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화. 세무조사
72시간 중 52시간 경과. 남은 시간: 20시간.
이카루스 사무실. 오전 9시 15분.
승헌은 책상에 앉아 PMC 파견 계약서를 검토하고 있었다. 어제 태경과 세팅한 블랙 먼데이 포지션이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820%라는 숫자. 하지만 그건 2년 후의 일이다. 오늘은 오늘의 전선에 집중해야 한다.
오후 2시에 백호 본사에서 한기범을 만난다. 72시간 중 가장 중요한 미팅이다.
그때 현관 벨이 울렸다.
은설이 문을 열었다. 남자 셋이 서 있었다. 양복 두 명, 점퍼 한 명. 양복은 HMB 조사관, 점퍼는 국세청이었다.
“헌터관리국 감찰과 이정호 조사관입니다. 이카루스 길드 지분 거래 관련 협조 조사차 방문했습니다.”
이정호. 40대 중반. 깎은 머리. 넓은 어깨. 서류 가방을 오른손에 들고 있었다. 왼손은 비어 있었다. 영장은 없다는 뜻이다. 눈이 승헌을 지나 사무실 내부를 한 바퀴 훑었다. 방에 들어서기 전에 환경을 파악하는 습관. 조사관의 버릇이다.
임의 조사. 거부 가능. 하지만 거부하면 다음에는 영장을 들고 온다.
“들어오시죠.” 승헌이 말했다.
▶ 이카루스 회의실.
마주 앉았다. 회의실 형광등이 이정호의 대머리 위에서 빛나고 있었다. 에어컨이 돌아가고 있었지만, 이 방은 항상 약간 더웠다. 장문이 남장을 향하고 있어서다.
이정호가 서류를 꺼냈다. 이카루스 지분 변동 내역. 승헌의 이름이 빨간 형광펜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서류를 테이블 위에 놓는 동작이 정확했다. 종이의 모서리가 승헌을 향하도록. 상대방에게 자료를 더 잘 보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압박감을 주기 위해서다.
이 사람은 조사를 해본 적이 있다. 많이.
“강승헌 씨. 각성 등급 미분류 상태에서 C급 길드 지분을 취득하셨는데, 자금 출처를 여쫑겠습니다.”
“엘리시움 파트너스의 투자입니다. PEF 구조이고, 투자 계약서와 자금 흐름은 전부 공시 가능합니다.”
승헌은 태블릿을 꺼내 투자 구조도를 보여줬다. LBO 구조. 엘리시움이 GP, 기관투자자 3곳이 LP. 이카루스 자산을 담보로 한 차입매수.
이정호는 구조도를 3분간 들여다봤다. 손가락이 구조도의 선을 따라갔다. GP에서 LP로, LP에서 담보 자산으로. 읽는 속도가 빨랐다. 금융 구조에 익숙한 사람의 속도였다.
국세청 조사국 출신. 탈세 및 자금세탁 전문가다. HMB 감찰과로 이동한 것은 이 사람의 커리어에서는 하향 이동이다. 누군가가 데려온 것이다.
“합법적 구조라는 건 이해합니다만.” 이정호가 고개를 들었다. “인수 목적이 불분명합니다. 각성자가 아닌 분이 왜 헌터 길드를 인수하시는 겁니까?”
“투자입니다.”
“투자요.”
이정호의 억양이 올라갔다. 미세하게. ‘투자’라는 단어를 반복한 것은 믿지 않는다는 뜻이다.
“C급 길드의 평균 EBITDA 대비 이카루스의 주가는 40% 저평가 상태입니다. 구조조정 후 밸류업 가능성이 높은 자산입니다.”
이정호의 표정이 미세하게 바뀌었다. EBITDA라는 단어에 반응한 게 아니라, 승헌의 톤에 반응한 것이다. 너무 차분했으니까. 조사를 받는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한 가지 더 여쫑겠습니다.”
“네.”
“강도윤 씨의 미래그룹과 관계가 어떻게 되시죠?”
여기다.
질문의 순서가 달랐다. 자금 출처 → 인수 목적 → 가족 관계. 일반적인 감찰 조사라면 가족 관계를 먼저 묻는다. 마지막에 넣었다는 건, 이 질문이 조사의 진짜 목적이라는 뜻이다.
형이 HMB를 움직이고 있다.
“미래그룹 회장 강태주의 차남입니다. 형 강도윤 부회장과는 사업적 관계가 없습니다.”
“없다고요?”
“없습니다.”
이정호는 메모를 했다. 볼펜이 종이 위를 긁는 소리가 회의실에 울렸다. 적는 속도가 느렸다. 내용을 적는 것이 아니라, 승헌의 반응을 관찰하는 시간을 버는 것이었다.
“협조 감사합니다. 추가 확인이 필요하면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조사관들이 나갔다.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 계단을 내려가는 구두 소리. 사라졌다.
은설이 회의실로 들어왔다. 표정이 굳어 있었다. 손에 들고 있는 태블릿의 모서리를 손가락이 꼽 잡고 있었다.
“형이 움직인 겁니까?”
“네.”
“어떻게 대응합니까?”
승헌은 창밖을 봤다. 조사관들의 차가 주차장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검은 세단. 번호판을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관용 차량의 느낌은 뜻다.
“대응할 필요 없습니다. 우리 구조는 합법입니다. 문제는 조사 자체가 아니라, 조사가 만들어내는 시간 지연입니다.”
전생에서는 여기서 물러났다. 조사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싸울 자본이 없어서. 조사가 3개월 끌리는 동안 이카루스의 현금이 바닥났고, 결국 인수를 포기했다.
그날, 형이 전화를 했다. “잘 생각했다.” 그 한 마디였다. 그리고 이혜진 이야기를 꺼냈다. “혜진이도 네가 포기하길 바랐을 거다.”
혜진. 그 이름을 형이 무기로 쓰는 것은 전생에서도 똑같았다.
이번 생에서는 다르다. 엘리시움이 있고, PMC 수익이 있고, 무엇보다 시간을 벌 방법을 알고 있다.
“은설 씨. 조사 관련 서류 전부 정리해서 엘리시움 법무팀에 넘겨주세요. 그리고 한 가지 더.”
“네.”
“이정호 조사관의 이력을 확인해주세요. 어디서 왔고, 누구 밑에서 일했는지.”
은설이 고개를 끄덕이고 나갔다.
HMB 조사 지속 시 인수 지연 확률: 65%. 인수 확률 재산정: 44%.
48%에서 44%.
하지만 관청을 쓰면 흔적이 남는다. 형이 HMB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증거가.
승헌은 스마트폰을 꺼내 메모를 열었다. ‘형 관련 정황 기록’. 날짜, 사건, 연결 인물. 아직 세 줄뻐이었다. 미래그룹 전략기획팀 문자. 태성그룹 거래처 이탈. HMB 조사.
네 번째 줄을 추가했다.
‘이정호 조사관 — 국세청 출신, HMB 이동 시점 확인 필요.’
이건 나중에 쓸 무기가 된다.
메모를 닫았다.
▶ 오후 4시.
은설이 들어왔다. 손에 A4 용지 한 장을 들고 있었다. 들고 들어오는 방식이 평소와 달랐다. 태블릿이 아니라 종이였다. 종이를 들고 들어올 때는 나컄 소식이다.
“강민재 헌터가 사표를 냈습니다.”
강민재. 이카루스 전투형 에이스. C급 상위. 던전 공략의 핵심 전력.
“이유는요?”
은설이 A4 용지를 내밀었다. 사표. 손글씨였다. 글씨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화가 난 사람의 필압이었다.
‘저는 사업가 밑에서 일하려고 헌터 된 게 아닙니다.’
예상 범위 안이다. 하지만 타이밍이 나쁘다.
강민재가 빠지면 이카루스의 전투력은 C급 하위로 떨어진다. D급 던전 공략도 효율이 반으로 준다. PMC 파견 인력도 부족해진다.
“붙잡겠습니까?” 은설이 물었다. 목소리가 조용했다. 단순한 질문이 아니었다. 붙잡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뜻이 섮여 있었다.
승헌은 사표를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붙잡을 수 있는 조건이 없습니다.”
강민재가 원하는 건 돈이 아니다. 자존심이다. 헌터로서의 자존심. 그건 승헌이 줄 수 없는 것이다. 적어도 지금은.
“사표를 수리합니다.”
은설이 고개를 끄덕였다. 문을 나서려다 멈겴다.
“한 가지 더. 이정호 조사관 이력 확인했습니다.”
“어디 출신입니까?”
“국세청 조사국 출신. 3년 전 HMB 감찰과로 이동. 이동 시점에 미래그룹 측 로펀 ‘율촌’이 HMB 자문 계약을 체결한 기록이 있습니다.”
율촌. 미래그룹 법무를 20년간 담당한 곳. 이정호는 형의 줄이다.
“기록 보전해두세요.”
“알겠습니다.”
은설이 나갔다.
승헌이 빈 회의실에서 천장을 올려다봤다. 형광등이 눈을 질렀다.
스마트폰이 울렸다. 문자였다.
[서지후: HMB 조사 들어갔다며? 또 무슨 짓이야.]
소문이 빠르다. S급 헌터의 네트워크는 관청보다 빠르니까.
답장을 적었다.
[강승헌: 협조 조사입니다. 문제없습니다.]
3초 후 답장이 왔다.
[서지후: 문제없다는 말, 문제있는 사람들이 제일 많이 하더라. 관찰은 계속한다.]
관찰. 8화에서 감시하겠다고 선언했던 사람답다.
스마트폰을 내려놓았다.
인수 확률 44%. 에이스 이탈. 관청 압력. 거래처 3곳 이탈. 그리고 S급의 눈길.
전생에서는 여기서 끝났다.
이번에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일 백호 길드 미팅이 있다. 한기범을 만나야 한다.
적의 돈으로 적의 약점을 산다. M&A의 기본이다.
72시간. 남은 시간: 16시간. 분수령은 내일이다.