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화. 역전의 숫자
▶ 3개월 후. 엘리시움 사무실. 밤 11시.
테이블 위에 이카루스 3개월 실적 보고서가 놓여 있었다. 47페이지. 승헌이 직접 작성한 보고서였다. 표지에 이카루스 로고가 있었다. 3개월 전과 같은 로고였지만, 안의 숫자는 완전히 달랐다.
태경이 마주앉아 보고서를 넘기고 있었다. 은설이 옆에 서서 보충 자료를 준비하고 있었다. 밤 11시의 사무실. 창밖으로 서울의 야경이 보였다. 책상 위에 다 식은 커피 세 잔이 놓여 있었다.
태경의 손가락이 보고서의 마지막 페이지에서 멈겷다.
“인정하지.” 태경이 말했다. “숫자가 바뀌었어.”
영업이익: -4억 → +1.8억.
부채비율: 340% → 180%.
EBITDA: 마이너스 → 플러스 전환.
PMC 수익: 월 평균 3.2억 (전체 매출의 48%).
마석 정제 내재화 효과: 수수료 절감 연 1.8억.
이카루스가 흑자로 돌아섰다.
3개월. 그 사이에 승헌은 솔로 던전을 7번 더 까다. 박성우는 붉대를 풀고 복귀했고, 정제기 도입을 직접 감독했다. PMC 3건의 계약은 순조롭게 이행됐다. 헌터들의 성과급은 기본급의 1.3배에 도달했다.
도윤의 방해는 계속됐다. 세무조사 휘소 후 2차 세무조사가 들어왔다. 이정호가 다시 나타났다. 하지만 이번에는 은설이 먼저 준비해 둔 자료로 3일 만에 종결했다. 최준혁의 스카우트 전화는 달에 한 번씩 계속됐지만, 헌터들은 전원 거절하고 보고했다. 이카루스라는 이름이 업계에서 바뀌기 시작했다. '파산 직전 C급'이 아니라 '흑자 전환 C급'으로.
숫자가 방해를 압도했다. 18화에서 숫자가 방향을 잡았다고 했다. 방향이 결과가 되기까지 3개월이 걸렸다.
태경이 커피를 마셨다. 다 식은 커피였지만 개의치 않는 표정이었다.
“부채비율 180%. 3개월 전에 네 말을 믿은 건 내 커리어 최고의 결정이었어.”
“태경 씨의 네트워크 덕입니다.”
“아니야.” 태경이 보고서를 내려놓았다. “네트워크는 도구야. 이걸 만든 건 네 머리와 그 이상한 스킬이지.”
이상한 스킬. 태경은 여전히 마켓 아이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결과는 인정한다. 투자자에게 결과가 공 신뢰다.
▶ 다음 단계.
“다음 단계가 있습니다.” 승헌이 말했다.
“뭐데?”
“HMB에 길드 등급 재심사를 신청합니다. C급에서 B급으로.”
태경의 눈썩이 올라갔다.
“B급 승격 조건이 뭐야?”
은설이 대답했다. “재무 요건은 충족합니다. 문제는 실전 요건입니다. B급 던전 1회 이상 공략 성공 기록이 필요합니다.”
“이카루스에 B급 헌터가 있어?”
“없습니다.”
침묵.
승헌이 말했다. “외부 용역으로 B급 헌터를 계약합니다.”
“누구?”
승헌은 스마트폰을 꺼냈다. 연락처를 스크롤했다. 아크1 이후 한 번도 연락하지 않은 이름에서 멈겷다.
서지후.
S급 헌터. 이상주의자. 전생에서 사상적으로 가장 많이 충돌했던 사람. 하지만 실력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전생에서 승헌이 유일하게 등을 맡긴 사람.
그리고 이번 생에서는 나를 '관찰'하겠다고 한 사람. 13화의 문자. '관찰은 계속한다.'
통화 버튼을 눌렀다. 3번 울리고 받았다.
“누구야?”
“강승헌입니다.”
2초 침묵.
“각성 실패자가 나한테 전화할 일이 있어?”
“비즈니스 제안입니다.”
“비즈니스?” 지후의 목소리에 비웃음이 섞여 있었다. “헌터한테 비즈니스를 제안한다고?”
“B급 던전 1회 공략. 용역 계약입니다. 보수는 마석 수익의 30%.”
“30%.” 지후가 반복했다. “나쁘지 않네. 근데 왜 나야?”
“S급 실력에 비해 합리적인 가격을 수용할 분이 필요합니다.”
지후가 웃었다. 짧은 웃음.
“재밌는 표현이네. 싸다는 거잖아.”
“효율적이라는 겁니다.”
5초 침묵.
“조건이 있어.”
“말씀하세요.”
“직접 같이 들어가. 네가 어느 정도인지 보고 싶으니까.”
같이 들어가라. 지후가 나를 시험하겠다는 뜻이다. 전생에서 지후는 말했다. '넌 헌터가 아니야.' 그때 승헌의 실체를 확인할 기회가 없었다. 이번에는 직접 보겠다는 것이다.
각성 상태가 드러난다. B급 던전에서 E급이 살아남을 수는 없으니까. 전투에 참여하는 순간, 최소 B급 이상이라는 게 밝혀진다.
리스크. 하지만 이카루스를 B급으로 올리려면 피할 수 없는 관문이다.
“수락합니다.”
“다음 주 월요일. 인천 B급 던전 ‘철의 회랑’. 아침 6시. 늦으면 안 가.”
전화가 끊어졌다.
승헌은 스마트폰을 내려놓았다. 화면이 꺼졌다. 검은 화면에 자신의 얼굴이 비쳤다. 전생에서 지후와의 마지막 대화가 떠올랐다. 대균열 전날. '넌 슸울 줄만 알지, 지킬 줄은 모르잖아.' 지후의 말이었다. 그리고 그 말은 틀리지 않았다.
이번 생에서는 다르다. 쓸 줄도 알고, 지킬 줄도 안다. 그리고 사는 법도 안다.
태경이 봤다.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안경을 벗고 눈을 문질렀다. 밤 11시. 오늘의 두 번째 커피를 다 마신 사람의 피로가 보였다.
“같이 들어간다고? 네가?”
“네.”
“각성 미분류잖아.”
승헌은 대답하지 않았다.
태경이 3초간 봤다. 그리고 한숨을 쉬었다. 다 식은 커피를 마지막 한 모금 마셨다.
“그 스킬의 정체가 뭐지는 안 물을게. 살아서 나와.”
은설이 자리를 정리하며 말했다.
“월요일 인천 던전이면 장비 점검이 필요합니다. 내일 중으로 준비하겠습니다.”
▶ 밤 11시 30분. 엘리시움 사무실 앞.
3명이 엘리시움 사무실을 나섰다. 복도의 형광등이 꺼져 있었다. 야간 비상등만 켜져 있었다. 밤공기가 차가웠다. 6월의 밤치고는 쓀쓀했다.
승헌은 걸으면서 마켓 아이를 발동했다.
B급 승격 시 예상 효과: HMB 등급 B급 → 입찰 가능 던전 범위 확대. PMC 계약 단가 상승. 신규 헌터 영입 시 등급 매력도 상승. 월 예상 수익 1.8배 증가.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B급 길드는 적대적 M&A의 주체가 될 수 있다. C급은 안 된다. 사냥터를 사려면, 먼저 사냥꾼이 되어야 한다.
태경이 먼저 택시를 잡으며 말했다.
“승헌 씨. B급이 되면 다음은 뭐야?”
승헌은 서울의 불빛을 봤다. 어딘가에 백호 길드 본사가 있다. 22층짜리 건물. 로비의 대리석 엠블럼.
“다음은 더 큰 사냥입니다.”
택시가 출발했다.
은설이 옆에 서서 말했다.
“더 큰 사냥이 뭡니까?”
승헌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마켓 아이가 수치를 올렸다.
백호 길드 최근 3분기 추정 재무 상태: 부채비율 280%. 주력 S급 헌터 계약 만료 임박 3명. 제주 블랙 존 채굴 수익 적자.
적대적 M&A 3대 조건 — 주가 저평가 ✅ / 낮은 대주주 지분 ✅ / 도덕적 흠결 ⬜
세 가지 중 두 가지가 충족됐다.
이카루스는 첫 번째 사냥이었다. 연습이었다. 부채비율 340%의 C급 파산 직전 길드를, 3개월 만에 B급 흑자 길드로 바꿨다. 밸류업 완료.
백호가 두 번째다. 그리고 이번에는, 검도 계산기도 둘 다 쓴다.
은설이 옆에 서 있었다. 승헌은 말하지 않았다. 은설도 묻지 않았다. 둘은 서울의 밤공기 속에 서 있었다. 3개월의 숫자가 뒤에 있었고, 더 큰 숫자가 앞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