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화. 구조조정
이카루스 회의실. 오전 10시.
화이트보드에 글씨를 적었다. 보드마카 뜻께을 열자 잘크 냄새가 코끝을 질렀다. 검은 글씨가 하얀 판 위에 새겨졌다.
‘이카루스 B급 밸류업 로드맵.’
은행 대출 조건 재협의 성공. 마석 매각 대금 4.2억 입금. 담보 부족분 해소. 금리 인상 없이 기존 조건 유지. 어제 새벽에 던전을 까서 만든 돈이다. E급 신체에 찰과상과 근육통을 남기고 벌어온 4.2억.
형의 두 번째 수를 막았다. 하지만 세 번째가 올 것이다.
회의실은 10평짜리 방이었다. 형광등 두 개. 하나는 깜박이고 있었다. 에어컨이 돌아가고 있었지만 바람이 약해서 방 안이 미지근했다. 오래된 의자들이 사람이 앉을 때마다 삐격거렸다. 창으로 들어오는 오전 햇살이 테이블 위를 반으로 자르고 있었다.
은설과 박성우, 남은 헌터 6명이 앉아 있었다. 박성우의 왼팔에 붉대가 감겨 있었다. 제주에서 다친 팔.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지만 회의에는 나왔다.
승헌은 화이트보드를 향해 말했다.
“이카루스의 수익 구조를 3개월 안에 바꿉니다. 목표는 영업이익 흑자 전환.”
▶ 첫 번째. 인건비 재편.
“보수 체계를 고정급에서 성과급으로 전환합니다.”
의자가 삐격거렸다. 누군가 자세를 바꿨 소리다. 김대호였다.
“성과급이면 기본 수입이 줄어드는 거 아닙니까?” 김대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날카로웠다.
“기본급은 현재의 80%로 유지합니다. 나머지 20%는 던전 공략 수익과 PMC 파견 수익에 연동됩니다.”
이영철이 팔쟥을 끼고 있었다. 눈을 가늘게 뜬 채 승헌을 보고 있었다. 이 사람은 질문을 하기 전에 먼저 평가한다.
“잘하면?” 김대호가 말했다.
“현재 연봉의 1.5배까지 가능합니다.”
“못 하면?”
“제가 먼저 손해를 봅니다.” 승헌이 말했다. “제 보수가 가장 먼저 삭감됩니다.”
침묵이 내려앉았다. 숫자 앞의 침묵이 아니었다. 신뢰를 저울질하는 침묵이었다. 누군가의 숨소리가 조용한 회의실에 깔려 있었다.
이영철이 팔쟥을 풀었다. 천천히. 그리고 물었다.
“자기 보수부터 깎는 사장은 처음 봅니다.”
동의는 아니었다. 평가였다. 하지만 이영철이 팔쟥을 푼 것으로 충분했다.
박성우가 고개를 끔덕였다. 붉대 감긴 왼팔을 오른손으로 감싸며.
“동의합니다.”
하나가 동의하면 나머지는 따라온다. 조직의 역학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역학이 아니라 잔류 서약의 무게였다. 어제 밤 자발적으로 서명한 사람들이다.
▶ 두 번째. PMC 파견 계약 확대.
승헌은 화이트보드에 숫자를 적었다. 백호 길드 제주 D구역 호위 계약에 이어, 추가 3건을 수주한다. 서울 시내 기업 보안, 마석 운송 호위, 던전 탐사 지원.
은설이 태블릿에서 계약 현황을 보여줬다. 화면 위의 숫자들이 헌터들의 눈에 들어왔다. 3건 모두 엘리시움 네트워크를 통해 확보한 의뢰.
월 예상 수익: 기존 던전 공략료 대비 2.3배. 숫자를 보고 김대호의 어깨가 풀렸다. 이영철은 고개를 하지는 않았지만, 팔쟥을 다시 끼지도 않았다.
▶ 세 번째. 마석 정제 내재화.
이건 승헌이 아니었다.
박성우가 손을 들었다. 붉대 감긴 왼팔이 아니라 오른팔을. 전투 중에도 장비를 정비하는 사람답게, 말하기 전에 자료를 준비해 두었다. A4 용지 한 장. 손글씨로 적은 원가 분석표였다.
“지금까지 이카루스는 채굴한 마석을 외부 정제소에 위탁했습니다. 정제 수수료가 매출의 15%입니다.” 박성우가 용지를 테이블 위에 놓았다. “소형 정제기를 도입하면 수수료 절감은 물론, 자체 정제 마석의 품질 관리가 가능합니다.”
박성우가 제안했다. 전투형 헌터가 정제 내재화를 제안한다는 건, 이 사람이 길드의 운영을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전투만 하는 헌터에서, 길드를 경영하는 헌터로.
“비용은?”
“중고 정제기 1대, 설치비 포함 8천만 원입니다. 제가 업체 세 곳에 견적 받았습니다.”
8천만 원. 현재 현금 흐름으로 2개월이면 회수 가능. 그리고 간과하면 연간 1.8억 절감.
“승인합니다.”
박성우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갔다. 자신의 제안이 받아들여진 사람의 표정이었다.
회의가 끝났다. 헌터들이 하나씩 나갔다. 의자 끌리는 소리가 바닥에 깁혔다.
▶ 오후 1시. 이카루스 사무실.
승헌은 태경에게 전화했다.
“마석 선물 펀드 세팅 완료됐습니까?”
“어제 SPC 설립 완료. GP는 싱가포르 현지 법인 ‘아크 캐피탈’. LP 유치는 엘리시움 자체 자금 20억으로 시작해.”
블랙 먼데이 포지션 셋업 완료. 2년 뒤 수익 예상: 투자금 대비 820%.
전화를 끊었다. 창밖으로 오후 햇살이 비스듬히 들어오고 있었다.
▶ 오후 4시. 은설 보고.
은설이 들어왔다. 손에 스마트폰을 들고 있었다. 화면이 켜져 있었다.
“최준혁 건입니다. 이카루스 헌터들에게 개별 접촉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오늘 박성우 대리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내용은?”
“스카우트 제안. 연봉 3배. 미래그룹 계열 A급 길드 소속 보장.”
형의 세 번째 수. 거래처 이탈, 관청 압력, 이번에는 인력 빼가기.
“성우 씨가 뛐라고 했습니까?”
“저에게 바로 알려줬습니다.”
“다른 헌터들은요?”
“전원 보고했습니다. 최준혁에게서 전화받은 사람이 3명 더 있습니다.”
전원 보고. 잔류 서약의 무게. 어제 새벽 던전에서 돌아온 뒤, 은설이 건네준 태블릿 위의 6개의 서명. 그 무게가 오늘도 작동하고 있다.
은설이 스마트폰 화면을 보여줬다. 최준혁이 보낸 문자 캔처. 연봉 3배. A급 길드. 그리고 마지막 줄.
‘강승헌의 자금 출처에 대해 알고 싶으시면 연락 주십시오.’
승헌의 손가락이 테이블 위에서 멈겷다.
자금 출처. 차명 펀드를 감지한 건가. 아니면 블러핑인가.
마켓 아이를 발동했다.
최준혁 측이 차명 펀드(아크 캐피탈)의 존재를 파악했을 확률: 34%. 블러핑 확률: 66%.
66%. 블러핑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34%도 무시할 수 없는 숫자다.
“아크 캐피탈 관련 서류 접근 권한을 태경 씨와 저만으로 제한해주세요. 엘리시움 내부에서도 누출되면 안 됩니다.”
“알겠습니다.”
은설이 나갔다.
─── 강도윤
미래그룹 본사 47층. 부회장실.
도윤은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이카루스 관련 보고서. 최준혁이 올린 주간 보고였다. 부회장실의 조명은 어두웠다. 도윤은 데스크 람프 하나만 켜 두고 보고서를 읽는 습관이 있었다. 어두운 방에서 더 집중이 잘 됐다.
‘스카우트 응답률 0%. 헌터 전원 거부.’
도윤은 보고서를 내려놓았다. 손가락이 책상을 두드렸다. 느리게. 한 번. 창밖으로 서울 전체가 보였다. 47층에서 보는 서울은 작았다.
승헌이 버티고 있다.
예상 밖이었다. 거래처를 끊고, 감정원을 움직이고, 스카우트까지 넣었는데 이카루스가 아직 서 있다. 헌터가 한 명도 이탈하지 않았다. C급 길드의 헌터들이 연봉 3배를 거절했다. 박성우라는 헌터는 오히려 처음 보고했다.
돈으로 안 되는 걸 돈으로 풀려고 했다. 접근이 틀렸다.
도윤은 전화기를 들었다. 비서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준혁 씨. 다음 단계로 넘어가.”
“어떤 방향입니까?”
“승헌이가 아니라 이카루스 자체를 컴. 길드의 가치를 떨어뜨려. 사람을 빼가는 게 아니라, 사업을 빼앗아.”
도윤은 전화를 끊고 다시 창밖을 봤다. 서울의 불빛이 하나씩 켜지고 있었다.
동생이니까. 어디까지 버틸 수 있는지 보자.
───
승헌은 혼자 사무실에 앉아 있었다. 창밖으로 해가 지고 있었다. 형광등의 깜박이는 빛이 책상 위에서 떨리고 있었다.
형은 세 번째 수를 뛴다. 하지만 세 번 다 막았다.
거래처 이탈 → 대체 거래처 확보.
관청 압력 → 합법 구조 증명.
인력 스카우트 → 헌터 잔류 서약.
문제는 형의 네 번째 수다. 이번에는 무엇이 올까.
마켓 아이가 수치를 갱신했다.
이카루스 3개월 실적 예측: 영업이익 흑자 전환 확률 71%.
인수 성공 확률: 52%.
44%에서 52%로 회복. 아직 형의 방해가 계속되지만, 숫자는 조금씩 올라가고 있다.
숫자가 방향을 잡았다. 이제 속도의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