 경련이 풀렸다. 검을 다시 잡았다.
두 번째 몸스터는 벌레형이었다. D급치고는 빠랐다. 다리가 여덟 개. 좁은 갱도에서는 회피가 어렵다. 벽을 등지고 서서 1대 1로 상대했다. 발을 안쪽으로 모아 중심을 잡고, 다리가 들어올 때마다 검으로 틀어냈다. 다리 한 개씩. 체력을 아껴야 했다.
세 번째는 영역 방어형이었다. 마석 광맥 앞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건드리지 않으면 공격하지 않는 타입. 하지만 광맥을 채굴하려면 이 녀석을 치워야 한다. 영역 방어형의 약점은 영역 바깥에서 돌을 던져 유인하는 것이다. 전생에서 배운 노하우.
네 번째. 가장 큰 놈이었다. 갈색 갑각이 두껍고, 충격을 주면 진동이 팔 전체로 전해졌다. 이걸 베려면 정확히 같은 자리를 5번 이상 치야 하는 것이다. 5번째에서 검날이 갈라져 들어갔다. 갑각이 갈라지는 소리. 돌이 깨지는 소리와 비슷했다.
쓰러졌다. 마지막 몸스터.
승헌은 갱도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숨이 거칠었다. 손이 떨렸다. 다리에 힘이 없었다. E급 신체가 한계에 도달한 증상들이다. 1분. 호흡을 고르고 일어섰다. 아직 채굴이 남았다.
3시간.
D급 던전 클리어. 일반 C급 파티 기준 8시간.
마석 수확. 채굴 도구는 없었지만, 마석 결정은 특정 방향으로 충격을 주면 깨끗하게 분리된다. 결정의 성장 방향을 읽고, 검의 손잡이 부분으로 틀을 만들어 타격한다. 전생에서 채굴 효율을 연구한 적이 있다. 대부분의 헌터는 전투만 하고 채굴은 전문 팀에 맡긴다. 승헌은 채굴까지 직접 했다.
수확량: 1.68톤. 예상치 1.2톤 대비 1.4배.
마켓 아이가 수치를 올렸다.
시가 환산: 약 4.2억 원. 담보 부족분 해소 가능.
▶ 오전 8시. ‘잠든 광산’ 출구.
던전을 빠져나왔다. 새벽 5시에 들어가서 오전 8시에 나왔다. 하늘이 밝아져 있었다. 3월의 아침 공기가 폐를 채웠다. 던전 안의 습한 공기와는 달랐다. 차갑지만 깨끗했다.
출구에 차 한 대가 서 있었다.
은설이었다.
“어떻게 여기를.”
은설이 차에서 내렸다. 태블릿을 들고 있었다. 표정이 평소와 달랐다. 차분하되 단단한 표정. 눈 밑에 그림자가 있었다. 잠을 못 잔 흔적이다.
“HMB 솔로 공략 신청 기록은 공개 데이터입니다. 새벽에 확인했습니다.”
“…그래서 여기까지 온 겁니까?”
“마석 운반 차량이 필요할 거라고 판단했습니다.”
실용적인 이유였다. 1.68톤의 마석을 혼자 옮길 수는 없으니까.
은설이 던전 출구에 쌓인 마석 더미를 봤다. 그리고 승헌을 봤다. 승헌의 옷에는 몸스터의 체액이 묻어 있었고, 오른 손등에는 찰과상이 있었다. 오른팔 소매에 했살이 비쳤다. 근육이 경련을 일으켰던 흔적이 보였다. E급의 몸으로 D급 던전을 솔로로 깐 흔적.
“어떻게 된 건지 설명해 주셔야 합니다.”
승헌은 은설을 봤다.
말할 수 있는 범위. 각성 미분류가 아니라는 것. 그 이상은 아직 안 된다.
“각성 실패자가 아닙니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 이상은 아직 말할 수 없습니다.”
은설은 3초간 승헌을 바라봤다. 눈이 흔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고개를 끔덕였다.
“알겠습니다. 묻지 않겠습니다.”
차에 탔다. 은설이 운전석에 앉으며 태블릿을 건돈다.
“대신 이거 보세요.”
태블릿 화면. 문서 파일. 이카루스 헌터 잔류 서약서.
6명 전원의 서명이 찍혀 있었다.
“언제 받은 겁니까?”
“어제 밤입니다. 강민재 헌터가 나간 뒤, 남은 분들이 자발적으로 서명했습니다.”
자발적.
승헌은 서명들을 한 명 한 명 봤다. 박성우. 어제 제주에서 다친 팔로 서명했을 것이다. 김대호. PMC 회의에서 위험을 물었던 사람이 서명했다. 이영철. 코웃음을 치며 '경비원은 싫다'고 했던 사람이 서명했다. 6개의 이름. 6개의 판단. 6개의 선택.
LBO 계약보다 무거운 서류다. LBO는 돈으로 새는 계약이다. 이건 사람이 새는 계약이다.
“…감사합니다.”
이 두 글자가 전부였다. 더 말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승헌은 그런 종류의 언어를 많이 갖고 있지 않았다. 숫자로 말하는 데 익숙한 사람이다. 감사합니다라는 두 글자에는 숫자가 없다. 그래서 어려웠다.
은설이 차를 출발시켰다. 아무 말 없이.
창밖으로 성남의 아침 풍경이 지나갔다. 나무들 사이로 아침 햇살이 비스듬히 들어오고 있었다.
마켓 아이가 수치를 올렸다.
이카루스 내부 결속도: 재산정 중…
결속도 수치화 불가. 데이터 부족.
그렇겠지. 마켓 아이는 사람의 마음을 계산하지 못한다.
그게 나의 약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